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Christian)은 글자 그대로 그리스도의 사람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리스도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그의 눈은 불꽃 같고 머리에는 많은 왕관이 있고 또 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자신 외에는 아무도 모르며 피에 적신 옷을 입었는데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리더라』(계19:12,13).
한글 개역성경은 신약성경만 하더라도 무려 2,000단어 이상이나 삭제되고 없다. 오역된 부분까지 합치면 성경이 아니다(그래서 '성서'라고 스스로 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같은 원문에서 여러 가지 성경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성경이 130년간의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성경을 대신하였기에 지금 우리가 거두고 있는 열매가 영양실조와 혼돈과 무질서 뿐인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제 주님 오실 날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참된 하나님의 말씀의 정착과 바른 신학의 정립이다. 이러한 시점에 이르러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라는 학회지를 발간하게 된 것은 우리들의 기도의 응답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초등학교 3학년 수준에도 못 미치는 이 나라 교회들의 성경지식이 이 학회지를 통하여 계속 성장하게 되기를 기원한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이 땅에 신학과 교리의 교통 정리자로서 그 몫을 다해 줄 것을 기대한다.
내가 신학 공부를 하기 위해서 가족을 데리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마스(San Dimas, CA)로 유학길에 올랐던 때는 1981년 11월이었다. 나는 대한항공의 조종사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동안 태평양 상공을 400회 이상 비행했고, 중동과 유럽에서 비행했던 시간을 포함하면 1만 시간이 넘는 동안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누볐다. 정들었던 대한항공에 사표를 냈을 때는 몰랐지만, ‘이제 민간항공사 비행은 마지막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감회는 군용 비행기 O-1A(또는 O-1E, 정찰 비행과 작전 연락 임무 수행)를 더 이상 타지 못한다고 했을 때의 아쉬움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나는 비행에 소질이 있었는지 조종을 잘했다. 항공학교에서도 1등을 했지만, 15사단에서 복무했을 때는 소위인 내가 사단장이었던 유병현 소장과 강원채 소장 등을 모시기도 했다. 나는 보잉 707을 오클랜드(Oakland, CA)에 있는 팬암 항공(Pan Am Airways)에서 배웠고(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내가 훈련받았던 때가 마지막이었다.), 보잉 747은 달라스(Dallas, TX)에 있는 아메리칸 항공(American Airlines)에서 배웠다.
내가 신학대학에 입학했을 때 교수들과 동료들은 민간항공사 조종사가 이 신학교에서 공부하려고 조종사를 그만두고 입학했다는 일로 설왕설래했다. 나는 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같은 반에서 만난 피트 맥킨지(Pete McKenzie)라는 젊은이와 친하게 지냈는데, 그는 라스베이거스(Las Vegas, NV) 출신으로 준수한 외모와 명석한 두뇌를 지녔으며 언제나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는 슬하에 두 아들이 있었고, 그가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얻은 일란성 쌍둥이 여아들은 선천적으로 심장에 문제가 있어 양육하는 데 고생이 많았다. 두 아이가 하루 종일 심장에 장치를 달고 있어서 부모는 늘 노심초사했다. 고향인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에서 이 가정에 평생 무료로 햄버거를 먹을 수 있는 특혜를 베풀기도 했다. 그의 가족은 가장이 신학교 학생이었기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캘리포니아 주 샌디마스에서 기거하였고, 주말이면 가족 전체가 라스베이거스로 가서 피트의 아버지와 함께 지냈으며, 그들이 속한 교회는 라스베이거스성경침례교회(Las Vegas Bible Baptist Church)였다. 피트의 아버지는 미 해병 출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이오지마 섬에서 일본군을 대항하여 싸운 전쟁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곤 했다. 그는 전투 중에 포탄 소음으로 청력에 손상을 입은 이후 줄곧 고생해 왔다. 우리 가족도 두어 번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그들과 함께 주말을 보낸 적이 있었다. 내가 혼자 그곳에 갈 때면 모텔보다는 피트의 집에서 방을 하나 얻어 지냈고, 나는 그들에게 LA갈비를 사다가 내 나름대로 마늘 가루 양념을 하여 바비큐를 해 줬는데, 그 가족은 내가 만들어 준 바비큐를 너무나도 맛있게 먹었다.
그 집에서 묵던 어느 날 밤, 자정이 지나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거실 TV에서 비디오테이프가 재생되고 있었다. 아무도 보는 사람 없이 전원을 끄지 않은 채 놔둔 것이었다. 무슨 영상인가 싶어 보았더니 어떤 나이 먹은 사람이 성경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요한계시록 강해였는데, 나로서는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강의에 매료되었고, 놀랍게도 처음 듣는 내용이었지만 마치 나를 붙들고 집중해서 강의하는 것만 같았다. 그날 밤 두어 시간 그렇게 보내고 잠을 청했는데, 너무 생동감이 넘치는 강의라서 더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날이 새자, 나는 피트에게 밤중에 들었던 비디오테이프 이야기를 했다. 이에 그가 피터 럭크만(Peter S. Ruckman) 목사님의 요한계시록 강의라고 알려 주면서, 럭크만을 따라올 성경 교사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통틀어도 없다고 말해 주었을 때 나는 매우 놀랐다. 피트는 그날 나에게 럭크만 목사님이 쓴 <Bible Babel>이라는 책 한 권을 주었다.
나는 즉시 럭크만 목사님을 만나려고 펜사콜라(Pensacola, FL)행 왕복 비행기 표를 산 후 럭크만 목사님 집으로 전화했는데 그의 아내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먼저 나를 소개하고 럭크만 목사님을 뵈러 펜사콜라에 가겠다고 알렸다. 펜사콜라를 플로리다 주 남쪽에 있는 조그마한 시골 도시로 짐작했었는데, 알고 보니 플로리다 북쪽에 위치하여 앨라배마 주와 나란히 있었다. 그곳 백사장은 글자 그대로 하얀 모래뿐이다. 멕시코 만 연안 지역이라 투망으로 숭어를 잡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또한 그곳에는 미 해군항공기지(Naval Air Station)가 있고, 해군항공박물관도 있어서 1년 내내 많은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나는 럭크만 부인에게, 차가 없으니 교회에서 가까운 모텔을 예약해 달라고 부탁했고, 초행길이니 나를 안내할 안내자가 공항에 나와 주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럭크만 부인은 나의 전화번호를 묻고는 전화를 끊었다. 몇 분 후에 다시 전화가 와서, 누군가가 공항에 배웅하러 갈 것이며 모텔도 교회에서 가까운 곳에 예약했다고 말해 주었다.
펜사콜라는 작은 도시가 아니었다.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횟수만 봐도 누구나 그 점을 감지할 수 있다. 비행기에서 내려 출구로 향했는데, 양쪽에 마중 나온 사람들을 둘러봐도 나를 영접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쉬지 않고 수하물 찾는 곳까지 걸어가고 있었는데, 저쪽에 키가 작고 나이 먹은 한 노인이 헌 운동화에 작업복을 입은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친한 친구처럼 포옹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가 바로 피터 럭크만 목사님이었다.
우리는 예약한 모텔로 가서 체크인했는데, 나의 숙소는 2층이었다. 미국에 처음 온 사람은 현지에 있는 자기 친구가 연락할 때까지 모텔 방에서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해야 행여나 나를 만나러 올 친구의 차가 고장이 났거나 사고 났을 경우 연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은 수요기도회가 있는 날이어서 럭크만 목사님은 5시 30분에 오겠다고 말한 후 모텔을 떠났다. 목사님과 헤어지면서 나는 그분의 성격이 몹시 급하다고 짐작하여 5시 30분 이전에 모텔 정문에 나가서 기다렸다. 내 추측이 맞았다. 만약 그가 모텔에 와서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2층에 있는 내 방까지 올라와서 노크했는데 내가 잠시 눈을 붙이느라 떠날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그것은 결례이고, 특히 성격이 급한 사람에게는 더욱 짜증 나는 일 아니겠는가!
나는 곧장 목사님 차로 교회에 도착했다. 목사님은 나에게 어디에 가 있겠느냐고 물으셨다. 펜사콜라성경신학원(Pensacola Bible Institute, PBI)은 수요일에도 정규 수업이 있었다. 나는 신학교 강의실로 가겠다고 했고 목사님 시간에 그 교실에 들어갔는데, 무슨 과목인지는 몰랐지만 마침 시험 시간이었다. 나는 PBI에 와서 말씀에 갈급한 헌신된 학생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했다.
수요기도회가 저녁 7시에 시작되었는데, 목사님은 독일에서 온 목사에게는 그 자리에서 자기소개하라고 하시더니, 그날 처음 방문한 나에게는 강단에 올라와서 간증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는 원래 대한항공 보잉 747 조종사였는데, 1978년에 구원을 받고 성경을 공부하려고 캘리포니아 주 샌디마스에 와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석사, 박사 과정은 글렌데일에 있는 캘리포니아신학대학원(California Graduate School of Theology in Glendale, CA)에서 공부했고, 한글개역성경이 심각하게 틀린 것을 알았기에 <헬라어 표준원문과 비교해 본 한글 성경의 번역상의 오류>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헬라어 표준원문에서 사복음서를 번역하고 있는데 달라스신학대학원(Dallas Theological Seminary)의 신약과장인 제인 하지스(Zane C. Hodges) 교수의 사사(師事)로 작업 중에 있습니다. 만약 제가 럭크만 목사님을 먼저 알았다면 목사님께 도움을 청했을 것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미국의 신학자 중에서 럭크만 목사님이 가장 점수를 많이 준 학자가 제인 하지스 교수였다. 왜냐하면 제인 하지스 교수는 <다수필사본>(원제목 : The Greek New Testament According to the Majority Text)을 아더 파스타드(Arthur L. Farstad)와 공동으로 편수하여 원문비평학 관점에서 <헬라어 표준원문>(Greek Textus Receptus)과 동일한 필사본으로 분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 편수자”가 폰 소덴(Von Soden)이라는 것을 모르는 학자들이 많았다. 나는 럭크만 목사님께 <다수필사본>은 폰 소덴이 편수한 것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정말 그러냐면서 크게 반기셨다.
예기치 않은 간증 시간에 나는 내가 아는 대로 말했을 뿐인데, 럭크만 목사님은 나를 대단한 한국인 신학자라고 점수를 주셨다. 목사님과 나는 수요기도회 때 목사님 집무실에서 함께 기도했다. 신학교 수업은 계속되었고, 마침 그 교회 직원인 한 청년이 자기 집에 나에게 필요한 자료가 있으니 주겠다며 같이 갔다 오자고 해서 나는 윗옷을 교회에 벗어 놓은 채 그를 따라나섰는데 거리가 꽤 멀어 즉시 후회했었다. 교회로 돌아와 보니 강의는 이미 마지막 시간이었다. 나는 무엇을 들었는지도 모르게 졸리기 시작했다. 럭크만 목사님은 나에게 배고프지 않으냐고 물으셨다. 비행기에서 점심으로 조촐한 기내식을 먹은 지가 열 시간이 넘었는데 왜 배가 안 고프겠는가? 목사님은 드라이브스루(drive-thru) 샌드위치 가게에서 로스트비프 샌드위치와 드링크 하나를 사서 내게 건네주시며, 내일 아침 7시에 자기 아내와 함께 아침을 먹자고 말씀하셨다. 내가 차에서 내릴 때, 목사님은 내 윗옷 안주머니에 돈이 들어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깜짝 놀라서 무슨 돈이냐고 물었더니 교회에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하셨다. 숙소에서 꺼내 보니 250달러였다. 여행자에게는 큰돈이었다. 목사님은 그만큼 사려가 깊은 분이셨다.
다음 날 아침 6시에 기상해서 씻고 모텔 정문에 나가 목사님 내외를 기다렸다. 약속 시간에 미리 나와 있었던 점이 목사님의 환심을 사는 데 한몫했다. 나는 사모님을 소개받고 뷔페식당에 가서 아침을 먹었는데, 목사님이 음식을 가지러 간 사이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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