그리스도인(Christian)은 글자 그대로 그리스도의 사람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리스도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그의 눈은 불꽃 같고 머리에는 많은 왕관이 있고 또 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자신 외에는 아무도 모르며 피에 적신 옷을 입었는데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리더라』(계19:12,13).
한글 개역성경은 신약성경만 하더라도 무려 2,000단어 이상이나 삭제되고 없다. 오역된 부분까지 합치면 성경이 아니다(그래서 '성서'라고 스스로 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같은 원문에서 여러 가지 성경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성경이 130년간의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성경을 대신하였기에 지금 우리가 거두고 있는 열매가 영양실조와 혼돈과 무질서 뿐인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제 주님 오실 날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참된 하나님의 말씀의 정착과 바른 신학의 정립이다. 이러한 시점에 이르러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라는 학회지를 발간하게 된 것은 우리들의 기도의 응답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초등학교 3학년 수준에도 못 미치는 이 나라 교회들의 성경지식이 이 학회지를 통하여 계속 성장하게 되기를 기원한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이 땅에 신학과 교리의 교통 정리자로서 그 몫을 다해 줄 것을 기대한다.
성경에서 가장 쉬운 난제
박승용 / 성경침례교회 담임목사
여기에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할”(딤후 2:15) 줄 모르는 목사들과 신학자들이 쉽게 풀지 못하는 “난제”가 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게 되었다면 그에게 자랑할 것이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더니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 4:2,3). 『오 허황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인 줄 네가 알고자 하느냐?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렸을 때, 그가 행함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아니하였느냐?』(약 2:20,21) 이 나라에서 두 본문 간에 나타나는 “차이”가 “모순”이 아니라고 성경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목사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사실 이 나라에는 성경을 공부하지 않는 것은 물론 “거듭나지도” 않은 목사들이 부지기수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어떻게 거듭났는지”에 관한 “구원 간증”조차 할 줄 모른다. 한번은 광화문역 근처에서 구령을 하다가 두 명의 중년 남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중 한 명에게 “구원받았습니까?”라고 묻자, 질문을 받은 당사자는 침묵을 지켰고, 옆에 있던 사람이 대신해서 “아, 이분은 목사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입을 다물고 있던 그 사람에게 다시 물었다. “구원받았습니까?” 그러자 또다시 옆에 있던 사람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신 대답했다. “이분은 목사라니까요!” 질문을 받은 사람은 여전히 말이 없었고 부릅뜬 눈으로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래서 침묵을 지키던 그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구원받지 않으면 ‘지옥’에 가게 됩니다.” 그러자 또다시 옆에 있던 사람이 “그냥 갑시다!”라고 하면서 길을 재촉했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 사람은 보다 더 크게 눈을 부릅뜨면서 나를 한 대 칠 기세로 한 걸음 다가왔다. 그때 대신 말해 주던 사람이 말리더니 “그냥 갑시다!”라고 하면서 즉시 자리를 떠났다. 결국 “목사”라 불리던 그 남자는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끝까지 침묵했다. 무슨 어려운 질문을 했는가? 그것이 그렇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는가? “구원받았습니다!”라는 이 “한마디 말”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는가? 이것이 바로 구원받지 못한 채 교회에만 왔다 갔다 하는 “종교적인 위선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목사”라고 해서 무조건 거듭난 사람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구원받지 않았으면서도 얼마든지 “목사직”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림 당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라고 하셨을 때, 이 “거듭남”에 관한 말씀을 “누구”에게 하신 것인가? 그는 당대 최고의 석학으로서 율법에 정통하다고 자부하던 “바리새인”이자, “유대인의 관원”이요(요 3:1), “이스라엘의 선생”인(요 3:10) “니코데모”였다. 스코틀랜드의 “토머스 찰머스” 박사는 거듭나지 않은 채 10년간 설교했고, “하슬람” 목사는 자신의 설교로 거듭났다. “머레이 맥체인”은 말하기를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장면은 거듭나지 않은 설교자가 죽은 죄인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설교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자신이 “언제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성경적으로 정확하게 말할 수 없는 목사는 모두 가짜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스스로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못하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들이라』(고후 13:5).
성경은 “7천 년간의 인류 역사”를 “일곱 개의 경륜”으로 구분하는데, 곧 “무죄 시대의 경륜”(B.C. 4004), “양심 시대의 경륜”(B.C. 4004-2348), “인간 정부 시대의 경륜”(B.C. 2348-1920), “약속(족장) 시대의 경륜”(B.C. 1920-1491), “율법 시대의 경륜”(B.C. 1491- A.D. 30), “교회 시대의 경륜”(A.D. 30-2022 ?), [과도기적인 경륜인 “환란 시대”(A.D. 2022 ? - 2029 ?)], “천년왕국 시대의 경륜”(A.D. 2029 ? - 3029 ?)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구원받는 방법”이 경륜마다 항상 똑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구원 방법”을 성경적으로 올바로 나눌 줄 아는 목사라면 서두에 언급한 “난제”를 쉽게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무죄 시대의 경륜”[재창조(창 1장)에서 인류의 타락까지(창 3장)]에서는 “행위”를 통해 구원받았다. 이것은 굳이 말하면 그렇다는 것이지, 사실 이 경륜에서는 “구원의 개념”이 무의미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죄를 가진” 불완전한 인간으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사들이 “영적인 존재들”로 완벽하게 창조되었듯이, 최초의 인류는 “육체적인 존재들”로 완벽하게 창조되었다. 죄가 세상으로 들어온 것은 아담이 금지된 열매를 먹고 타락했을 때였다(롬 5:12). 그러므로 “무죄 시대의 경륜” 안에서는 “인간이 구원을 받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 자체가 불필요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는데, 당시 최초의 인류에게는 한 가지 “금지 명령,” 곧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라는 명령이 주어졌다는 점이다. 이것은 “행위”에 근거하는 명령이었다. 말하자면 “무죄 시대의 경륜” 속에서는 구원의 개념이 불필요했다 해도, 그들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부터 그들에게 주어진 복과 생명을 계속 유지하면서 죽지 않기 위해서는 이 금지 명령을 끝까지 지켜야 했던 것이다. 여기에 “구원”의 개념을 적용하면, 당시 그들의 구원은 “행위”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떤 “믿음”도 필요가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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