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문 / 5
제 1 장
성경 속 숫자들 / 11
제 2 장
숫자들의 의미 / 17
➷ 하나 / 18
➷ 둘 / 21
➷ 셋 / 25
➷ 넷 / 33
➷ 다섯 / 39
➷ 여섯 / 46
➷ 일곱 / 57
➷ 여덟 / 64
➷ 아홉 / 66
➷ 열 / 71
➷ 열하나 / 75
➷ 열둘 / 79
➷ 열셋 / 81
➷ 사십 / 85
➷ 일곱과 사십 / 88
➷ 천 / 91
제 3 장
성경과 함께 나아가라 / 93
서문
나는 독자들이 이 소책자를 즐겁게 공부하는 가운데 성경 속에 등장하는 숫자들의 의미에 관한 기본적인 구도를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에 사용된 “성경”은 당연히 무오하고 흠이 없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 곧 <킹제임스성경>이다.
책 속으로
일곱(Seven)
이제 “일곱”에 대해 살펴보자. 이 숫자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할 필요도, 상당량의 조사나 연구를 거칠 이유도, 또 심사숙고할 까닭도 없다. 그만큼 “일곱”이 “완성”의 수라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무슨 타당한 근거를 애써 제시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죽은 학자들이나 죽은 정통주의자들은 학문 자체에 미쳐 있는 자들이기에, 모든 숫자를 “대략적인 어림수”나 “완전수” 정도로 간주하는 어리석음을 드러낸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일 당신이 죽은 정통주의 학자들이 성경에 관해 쓴 잡다한 주석서들이나 학술적인 저작들을 읽어 보았다면(사실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일이다), 숫자가 제시될 때마다 마치 그 숫자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인 양 그들이 묵살해 버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이 숫자는 오차가 전혀 없는 정확한 숫자라기보다는 완성을 나타내는 대략적인 숫자일 뿐이다.” 세상에 가장 위대하다는 보수주의 학자들은 이런 터무니없는 방법을 따르면서 숫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롱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는 1,000년은 실제 1,000년의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을 의미하는 대략적인 숫자일 뿐이다.” “기드온이 실제로 함께 싸웠던 사람들의 숫자는 300명이 훨씬 넘지만 그 내용의 저자는 대략적인 수 또는 완전한 의미의 수로서 300이란 숫자를 기록했을 뿐이다.” 이런 사례들은 지겨우리만치 많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성”을 의미한다. “일곱”만큼 그 의미가 완벽하게 나타나는 숫자도 드물다. 흑인들이 흔히 이야기하듯이 “처음부터 끝까지”(From Generation to Resolution) 어디에서든 그 의미를 입증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땅과 하늘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여기에서 말하는 현재의 땅과 하늘은 창세기 1:1에서의 최초의 창조가 아니라 재창조 때 만들어진 땅과 하늘이다. 자 현재의 땅과 하늘은 육일 동안 창조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에 그분의 모든 일로부터 쉬셨다. 사실상 성경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성경은 “이 책”(this Book)이란 표현이 “일곱 번” 등장하는 “한 책”(요한계시록)으로 끝이 난다. 또한 그 책에는 “일곱 봉인,” “일곱 호리병,” “일곱 나팔,” “일곱 촛대,” “일곱 영,” “일곱 교회”가 나온다. 요한계시록을 유심히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경”이 무한한 책으로서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에서 보았던 “생명 나무”가 요한계시록에서 또다시 등장하는 것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낙원도 요한계시록에서 다시 나타난다. 이처럼 성경은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순환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교회협의회(NCC) 소속의 믿음 없는 지도자들은 “성경이 진리의 바다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이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것이 잘못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니, 성경은 끝이 없는 바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바다에는 NCC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저 우주 위로 수천억 평방 마일의 크기로 펼쳐져 있는 어마어마한 바다도 포함된다.
“일곱”은 분명 완성의 수이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의 시작과 끝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에 대해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다면, 레위기 23장과 25장을 살펴보라. 이 두 개의 장을 공부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일곱”으로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즉시 깨닫게 될 것이다. 사실상 “일곱”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맹세하다” 또는 “자신을 맹세 아래에 두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주님께서 “내가 나 자신을 두고 맹세했노라.”라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곧 “일곱으로 일하겠노라.”라는 말씀이기도 하다. 이처럼 “일곱은 완결”을 의미한다(pp.58-60).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고 섭리로 보존된 책이다. 따라서 이 책에는 의미 없이 기록된 단어가 단 하나도 없다. 숫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각각의 숫자들 역시 하나님께서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기록하신 단어들이며, 거기에는 분명한 의미가 들어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성경의 “장”과 “절”을 구분하는 숫자들까지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표기되었다는 사실이다. 우연히 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이런 숫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숫자들이 지니는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해 준다.
클라렌스 라킨이나 벌링거 등과 같은 사람들 역시 “성경의 숫자들”에 대해 연구하여 책을 쓰긴 했지만, 이 책만큼이나 정직하고 성경적으로 정확하고 철저하게 집필하지는 못했다. 물론 이 책 한 권으로 성경의 숫자들의 의미를 다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성경의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겠지만, 숫자들 역시 우리가 더 연구해야 할 영역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럭크만 목사님은 이 책 마지막에서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다. 「스코필드나 디한이 깨달은 진리에서 결코 멈추지 말라. 그들은 칼빈과 루터가 깨달았던 진리에서 멈추지 않았다. 또한 럭크만이나 벌링거의 지식 정도에서 멈출 생각도 하지 말라. 이들은 스탬이나 라킨이 깨달은 지식에서 멈추지 않았다. 반드시 성경과 함께 더 앞으로 나아가라.」 이유가 무엇인가? 성경은 영원한 책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성경은 끝이 없는 바다와 같다. 무한한 지혜와 지식의 보고이다. 성경에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계시해 줄 훨씬 풍성한 진리들이 들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을 기반으로 아직 계시되지 않은 진리의 말씀들, 특히 숫자들에 대해서 더 많은 연구를 지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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