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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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숫자들 요약정보 및 구매

피터 S. 럭크만(Dr. Peter S. Ruckman) 저 / 편집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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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 2015년 6월 30일 초판1쇄
쪽수 : 96
무게 : 200g
크기 : 153*223*15mm 신국판 무선제본, 무게
ISBN : 9788992164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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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의 숫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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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 상세설명

    성경에는 세상의 모든 과학 법칙들을 훨씬 능가하는 수학적인 현상이 발견된다. 성경에 기록된 숫자들을 공부할 때, 이런 현상을 보다 더 실감할 수있다. 성경에 기록된 어떤 단어라도 일정한 의미를 갖고 있듯이, 모든 숫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의미 없이 기록된 숫자는 단 하나도 없다. 심지어“장”과“절”을 표시하는 숫자들까지도 그 수가 지니는 의미를 더욱 부각시켜 준다. 이는 하나님께서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단어 하나하나에 영감을 불어넣으시어 성경을 기록하셨고, 숫자들까지도 반드시 있어야 할 그 자리에기록해 두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을 온전히 믿고 공부하는 독자라면 당연히 숫자 하나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에 피터 S. 럭크만 목사는 본서를 통해 숫자의 의미에 대해 성경적으로 철저히 분석해 놓았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성경의 숫자들에 관한 한 보다 더 깊은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상품 정보 고시

  • 서   문 / 5

    제 1 장 
     성경 속 숫자들 / 11

    제 2 장
     숫자들의 의미 / 17

      ➷ 하나    / 18
      ➷ 둘       /  21
      ➷ 셋       /  25
      ➷ 넷       /  33
      ➷ 다섯    /  39
      ➷ 여섯    /  46
      ➷ 일곱    /  57
      ➷ 여덟    /  64
      ➷ 아홉    /  66
      ➷ 열       /   71
      ➷ 열하나  /  75
      ➷ 열둘     /  79
      ➷ 열셋     /   81
      ➷ 사십     /   85
      ➷ 일곱과 사십  /  88
      ➷ 천  /  91

    제 3 장
     성경과 함께 나아가라  /  93

  • 서문


    성경을 거부했던 알버트 아인슈타인(1879-1955)은 자신이 무신론자가 된 이유에 대해 “수학 공식이 아닌 하나님”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은 자기 망상 속에 하나님을 제멋대로 규정지어 놓고는, 자신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려는 복음 전파자들의 모든 시도를 거부해 버렸다. 그는 적그리스도처럼 숫자에 능한 사람이었다(<짐승의 표, 피터 S. 럭크만, 말씀보존학회, 1997> 참조).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눈멀고 무지한 자들이다(롬 10:3, 벧후 3:5, 엡 4:18). 이 무지의 전당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사람이 바로 아인슈타인이었다. 그는 구십 평생을 사는 동안 자신의 생각과 반대되는 성경적 진리에 대해 한 번쯤 시간을 투자해서 숙고해 보는 일 조차 거부했던 지독한 머저리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발견된 모든 명백한 “과학” 법칙들을 훨씬 능가하는 수학적 현상이 성경에서 발견된다. 이런 현상은 성경이 초자연적으로 구상되었고 기록되었으며 보존되었다는 사실과, 또 그 모든 과정이 세계가 문명화된 이후 지금까지 지상에 살았던 혹은 현재 생존하고 있는 그 어떤 인간의 책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놀라운 수학적 기초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논증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의미이론”에 따르면 그렇다는 것이다.

     
    성경은 인간들이 예측은 고사하고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사건들을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거듭 반복해서 예언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수학적인 기적을 목도하게 된다. 소위 예언자들이라고 불리는 매들린 머레이 오헤어, 진 딕슨, 노스트라다무스 그리고 에드가 케이시 같은 사람들의 말 따위는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범주로 묶을 수 없음은 물론 그 근처에도 못 미친다. 예를 들어 성경은 한 사람이 태어나기 이전에 그분에 관한 40여 가지의 내용들을 상세하게 예언했다. 그 중에는 그분이 탄생하기 1,000년 전에 선포된 예언들도 있었다. 게다가 “모든 예언은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다.” 수학적으로 이러한 예언들이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uncertainty principle)와 아인슈타인의 수학적 계산에 따르면 1/10157이다. 10157은 “1”뒤에 “0”이 157개 붙어 있는 숫자인데, 우주에 널려 있는 전자의 수를 다 합쳐도 그만큼은 되지 않는다.


    성경 속의 수학을 아인슈타인의 저속한 싸구려 수학과 같은 수준으로 평가절하하는 우를 절대 범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일어날 사건에 관해 500여 가지의 예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은 3,500년 전에 예언된 것이다. “한 사람”을 다루고 있는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에 관한 500여 가지의 상세한 예언들이 미래에 일어날 확률은 1/108000 이상이다. 진정한 수학의 창시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를 매우 수학적으로 운영되도록 만드셨기 때문에, 누구나 그 사실을 쉽게 목도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어리석은 자였다(시 14:1). 마흐, 하이젠베르크, 슈바이처, 바이스코프, 페스탈로치, 젠틸레, 듀이, 러셀 등과 마찬가지로 교육을 가장 잘 받은 멍청이였던 것이다.


    <킹제임스성경> 안에는 이런 놀라운 수학적인 현상뿐만 아니라, 반론의 여지가 전혀 없는 장과 절을 표시하는 독특한 숫자들이 들어 있다. 제리 루카스(1978)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손길을 파괴할 목적으로, 배교자들인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헬라어 성경과 한통속인 네슬판 헬라어 본문이 “영감받았다”고 입증해 보이려 했다(이에 관하여 철저하게 분석해 놓은 를 참조할 것). 하지만 이런 어설픈 행동은 소위 “추가된” 절과 장이 표시되어 있는 <킹제임스성경> 본문에 비하면 그리 대단할 것도 없다. 현재 <킹제임스성경> 본문에 표시된 그대로 장과 절의 표시들을 사용했던 사람은 그 누구라도, 그 표시들을 제외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은 자들, 곧 로버트슨, 메이첸, 홀트, 데이비스, 그레고리, 와필드, 커스터, 아프만, 마틴 등과 같은 학자들보다 “성경의 숫자들”(Bible Numerics)에 관한 한 더 깊은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성경의 숫자들에 관해 고찰한 이 작은 소책자를 통해서, 모든 독자들이 성경을 펴 놓고 “이 내용들이 정말로 그러한지 아닌지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성경에서 “열셋”이란 숫자가 등장하는 내용의 85%가 부정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면, 아인슈타인보다 지각이 더 부족하지 않고서야 그와 같은 진리를 무시할 리 만무하다. 그런 문제에 관해서라면 구원받지 않은 도박자가 아인슈타인보다 훨씬 더 낫다. 이는 숫자들의 “의미”를 확정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100%가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00%에서 15%가 부족하다고 해서 85%가 지니는 가능성에 대해 무시하는 사람을 지성인이라고 인정해 줄 수 없는데, 적어도 “숫자들”과 “확률”에 관한 문제를 다룰 때는 그렇다. 80%의 확률만 되도 전문 음식점들에게는 투자 가치가 매우 높은 편이다. 반면 <킹제임스성경>의 권위에 반대하는 교수진에게는 그것이 낮게 보일 뿐이다. 물론 85% 정도만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성경을 용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종류의 성경을 가지고 있는 배교자들은, 성경을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하는” 책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고 공공연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사실 그들은 그렇게 말할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갖고 있는 85%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그 안에 15%의 오류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숫자들”을 다룰 때에는, 어떤 숫자가 열 번 중에 여덟 내지 아홉 번 정도의 경우에서 “한 가지 동일한” 주제를 언급하고 있다면(일례로 “사십”이라는 숫자), 그것은 바로 그 주제를 의미하고 상징하는 숫자라고 확신해도 좋다.

     

    나는 독자들이 이 소책자를 즐겁게 공부하는 가운데 성경 속에 등장하는 숫자들의 의미에 관한 기본적인 구도를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에 사용된 “성경”은 당연히 무오하고 흠이 없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 곧 <킹제임스성경>이다.


    책 속으로 


    일곱(Seven)

    이제 “일곱”에 대해 살펴보자. 이 숫자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할 필요도, 상당량의 조사나 연구를 거칠 이유도, 또 심사숙고할 까닭도 없다. 그만큼 “일곱”이 “완성”의 수라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무슨 타당한 근거를 애써 제시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죽은 학자들이나 죽은 정통주의자들은 학문 자체에 미쳐 있는 자들이기에, 모든 숫자를 “대략적인 어림수”나 “완전수” 정도로 간주하는 어리석음을 드러낸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일 당신이 죽은 정통주의 학자들이 성경에 관해 쓴 잡다한 주석서들이나 학술적인 저작들을 읽어 보았다면(사실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일이다), 숫자가 제시될 때마다 마치 그 숫자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인 양 그들이 묵살해 버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이 숫자는 오차가 전혀 없는 정확한 숫자라기보다는 완성을 나타내는 대략적인 숫자일 뿐이다.” 세상에 가장 위대하다는 보수주의 학자들은 이런 터무니없는 방법을 따르면서 숫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롱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는 1,000년은 실제 1,000년의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을 의미하는 대략적인 숫자일 뿐이다.” “기드온이 실제로 함께 싸웠던 사람들의 숫자는 300명이 훨씬 넘지만 그 내용의 저자는 대략적인 수 또는 완전한 의미의 수로서 300이란 숫자를 기록했을 뿐이다.” 이런 사례들은 지겨우리만치 많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성”을 의미한다. “일곱”만큼 그 의미가 완벽하게 나타나는 숫자도 드물다. 흑인들이 흔히 이야기하듯이 “처음부터 끝까지”(From Generation to Resolution) 어디에서든 그 의미를 입증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땅과 하늘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여기에서 말하는 현재의 땅과 하늘은 창세기 1:1에서의 최초의 창조가 아니라 재창조 때 만들어진 땅과 하늘이다. 자 현재의 땅과 하늘은 육일 동안 창조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에 그분의 모든 일로부터 쉬셨다. 사실상 성경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성경은 “이 책”(this Book)이란 표현이 “일곱 번” 등장하는 “한 책”(요한계시록)으로 끝이 난다. 또한 그 책에는 “일곱 봉인,” “일곱 호리병,” “일곱 나팔,” “일곱 촛대,” “일곱 영,” “일곱 교회”가 나온다. 요한계시록을 유심히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경”이 무한한 책으로서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에서 보았던 “생명 나무”가 요한계시록에서 또다시 등장하는 것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낙원도 요한계시록에서 다시 나타난다. 이처럼 성경은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순환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교회협의회(NCC) 소속의 믿음 없는 지도자들은 “성경이 진리의 바다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이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것이 잘못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니, 성경은 끝이 없는 바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바다에는 NCC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저 우주 위로 수천억 평방 마일의 크기로 펼쳐져 있는 어마어마한 바다도 포함된다.


    “일곱”은 분명 완성의 수이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의 시작과 끝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에 대해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다면, 레위기 23장과 25장을 살펴보라. 이 두 개의 장을 공부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일곱”으로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즉시 깨닫게 될 것이다. 사실상 “일곱”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맹세하다” 또는 “자신을 맹세 아래에 두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주님께서 “내가 나 자신을 두고 맹세했노라.”라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곧 “일곱으로 일하겠노라.”라는 말씀이기도 하다. 이처럼 “일곱은 완결”을 의미한다(pp.58-60).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고 섭리로 보존된 책이다. 따라서 이 책에는 의미 없이 기록된 단어가 단 하나도 없다. 숫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각각의 숫자들 역시 하나님께서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기록하신 단어들이며, 거기에는 분명한 의미가 들어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성경의 “장”과 “절”을 구분하는 숫자들까지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표기되었다는 사실이다. 우연히 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이런 숫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숫자들이 지니는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해 준다.

    클라렌스 라킨이나 벌링거 등과 같은 사람들 역시 “성경의 숫자들”에 대해 연구하여 책을 쓰긴 했지만, 이 책만큼이나 정직하고 성경적으로 정확하고 철저하게 집필하지는 못했다. 물론 이 책 한 권으로 성경의 숫자들의 의미를 다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성경의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겠지만, 숫자들 역시 우리가 더 연구해야 할 영역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럭크만 목사님은 이 책 마지막에서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다. 「스코필드나 디한이 깨달은 진리에서 결코 멈추지 말라. 그들은 칼빈과 루터가 깨달았던 진리에서 멈추지 않았다. 또한 럭크만이나 벌링거의 지식 정도에서 멈출 생각도 하지 말라. 이들은 스탬이나 라킨이 깨달은 지식에서 멈추지 않았다. 반드시 성경과 함께 더 앞으로 나아가라.」 이유가 무엇인가? 성경은 영원한 책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성경은 끝이 없는 바다와 같다. 무한한 지혜와 지식의 보고이다. 성경에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계시해 줄 훨씬 풍성한 진리들이 들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을 기반으로 아직 계시되지 않은 진리의 말씀들, 특히 숫자들에 대해서 더 많은 연구를 지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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