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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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노래 요약정보 및 구매

피터 S. 럭크만(Dr. Peter S. Ruckman) 저 / 편집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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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 2016년 2월 10일 초판1쇄
쪽수 : 396
무게 : 590g
크기 : 153*223*20mm 신국판 반양장 사철제본
ISBN : 979118591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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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솔로몬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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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 상세설명

    지금까지 솔로몬의 노래에 관해 주석서를 쓴 사람들이 더러 있었지만 그들이 쓴 책들은 너무 자기주관적이라서 성경의 잣대로 재면 함량미달이 많았다. 이와는 다르게, 피터 럭크만의 주석서는 주석서 중의 주석서이다. 럭크만 목사님은 설교도 잘하시지만, 필자는 그분이 가진 성경 교사로서의 은사로 인해 그분이 이 책의 주석서를 쓸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믿는다. 솔로몬의 노래의 히브리어 명칭은 “노래들 중의 노래”이다. 솔로몬의 노래의 표현들이 너무 솔직해서 관능적이고 암시적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설적이거나 비속하지는 않고 오히려 다양한 서정적인 노래들로 채워져 있다. 본서를 통해 독자들은 성경 66권 중 가장 난해한 책에 대해 가장 명확하고도 분명한 해석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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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책을 내면서 / 5
    들어가는 말  / 9


    솔로몬의 노래 1장 / 21
    솔로몬의 노래 2장 / 102
    솔로몬의 노래 3장 / 175
    솔로몬의 노래 4장 / 223
    솔로몬의 노래 5장 / 258
    솔로몬의 노래 6장 / 304
    솔로몬의 노래 7장 / 330
    솔로몬의 노래 8장 / 378
      

  • 서문 



    “권위역본”(Authorized Version)에서 시적인 지혜의 책들 중 마지막 책이 솔로몬의 노래이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솔로몬의 노래는 욥기 뒤에 오고 룻기 앞에 위치한다. 그것은 히브리어에서는 ‘케투빔’으로 알려진 ‘하기오그라파’[헬. - 거룩한 글들, 성문서(聖文書)]라고 불리는 부분에 속해 있다. 케투빔은 그리스도께서 『시편』(눅 24:44)이라고 부르셨던 부분이다.


    “솔로몬의 노래”라는 제목은 『노래들 중의 노래니, 이는 솔로몬의 노래라.』는 바로 그 첫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노래들 중의 노래”라는 히브리어 제목 역시 그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당신은 그것이 ‘칸티클스’ (Canticles)로 언급되는 것을 또한 들을 것인데, 그것은 “노래들”에 해당하는 라틴어이다. <비숍성경>은 그것을 “발레들 중의 발레”(‘춤들 중의 춤’)라고 불렀다.


    솔로몬의 노래는 전체적으로 일련의 서정적인 “사랑의 노래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길이가 다양하다. 이 책의 15세기 사본이 현재 케임브리지대학에 소장되어 있는데, 그것의 양피지 표지에는 많은 글자들이 있고 가젤과 비둘기가 각각 한 마리씩 그려져 있다. 분명 “노래” 전체에 걸쳐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존재해 계시지만, 본문 자체에는 에스더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God)이나 “주”(Lord)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솔로몬의 노래의 저자는 의심의 여지없이 솔로몬이며(1절), 솔로몬은 그 책에서 일곱 번 등장한다(1:1,5; 3:7,9,11; 8:11,12). 타락하고 배교한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의 학자들은 자연스럽게 솔로몬이 책의 저자임을 부인한다. 예를 들어 유대인 랍비들은, 노래들 중의 노래는 아람어가 팔레스타인에서 히브리어를 대체했을 때(B.C. 400) 그것의 현재 형태에 이르렀음을 ‘암시한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난센스이다(‘암시한다’는 말은 대학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자들이 특히 진화론을 논할 때 사용하는 ‘점잔빼는 전문어’이다).


    솔로몬은 그의 계보를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야곱에게는 시리아인 어머니가 있었다(리브카, “시리아인” 라반의 누이, 창 28:5). 야곱은 네 명의 아내가 있었고 그들 모두 시리아인이었으며,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낳았다. 그 유대인들은 이렇게 말하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내 조상은 거의 몰락하던 시리아인으로 이집트로 내려가 거기에서 몇 사람과 기거하다가 거기에서 크고 막강하고 사람 수가 많은 민족이 되었는데』(신 26:5).


    아람어(시리아어)는 저 옛날 창세기 31:47에서 모세에 의해 사용되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명령을 받아 그의 시리아 혈통을 기억할 때 아람어 단어나 표현들을 사용했다면 왜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야 하는가?


    솔로몬이 책의 저자임을 제거하려고 랍비들이 쓰는 또 다른 술책은, 성경 본문에 『티르사』(6:4)가 언급되므로 그 책은 솔로몬이 죽은 후까지, 즉 왕국이 여로보암 하에서 분열되고, 오므리가 북왕국 수도를 사마리아로 옮기기(B.C. 800) 전까지는 기록되었을 리가 만무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다. 어떤 수도도 솔로몬이 솔로몬의 노래에 무엇인가를 기록하기 위해 어딘가로 옮겨질 필요가 없었다. 그는 그 여인을 단순히 두 성읍, 즉 티르사와 예루살렘에 비유했을 뿐이다. 티르사는 거기에 수도가 없고 여로보암이 그곳에 없을 때 아름다웠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누구인가?


    본문을 제거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는데, 이 책 안에 북이스라엘과 시리아, 트랜스요르단, 유다 같은 장소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몇몇 노래들은 “아마도” 그 지역에서 기원했을지도 모른다고 태연히 주장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그 책의 기록자라고 말씀하신 솔로몬 외에 다른 누군가가 기록했다는 것이다. 솔로몬의 왕국이 북쪽에 있는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접경에서부터 저 아래 남쪽 사우디아라비아 윗부분까지 미치고, 또 서쪽 지중해 해변에서부터 동쪽 유프라테스 강 강둑까지 뻗쳐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삼하 8:3, 왕상 4:21), 그와 같은 근거로 솔로몬을 공격하는 일단의 복제된 얼간이들의 주장보다 더 웃기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 영역 내에는 전체 북이스라엘과 상당히 넓은 시리아 지역, 트랜스요르단 전체 그리고 유다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솔로몬이 40년 동안 치리하면서 자기의 왕국의 이곳저곳을 여행한 적이 없었다고 말하려는가?


    이제 교훈을 배우고 완전히 숙지하도록 하라.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고등교육을 받은 히브리어 학자들이나, 히브리어를 읽고 쓰고 말하고 심지어 가르칠 수도 있는 누구라도, 그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즉 몇몇 믿음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든 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한 가장 어리석은 자들에 속한다. 그것은 럭크만의 생각이 아니라, 예레미야 23:36과 시편 107:11, 예레미야 8:8에 기록된 전능하신의 하나님의 생각이다.


    자, 솔로몬의 노래에 관한 문학작품은 광범위한데, 이를 테면 W.F. 올브라이트(Albright), C.D. 긴스버그(Ginsburg), G.D. 코우헨(Cohen), R. 소울렌(Soulen), H.H. 로울리(Rowley), M.H. 세갈(Segal), G.R. 드라이버(Driver) 등의 작품들이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일부가 브루크너(Bruckner), 샤브리에(Chabrier), 레오폴드 담로쉬(Leopold Damrosch)의 고전음악과 엔리코 보시(Enrico Bossi)와 이탈로 몬테메쯔(Italo Montemezz)의 오라토리오에 등장한다. 21세기 작곡가들 중에는 랄프 본 윌리엄즈(Ralph von Williams)와 버질 톰슨(Virgil Thompson)이 있고, 또한 만프레드 슈투르만(Manfred Sturmann)의 독일어 작품이 있다.


    솔로몬의 노래의 모조품인 “노래들 중의 노래 랍바”(Song of Songs Rabbah)가 있다. 이것은 “학가다적인 미드라쉬”(Haggadic Midrash)로 알려져 있으며, 랍비들이 솔로몬의 노래를 유대인들의 우화와 전통을 담은 예루살렘 “탈무드”에 근거하여 해석해 놓은 책이다(<죽음의 재 같은 땅 이스라엘, Israel: A Deadly Piece of Dirt>, 2001, p.171). 이것은 솔로몬의 노래를 자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표현된 우화로서 해석한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솔로몬의 노래가 유월절에 유대인들에 의해 읽혀지는 것인데, 그때 이들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그분의 신부로서 택하셨다고 믿는다. 그러나 현대의 자유주의적인 랍비들과 탈무드 학자들은 현대의 학자들이 이러한 입장을 저버렸다고 지체 없이 이야기한다.


    그러한 관점은 부분적으로만 진리이다. 풍유적인 해석법은 솔로몬의 노래를 다루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지만, 이 책의 많은 언어가 명백히 비유적이다.


    이 책을 해석하는 다른 방법들로는 “문자적인 관점”과 “예표적인 관점”(또는 “신비주의적인 관점”)이 있다. 문자적인 관점은 주로 그 노래의 성적(性的)인 내용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랍비들의 전통에 따르면, 유대인 젊은이들 중 그 누구에게도 서른 살이 되기까지는 솔로몬의 노래를 읽도록 허락되지 않았다. (한창 성장할 시기의 유대인 젊은이들에게, 그것도 그 책에 얼마든지 접근할 수 있었을 그들에게 그 제약이 얼마나 강제적이었을지 상상이 된다.) 물론 그렇게 했던 이유는 그 책의 관능적 특성 때문이다. 거기에는 진짜 정신적인 사랑뿐 아니라, 진짜 성적(性的)인 사랑 또한 묘사되어 있다. (유대인 백과사전)이 “서정시 같은 상상과 솔직한 표현은 정신적으로 관능적이고 암시적이지만, 그 시는 결코 상스럽거나 저속하지 않다.”고 말할 때, 그 말에는 한 가지 올바른 내용이 들어 있으니, 실로 그것은 옳은 말이다.


    오리겐(Origen)과 유세비우스(Eusebius)는 둘 다 그 문자적인 해석에 관하여 신성모독적인 관점을 취했다. 그들은 솔로몬의 노래가 솔로몬의 두 여자 친구(여자 목동과 여왕)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가 둘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놀았다고 가르쳤다. 그것은 “남녀의 삼각관계”를 다루는 현대의 멜로드라마 같은 방식의 해석이다.


    벌링거(Bullinger)는 C.D. 긴스버그(런던, 1857) 박사의 주석을 따르는데, 그의 해석 또한 더 나을 게 없다. 이 두 사람이 솔로몬의 노래를 보는 관점은, 한 소녀가 한 목자와 사랑에 빠지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왕이 그녀를 궁전으로 데려가 그녀에게 구애하며 달을 약속함으로써 그녀를 유혹하려 한다는 식의 단순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그 왕을 떠나고 자기의 연인인 목자에게로 돌아온다. 그러나 성경이 친히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게 되면, 긴스버그와 벌링거가 이 문제에 관한 한 제정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단숨에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솔로몬의 노래도 그렇지만 구약의 경우 왕은 아버지 하나님의 예표이고, 목자는 성경 전체에 걸쳐서 『선한 목자』(요 10:14)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벌링거가 솔로몬의 노래에서 그 목자에 관해 예표를 정할 때, 그것은 그가 정한 예표일 뿐이다. 당신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신부(계 19장, 엡 5장)를 두고 누가 그녀를 얻는지 보려고 서로 싸우고 계시다고 생각하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제임스 돕슨(James Dobson)과 같은 현대의 기독교 정신과의사들 및 상담가들은 그 책에 대해 전적으로 문자적인 관점을 취하지만, 그들은 혼인 관계에 있는 부부 간의 사랑에 관한 논문밖에 보지 못한다. 이것이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보는 내용의 “전부”라고 한다면, 우리는 현대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성에 사로잡힌 신경증환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휴 헤프너(Hugh Hefner)와 그들의 “성인용(X-rated) 성경” 안에 들어 있는 “플레이보이”가 취한 관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솔로몬의 노래에 접근할 때 예표적인 관점이 진리에 훨씬 더 가깝다. 즉 구약성경의 다른 많은 곳들처럼 솔로몬의 노래에도 역사적인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기록하도록 허락하셔서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건들 그리고 장소들을 영적인 진리들을 가르치는 예표들로서 사용하신다. 그러한 가르침과 연관해서 가장 좋은 사례가 갈라디아서 4:21-31에서 발견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구절들에서 창세기 21장에 기록된 역사적인 사건들을 사용하시어 율법과 은혜에 관한 신약의 교리를 정의하신다.


    솔로몬의 노래와 관련하여, 이러한 해석법을 종종 “신비주의적인 방법”이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그 예표들은 구약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던 어떤 신비적인 형태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안에는 틀림없는 진리가 들어 있다(피터 럭크만의 주석서 <베드로전후서>의 벧전 1:11,12에 관한 주석 참조).
    솔로몬의 노래에 관하여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취한 해석 방법은 “신비주의적이고 교리적인” 체계였다. 그러니까 기독신앙의 교리들이 솔로몬의 노래에 신비적인 형태로 들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크리소스톰(Chrysostom) 당시 그리스 동방정교의 두 교부였던 바실(Basil)과 데오도루스(Theodorus)는 그 책에 관하여 “신비주의적이고 영적인 관점”을 고수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영적인 교훈들을 솔로몬의 노래에 신비적인 형태로 넣어 두셨다고 믿었다.


    가장 우스꽝스러운 예표적인 해석이 로마카톨릭에 의해 신봉되었다. 카톨릭 주석가들은 그 술렘 여인이 교회를 그리고 있다고 가르치지만, 그 뒤 어떤 특이한 이유를 대면서 그 교회가 “마리아”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을 그 책에 대한 “호색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접근법”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실로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이다.


    자, 우리는 『성경』(롬 1:2)에 있는 여느 책들과 마찬가지로 솔로몬의 노래에 접근할 것이다.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서 그 책에 다가설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한 단어도 변개시키지 않을 것이다. 학자들이 성경적으로 이치에 맞게 해석한 곳에서는(그러나 그런 일이 자주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의 주석 내용을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동의하지 않거나 깨닫지 못하여 성경을 변개시킨 곳에서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들 모두를 내다버릴 것이다.


    우리는 솔로몬의 노래 전체에 걸쳐 다소 “힘든 쟁기질”을 할 것이다. 많은 곳에서 우리의 주석은 단순히 “이히 바이스 니히트”(Ich weiss nicht)가 되어야만 할 것인데, 그 말은 “나는 모른다.”는 뜻이다. 나의 대적들은 늘 말하기를, “럭크만은 자기만 옳고 남들은 다 틀리다고 생각한다.”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어떤 문제에 대해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에 관해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을 때에는 그것을 믿는 것이 좋다. 내가 옳다면 다른 모든 의견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에 근거하여 그 관점을 취한다. 나 자신의 신학이나 생각에 근거하여 그 관점을 취하지 않는다.


    나는 성경에서 불분명하거나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항상 마음을 열어 놓았다. 그런 본문들에 관한 한 독선적이었던 적은 없다. 스스로 성경학자라고 주장한 적도 없다. 나는 성경을 배우는 “학생”일 뿐이다. 학생으로서, 내가 여전히 배우고 있는 여러 부분들이 성경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성경 교사로서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당신에게 줄 것이다.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많은 주석가들처럼 언변으로 압도하거나 허튼소리를 지껄여서 말하는 내용을 모르면서도 마치 알고 있는 것인 양 사람들이 나를 생각하도록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사용하게 될 해석 방법은 일종의 “혼합된 방식”이다. 즉 필자의 다른 주석서들에서 가르쳤던 것처럼, 성경의 모든 구절은 “세 가지”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 (1) 우선 성경은 “교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은 “그 무엇보다도” 교리에 유익하기 때문이다(딤후 3:16). 교리적인 설명을 할 때는 꽤 자주 “예언”에 대해 다룰 것이다. (2) 다음으로 성경은 “역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성경의 이야기는 역사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다. 그것은 단순히 신화, 전설, 우화 등을 말하는 공상적인 내용의 “초역사”(Übergeschichte, supra-history)가 아니다. (3) 마지막으로 성경은 “영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 책이 비록 우리를 대상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 본문을 통해 경건한 생각들과 영적 교훈들을 얻어서 우리의 상황에 실제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자, 여기에 솔로몬의 노래가 있다. 이 책은 (영어 <킹제임스성경>의 경우) 8장, 117구절, 2,661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솔로몬은 그 책에서 일곱 번 언급된 “왕”(the King)이다. 그는 다윗의 아들이며, 성경에서 “다윗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위대한 예표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예표적으로 가장 통렬한 언어를 몇 가지 발견하게 될 것이다. 교제와 기도 그리고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 곧 휴거와 재림에 관한 몇 가지 위대한 교훈들을 배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솔로몬의 노래의 본문 안으로 들어갈 때, “왕”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도록 할 것이며(솔 2:10), 우리는 그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솔 8:2).
     




    책 속으로


        2:8 내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로다보라그가 산들 위로 뛰며작은 산들 위로 가볍게 뛰며 오는도다.
        
     나의 사랑하는 이는 노루나 어린 사슴 같나니보라그가 우리의 벽 뒤에 서서 창문으로 들여다보며 창살을 
            통해 몸을 내보이는도다.
      10  나의 사랑하는 이가 내게 일러 말하기를 나의 사랑나의 어여쁜 자야일어나 떠나자.
       
    11 보라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쳐 사라졌으며,
       
    12 땅에는 꽃들이 피고 새들이 노래하는 때가 왔도다산비둘기의 소리가 우리의 땅에서 들리는도다.
       
    13 무화과나무는 푸른 무화과들을 내고 포도 넝쿨은 부드러운 포도로 좋은 향기를 내는도다나의 사랑나의
            어여쁜 자야일어나 떠나자.” 하였도다.

    신부는 여전히 여기서 화자로서 말하지만, 8절에 단락 부호(○ )가 있다예표적으로그녀는 지금 막 유대인들에게 주님께서 준비되실 때까지 그분을 깨우지 말라고 경고하는 일을 끝냈다이제 그녀는 주님께서 깨어나실 때 그녀 자신”(딸들이 아닌)과 관련하여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묘사하려고 한다.

    나는 종종 주님의 두 번째 오심을 재림과 동의어로서 말하지만사실 두 번째 오심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첫째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머리로서 그분의 몸을 하늘의 본향으로 데려가기 위해 돌아오신다그것은 신랑께서 자신의 신부를 데리러 돌아오시는 것이다그것이 교회의 휴거이다두 번째 부분은 그리스도께서 정복하는 왕으로서 돌아오시는 재림이다.

    세상이 두 번째 오심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있다그들이 바랄 것은 주님의 분노와 격노와 불로 삼켜질 것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3:8).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지 않다(요 3:36).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복을 받았고,” “사랑 안에서 주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기로 예정되었고,” “그 사랑하시는 이 안에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엡 1:3-6).

    그것은 어느 날 이제 막 유죄임이 밝혀질 살인범에 대한 소송 사건을 법정에서 심리한 뒤같은 날 집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돌아오는 재판관에게서 볼 수 있는 차이점이다다음 날 그는 법정에 들어가서 그 죄수에게 그의 죄들에 대해 사형을 선고할 것이다그 재판관이 집에 돌아오면그의 아내와 자녀들은 그가 법정 안으로 들어설 때 사형수가 그를 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를 만나지 않는다아내와 아이들은 그들의 남편과 아빠가 집에 오는 모습을 보기를 매일 갈망하는 반면그 죄수는 유죄를 선고하는 재판관을 매우 무서워하는 것이다.

    이곳의 본문은 재림이 아니다하나님의 심판은 여기서 내려지지 않는다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적그리스도의 군대들을 멸하기 위해 돌아오시는 것이 아니다.

    이곳의 본문은 신부가 그녀의 사랑하는 이에 의해서 불러냄을 받는 것이다그것은 교회의 휴거에 대한 그림이다.

    내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8). 그것이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우리는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다우리는 성전이 재건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지 않다우리는 부활한 로마 제국이 유럽에 다시 세워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지 않다그 일들은 휴거 전에 일어날 수도 있다만일에 그렇다면틀림없이 우리는 그 일들을 주목하고서 성경의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서 필기해 둘 것이다그러나 우리가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우리는 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고 있지 표적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다우리는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듣기 위해 귀 기울이고 있다(살전 4:16).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우리 각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있다(요 10:3). 우리의 몸을 눈깜짝하는 순간에 변화시키실 명령을 듣기 위해 귀 기울이고 있다(계 4:1, 고전 15:52). 이리 올라오라.는 말씀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우리는 시체를 땅 밑으로 데려가는 장의사(undertaker)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우리를 하늘 위로 데려가실 분”(Uppertaker)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pp.13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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