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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요약정보 및 구매

피터 S. 럭크만(Dr. Peter S. Ruckman) 저 / 편집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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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출간일 : 2007년 3월 10일 초판3쇄
쪽수 : 192
무게 : 310g
크기 : 153*223*11mm 신국판 무선제본
ISBN : 9788985888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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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라디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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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 상세설명

    로마서는 사람이 구원받을 때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사실을 입증하며, 갈라디아서는 사람이 구원받은 이후에도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로마서는 사도행전 15:1의 이단들을 반박하는 반면, 갈라디아서는 사도행전 15:5에 처음 나왔던 카톨릭, 제 칠일 안식교, 그 외 알미니안주의자들의 교리에 대해 명백하게 답변하고 있다. 로마서가 사람이 구원받을 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면, 갈라디아서는 구원에 관한 문제에 있어 인간의 어떤 행위도 무용하다는 사실을 강력히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받고, 그 구원은 새로운 탄생 때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으로 지속된다. 구원받은 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속죄로 의롭게 된다. 심지어 율법 이전부터 있었던 할례도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과 전혀 상관이 없다. 죄인들이 행하는 어떤 종류의 행위로도 하나님으로부터 의롭게 될 수 없으며, 이같은 은혜를 거부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정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갈라디아서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믿음과 구원을 확고히 할 기초가 될 수 있는 책이다. 본 주석서는 갈라디아서 안에 담긴 풍성한 보화를 독자들에게 선명하게 제시해 줄 것이다. 

    상품 정보 고시

  • 서문 / 역자서문


    갈라디아서 1장 / 17
    갈라디아서 2장 / 53
    갈라디아서 3장 / 76
    갈라디아서 4장 / 114
    갈라디아서 5장 / 142
    갈라디아서 6장 / 174 

  • 서문 


    사도 바울의 서신서인 갈라디아서는 총 6장 149절 3,098단어(KJV)로 이루어졌다. 갈라디아서는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째는 1,2장으로 개인적인 내용이며, 둘째는 3,4장으로 교리적인 내용이고, 셋째는 5,6장으로 실행적인 내용이다.


    “갈라디아”란 말은 “고울(Gaul) 사람들의 땅”이란 의미이다. 이 땅에 대한 견해 차이들은 상당하지만 크게 논의의 대상은 되지 않는다. “갈라디아”의 북쪽과 남쪽은 모두 소아시아에 있으며, 프랑스만큼 크지는 않다. 소아시아의 중앙에서 북쪽 지역에는 실제로 “고울인”(프랑스인)이 살았다. 로마령인 갈라디아 지방은 B.C. 25년에 세워졌으며, 바울이 첫 번째 선교 여행 때 방문했던 안티옥, 이코니움, 루스트라, 터베(행 13,14장)를 포함한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켈트족과도 가까운데, 그들의 조상은 영국에서도 발견된다. 프랑스와 롬바르드에서 발견되는 유럽의 “갈리오”는 그리스인들에 의해 “갈라디아”로 불렸다.


    윌리엄스(주석, 1949)는 고울인들이 감정적이고 변덕이 심하다고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당신은 이같은 “인종적 차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사실 우리는 들어본 적이 있다. 시저는 고울 사람들이 변덕스럽고 변화를 좋아해서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시저가 실수하지 않았는가? 이것이 “인종 편견”이 아니고 무엇인가? 어쨋든 당신이 그들을 경험해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알포드는 티에리를 인용하여, 이 고울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변덕스럽고, 자랑하기 좋아하며, 자주 다툰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민족이 다 그렇지 않은가?


    갈라디아서의 기록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쓰여진 시기는 A.D. 51년에서 A.D. 58년으로 다양하게 추측된다. 사도행전 15:35이 가장 가능성 있는 시기이며, 그때는 A.D. 51년경이다. 갈라디아서 2장으로 봐서 본 서신은 분명히 예루살렘 회의 이후에 기록되었다. 또한 사도행전 9장의 사건이 있은 지 14년 이상 경과해서 기록되었다. 만일 바울이 A.D. 36년(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지 3년 후)에 구원받았다면, A.D. 51년에 갈라디아서를 썼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갈라디아서 1:18의 3년을 갈라디아서 2:1의 14년에 합친다면) A.D. 54년에 기록했을 것이다. 해리슨 박사(위클리프 주석, p.1283)는 A.D. 53년으로 잡고 있다. 알포드는 갈라디아서 4:13,16을 바울이 이미 이 교회들을 두 번 이상 다녀왔다는 증거로 인용하지만, 본문은 바울이 그곳을 한 번 방문했음을 보여줄 뿐이다. 알포드는 그의 견해를 주장하기 위해 “처음에”를 “이전에”로 바꿔야만 했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이것은 사사로운 해석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그의 신학을 입증하기 위해 본문을 변개시키는 것이다. (<로마 카톨릭식 성경 해석, 1996, 말씀보존학회 간>을 참조하라.) 더멜로우는 A.D. 55-56년으로 잡고, 스코필드는 분명하게 A.D. 60년으로 잡고 있다. 코니베어와 하우슨은 A.D. 57-58년으로 잡고 있다.


    갈라디아서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부문에서 독특하다.


      1.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직접 기록했다(갈 6:11). 다른 편지들에서는 대필자를 사용하고, 마지막 안부인사만 자필로 기록하곤 했다.
      2. 갈라디아 교회들(갈 1:2)외에는 어떤 교회도 언급되지 않는다. 
      3. 아무도 “성도”(엡 1:1)나 “하나님 안에”(살전 1:1) 있다거나, “하나님의”(고전 1:2) 교회라고 불리지 않는다.


    이 세 가지 특징들 때문에, 본 서신서에서는 구원받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말하는 구절도 볼 수가 있다(갈 3:4; 5:4).


    로마서는 사람이 구원받을 때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사실을 입증하며, 갈라디아서는 사람이 구원받은 이후에도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로마서는 사도행전 15:1의 이단들을 반박하는 반면, 갈라디아서는 사도행전 15:5에 처음 나왔던 카톨릭, 제 칠일 안식교, 그 외 알미니안주의자들의 교리에 대해 명백하게 답변하고 있다.


    어떤 유명한 주석가들도 이 책의 위대한 진리들을 감히 적용시키지 못하고 있다. 갈라디아서 1:8-9에서 저주를 하고 있는 원수들과 연합한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상 어떤 시기, 어느 나라에서도 항상 다수였다. “주석가들”은 오직 자신의 책이 잘 팔리는 것이 관심사항이므로, 우리는 주석가들이 갈라디아서 1:8,9과 3:10, 5:14을 설명하고 적용하는 대신 “필수적인 복음의 위대한 진리들과 연관하여” “교리적 내용”에서 “신학적으로”만 취급하는 것을 보고 놀랄 필요가 없다. 그들은 헬라어 문법을 들어 성경 본문을 논박하는 데는 열을 올리지만 정작 독자들에게 진리를 제공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입을 다물고 슬쩍 넘어간다. 윌리엄스, 클라크, 더멜로우, 제미에슨, 포셋, 브라운, 벌링거, 헉스터블(<강단 주석>)의 설교는 <킹제임스성경>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자세히 논박하며, 왜 자신들의 견해가 성경보다 우월한지를 말하는 것뿐이다. 사람이 이단을 배격하기 위해 하나님의 권위를 고치려든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이런 어리석은 행동으로 하나님을 우롱하려는 것인가?(갈 6:7)


    루터는 갈라디아서를 “캐서린”(캐서린은 그의 부인이었다.)이라 불렀다. 루터는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 살았다. [이것은 왜 현대의 기독교계가 마태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에만 매여 있는지를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갈라디아서는 로마서와 너무나 흡사하다. 두 서신서들은 휴거 때까지 우리들이 믿고 가르쳐야 할 구원의 올바른 기독교 교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현재 기독교계가 올바른 교리로부터 떠나 “실천적 기독교”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주적 메시지”, “교회통합의 달콤한 영”으로 치닫는 것은 성경이 제시하는 대로 지금이 교회시대의 마지막 때임을 표시해 준다. 합리주의와 이신론(1700-1850)의 영향으로 자유주의자들이 배교하였고, 그 때부터 기독교 교육과 표준원문을 거부하고 변개된 알렉산드리아 위조품들(1850-1930)로 안내한 “소경들”의 영향으로 보수주의자들이 배교하였다(1901-1970).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있는 가장 커다란 배교는 “믿음의 근본사항들”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 중에서 일어난다.


    신약에서 갈라디아서보다 더 많은 능력과 더 많은 악의를 절실히 자각시킨 책도 없다(갈 1:8,9; 2:15; 3:3; 4:15,16; 5:7,12; 6:3,12,13,15). 혹자는 파피루스에 대한 소동을 들을 수 있고, “이방인을 향한 사도”의 불꽃 같은 눈과 찌푸린 눈살을 볼 수 있다. 눈물을 흘리고 애정이 담긴 순간들도 있으나(갈 4:5,12,14,15; 5:22-25; 6:1,10), 후자는 웨더해드, 필, 포스딕, 코핀, 파이크 주교가 전파한 설교와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모든 권고 뒤에 잠복해 있는(마태복음 23:3-32의 명령들을 만든) “주인”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


    “바울 콤플렉스”(<필사본 증거>, 6장, 주 96 참조, 1970)에 사로잡힌 주석가들과 학자들은 어렵사리 “최초의 헬라어”로 잠수하여 바울을 “괜찮은 사람”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무척 노력한다. 그러나 어떤 “괜찮은 그리스도인”도 갈라디아서 1:8,9과 같이 말하지 못하며, 이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 교육자들이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그들의 수입은 그들이 얼마나 괜찮은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주석>의 독자들은 비평적 주석가들이 하나님을 점잖은 분으로 만들기 위한 “치장”들에 익숙할 것이다. 이러한 치장의 기원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A.D. 20-350)이다. 이들은 현대의 “존경받는” 기독교계에 대해 깊은 책임이 있다.


    이제 잔치를 준비하자. “이제 모든 것이 준비되었으니 오라.” 식탁이 풍성하게 마련되었고(마 22:4), 주인은 섬길 준비가 되었으며(눅 12:37), 우리가 그분을 허락한다면 그분은 우리와 함께 식사하실 것이다(계 3:20). 자 그의 임재 앞에서 즐겁고 정중하게 앉아서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차리신(요 21:9) 음식을 불평하지 말고(민 21:5) 먹자. 다른 사람들이 고기를 자르고, 감자를 찌르며, 샐러드에 맛을 내고, 차를 덥히며, 은그릇을 닦고, 냅킨을 접고, 물컵에 얼룩을 찾느라 굶주리는 동안, 우리는 “오 친구들아, 먹으라. 오 사랑하는 사람들아, 마시라, 실로 풍부히 마시라”(솔 5:1)라고 할 것이다. 그분의 말씀은 꿀보다(시 19:10) 더 달며, 우리에게 필요한 음식보다 더 훌륭한 영양분이 된다(욥 23:12).


    벌링거, 클라크, 더멜로우, 제미에슨, 헨리, 헉스터블, 포셋, 심슨, 웨스트코트, 레인지, 메이어, 케네디, 라잇풋, 닐, 미카엘, 뮬러, 커스터, 빈센트, 베어, 디벨리우스, 한슨, 렌돌, 메이슨, 호그, 버튼, 리더보스는 우리의 성경을 고쳤고, 우리는 그들을 (사랑으로) 바로잡을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무오하고 영원한 말씀인 종교개혁 성경(킹제임스성경)을 그들이 다루는 것과 동일한 인내로 우리는 그들을 다룰 것이다.


    『그가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며, 그가 누구에게 교리를 깨닫게 해 줄 것인가? 젖을 떼고 젖가슴에서 물러난 자들에게로다...힘으로는 주를 이길 사람이 없음이라』(사 28:9, 삼상 2:9).
     




    책 속으로


    1:6  나는 너희가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너희를 부르신 이로부터 그렇게 빨리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게 됨을 이상히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너희를 교란시키는 어떤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개시키려는 것이라.
      8  그러나 우리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
      9  우리가 전에도 말한 것같이 지금도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
     10  내가 이제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랴? 아니면 하나님께 사랴? 아니면 내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하겠느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11  그러나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12  나는 그것을 사람에게서 받지도 않았고, 배우지도 않았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된 것이라.
     13  너희는 내가 유대교에 있었을 때의 내 행실을 들었거니와,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였으며, 황폐시켰고,
     14  나의 동족 가운데 많은 동년배들보다도 유대교를 믿는 일에 앞서 있었으며,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데 더욱더 열성을 내었느니라.
     15  그러나 나의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선별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16  나로 하여금 이방 가운데 그를 전파하도록 내 안에 그의 아들을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즉시 혈과 육에 의논하지 아니하고,


    여기 본문은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장들인 창세기 3,4,12,22,24장과 출애굽기 12,20장 등과 함께 언급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본문의 말씀들은 사도의 마음과 혼에서 나오고 있으며, 그는 독자들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는 단어를 선택하는 데에 조금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본문은 자신이 맡은 임무와 책임에 대해 분개하고, 동요하며, 염려하고 질투하는 사람의 격정적인 자기 분출이다. 본문은 성령으로 충만한,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의 설교와, 신학교에서 체계적으로 배운 지식으로 가득찬, 사람들이 부른 사람의 설교와의 차이점들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자신이 말하는 것과 의미하는 것이 동일한 사람은 현대의 주석가들이나 학자들처럼 말하지 않는다.]


    사람이 배가 고파지면 갑자기 음식에 대한 갈급함이 있게 된다. 사람이 매우 피곤할 때는 잠에 대한 갈급함을 가진다. 진리에 대해 갈급해하는 어떤 사람도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말하거나 글을 쓰지 않는다. 심지어 바리새인도 케네스 위스트나 티엠 박사, 마쉘 닐이 거룩한 것들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는 더 갈급함을 가지고 말한다. 배고픈 사람이 “사랑하는 아내여, 내가 이 집의 요리 방법에 접근하는 데 있어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으로 보이고 싶진 않소. 그러나 나는 저녁 식탁에 양식이 없음이 다음과 같은 충분한 증거로 드러남에 대해 생각하고 있소...”라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어떤 배고픈 사람도 이와 같이 말하지 않는다. 여러분이 보듯이 바울과 자기들을 같은 부류로 두는 대부분의 주석가들은(<필사본 증거> 6장의 각주 96에 있는 “바울 강박관념”을 참조하라.) 쿠프로(행 13:4)로 항해하려고 하는 바울의 갈급함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너희가 ... 그렇게 빨리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게 됨을 이상히 여기노라』(6절). 바울은 소문으로 이 소식을 알았다. 사도행전 13,14장의 사역들(특히 사도행전 14:21-25)에 유대주의자들의 충고(행 15:1,5 참조)에 의해 누룩이 스며들고 말았다. 바울은 지금 어린 교회들을 바로잡기 위해서 이 글을 쓰고 있다(서문의 저작연대를 참조하라).


    학자들도 본문 6절의 “다른”을 강조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가 이미 <킹제임스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변개된 성경을 통해 줄 수 없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이 단순하다. “너희들은 누군가로부터 어떤 것들을 ‘복음’이라고 듣고 있지만 그것은 ‘복음’이 아니다.” 비평가들이 갖고 들어온 오류들을 보려면 제미에슨, 포셋, 브라운의 <주석서>(P.1259)를 읽어 봐야 하는데, 그곳에서는 6절의 “다른”과 7절의 “다른”이 헬라어로 같은 단어가 아니기에, 6절은 “틀린”(different) 복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얼마나 놀라운 주석인가! 그러나 그들은 이같이 설명해 놓고 나서 8절에서는 안면을 바꾸어 8절의 “어떤 다른 복음”은 6절과 7절에 대한 언급이 아니며, 8절은 여러분이 들었던 것을 제외한 다른 복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킹제임스성경>에는 6,7,8절이 얼마나 분명하게 설명되고 있는지 놀랍지 않은가?


    1. 너희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접했었고, 너희들은 이 복음을 진리로 받아들였다(6절).
    2. 너희는 이 메시지가 하나님 아버지(4,6절)로부터 온 것임을 믿었고, 그것을 그분의 은혜의 역사로 받아들였으며, 심지어 그것을 듣는 것마저도 그분의 공로로 여겼다. 
    3. 내가 떠난 뒤(행 14,15장) 누군가가 너희에게 어떤 다른 것을 전하며 그것을 복음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다름아닌 복음의 변개일 뿐이다(7절).
    4. 그 변개된 복음은 은혜를 약화시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6절).
    5. 만일 천사를 포함하여 누군가가 너희에게 다른 것을 전한다면, 주님께서 그를 선하고 적절하게 저주하시도록 하라(8절).


    <필립스 역본>은 7절의 “변개”(pervert)를 “희화화”(“우스꽝스럽게 만들다”, travesty) 로 아주 엉뚱하게 번역하였다. ASV(1901)는 어떤 다른 사람이 그들을 떠나게 하는 도구였기에(6,7절), 6절의 “떠나”(removed)를 중간태로 잘못 번역하였다. NEB는 8절의 “저주를 받으리라”에 너무나도 충격을 받은 나머지, 그러한 단어는 이 글이 쓰일 때 바울이나 성령님의 마음 안에 없던 단어라고 주장하면서, 본문을 “쫓겨나리라”(shall be held outcast)로 대체시켰다. [이같이 본문을 회칠하여 속이는 것은 고상한 눈과 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함이다.] (pp.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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