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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선지서 요약정보 및 구매

피터 S. 럭크만(Dr. Peter S. Ruckman) 저 / 편집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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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출간일 : 2013년 11월 10일 초판3쇄
쪽수 : 512
무게 : 760g
크기 : 153*223*21mm 신국판 반양장 사철제본
ISBN : 9788992164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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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선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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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품 정보

    상품 상세설명

    모든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왕권을 강조했다. 그렇지 않다 하는 선지자는 하나도 없었다. 그분, 즉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은 그분의 재림과 함께 천년왕국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이 세상에 오셨을 당시의 위선자들의 집단인 종교 지도자들을 혼동시켰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의 무지함과 완고함과 무엇보다도 진리를 기뻐하지 않는 마음은 약 200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변함이 없다. 98%의 성경 주석가들이 그러한 위선자들의 집단으로 치부되는 것은 그들이 선지서들의 주제를 모르기 때문이다. 구약의 주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선지서 가운데 소선지서들의 핵심 내용은 더더욱 그렇다. 이미 구약의 주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해하고 선지서들을 읽은 사람에게 그 책들은 내용이 까다롭다거나 이해하기 어렵거나 지루한 책이 아니다.


    소선지서는 구약 예언의 정수와 같은 책들이다. 선지자들은 배교한 당시의 이스라엘과 유다를 책망하며, 그들의 멸망을 예언하는 가운데 메시야에 관한 많은 사항들을 예언했다. 초림과 재림을 넘나드는 예언 속에서 성경의 주제인 왕국, 즉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신정통치 왕국의 교리를 정확히 알게 되며, 또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분명히 알게 된다. 이 책은 호세아부터 나훔까지의 주석이다. 다른 책들에서와 마찬가지로 피터 럭크만 박사는 이 책에서도 명쾌한 설명으로 분명한 교리를 제시한다. 오늘날 학자들에 의해서 선지서들에 대한 연구가 전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이 때에 이 책은 좋은 지표가 될 것이다. 

    상품 정보 고시

  • 들어가는 말 / 5


    호세아


    호세아 1장 / 20
    호세아 2장 / 30
    호세아 3장 / 41
    호세아 4장 / 48
    호세아 5장 / 64
    호세아 6장 / 76
    호세아 7장 / 88
    호세아 8장 / 101
    호세아 9장 / 111
    호세아 10장 / 121
    호세아 11장 / 135
    호세아 12장 / 149
    호세아 13장 / 162
    호세아 14장 / 179


    요  엘


    요  엘 1장 / 189
    요  엘 2장 / 202
    요  엘 3장 / 221


    아모스


    아모스 1장 / 236
    아모스 2장 / 248
    아모스 3장 / 257
    아모스 4장 / 268
    아모스 5장 / 280
    아모스 6장 / 296
    아모스 7장 / 305
    아모스 8장 / 318
    아모스 9장 / 331


    오바댜


    오바댜 1장 / 349


    요  나


    요  나 1장 / 364
    요  나 2장 / 381
    요  나 3장 / 388
    요  나 4장 / 392


    미  카


    미  카 1장 / 407
    미  카 2장 / 419
    미  카 3장 / 429
    미  카 4장 / 436
    미  카 5장 / 445
    미  카 6장 / 459
    미  카 7장 / 473


    나  훔


    나  훔 1장 / 491
    나  훔 2장 / 498
    나  훔 3장 / 506
     

  • 서문 


    소위 “소선지서”라고 불리는 책들은 요즘 교회들에게 있어 가장 소홀히 취급당하는 책들에 속하며 따라서 <킹제임스성경>에 충실한 소선지서 주석서는 거의 찾기 어렵다. 대부분의 유명한 주석들은 많은 부분에서 성경을 뜯어고치는 파괴적 비평을 일삼았다.


    영적인 교훈을 위한 가벼운 주석들은(메튜 헨리, 그린, 파인버그, 아이언사이드 등) 약간의 “젖”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의 용사들에게는 그 수준이 심히 낮다고 볼 수밖에 없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에서는 선지서들(Prophets)을 나흐빔(“Nahbim”)이라고 부르며 전선지서와 후선지서로 나뉜다. 전선지서에는 여호수아, 재판관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가 포함되며 후선지서에는 이사야에서부터 말라키까지인데, 전선지서와 후선지서로 나누는 기준은 그 선지자들의 활동 시기에 따른 것이다. 또 후선지서는 이사야에서 다니엘까지의 대선지서와 호세아에서 말라키까지의 소선지서로 나누는데, 대선지서와 소선지서로 나누는 근거는 그 책들의 기록된 분량에 따른 것이다. “소선지서”(minor prophets)라고 불리는 것은 그 분량이 짧기 때문이지 결코 소선지서들의 선지자들이 대선지서들의 선지자들보다 뛰어나지 못하거나 그들이 주께로부터 받은 사명감 또는 수행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이들 소선지서들은 다니엘, 예레미야, 에스겔, 이사야 등과 비교할 때 결코 열등하다고 할 수 없다. 또한 선지서들의 순서는 구약성경의 배열 순서일 뿐이지 그 선지자들의 활동 시기 순서가 아니다. 호세아와 아모스 중에서 배열 자체는 호세아가 앞서나 연대기적으로는 오히려 아모스가 앞서기 때문이다.


    벌링거(Bullinger)에 따르면, 16권의 선지서들은 다음의 4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6권의 선지서(요나,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카, 나훔), 둘째는 7권의 선지서(예레미야, 하박국, 스파냐, 다니엘, 요엘, 에스겔, 오바댜), 셋째는 2권의 선지서(학개, 스카랴)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선지서 말라키이다. 이것이 바로 선지자들의 활동 시기에 따른 분류가 된다. 그리고 이 선지자들의 활동 기간은 모두 약 316년이다.


    선지자(“prophet”)라는 단어는 창세기 20:7에 처음 언급되고 있다. 물론 유다서 14절을 통해 에녹은 “선지자”였음이 분명하다(계 19:10을 볼 것). 그러나 성경의 기록으로 볼 때 이 단어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이다(모세는 B.C.1897년경의 사건을 B.C.1450-1400년 사이에 기록하였다).


    오늘날은 모두가 선지자가 되고 싶어한다. 죽어 버린 정통주의 학자들은 자신들을 욥(약 5:10)과 엘리야와 같은 그룹으로 분류하고 싶어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열왕기상 18:9과 22:6에서 보면 적어도 850명의 “선지자들”이 그와 같은 무모한 시도를 했다가 450명은 목베임을 당했고 나머지 400명은 (시드키야의 인도 하에) 시리아인들이 이스르엘을 포위했을 때(왕상 22:11,25)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도망치고 말았다.


    “선지자”들은 구약의 신정정치에 있어 그린베레나, 공수부대, 혹은 해병대 같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유니폼에는 특수부대 요원임을 알리는 마크와 표식이 붙어 있었다. 이들은 특별한 임무를 맡았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선지자들은 “고통스러운 고난”(약 5)을 겪었고 때로는 담(참호)을 파기도 했고(겔 8:8; 12:5), 벌거벗고 다니기도 했고(사 20:2), 창녀와 결혼도 했고(호 1,3), 잿더미에 앉아 있기도 했고(욥 2:8), 아내를 잃기도 했고(겔 24:18), 뺨을 얻어맞기도 했고(왕상 22:24), 감옥에 들어가기도 했고(렘 38),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도망도 쳤고(왕상 19), 고래 뱃 속에 들어가기도 했고(욘 2:10), 돌로 얻어맞기도 했고(마 23:37), 십자가에서 처형도 당했고(마 27, 막 15, 눅 23), 어린 아이에게 조롱도 당했고(왕하 2:23), 목베임을 당하기도 했다(침례 요한).


    이러한 분들(히 11:36,37!!)과 자신들을 같은 그룹에 놓기 위해 자유주의자들과 정통주의 학자들은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왜곡시켜 버린다.


    1. 죽어 버린 정통주의 학자들은(트랜치, 알포스, 로버트슨, 바이스, 칼빈, 어거스틴, 제롬, 댑니, 스트롱, 핫지, 메이첸 등) 구약 선지자들의 사역을 자신들의 메시지와 같은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다시 말해 신약성경의 “선지자”란 단어는 “미리 말하는 사람”(foreteller)이라는 뜻이 아니고 말해내는(forth-tell) 사람이라는 것이다. 선지자는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을 입에서 바깥으로 말해내는 사람이라고 우긴다. 이와 같은 진리의 왜곡으로 인해 팔걸이 등의자에 기대 지내는 신학자는 아무런 훈련도 받지도 않은 채 특수전투 요원으로 둔갑하고 만다.


    선지자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메시지의 내용이 “다가올 사건”이 아닌 경우도 물론 있다. 하지만 90%는 미래의 일에 대한 예언이었다. 미래를 예언하지 않은 선지자가 성경에 한 사람이라도 있었는지 찾아보라. 아브라함과 모세의 생애는 그들의 입으로 발설한 것을 제외하면 현재가 아닌 미래를 살고 있는(히 11장) 사람의 생애임이 분명하다. 죽은 정통주의 학자들이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에서 “사회개혁을 위한 메시지”(social message)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들은 실상은 전천년체계 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예언”임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들 정통주의자들 중에 전천년주의자들이 몇이나 되는가?


    2. 자유주의자들은 “PRO-(미리, 앞당겨),” “PHET-말해내다.”를 단순히 “입 밖으로 말해내다.”(forth telling)으로 변개시키는 일은 생략하고 구약 선지자들의 발언 중 사회개혁에 관련된 내용만을 골라낸다. 이들은 선지자들이 “사회의 죄들”을 지적한 것을 들어 아모스, 요엘, 오바댜, 호세아, 미카, 나훔 등을 종교적 사회주의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나서는 이들을 포스딕, 마르크스, 필, 트로츠키, 카가와, 블레이크, 레닌, 웨더헤드, 랩브라운, 슈바이처, 챠미칼, 버트란트 러셀 등과 같은 부류로 취급한다. 이들 “사회복음”주의자들이 “선지자”라면 누구는 선지지가 아니겠는가? 『사울도 선지자들 가운데 있느냐?』(삼상 19:24)


    국제표준성경백과사전(International Standard Bible Enc.)은 히브리어 “Nabhi”가 사무엘상 9:9에 나오는 선견자(“ro'eh”)라는 사실을 장황하게 설명한 다음 사무엘상 9:9을 마무리 지으면서는 자기가(백과사전의 이 항목의 저자) 선지자 학교에 소속될 수도 있다는 근거 구절들을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다. 그러나 사무엘상 9:9에 나오는 사람은 그가 선지자이건 선견자이건 간에 사무엘이고 사무엘상 9,12,15장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사무엘의 발언 중 3분의 2가 미래에 관련된 것임을 알 것이다. 따라서 예언할 수 없는 사람은 선지자가 아닌 것이다(신 18장). 예언이 무엇이냐는 기준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따르면 “미리 말하는 것”(foretelling)이지 결코 “말해내는 것”(forth telling)이 아니다(신 18장 전체를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는 예언할 수 있는 능력을 근거로 자신이 참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은 무오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시고 세상 사람들에게 도전을 하고 계신다(사 40:21; 4:22,26; 42:9; 44:7; 45:11).


    왜 자유주의자들은 선지자는 “예언자”가 아니고 “사회개혁자”라고 부르는가? 그 대답은 간단하다. 자유주의자들은 예언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들은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예언의 영인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계 19:10)를 갖고 있지 않다. 그 어떤 근대주의자나 자유주의자도 지옥이나 재림에 관해 설교를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에 관한 예언들은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벧후 1:21) 사람들에 의해 말하여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령도 없고, 예언의 영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가 없는 것이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 치고 미래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요 16:13을 볼 것).


    사회주의 십자군들이 양우리 안에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구약성경의 선지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를 기억해야만 한다.


      1. 선지자들은 죄의 마음이 세상의 모든 화의 원천이라고 간주했다.
      2. 이들은 결코 “이상주의자”가 아니었다(다윈을 보라). 이들은 오직 남은 자들에게만 희망을 갖고 있었다.
      3. 이들은 하나님께서 민족들을 심판하실 것임을 강조했다.
      4. 이들의 메시지는 항상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했다.
      5. 이들은 유일한 희망으로서 모세오경의 예언들을 성취하실 메시야만을 제시했다.
      6. 이들은 모든 종류의 통합과 인종혼혈을 절대적으로 반대했다. 이 여섯 가지 사항과 교회협의회를 비교해 보라. 이 여섯 가지 사항을 당신의 목자는 갖추고 있는가?


    새로운 도덕과, 교회일치, “하나 됨”을 주장하는 현대의 “선지자”는 이렇게 설교한다.
     

      1. 과학은 믿을 만한 정보를 제공한다.
      2. “평화”는 인류가 추구할 최상의 이상이다.
      3. 세상에 순응하지 않는 자들은 비정상적인 자들이다.
      4. 성경을 비판하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신앙”을 비판하는 것은 죄이다.
      5. 사형제도는 옳지 않다.
      6. 죄책감이 정신병을 만든다.
      7. 자기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확실히 알 수 없다.


    모든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왕권을 강조했다. 그렇지 않다 하는 선지자는 하나도 없었다. 그분, 즉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은 그분의 재림과 함께 천년왕국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이 세상에 오셨을 당시의 위선자들의 집단인 종교 지도자들을 혼동시켰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의 무지함과 완고함과 무엇보다도 진리를 기뻐하지 않는 마음은 약 200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변함이 없다. 98%의 성경 주석가들이 그러한 위선자들의 집단으로 치부되는 것은 그들이 선지서들의 주제를 모르기 때문이다.


    구약의 주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선지서 가운데 소선지서들의 핵심 내용은 더더욱 그렇다. 이미 구약의 주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해하고 선지서들을 읽은 사람에게 그 책들은 내용이 까다롭다거나 이해하기 어렵거나 지루한 책이 아니다.


    창세기 20:7에서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이 선지자라고 말씀하셨다. 생명이란 단어가 창세기 1:20에서 처음 나타났듯이 선지자라는 단어는 바로 이 구절에서 첫 번째로 등장한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야곱도 선지자였다. 모세와 다윗은 그리스도에 앞서 보여진 “선지자-제사장-왕”의 모형이었다. 사무엘은 “선지자-제사장”이었고 사울은 모호하지만 “선지자-왕”이었다. 여호수아는 “선지자-왕”이었지만 확실하게 제사장은 아니었다. 에녹도 선지자였으며(유14) 노아 또한 그러했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7개의 예언의 기간이 나와 있다. 
     

      1. 아담에서부터 아브라함(에녹은 선지자였다.)
      2. 아브라함에서부터 모세(사람들이 진영에서 예언했다. 민 11:29-30)
      3. 모세로부터 호세아(B.C.1500-689)
      4. 호세아로부터 말라키(B.C.689-389)
      5. 침례 요한부터 사도행전 1장까지(침례인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는 선지자였다.)
      6. 사도행전 1장부터 휴거까지(성령께서 우리에게 일어날 일들을 보이신다.)
      7. 대환란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예언하는 144,000명의 증인
      천년왕국 때에는 선지자들이 없으며(슼 13:2), 예언도 없다(히 8:11). 천년왕국 때 선지자를 자처하는 자는 처형을 당하게 된다(슼 13:3).


    소선지서 중에는 연대가 나와 있는 것들이 있는 반면(호세아, 아모스, 미카, 스파냐, 학개, 스카랴)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다(요엘, 오바댜, 요나, 나훔, 하박국, 말라키). 호세아는 이사야와 미카와 동시대 사람이며 스파냐와 하박국은 예레미야와 동시대 사람이고, 다니엘은 요엘과 오바댜와 일부시대가 겹친다. 학개와 스카랴는 동시대 사람이고 말라키는 홀로 예언했다.


    히브리어 구약의 소선지서들은 21개의 세다림(봉독을 위한 구분)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원래는 12개의 소선지서들이 하나의 책으로 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고난을 겪는 자들의 본으로(약 5:10) 삼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구세주께서도 모세와 같은 선지자이셨고(신 18:15), 여인에게서 태어난 자들 중 가장 위대한 선지자에 의해 세상에 소개되셨다(마 11:11). 또한 하나님께서 성경의 저자임을 확증하는 무오한 시험이 바로 “예언의 성취”라는 사실(사 42:9)에 입각해 볼 때, 우리가 소선지서를 공부하는 것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열 두 권의 소선지서들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호세아는 재림시 이스라엘의 회개와 회복을 강조한다.
      2. 요엘은 재림시에 있을 아마겟돈 전쟁을 강조한다.
      3. 아모스는 재림의 여정과 예루살렘 곁에 있는 도시들에 내려질 심판들의 성격을 보여 준다.
      4. 오바댜는 천년왕국에서의 불못의 위치는 에돔이라는 사실을 제시한다.
      5. 요나는 성경에서 이방인들에게 말씀을 증거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환란 시대의 유대인을 가장 잘 예표하고 
         있음을 비교한다.
      6. 미카는 초림과 재림을 비교한다.
      7. 나훔은 바빌론의 예표로서의 니느웨를 다루고 있으며 재림시에 나타날 상황들을 보여 준다.
      8. 하박국은 재림의 여정을 강조하고 있다.
      9. 스파냐는 재림의 부정적인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10. 학개는 향후 20년, 10년 내에 있게 될 성전 건축을 예표한다.
     11. 스카랴는 초림과 재림을 비교하고 난 후 아마겟돈 이후의 자세한 상황을 제시한다.
     12. 말라키는 재림에 앞서 주어지는 최후의 경고들을 다루고 있다.
     




    책 속으로




    <요 나> 1:17  그때 주께서는 요나를 삼킬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으니 요나가 그 물고기 배에서 삼 일 낮
                      과 삼 일 밤을 있었더라.


    이 구절을 독립해서 따로 놓은 것은 첫째, 단락구분 표시가 이 구절 앞에 있기 때문이며 또한 그 절과는 구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큰 물고기라는 단어만큼 많은 고뇌와 충격을 야기시킨 단어도 드물다. 뉴스코필드 성경 편집자들은 이 구절과 관련해서 희한한 주석을 해놓았다. 이 에큐메니칼적인 성경에 따르면 마태복음 12:40에 나오는 고래는 잘못 번역된 것이며 진짜 이적은 요나가 큰 물고기에서 토해졌을 때 그가 살아 있었다는 사실이라고 한다(<뉴스코필드주석> 욘 1:17 참조). 이 주석을 요나가 토해지기 전에는 죽어 있었을 것이라고 암시해 놓고나서는 (살아 있는 것이 큰 기적이라고 했으니까), 요나의 기도를 보면 요나는 “살아 있었고 의식을 갖고” 있었음을 암시한다고 모순된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석은 진실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요나의 기도는 그가 스올로부터 올라온 후에 드려진 것이며 그 증거는 17절에서 “삼 일 낮과 삼 일 밤을” 있었고 그후에(2:1) 요나가 기도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부활 후에 기도가 드려진 것이다. 그런데도 맥 클레인, 메이슨, 월부드, 윌버 스미스, 페인버그, 맥라에, 윌리엄 걸벗슨, 잉글리쉬 등 주석가들은 성경 기록 그대로를 믿지 않는다.


    더멜로우는 그의 주석에서 이 요나서의 기록은 풍유(parable)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실제 사건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 이 큰 물고기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논쟁거리였다(포피리와 셀수스 같은 초대 교부들은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까지도 이에 연루되었다). 큰 물고기는 성경에서 너무도 분명하게 사탄을 예표하고 있기 때문에(욥 41:1-31과 그 주석을 참조) 5만 명의 근본주의자, 10만 명의 보수주의자, 4만 명의 무신론자, 70만 명의 카톨릭, 그리고 1000만 명의 공산주의자들은 한결같이 요나서의 이 구절이 실제 사실이 아니라고 우겨댄다(자신들의 은밀한 지원자인 사탄의 정체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제이미슨, 포셋, 그리고 브라운은 물고기는 마태복음 12:40의 오역이라고 주장하며(그들의 주석 p.807), 허버트 리빙스톤(애스버리)도 “고래”는 헬라어의 오역이라고 주장한다(위클리프 주석). 윌리암즈는 “그 물고기가 꼭 고래일 필요는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그의 주석 p.655). New Bible Commentary의 D.W. 로빈슨은 요나는 “삼 일 낮과 삼 일 밤”이라고 쓴 적이 없으며(17절을 볼 것) 그 누군가가 36시간 이하의 기간을 그렇게 표현했을 것이라고 “억측”을 하고 있다. 보카트는 그 물고기는 돔발상어라고 말했고, 젭 역시 그것은 상어라고 주장한다. 그랜드 마문세는 숭어라고 하고, 조로는 고등어라고 하고, ASV 번역자들은 바다괴물이라고 주장한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12:40의 헬라어 어휘는 요나서 1:17과 2:1에서 “고래”라고 번역되었다(소위 70인역으로 알려져 있는 그 성서에서). 이사야서부터 요나서 사이에서만 장당 10번 이상씩을 70인역으로 킹 제임스 권위역본의 본문을 수정한 “대학자님”들께서 어째서 이번에는 70인역대로 하지 않고 딴전을 피우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헬라어 “ketos”는 모든 헬라어 성경들의 창세기 1:2에 나와 있는 것처럼 분명히 고래이다. 그런데 어째서 NIV, ASV, RSV, NRSV 등은 이미 알려진 동물의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인가?


    만약 그것이 고래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바다괴물? 아담부터 그리스도 시대까지 아무도 고래가 무엇인지 몰랐다는 말인가?


    이들 학자들은 시편 104:26의 리비야단을 “바다괴물”이라고 말하지만(NASV), 그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ketos”가 아니며 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도 “tanim”이 아니다. 이처럼 NASV 번역자들은 리비야단을 욥기 41:1에서는 “악어”라고 번역했다가 시편 104:26에서는 “바다괴물”이라고 했다가 고래도 바다괴물이라고 했다가... 완전히 제멋대로다. 이것이 오늘날 구령은 안하고 책상에만 앉아 있는 “신학자님”들의 “신앙”인 것이다.


    이 모든 번역본들의 작태는 한마디로 번역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야기된 것이다.


    요나는 고래 안에 있었다. 고래는 “물고기”와 구별되는 큰 물고기에 속한다. 그래서 창세기 1:21에서 모든 물들의 생물과 큰 고래들을 구분해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의 기록자들은 물 속에 사는 포유류(고래들과 돌고래들)과 물고기들을 구분하고 있다. 성경은 꼬부라진 뱀이 리비야단이라고 말씀하고 있으며(사 27:1,2), 이 리비야단을 예표하고 있는 생물이 고래임을 말씀하고 있다(시 104:26). 이처럼 성경을 성경으로 풀어 가면 학자들처럼 억지 주장을 내세울 필요가 전혀 없다.


    『그때 주께서는 요나를 삼킬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으니 요나가 그 물고기 배에서 삼 일 낮과 삼 일 밤을 있었더라』(17절). 이 구절의 낮과 밤은 마태복음 27장과 마태복음 15장에서처럼 24시간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금요일로 만들어 버린 로마카톨릭 사람들에게는 낮과 밤이 합쳐서 24시간이 아닐지 모르지만 상식을 지닌 사람은 초등학교를 다니지 않았어도 다 알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화요일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고 수요일 오전 9시에 못박히셨다(이 문제에 관해서는 학회지 37호 참조).


    요나의 다섯 단계에 걸친 타락은(욘 1:3; 1:3; 1:5; 1:15; 2:6) 사탄의 타락 다섯 단계와 일치하고 있음을 주목하라. 
     

      1. 셋째 하늘에서 둘째 하늘로(창 1:2)
      2. 둘째 하늘에서 첫째 하늘로(눅 10:18)
      3. 첫째 하늘에서 땅으로(계 12:12, 사 14:12)
      4. 땅에서 구렁으로(계 20:1)
      5. 구렁에서 불못으로(계 20:10)


    요나가 들어갔던 “고래”가 사탄의 예표(유형)임이 명백하지 않은가? 사탄은 실제로 바다괴물이다(욥기 41장의 바다는 창세기 1:2에서 말하는 깊음으로 우주 위에 있다. 이에 관해서는 욥기 41장과 요한계시록 5:2의 유리 바다에 관한 주석을 참조). 따라서 이 땅에서는 고래가 사탄을 예표하고 있는 것이다(pp.377-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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