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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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요약정보 및 구매

피터 S. 럭크만(Dr. Peter S. Ruckman) 저 / 편집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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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출간일 : 2019년 9월 6일 초판5쇄
쪽수 : 708
무게 : 940g
크기 : 153*223*34mm 신국판 반양장 사철제본
ISBN : 979118591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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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도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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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품 정보

    상품 상세설명

    사도행전은 신약성경에 들어 있는 전환기적인 세 가지 책 중 하나이다. 마태복음은 구약과 신약 사이에 있는 책이요, 사도행전은 유대인의 율법과 그리스도인의 은혜(신약 교회)를 잇는 책이며, 히브리서는 교회 시대와 환란 시대를 잇는 책이다. 지난 1,900여 년 동안의 신약 교회사에서 많은 교리적인 오류가 나왔는데 그것은 거의 이 세 책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들이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일인데도 사람들은 간과해 버리고 제 나름대로 학자의 권위나 목사의 권위를 내세웠던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이다.” 이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명제이다. 그러나 성경 전체가 신약 교회의 교리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사도행전은 교리의 책이 아니다. 물론 성경의 어떤 부분도 우리에게 적용시킴으로써 영적 교훈과 양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신약 교회의 교리로 적용시키게 되면 커다란 문제를 낳게 된다.


    복음서에서도 시기적으로 마태복음 26장 이전과 이후는 커다란 분기점이 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이전과 이후는 실제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인간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음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약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인하여 성령님께서 오셔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의 몸에 거처를 정하심으로 성립되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부활, 승천을 근거로 신약 교리가 정립될 수 있는 것이다. 바울 서신은 바로 이 점을 해결했기에 신약 교회들의 교리서가 된 것이다. 그후 성도의 휴거와 이 지상에서의 7년 대환란, 그리고 환란 끝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 이 세상은 새로운 세대를 맞게 된다.


    본 주석서는 지금까지 그리스도인들이 잘못 이해한 많은 부분을 선명하게 바로잡아 주게 될 것이며, 따라서 독자 여러분은 이 책으로 진리의 지식에 이르게 될 것이고, 공부를 할수록 이 책의 가치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상품 정보 고시

  • 이 책을 내면서 / 3
    서문 / 5


    사도행전  1장 / 20
    사도행전  2장 / 67
    사도행전  3장 / 137
    사도행전  4장 / 161
    사도행전  5장 / 189
    사도행전  6장 / 207
    사도행전  7장 / 221
    사도행전  8장 / 248
    사도행전  9장 / 273
    사도행전 10장 / 292
    사도행전 11장 / 316
    사도행전 12장 / 328
    사도행전 13장 / 342
    사도행전 14장 / 370
    사도행전 15장 / 384
    사도행전 16장 / 411
    사도행전 17장 / 435
    사도행전 18장 / 466
    사도행전 19장 / 488
    사도행전 20장 / 510
    사도행전 21장 / 535
    사도행전 22장 / 550
    사도행전 23장 / 563
    사도행전 24장 / 576
    사도행전 25장 / 594
    사도행전 26장 / 604
    사도행전 27장 / 627
    사도행전 28장 / 650 

  • 서문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이 이 책에 붙인 “사도들의 행적”(Acts of the Apostles)이라는 제목은 적절한 표현이다. 이 책은 분명히 “사도들의 행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비롯한 열한 명의 사도들의 행적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유다를 대신할 사람을 뽑고, 오순절을 기다리며, 이스라엘에게 설교하고, 병자를 치유하며, 집사들을 선출하고, 죽은 자를 살리며, “천국”의 문들을(마 16:19) 이방인에게 열어 준다. 이 책은 바울, 실라, 바나바 - 이들은 모두 “사도들”(행 14:14)로 불린다 - 의 행적으로 끝을 맺으나, 복음은 사도들의 “표적과 이적”(롬 15:19, 고후 12:12)과 더불어 땅 끝까지 전해지게 된다. 


    다른 주석서들을 읽어 본 독자라면 <킹제임스성경>이 이 책에 붙인 제목까지 공격 대상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죽은 정통 보수주의자들(페이지, 렌돌, 로버트슨, 샤프, 모울튼, 브루스, 클라크, 래드, 벌링거, 노울링, 그로티우스, 알포드, 워즈워드 등)은 어떠한 이유로든 종교개혁 성경의 권위에 맹렬하게 이의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예가 풀러 신학교의 “성경” 신학 교수 래드(Ladd)가 쓴 <위클리프 주석>에 있는데(p.1123), 그는 <킹제임스성경>에 있는 제목이 “원본”에는 없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 36:23 이후로 죽은 정통 보수주의자들이 해 온 말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원본”을 본 적이 없으며, “원본”을 본 사람을 알지도 못하며, 더구나(존 R. 라이스, 월버 스미스, 아쳐 웨니거, 로크만 재단과 마찬가지로) “원본”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1880년과 1990년 사이에 “보수주의 학계”의 두드러진 특징은 그들이 “원본”에 대해 고의적인 거짓말을 한다는 점이다. <사탄의 걸작품 NASV>을 읽어 본 독자들이라면 이 말이 진실이며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1880년 이후로 모든 주요 보수주의 주석가와 성경 개정자(혹은 헬라어 교수)는 자신들이 “원본”의 내용을 안다고 수업이나 논문을 통해 큰소리를 쳐 왔다.


    이들이 ‘사도행전’ 대신 제안하는 제목들은 거룩한 사도들의 행적, 성령의 복음, 행적, 부활의 실증, 성령 행전 등이다. 헤롤드 만서(<참조 성경> 편집자, 1959)는 토레이, 존 샘피, 로버트슨(소위 보수주의자들)을 변호한다. 즉 <킹제임스성경>에 있는 이 책 제목은 그 책에 대한 정확한 묘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종교개혁 성경의 권위를 전복시키는 비평가들과 어떤 타협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때로는 진리를 말한다 할지라도 그들에게 존경을 표하지 않을 것이다. 1880년 이후로 성경 주석과 개정은 주로 장사치들과 사기꾼들의 일이 되어 왔으며, 그들 중 어떤 이들이 “근본주의”를 믿는 “경건한 사람들”로 통한다 해도 그들은 325년 니케아 공회 이후로 그리스도의 몸에서 일어난 가장 큰 배교에 대해 책임져야 할 것이다. 로크만 재단이 만들어낸 변개된 성서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킹제임스성경>의 적들조차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을 알아냈다. 즉 미국의 종교와 도덕은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고대 영어”로 번역된 <킹제임스성경>이 밀려나고 “대중의 언어”로 번역된 “보다 나은 번역본들”이 출판되면서부터 더 빠르고 더 심하게 타락해 왔다는 사실이다. 분명히 성령께서는 <킹제임스성경>의 “고대 영어”에 크게 신경쓰지 않으시며, 지금도 여전히 300년 이상 된 그 성경을 가지고 일하신다. 성령께서는 가장 최근에 나온 34개의 번역본을 합친 것보다 그 책으로 더 많은 일을 하신다.


    사도행전은 28장, 1,067절, 24,250단어(영어 <킹제임스성경>의 경우)로 되어 있으며, 저자는 “사랑하는 의사”(골 4:14)인 누가이다. 이 사실은 첫 구절에서부터 명백히 드러나 있으나, 학자들은 여기에마저 이론을 제기한다.


    R.J. 노울링은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람이 누구이든지 간에 그는 또한 누가의 이름을 담고 있는 복음서를 기록했다.”고 말한다(<주해 헬라어 성경> 1권 p.3). 노울링은 불가지론자이며, 바르트나 부르너와 마찬가지로, 명백한 성경의 진리를 거부하는 사람이다(눅 1:1-3, 행 1:1 비교). 브루스도 “사도행전은 1세기의 한 그리스도인이 기록한 책...”이라고 말한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성경의 다른 어떤 역사서보다 더 분명하게 입증된다(행 1:1 주석 참조)는 점에서 볼 때, 보수주의 신학교의 교수들을 위한 교재를 집필한 사람들이 “학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알 수 없다고 변명한다는 것은 뭔가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그리스도의 교회 목사들이 에베소서 2:8-10 대신 사도행전 2:38을 근거로 성도를 논쟁에 말려들게 하는 것처럼, “대다수의 인정받는 학자들”은 그들 자신이 만들어낸 논쟁에 성도를 끌어들이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서로 다른 견해들을 수없이 제시하여 성도의 믿음을 파괴시키거나,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이 사람들의 학문과 연구 결과들이 존경할 만하거나 고려해 볼 만하다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현대의 기독교 교육의 진짜 목적은 <킹제임스성경>을 증오하는 사람들의 수많은 이론과 견해 속에 성도를 파묻어서 결국은 성경의 저자를 의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학자들은 의도적으로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구냐는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수많은 이론들을 제시한다. 모펫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된 57단어에 관해 무엇을 증명했는가? 윈디스크(Windisch)가 이것을 인정했는가? 클락은 그것을 부인했는가? 그렇다면 이유는? 낙스는 이 질문들에 답변하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왜 하르낙은 그것을 지지했는가? 호바트와 잔은 이것에 관해 어떻게 생각했는가? 캐르베리는 이것을 반박했는가? 그렇다면 브루스와 메이저의 의견이 진리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닌가?


    이런 논쟁의 목적은 신학에 입문한 학생들로 하여금 위대한 지적 거인들이 “원문”에 더 가까워지기 위한 중요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확신시키려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모든 사람이 <킹제임스성경> 본문을 바꿈으르써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는 생각을 순진한 학생들은 결코 못할 것이다. 이 학자 무리 중 단 한 명도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관해 설교할 정도의 지식도 없다. 우리는 아무도 정죄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순히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경건한 학자들”의 의견을 공부하는 데 시간과 시력과 돈을 낭비한 성경대로 믿는 사람은 마귀에게 속아 온 것이다. 세 번째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누가가 기록했다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이 세상의 지혜”(고전 2:4,6)에 우리 눈을 돌리게 하는 것이며, 지혜를 얻기 위해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하는 “학자들”이다.


    기록 연대 문제에서 우리는 다시 상충되는 많은 의견들과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것들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하며, 성도의 지각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며, 아무에게도(구원받았건 그렇지 않았건 간에) 조명을 주지 못한다.


    바우어(실제적으로는 무신론자인)와 튜빙겐 학교는 이 책이 2세기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했다. 브래스와 제롬은 57-59년으로, 산데이 박사와 플러머 박사는 80년으로, 하르낙은 최대로 잡아서 93년까지로, 굳스피드와 스코트는 90년으로, 토레이는 61년으로, 모펫은 100년으로 결정을 내린다. 먼저 이들의 비평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과 그들의 연구 동기로 인해서 이런 학자들은 무시할 수 있고, 오히려 우리는 성령께서 보존하신 <킹제임스성경>에서 두 가지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1. 저자(누가)는 사도행전 28장에서 바울이 처음 투옥되었을 때까지는 그의 책을 완성하지 못했다. 투옥은 (어떤 성경 연대기를 보더라도) 58년 이후이다.


    2. 저자 누가는 그의 전 작품 어디서도(눅 21:24) A.D. 70년의 예루살렘 멸망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 사도적 권위를 다루는 역사서에서, 저자가 사도적 권위의 원천이 되는 저자가 1세기의 두드러진 역사적 사건을 간과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행 8:14 주석 참조). 대부분의 성경적 연대기로 볼 때 바울은 A.D. 66-69년 사이에 참수형당했다. 누가가 사도행전을 끝마칠 쯤에 참수형당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책의 기록 연대는 명백히 A.D. 59-65년 사이가 된다. 대부분의 정통 연대기가 사도행전 28장을 A.D. 62-63년에 두기 때문에(스코필드, 벌링거, 아담 클라크 등) 가장 가능성 있는 추측은 A.D. 64-65년이다. 이런 “추측”은 <킹제임스성경>에 나타난 사실과 숫자를 문자적으로 믿는 데서 나온 것이다. 대다수의 보수주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이론들과는 상관없이 사도행전 9:32; 11:25; 12:24; 15:41; 17:1; 28:30, 갈라디아서 1:18; 2:1의 성경적 권위가 앞에서 말한 연대를 뒷받침해 준다.


    그러나 우리는 “기록 연대와 저자”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다뤄야 한다. 왜냐하면 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저자의 주석서 <에베소서> 서문 참조)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계시며” 과거에 대한 역사적 정보는 현시대와 분리시킨 죽은 정통주의 보수주의자만을 매료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에 관한 주석서들을 읽는 것은(지금 필자 앞에는 15개의 주석서가 있다) 철도 시간표 외우는 일로 소일하는 80세 노인이 안내하는 지루한 관광을 하는 것같다. 캠벨 모건과 존 R. 라이스는 가장 신선하지만 내용의 80%가 교리와 관련 없는 내용이다. 코넬리우스 스템은 가장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모든 곳에서 교리적이다! 그러나 나머지 주석서들은 2,3일간 부엌 싱크대에 놓여 있는 타버린 토스트 같을 뿐이다.


    사도행전을 성경의 가장 중요한 책으로 만드는 이유 중 하나는 현존하는 서양의 4대 이단 그룹이 자신들의 이단 교리를 정립하는 데 이 책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1850년부터 현재까지 대표적인 주석가 중 단 한 사람도 사도행전이 당대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킹제임스성경> 본문을 배격하는 모든 시대의 주요 주석가들을 성령께서 “제쳐 두셨음”을 의미한다. 모두가 본문을 파괴하고 그리스도인의 관심을 성경에서 인간의 권위로 돌림으로써 생계를 유지했다. 그리하여 성경을 배우는 데 성경 본문 대신 자신을 참조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만들어낸 장황한 토론들은 헌신이나 영적 지혜, 심지어는 성경 지식에 관한 것도 아니다. 이들은 아무런 영적 장비가 없음에도 자신들의 두뇌를 최대한 사용해서 “진리”를 상술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사도행전에 있는 “문제점”들을 알고 있으며, 이런 점들을 매우 심각하게 토론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데 급급하다. 사도행전에서 죽은 정통주의 보수주의자들은 최선을 다한다. 왜냐하면 여기서 그들은 예언을 억누르고, 실제적 적용을 피하며, 교리적 논쟁을 피하면서 불필요한 것들에 종이와 잉크를 더욱 낭비하기 때문이다.


    교리적으로 볼 때 사도행전의 필수사항은 이 책이 다음 네 가지 이단 교리들의 근본적인 “근거 구절들”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1. 칼빈의 교리 및 극단적 칼빈주의
    2. 극단적 세대주의
    3. 침례에 의한 중생(카톨릭 및 그리스도의 교회)
    4. 신유와 “방언”(은사주의 집단)


    A.T. 로버트슨(미국의 모든 보수주의 학교에서 추천하는)은 이런 사실들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F.F. 브루스도 마찬가지였다. 이 4대 이단 교리 모두가 그가 주석을 쓸 때 영국에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것들은 제미에슨과 포셋과 브라운이 <단권주석, One Volume Commentary>을 쓸 때에도 존재했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위의 학자들은 사도행전의 “어려운” 구절들에서 나온 당대의 교리적 혼란(벧후 3:16)을 단 한 번도 설명하지 않으면서 사도행전 주석을 썼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사도행전을 더 깊이 연구하면 할수록 로버트슨, 브루스, 제미에슨, 포셋, 브라운(그리고 그들과 똑같은 80명 이상의 학자들) 등이 이 책에서 중요한 것들을 지나쳤을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오류를 남겼음을 알 수 있게 된다.


     1. 헬라어 “미완료 시제”를 번역하는 데 자신의 규칙들을 고수하지 않았다.
     2.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부정적인 비평을 했다.
     3. 본문의 단어들을 바꿈으로써 심오한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 참조 구절들을 파괴시켰다.
     4. 구원받지 못한 헬라어 문법학자들과 작가들의 의견에 동의하기 위해 단어들을 바꾸었다.
     5. 가장 심하게 변개된 필사본들을 “최상의” 사본이라고 평했다.
     6. 벨과 용, 토빗, 유딧을 포함하고 있는 필사본을 “위대하다고” 평했다.
     7. 개인적 주관으로 일관성 없이 성경 본문을 수정했다.
     8. 성경 공부와 기도의 부족으로 어리석은 변개를 가했다.
     9.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사실을 없애고자 했다.
    10. 어떤 단어가 신학적 이론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헬라어의 일차적 뜻을 거부했다.
    11. 본문에 나타난 “실제적인” 신학적, 교리적 문제들에 직면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거부했다.
    12. 그들이 사랑하는 필사본(바티칸 사본)이 표준원문과 일치할 때는 오히려 그 본문을 택하지 않았다.
    13. <킹제임스성경>이 엉성한 “숙어적 표현”을 사용했다고 비난하고는 자신들도 정확히 똑같은 일을
         했다.
    14.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확증하는 <킹제임스성경>의 이탤릭체 삽입에 분개하면서 자신들은 그것을
         공격하기 위해 단어들을
         삽입시켰다. 
    15. 문자적 예언들을 비유적으로 만듦으로써 천년왕국 이전에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계속적으로
         부인했다.
    16. <킹제임스성경> 본문을 거부하는 이유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
    17. “원본”에 대해 끊임없이 거짓말을 했다.
    18.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이 고어를 분명한 단어로 대체시켰다고 비난한 후 자신들도 똑같은 일을
         했다.
    19. “필사본 계열들” 사이에 뚜렷한 구별이 있다고 말하면서 어떤 한 계열에 속해 있는 필사본이 다른 
          계열에 속해 있는 것처럼 속였다.
    20. 상습적으로(그리고 거의 편집증적으로) A.D. 300-500년 사이에 기록된 필사본들을 사용하면서 
          그것들이 B.C. 250-150년에 기록되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이 20가지 뻔뻔스러운 거짓말과 어리석은 짓들은 “훌륭한 사람”-교육을 받았건 그렇지 않았건 간에-임을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서로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여기서 ‘인격’이나 ‘관점’ 이상의 것들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현대 기독교 교육의 목표라는 것은 성경의 권위를 죽은 정통주의 학자의 권위로 대체시키는 것임을 거듭거듭 증명할 것이다. 예를 들어 기독교 학교가 “사도들의 행적에 관한 램세이와 하르낙의 연구 업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약에 나타난 사실 중 어떤 것들은 역사적으로 사실임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불신자들이 한 시도”로 표현되는 것이 가장 좋으리라. A.T. 로버트슨, 필립 샤프, F.F. 브루스, 라잇풋, 린드세이, 쿡, 덴톤, 낙스, 빈센트, 스코트, 알포드, 렌돌, 바움가튼, 해킷, 드웻, 메이어, 데이비슨, 하우선, 라이스, 스펜스, 로크만 재단이 하나님께서 높이시는 본문을 거부하고, 성경을 미워하는 “보수주의자들”의 “연구 결과”로 대체시키는 부분에서, 우리는 완벽하고도 결정적으로 그들을 바로잡을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경건한지, 학자로서의 그들의 지위가 얼마나 높은지를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이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은 세상의 지혜를 경멸한다(고전 1,2장). 보수주의 학자의 연구 결과 앞에서 위축되어 겁에 질린 토끼처럼 될 필요는 결코 없다. 이 연구 결과들이(과학적이든, 종교적이든, “기독교적”이든, 아니면 학자적이든)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킹제임스성경> 본문에 위배될 때, 성도는 자신의 생각을 학자들에게 맞출 필요가 없다. <킹제임스성경>은 출판된 이후로 모든 시대의 가장 위대한 보수주의 학자들보다 항상 100-300년이나 앞서왔다. 향후 2,000년 내로 교육이나 철학, 과학, 종교가 그것을 따라잡을 위험은 전혀 없다. 그보다는 차라리 세발자전거나 로울러 스케이트가 메르세데스 벤츠를 따라잡으리라고 기대하는 편이 나으리라.


    “경건한 사람,” “훌륭한 사람들,” “근본주의자”라는 단어가 파괴적인 비평가의 글에 나올 때 학자나 교육에 점수를 주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위험한 일이다.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사용되는 속임수이며, 1880년 이후로 “대부분의 보수주의 불신자들”이 효과적으로 사용해 온 것이다. 예를 들어 존 R. 라이스는 “구령하는” “근본주의자”이자 “전천년주의자”이다. 그러나 그는 계시록 22:14에서 자신이 성경 본문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우리가 각자의 “기호”에 따라 사도행전 8:37을 취할 수도 있고 취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용감하게 “믿음을 위해 싸우며” “성경의 절대 권위”를 고수하는 현대의(1930-1980) “정통주의 요새들”이 취하는 전형적인 접근 방법이다. 이들 중 누구도 성경을 가진 적도 없고 성경을 본 적도 없으며, 성경을 읽어 본 적도 없으며, 성경을 가르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는 “성경”이 없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믿을 만한 번역본”과 “믿지 못할 번역본들”일 뿐이다. 그들은 어느 것이 “믿을 만하고” 어느 것이 “믿을 수 없는가”를 결정하는 최종권위의 자리에 자기 자신들을 둔다. 즉 그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 최종권위로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이다.


    무오한 성경의 권위를 믿지 않는 데 대한 라이스의 알리바이는 “그런 교리는 성경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 그의 말은 진심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권위 문제에 대한 아무런 해답도 되지 못한다. 이 점에서 라이스의 논리의 두 가지 두드러진 허점을 살펴보자.


    1. 성경에 “영감받은 원본”이 무오하거나 실수가 없었다는 교리는 없다. 성령께서 친히 『모든 성경은...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딤후 3:16)라고 말씀하셨을 때, “축자적으로 영감받은 원본”을 언급하는 단어는 하나도 없다. 단지 ‘성경’이라는 단어가 있을 뿐이다. 당신은 ‘성경’을 한 권 가지고 있는가? ‘모든’ 성경을 가지고 있는가? 그 구절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딤후 3:16)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학자들은 “최초의 원본”을 말하고 있다. 만일 요한계시록이 요한복음보다 열등하다면(모든 보수주의 및 자유주의 학자들은 그렇게 말한다) “최초의 원본”이 1611년 <킹제임스성경>보다 더 열등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2.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말한 것이니라』(벧후 1:21). 성령께서 성경을 기록하셨다고 되어 있는 성경은 없다. 베드로후서 1:21에 따르면 성경은 기록되기 전에 말해졌다. 바울 서신서에도 이 사실이 여러 번 언급되어 있다. 펜을 쥔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은 것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 많은 성경이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다 해도, 많은 부분이 말해진 다음에 기록되었다. 이것이 바로 이 문제에 관해 베드로후서 1:21에서 성령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감받은 원본”을 외치는 근본주의자들은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권위로서 모순되게도 원본의 ‘복사본’이나 ‘번역본’을 인용하고 있다. 디모데전서 3:16, 디모데후서 3:16, 베드로전서 1:21이 올바르게 복사되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올바르게 복사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호흡을 불어넣으신” 성경에 대한 신약의 권위는 없어진다.


    성경대로 믿는 우리들은 디모데전서 3:16이 <킹제임스성경>에서 올바로 복사되었고, 1901년 ASV(훌륭한 사람들과 경건한 보수주의자들이 번역했으며 미국의 모든 주요 기독교 대학에서 추천되고 있다)에서 틀리게 복사되었음을 안다.


    원본이 없는 지금, 우리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어떤 것이 성경이며 어떤 것이 아닌지를 어떻게 아는가? 이런 아첨꾼들 중 아무도 <킹제임스성경>이 무오하다고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교리는 성경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원본”이 아닌 헬라어 필사본이나 영어 성경의 구절을 사용해서 맹세를 하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데살로니가전서 2:13과 사도행전 27:25을 믿으며, 이런 파괴적 비평가들을 무시하는 성도야말로 가장 성경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두 편 중 하나를 선택하라. 하나님의 권위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대체시키고자 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은 한 편만 있다고 생각하게끔 했다. 이들은 내가 펜을 들거나 타자기 앞에 앉기 훨씬 전에 자신들의 불신앙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었다(1880-1901). 그들은 필사본 증거와 번역본들에 대해 거짓말을 함으로써 이견을 만들어냈다(1930-1970).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순수하다(시 119:140). 부패한 필사본과 부패한 동기를 가진 이 부패한 보수주의자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부패하지 않는 말씀을 부패시키고자 할 때, 우리는 “성령의 칼”(엡 6:17)로 6피트짜리 다마스커스 강철 검과 버터 바르는 칼(히 4:12)의 차이를 보여 줄 것이다.


    사도행전 1-15장을 읽을 때 독자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아무도 창세기부터 말라키까지의 구약성경 외에 다른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위대한 바울의 교리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와 에베소서에 계시되었으며, 사도행전의 처음 일곱 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것이 사도행전 2장만을 붙들고 자신들의 교리로 삼는 사람들의 영적 상태를 규정해 준다. 즉 그들은 영적으로 어린 아기들이거나, 그리스도인에게서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벧후 2:1-3) 거듭나지 않은 교사들이거나, 둘 중 하나다.


    성경을 올바로 나누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도행전을 통해서 오순절 운동, 행위로 인한 구원, 침례에 의한 중생, 종교적 공산주의(행 2:44)를 주장하게 되어 있다. 사도행전 2장에 묶여 있는 사람은 일생 동안 자기 의를 내세우는 “선을 행하는 자”가 되며(행위에 의한 구원), 구원을 의심하고(침례에 의한 중생), 종국에는 순복음 그리스도인 실업인이 클라렌스 라킨을 피하듯이 교리적 진리를 기피하는 사회사업가로서 일생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사도행전은 물개들(침례에 의한 중생을 주장하는), 방언하는 자들, 종교적 돌팔이 의사, 자기 중심적인 인본주의자, 죽은 정통주의 세대주의자, 신학교 사서들에게는 최대의 걸림돌이다.


    마태복음에서 로마서로 이어지는 과도기적인 책이 여기 있다. 이 책은 초대 교회와 기독교 교리의 발전, 편견 극복에 관련된 문제들, 지금까지 살았던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보여 주며, 그 누구도 놓칠 수 없는 진짜 성경적 기독교의 모습을 제시해 준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1. 거리 설교
     2. 기도 응답
     3. 구령
     4. 교리적 논쟁
     5. 박해
     6.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구원의 계시
     7. 지역 교회들 안으로 소속되는 그리스도인들
     8. 구원받은 이후의 성도들의 물침례
     9.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즉시 오시리라는 기대
    10. 그리스도인의 자선 행위와 목적의 일치
    11. 주 예수께 대한 순종의 핵심으로서의 선교와 선교 활동
    12. 지역 모임의 성경 교육


    『주여, 말씀하소서. 주의 종이 듣나이다』(삼상 3:9).


    우리는 대다수의 주도적인 학자들을 향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을 향해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들을 귀를 가지고 있으며 믿을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장비들로 우리는 “뜻밖의 좋은 것들”을 찾아내고 금과 은을 채굴할 것이다. 이것은 A.T. 로버트슨, 하우슨, 빈센트, 렘세이, 노울링, 웨스트, 홀트, 디엠, 브루스가 헬라어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었던 것들이다.


    오 하나님, 우리가 “우리의 모든 스승들보다 더 명철을 얻게 될 것이며”(시 119:99), 목발을 짚고 다니는 것 같은 “노인들”을 따라잡으리라는 것(시 119:100)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주의 말씀은 처음부터 참되며, 모든 주의 의로운 명령들은 영원히 지속”(시 119:160)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책 속으로


    2:1  그후 오순절 날이 되자 그들이 다 하나가 되어 한 장소에 모였는데
      2  갑자기 하늘에서 거친 강풍 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우더라.
      3  거기에 불 같은 모양으로 갈라진 혀들이 나타나 그들 각 사람 위에 머물더니
      4  그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께서 그들에게 발설하게 하신 대로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
         시작하더라.
      5  당시 예루살렘에는 신앙심이 깊은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머물고 있었는데
      6  그때 이 소문이 퍼지자 무리가 함께 모여 혼란이 생겼으니 이는 각 사람이 자기 나라 말로 그
         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라.
      7  그러자 그들이 모두 놀라고 이상히 여겨 서로 말하기를 “보라,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 각 사람이 우리가 태어난 곳의 고유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단
         말인가?
      9  파대인과 메데인과 엘람인과, 메소포타미아, 유대와 캅파도키아, 폰토와 아시아,
     10  프루기아와 팜필리아, 이집트와 쿠레네에 가까운 리비아의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
          에서 온 타국인들, 즉 유대인과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과
     11  크레테인과 아라비아인들인 우리가 그들이 우리의 언어로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말하는 것
          을 듣고 있도다.” 하니
     12  그들이 모두 놀라고 의아해 하며 서로 말하기를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하더라.
     13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며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새 포도주에 취하였다.”고 하더라.


    사도행전 2장은 오늘날의 기독교계에 존재하는 가장 큰 논쟁 중 두 개의 배경이 되는 장이다. 사도행전 2:38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창시자인 알렉산더 캠벨(Alexander Campbell, 1786-1866)이 나타나기 약 13세기 전부터 로마카톨릭 교회에서 가르쳐 온 교리인 침례에 의한 중생의 근거 구절로 내세우는 구절이다. 한편 위의 본문(1-13절)은 에이미 셈플 맥퍼슨(Amiee Semple McPherson, 1890-1944)이 처음으로 조직한 단체인 순복음 친교회(Full Gospel Fellowship) 및 로스 엔젤레스의 아주사 거리 미션(1904)에서 시작된 “글로살라야”(Glossalaia) 즉 “은사주의”(Charismatic) 운동에서 자신들의 교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한 구절이다. 이 은사주의 운동은 후에 캔자스 주 토페카에서 널리 퍼져 나갔으며(1910-1930) 현재는 “체험의 나눔”을 통해 근본주의 진영을 로마로 연합시키려는 로마카톨릭의 의도와 연계되어 있다.


    본문에서 생겨난 두 가지 이단 교리는 다음과 같다.
     

      1. “성령 세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지(또는 “성화”되지) 않은 것이다.
      2. “성령 세례”를 받은 첫 번째 증거는 “다른”(또는 “알지 못하는”) 말로 말하는 것이다.


    본문을 주석하기에 앞서 성령께서 친히 기록하셨으며,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이 진리에 대해 어떤 실수도 할 수 없도록 기록하신 분명한 진리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성경에 있는 모든 단어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려는 우리를 사람들은 “성경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고 비난하는데,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구절과 단어를 적용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그럴듯한 비난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욥기 12:6, 말라키 2:7, 레위기 11장을 자신의 삶에 직접 적용시켜 보면, 성경의 모든 구절을 그리스도인에게 적용시키는 것, 적어도 교리적으로 적용시키는 것은 미친 짓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논하는 것은 “교리”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1. 이스라엘을 향한 베드로의 메시지 이전이나 이후에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도 없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 자체가 사도행전 11:26 이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 점을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언제나 “주님께서 나를 인도해 주십니다” “성령께서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이런 부담을 주셨습니다” “이런이런 일을 하도록 인도함을 받는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예비하신 모든 것을 그대로 받기 원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질문하는 바이다. 당신은 성령께서 기록하신 것을 믿으려는가, 그렇지 않은가? 당신의 대답이 “예”라면 사도행전 2장에 있는 모든 남자, 여자, 어린아이가 유대인이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숙지해야 할 것이다(1,5,8,9,10,11,14,22,36절 참조).


    2. 오순절이나 베드로가 메시지를 전한 이전과 이후에 그 누구도 방언의 은사, 또는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 열두 사도(1절)들은 앉아 있었지(2절) 무릎을 꿇거나 기다리고 있지(눅 24:49) 않고 기도하고 있지 않았다. 또한 그들의 메시지를 듣고 회심한 사람들 중 아무도 방언으로 말하지 않았다(41절). 오늘날 은사주의자들이 행하는 방언이나 소위 “성령 세례” 등은 전혀 성경적인 “오순절의 경험”이 아니다. 왜냐하면 심지어 방언을 다루고 있는 고린도전서 14장 전체에서도 성령 세례라는 말은 나오지 않을 뿐더러, 오순절 사건 때 회심한 사람들 중 누구도 그 “체험”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3. 사도행전 2장 어디에도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이 무슨 언어로 말했는지가 본문에 나열되어 있으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이해했다(8-11절).


    4. 2장 어디에도 우리들의 죄들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는 언급이 없으며(고전 15:1-5 참조), 아무도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구원받는지에 대해 묻지 않고 있다. 17절은 그 문제를 논의조차도 하지 않으며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세대”(40절)로부터 받는 것이지, 지옥이나 불못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다.


    5. 누구도 “성령과 불”로 침례를 받지 않았다(사도행전 1:1-3과 주석 참조). 갈라진 혀들(3절)은 “불 같은 모양”이지 불이 아니었다.


    6. 120명의 제자들 중에서(1:15) “열둘”만이 외국어의 은사를 받았으며(7절), 사도행전 4:4; 17:34 및 다른 허다한 구절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에 대한 “첫 번째 증거” 같은 것은 없다.


    이러한 사실들을 살펴보고서도 왜 문맥에서 떼어낸 40구절 정도를 짜맞추어 자신의 이단 교리를 뒷받침하는 자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것인가? 그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교리가 “성경이 말씀한 바”라고 생각하도록 할 뿐이다. 성경은 “춤출 때”가 있고 “죽일 때”가 있다고도 말한다. 독주를 마시고(신 14:26),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도 괜찮다고(말 3:15) 말한다(?!)


    우리는 성경 전체를 믿는다. 하지만 성경의 모든 부분을 기록된 그대로 행해야 하는가?


    문맥에서 떼어내거나 적당히 속임수를 쓴다면 그 어떤 주장이라도 성경으로 뒷받침되지 못할 것이 없다. “Hang all the Law and the Prophets”[“율법과 선지자들을 목매달아라”(마 22:40)] 또 “Top not come down”[“정상에 오르고 내려오지 말아라”(마 24:17)]이라는 명령은 어떤가? 그런 것은 고린도전서 14:2을 사도행전 2:4에 맞추고, 사도행전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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