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성경에 나온 여인들 분류

기도의 여인 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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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10월호>

기도의 목표는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혼을 토해 내는 기도는 밤새 문을 두드리는 친구의 손이요(눅11:5), 밤낮 부르짖는 과부의 입이요(눅 18:1-7), 주님의 옷자락을 붙잡는 여인의 간절함이리라(마 9:20).하나님께서 태를 닫으시어 아이가 없었던 한나의 기도가 바로 이런 기도였다.

여인에게 불임은 큰 시험이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태는 만족하지 못한다(잠 30:15,16). 그렇기에 사라는 오랫동안자식을 낳지 못하자 주님의 약속을 비웃었으며(창 18:12), 라헬은 언니를 시기하여 남편에게 불평하며 대들었다(창30:1). 두 여인 모두 남편에게 자신의 여종을 주는 육신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한나는 달랐다. 불임의 고통 위에 대적 프닌나의 잔인한 시기가 고통을 더욱 가중시켰지만, 혼을 토해 냈던 시편기자처럼 흐르는 눈물을 음식 삼아 수사슴이 시냇물을 갈망하는 것같이 주님을 갈망했다(시 42:1-4). 대항할 수도있었고, 불평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님을 자신의 피난처로 삼을 것을 택했고, 태를 주관하시는 분께 사내아이를 간구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단순히 자신의 욕심에 따라 구하지도 않았다. 하나님께서 아이를 주시면 그를 주님께드리겠노라고 고백함으로써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데에 온 마음을 집중했다(삼상 1:11).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구하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에 대해서는 말씀드리지 않는다. 많은성도들이 이 점을 간과하지만 이 점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주님을 위한 목적 없이 구하는 것은 백 퍼센트 자신의 정욕을위해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주님께 무언가를 구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정욕을 위해 쓰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하나님께서는 정욕에다 쓰려고 잘못 구하는 것은 비록 구한다 해도 허락하지 않으신다(약 4:3). 갈망하던 무엇인가가주어졌을 때 그것을 주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여 붙잡을 것이 뻔하고, 오히려 세상을 더 사랑하여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다가많은 슬픔으로 자신을 찌를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약 4:4, 딤전 6:10).

한나는 달랐다. 한나는 아이를 주시면, 나실인으로 드리겠다고 서원했다(삼상 1:11, 민 6장). 나실인은 주님께 성별된사람이었다. 한나가 자신의 아이를 나실인이 되게 하여 평생 동안 주님께 드리겠다고 고백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고백을얼마나 귀히 여기셨겠는가? 게다가 한나가 아이를 주님께 드리겠다고 한 것은 단순히 종교에 대한 헌신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헌신이었다. 당시 실로는 하나님의 말씀, 곧 언약궤가 있던 곳이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궤가 있는 성전에서 그분의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셨다(삼상 3:3,21). 즉 한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그곳에 아이를 드리겠다고 고백한 것이다.

한나의 이 보석 같은 고백은 그녀의 믿음으로 인해 더욱 빛났다. 기도를 마친 뒤, 그녀의 얼굴에 더 이상 수심이 없었던것이다(삼상 1:18). 이는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한 뒤 그것을 이미 받은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었다(막 11:24).한나의 이 믿음의 기도는 주님께 상달되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태를 열어 주셨고, 사내 아이를 그녀의 품에안겨 주셨다.

한나는 아이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의미에서 "사무엘"이라고 지었다(삼상 1:20).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주셨음을 확신하고 감사드렸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을 때 감사는커녕, 하나님께서 베푸신 것조차 모르는사람들과 달리, 그녀는 감사를 표명함으로써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사무엘은 젖을 뗄 만큼성장했고, 이제 하나님께 약속드린 대로 그를 하나님께 드려야 할 때가 왔다. 그러나 어찌 자신의 품에 있는 아이의 손을선뜻 놓을 수 있겠는가? 그토록 갈구했던 아이가 아니던가? 아직도 마냥 어리기만 한 아이를 드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 하나님보다 아이를 더 높이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가 직접아이를 데리고 하나님의 성막이 있던 실로에 가서 주님께 드렸다. 한나는 사무엘을 드리면서 이렇게 고백했다. 『주께서는내가 주께 구하여 청원했던 것을 내게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나도 그를 주께 바치나니, 그가 살아 있는 한 그는 주께바쳐질 것이니이다』(삼상 1:27,28).

참으로 위대한 고백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소유로 보이는 것이 사실은 주님께 받은 것임을 시인하고, 그것을 주님께기꺼이 돌려드린 것이다. 먼저 받은 것을 주님께 돌려드린다는 차원에서 보면, 사실상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없다. 누가 예물을 드린다고 해서 자랑할 수 있는가? 주님께서 생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애초에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던가? 또 누가 헌신했다고 해서 그것을 자랑할 수 있는가? 주님께서 몸과 생명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그역시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던가? 『누가 먼저 그분께 드려서 되돌려 받겠느냐?』(롬 11:35)

한나는 아이 사무엘을 "기도"로 받았다. 이제는 그 아이를 자신의 서원대로 주님께 돌려드려야 할 차례이다. 그녀는 눈에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를 실제로 주님께 돌려드렸다. 진실된 믿음으로 기도한 사람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조금도아까워하지 않는 법이다. 주님께 받은 것을 주님께 드리기를 싫어한다면, 그의 기도에는 분명 큰 문제가 있다. 이것은 단지기도응답 받으면 그것을 주님께 돌려드리겠다는 서원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자신의 생명과 소유, 그 모든 것이주님께로부터 온 것을 알면서도 주님께 드리는 데 인색하다면 바로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색하신적이 없다. 오히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시다. 주님께 작은 물질, 작은시간도 못 드리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자기 몸을 드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자비하심으로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합당한예배니라』(롬 12:1). 기도하는 사람의 특징은 주님께 시간과 물질은 물론, 자기 몸까지 드리는 데에 전혀 인색하지않다는 것이다. 인색하다면, 그는 진실로 기도했던 사람이 아니다.

신실한 기도의 어머니 한나에 의해 하나님께 드려진 사무엘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셨다. 사무엘은 주님 앞에서 자라갔고점점 자라면서 주님과 사람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다(삼상 2:21,26). 아이였을 때부터 세마포 에봇을 입고 주님 앞에서섬겼을 뿐만 아니라(삼상 2:18),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그분의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 보이기까지 하셨다(삼상3:11-14). 주님께서는 사무엘이 성장했을 때 그와 함께 계셔서 그분의 말씀들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하셨다(삼상 3:19). 결국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들어 쓰셔서 이스라엘의 재판관이자 선지자요, 하나님의 마음과 뜻대로행할 신실한 제사장으로 삼아 섬기게 하셨다(삼상 2:35).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성도가 주님께 드린 것을 결코 멸시하시지 않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신다. 그것이 사람이든,물질이든 주님은 기뻐하시며 주님의 영원한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신다. 내 몸이 어떠하든, 내가 드린 물질이 어떠하든 그것은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기도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인가에 있으며, 하나님께 무릎 꿇고 경배하는 그 마음그대로 주님께 신실하게 드렸는가에 있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것을 사용하신다. 물질이 없다면 시간을 드릴 수 있고, 시간과함께 몸을 드릴 수 있다. 이것은 기도하는 성도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기도하라. 그 기도의 마음으로 주님께 가진것을 드리도록 하라. 그러면 주님께서 주님의 영원한 영광을 위해서 그 모든 것을 기쁘게 사용하실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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