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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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요약정보 및 구매

피터 S. 럭크만(Dr. Peter S. Ruckman) 저 / 편집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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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출간일 : 2015년 1월 10일 개정판1쇄
쪽수 : 502쪽
무게 : 735g
크기 : 153*223*26mm 신국판 반양장 사철제본
ISBN : 979118591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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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애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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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 상세설명

    성경을 공부하려고 하는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알아야하는 책을 꼽자면 성경의 여러 책 가운데서도 출애굽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는 그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놀라운 지식의 보화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성경을 성경으로 비교한 피터 럭크만 목사의 주석서를 읽고 공부하면, 이전에는 모호했던 성경의 내용들이 분명해지고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점점 쌓여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이 될 수 있다. 절절마다 설명한 성경 주석의 참 맛을 즐겁게 누릴 수 있는 출애굽기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필독서이다. 

    상품 정보 고시

  • 이 책을 내면서 / 5

    들어가는 말 / 7



    출애굽기  1장 / 17
    출애굽기  2장 / 26
    출애굽기  3장 / 39
    출애굽기  4장 / 48
    출애굽기  5장 / 64
    출애굽기  6장 / 76
    출애굽기  7장 / 87
    출애굽기  8장 / 97
    출애굽기  9장 / 107
    출애굽기 10장 / 118
    출애굽기 11장 / 127
    출애굽기 12장 / 132
    출애굽기 13장 / 153
    출애굽기 14장 / 164
    출애굽기 15장 / 177
    출애굽기 16장 / 191
    출애굽기 17장 / 210
    출애굽기 18장 / 220
    출애굽기 19장 / 229
    출애굽기 20장 / 239
    출애굽기 21장 / 255
    출애굽기 22장 / 266
    출애굽기 23장 / 279
    출애굽기 24장 / 296
    출애굽기 25장 / 304
    출애굽기 26장 / 321
    출애굽기 27장 / 331
    출애굽기 28장 / 340
    출애굽기 29장 / 359
    출애굽기 30장 / 378
    출애굽기 31장 / 396
    출애굽기 32장 / 403
    출애굽기 33장 / 434
    출애굽기 34장 / 442
    출애굽기 35장 / 467
    출애굽기 36장 / 473
    출애굽기 37장 / 479
    출애굽기 38장 / 483
    출애굽기 39장 / 489
    출애굽기 40장 / 494

  • 서문 


    창세기는 이집트의 관으로 끝났다 - "그를 이집트에서 관에 넣었더라"(창 50:26). 그리고 더 이상 성경의 역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창세기가 “세대”의 책, 혹은 “시작”의 책이라면, 출애굽기는 구속(Redemption)의 책이다. 이 구속의 책은 창세기의 내용을 보완해 준다. 창세기에서 인간은 모든 것을 “잃어버려”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모두 황폐하게 되었다. 다윈과 그 추종자들(헤겔, 아인슈타인, 헉슬리, 프로이드, 메닝거, 마르크스, UN, 전미교육협회)은 이 사실을 거부함으로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계시를 알지 못한다(롬 3:4). 이들을 따랐던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 역시 황폐하게 되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을 추종한다고 해서 과학이나 역사가 발전하지는 않았다(<하나님의 나라와 천국> 참조).


    출애굽기를 말하는 “Exodus”는 평범한 헬라어이다. 히브리어로는 “Ve-eleh  Shemoth”(그리고 그 이름들은 이러하니라, And These are the Names)라고 부른다. 그런데 1917년판 맛소라 본문에는 출애굽기를 “Exodus”라고 부르고, 그 옆에 단지 “이름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만 기입해 놓았다. 흔히들 “Exodus”라는 이름이 B.C. 25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하는 <칠십인역>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한다(<필사본 증거> 참조). 그러나 그런 <칠십인역>의 선호에도 불구하고, 그 사본은 단 하나도 없다. 또한 필로(A.D. 20-50)와 오리겐(A.D. 184-254) 이전에 존재했었다는 그 어떤 증거도 찾아볼 수 없다. 이 두 사람은 구약을 플라톤과 그리스 영지주의의 관점에 맞춰 풍유적으로, 영적으로 적용시키는 데 평생을 허비하였다. “Exodus”라는 용어는 2,3세기경에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했다. 이 때는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이 있기 전이다. (알렉산드리아 사본과 더불어 이 두 사본은 주석가들이 <칠십인역>을 운운할 때 인용되는 사본들이다. 이 사본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후 200년이 훨씬 지난 후에 만들어졌다.


    1세기에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이 “Exodus”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구 라틴 성경>에서 발견된다. 이 성경은 A.D.150-250년 사이의 교부들이 인용하였다(Miller, “Biblical Introduction”, p.237). 그 어떤 <칠십인역> 사본에 “Exodus”라는 말이 나오기 200년 전에 “Exodus”라는 말은 이미 사용되었다. 따라서 <킹제임스성경, 1611>에 있는 “Exodus”가 <칠십인역>의 이름을 따랐다고 하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심지어 A.D. 150-250년에 사용되었던 <구 라틴 성경>은 B.C. 250년경에 기록된 <칠십인역>으로부터 베낀 것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런 무의미한 신학 논쟁은 수없이 되풀이 한 바 있다. 어떤 보수주의 비평가라도 A.D. 150년 <구 라틴 성경> 이전에 모세의 두 번째 책을 “Exodus”라고 불렀다는 단 한 줄의 증거도 찾지 못한다. 이에 대한 시도조차 하지 못할 것이며, 또 한다 하더라도 헛수고일 뿐이다. 이들이 “<칠십인역>에서는 말하기를....”이라며 말할 때는 실제로는 시내 사본과 A, B, C, D 사본을 인용하는 것이다. 이 사본들은 <구 라틴 성경>이 로마와 북아프리카 전지역을 순회한 지 150년이 흐르기 전에는 기록조차 되지 않았다.


    이렇게 선교를 앞장 섰던 번역본의 근원이 신약성경에서의 선교 센터였기에(안티옥, 행 11:26) 교황이 채용한 번역자인 제롬(A.D. 420)은 이 번역본을 고치지 않으면 안되었다. <구 라틴 성경>이 기원전에 있었던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으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주장은 소리나는 놋이나 시끄러운 꽹과리 소리가 되어 말씀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현혹되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이 사본은 필로와 오리겐 시대 이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오리겐은 <구 라틴 성경>이 지중해를 모두 돌고 난 후에야 태어났다. 오리겐의 헥사플라 제5란에 “Exodus”라는 말이 나왔다면 전문 학자가 아니라도 그 용어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아는 것이다. 바로 자신의 고향에서 구령하는 사람들이, 거리 설교하는 사람들이 사용했던 <구 라틴 성경>에서 가져온 것이다(Hasting’s Bible Dictionary, Vol. Ⅲ, pp.54,55. 참조).


    학자들이 <헥사플라>라고 인용하는 사본들이 <칠십인역>을 포함하는 같은 사본들이라고 교묘하게 위장된다. 그러나 이 때에 언급되는 <칠십인역>에는 신약이 포함되어 있다. 시내 사본, A, B, C, D 사본에 신약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칠십인역>이라고 인용될 때 많은 경우 그것은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에서 인용하는 것이다. 이 두 사본에는 외경과 신약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밥 존스 대학 출판사의 에서 “비평코너”(The Critic’s Corner)와 같은 부분을 접할 때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여기에서 닐과 커스터 박사는 마치 “헥사플라”가 구약만을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잘못 생각하기 때문이다. 커스터와 닐 박사가 사용한 헥사플라는 그렇지 않다. 강단 주석, 더멜로우 주석, 제미에슨, 포셋, 브라운 주석, 랑게 주석, 클라크 주석, 그리고 그레고리, 로버트슨, 와필드, 메이첸, 데이비스, 랜달, 놀링 등이 사용한 “헥사플라”에는 신약이 포함되어 있다.


    교회사를 통해 볼 때(1630-1980) 성경을 거부하는 보수주의 학자들이 저지른 잘못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1. 이들은 항상 <킹제임스성경>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문학적 형태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시적 운율’이나 “웅장한 문체” 등의 예를 들어서 말이다. 그리고 나서 한 구절을 가져와 공격한다. 이런 현상은 모든 배교한 보수주의자들 간에 행해지고 있는 보편적인 행위이다.


    2. 이들은 줄기차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그 실체를 들여다보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라고 소리치는 것이다. 밥 존스 1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줄곧 주장해 온 말이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믿음의 근본 사항 가운데에 첫 번째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것이다. 이 말을 하면서 곧 이어 <킹제임스성경>은 “우리가 소유한 최고의 번역본”이라고 말했다(, 1969).


    밥 존스 1세가 이러한 말을 했을 때, ASV(1901)는 세상에 나온 지 이미 반 세기가 넘었고, 미국의 모든 정통주의 신학교의 추천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현재 밥 존스 대학의 교수진들은 더 이상 <킹제임스성경>이 최고의 번역본이라고 믿지 않는다.


    “Biblical Viewpoint”를 통해 한 회에 최소한 10군데 이상 <킹제임스성경>의 본문이 고쳐지고 있다. 이런 파괴적인 비평가들에게는 더 이상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이들은 A.T. 로버트슨이 진리를 거부하는 성경 변개자라고 믿지 않는다. 사실 이들은 현재 성경이 말하고 있는 “성경”(Bible)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들이 말하고 있는 ‘성경’(bible)은 바르트, 브루너, 오켕가, 니버, 카가와, 간디,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말하고 있는 성서(bible)와 다를 바 없다.


    “출애굽기”(Exodus)는 이 책의 내용에 적합한 훌륭한 제목이다. 이 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출발하는 것”(departure, out-going)을 다루고 있다. 즉 “탈출”(exit)하는 내용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이 책은 이스라엘 자손이 400년 간의 노예 생활 후에 이집트를 떠나는 것을 기록한다(출 12:40 주석 참조). 영적으로는 사탄의 권세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죄인이 구원받는 경험들과 관련하여 기록한다. 교리적으로는 앞으로 다가올 대환란(단 12:1-4)과 교회의 휴거를 자세하게 기록한다.


    출애굽기는 명백하게 모세가 기록했고, “모세의 두 번째 책”이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출애굽기를 모세가 썼다고 아주 선명하게 밝히셨다(막 12:26, 눅 20:37, 요 8:5). 그러므로 성경을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출애굽기를 누가 기록했느냐에 대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프린스턴의 로버트 딕 윌슨 교수(1856-1930)는 모세의 저작에 관한 드웨트, 하버닉, 케일, 델리취, 잔, 프리취, 마쉬, 스튜어트, 비숍, 페로운 등의 이견을 잘 정리해 주었다.


    시간이 남아 출애굽기 저자에 대해 비평하는 이론을 반박하기를 원하면 M. 하카비, 헹스텐베르그, 캐논 쿡의 책을 읽어 보라. 출애굽기 저자가 누구이든지 간에 그 당시에 출애굽기에서의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 이집트의 문화, 사람, 기후, 곡물, 언어 등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만 기록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어떤 사람이 B.C. 1000년 이후에 살면서 이런 사실들을 익히 잘 알고 출애굽기를 기록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출애굽기를 누가 기록했건 그 저자는 창세기의 저자와 마찬가지로 이집트에서 수년 간을 보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출애굽기의 저자는 17,18,19세기의 많은 이집트학 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이 알지 못했던 지역적 관습과 습관들을 많이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성경적 증거이다. 성령은 출애굽기를 모세가 기록했다고 말씀한다(출 12:14; 24:4; 17:14 참조). 모세가 출애굽기를 기록하지 않았다고 공격하는 것은 창세기 3:1부터 시작된 학자들의 전통을 똑같이 따르는 것이다.


    편견 없이 조사한다고 하는 학자들이나 도량이 넓다고 하는 학자들이 종종 망각하는 것이 있다. 그들 자신들에게는 조사와 연구의 비평 대상에서 제외된 내용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전통으로 내려오는 것이 있는데, 성경을 거부하는 불신자들은 성경에 관한 모든 부분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만, 진화론이나 국제 사회주의 등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비판 대상에서 아예 제외된 문제들은 너무 상식을 벗어난 비이성적인 편견들이 많은데, 특히 몬타나(Montana)와 와이오밍(Wyoming)에 있어서는 더욱 많아 상식을 벗어난 비이성적인 편견들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정도로 정신적 이상들이 곳곳에 노출되어 있는 실정이다.


    모세가 출애굽기를 기록하지 않았다면 도대체 누가 기록했다는 말인가? 만일 출애굽기를 “J,” “P,” “E,” “L,” “R”이라는 사람들이 기록했다면(그라프 벨하우젠 이론 : 1760-1850) 레위기를 “A,” “B,” “C,” “D,” “E,” “F,” “G”라는 사람들이 기록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입증할 수 있겠는가? 만일 에스라가 출애굽기를 기록했다면 (제롬 A.D. 340-420 참조) 에스라는 거짓말을 했다는 것인가? 출애굽기 24:4에 의하면 에스라가 아니라 모세가 기록했다고 말한다.


    왜 출애굽기의 저자는 구약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보다 더 많이 이집트 말들을 사용하였는가? 어떻게 출애굽기의 저자는 출애굽기 15:27과 민수기 11:7에서 발견되는 상세한 내용들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겠는가?


    이집트를 떠났다가 다시 와 본 사람이 아니라면 이렇게 자세히 묘사할 수 있겠는가? 던칸에 의하면 이집트 원주민만이 “온”이나 “피돔” 등과 같은 이름들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야후다(<모세오경의 언어와 이집트인들과의 관계, The Language of the Pentateuch and its Relation to the Egyptians>, 1933)는 새 왕조인 18대 왕조와 19대 왕조에서는 결코 파라오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고, 파라오의 이름들이 나타난 것은 그 이후의 왕조들에서였다고 말한다(렘 44:30, 대하 35:20 참조). 예레미야나 에스라 시대에 살았던 누군가가(B.C. 599-536) 출애굽기를 기록했다면 어떻게 파라오의 명칭만 기록하고(“시저”나 “칸”과 같은) 파라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겠는가? 우리는 항상 문제 바로 앞까지 도달하고서도 결론에서 멀어진다. 출애굽기는 모세가 기록했다.


    출애굽기는 40장 1,213절  32,692단어(영어 KJV)로 되어 있다. 히브리어로 된 본문은 1,209절 16,513단어로 되어 있다.


    출애굽기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연대에 대해서는 사람들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B.C. 1700-1300, B.C. 1600-1300, B.C. 1400-1200, B.C. 1300-1100. [자유주의 학자들은 가능한 한 성경과 관련된 연대는 앞당기고 다윗과 관련된 연대는 가능한 한 뒤로 돌린다. 이러한 불합리한 편견으로 인한 이들의 연대기를 상식을 가지고서는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출애굽기 1:8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출애굽기의 히브리어 이름(“그리고 그 이름들은 이러하니라”)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출애굽기에서는 “이름들”이 중요하다. 사람, 하나님, 이스라엘과 이름들이 관련되었듯이(출 3:14; 6:3; 33:19; 3:5-7; 9:16; 20:2; 33:12,17; 31:2-6; 28:9-12; 39:6,7,8; 23:21)  이 “이름들”이 다시 언급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애굽기를 통해 일곱 가지의 위대한 진리를 알 수 있다.
     

      1. 구원받지 못한 인류는 잔인한 주인에게 묶여 있는 노예와 같다.
      2. 이 노예가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만이 필요하다.
      3. 하나님께서는 “해방 선언”을 이루시기 위해 사자(messenger)를 선택하신다.
      4. 구속은 피와 능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5. 구속받은 사람과 세상 제도 사이에는 어떤 타협도 있을 수 없다.
      6. 구속받은 것은 앞으로 다가올 인생의 시련들과 시험들의 시작일 뿐이다.
      7. 하나님께서는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거룩의 기준을 가지고 계신다.


    이 외에도 영적인 교훈들이 많이 있으며, 그 교훈들이 나오는 문맥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출애굽기 1:1부터 40:38까지 공부해 보면 알겠지만 하나님께서 이 <킹제임스성경>을 (입증된 잘못이나 상충되는 내용 없이) 우리에게 전해 주셨음을 확신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성경을 사용하고 믿음으로 보물처럼 여기기를 원하신다.


    소위 위대한 보수주의 언어학자들, 어원학자들, 원어사전 편찬자들, 필사본 검증가들, 주석가들, “학계를 주도하는 권위자들”, “자격을 갖췄다 하는 권위자들”이 이 성경을 공격하면 우리는 이에 맞서 힘에는 힘으로, 불에는 불로 싸울 것이며, 이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경을 훼손시킨 것만큼 이들의 잘못을 들춰 낼 것이다.


    이런 과정을 전개하는 데에 있어서 사용된 그 어떤 용어에 대해서도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많은 학자 그룹이 <킹제임스성경>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확실하게 이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지적하고 옆으로 제쳐놓을 것이다.


    성경을 믿는 사람 모두에게 이 말씀이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란다.


    "이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사실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으니, 이 말씀이 믿는 너희 가운데서도 효과적으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아울러 성경을 거부하는 “학계를 주도하는 권위자들”에게 이 말씀이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때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 어리석은 자들아,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아,"(눅 24:25).


    학자들, 비평가들, 주석가들, 다수의 보수주의자들이 암울했던 과거보다 더 나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우리는 계속 킹제임스성경을 견고하게 붙잡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한 영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공부할 것이다. 우리 자신을 언제든지 요한복음 16:13의 위대하신 선생님께 복종함으로 공부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명예롭게 하신 종교개혁 성경을 공격하는 그 어떤 근본주의자나 무신론자의 잘못도 완벽하게 바로잡으실 수 있는 그분을 신뢰하며 공부할 것이다. 


    책 속으로


    3:11 모세가 하나님께 말씀드리기를 “내가 누구기에 파라오에게 가며,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데리고 나올 수 있으리이까?” 하니,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표가 되리라.
          네가 이집트에서 그 백성을 데리고 나오면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길 것이니라.” 하
          시니라.
      13 모세가 하나님께 말씀드리기를 “보소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
          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라고 그들에게 말할진대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하면,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니,
      14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곧 나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스라엘 자손들에게 이같이 말할지니 ‘나이신 분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하라.” 하시
          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80년 간 준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그 부르심에 응답할 준비가 안되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은 느낌에 너무 의존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생각하다가도 마침내 자포자기해 버리고 만다(민 16,17장, 삼상 12:16-19을 함께 보라).


    처음에 모세는 자신의 소명을 느꼈다(출 2:12). 그리고 나서 성급하게 하나님보다 앞서 나가 버렸다. 이것은 전적으로 육신의 일이었다(갈 5:21). 너무나 낙심이 되어(출 2:15) 부르심에 대해 잠시 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전체 일을 멈춰 버렸다. 자신의 백성을 포기했고, 그들의 구원자로서(행 7:35) 자신의 직무를 포기하였다.


    누군가가 모세에게 다가와 “당신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하고 말한다 하여도 더 이상 모세에게는 아무 느낌을 주지 못한다. 시몬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행 10:14)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수행하신다는 사실이 모세에게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모세는 사십 년간 자신의 적성, 가능성, 자신의 부채를 평가했다. 그리고 완고한 결정을 내렸다. “나는 안돼!”


    "...내가 누구기에 파라오에게 가며..."(11절). 기드온처럼(판 6:13,15) 모세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편을 알아주셨으면 했다. 이 시점에서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모세는 두 가지 사실을 잊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얼마나 미천한 존재인지를 알기 전까지는 부르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아무도 부르시지 않는다. 모세는 겸손함을 배웠다. 이제는 하나님 안에서 믿음을 배울 차례다.


    "모세가 하나님께 말씀드리기를 “보소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하면..."(13절). 모세는 지금 핑계거리를 찾고 있다. 일반적인 핑계거리를 찾다가 4:10에서 최고의 변명거리를 찾아냈다. 이스라엘인들은 이집트의 많은 신들을 접하고 살아서(오시리스, 호러스, 파쉬트, 토트, 셉, 이시스 등)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이름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모세는 시내 광야에서 40년간 있을 때 창세기를 기록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모세의 어머니가 모세에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의 분명한 이름을 말해주지 않았을 리가 없다. 모세는 “여호와 이레”(창 22:14), “엘로힘”(창 1:1), “엘룐”(창 14:18), “아도나이”(창 15:2,8), “여호와”(창 2:4,5,7,8)라는 이름에 익숙했을 것이다. 모세의 질문이 진지한 것이었다면 이렇게 많이 알고 있는 이름들 가운데 어떤 이름으로 나아가야 하느냐이었을 것이다. 모세는 출애굽기 2:14과 같은 상황이 재현되기를 결코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되는 내용을 보면 상황을 비켜가기 위한 질문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곧 나니라 ... 나이신 분"(14절).


    인간의 역사 이래 그 어떤 종교 문학을 통틀어도 이 이름만큼 정확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잘 설명한 이름이 없다. 한 영이시고 창조주이고 절대 주권자시며, 온전한 거룩함과 권세의 절대자이신 하나님, 그분께 부여할 수 있는 이름은 “나이신 분”(I AM)이다. 이 이름 외의 그분의 이름에 대한 어떠한 시도도 그분의 통일된 속성을 망쳐놓을 뿐이다.


      “나는 곧 나니라.”
      “나는 존재하며 항상 존재해왔기 때문에 다만 나일 뿐이다.” 
      “나는 나다. 다른 설명이 필요없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문이요, 위로자이다.”
      “나는 항상 나다. 과거, 현재, 미래에 상관없이 항상 ‘I am’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그니라”(I AM)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을 박해하던 자들은 뒤로 물러서서 땅에 엎드렸다(요 18:6-8). 예수님께서 “나는 있느니라”(I AM, 요 8:58)고 말씀하셨을 때, 바리새인들은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윌리엄즈가 언급한 것처럼 “I AM”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백지수표다.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 요구만 하면 된다. 권세가 필요하다면 “권세”(power)라고 적으면 된다. “I AM power”(마 28장). 위로(comfort)가 필요하면 “위로”라고 적으면 된다. “I AM comfort”(요 14:16). 치유(healing)가 필요하면 “I AM the Healer”(출 15:26)가 된다.


    "이것이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이것이 모든 세대에게 나의 기념이 되리라"(15절).


    “예수”는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이름지어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다(엡 1:2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 “I AM”들 중의 “I AM”이다(계 19:16). 럿셀과 러더포드(여호와의 증인)는 “예수”라는 이름을 테트라그라마톤의 제2바이올린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신약과 구약에서는 주 예수를 스카랴 12:10, 이사야 9:6, 골로새서 1:2-6의 문맥에서 여호와와 동등하게 기록한다(pp.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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