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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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만날 준비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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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4월호>

카인이 아벨을 죽인 이래로 인간이 짓는 죄 가운데는 살인도 늘 있어 왔다. 만일 사회진화론이 맞는다면 카인이 범한 살인의 학습효과로 인하여 인류 역사에는 더 이상 살인이 없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는 역사가 축적될수록 살인은 오히려 그 빈도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왔다. 역사가 흐를수록 인간은 선량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악해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애초부터 이러한 인간에 대해 인간 자신만으로는 희망이 없음을 단언한다. 『기록된 바와 같으니 “의인은 없나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롬 3:10)라고 천명한 다음,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들이 자기 혀로는 속였으며 그들의 입술 아래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들의 입은 저주와 독설로 가득 차고 그들의 발은 피흘리는 데 빠른지라... 그들의 눈 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도다.』(롬 3:13-15,18)라고 자세히 그 실상을 기술하고 있다. 특히 요즈음은 하루가 멀다 하고 살인 사건들이 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일반적인 범죄들은 그리 많이 뉴스에 오르내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살인이 늘어난 반면 일반 범죄는 줄어들었다는 얘기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모든 범죄가 증가하되 끔찍한 살인사건이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다 보니 자살이나 강도, 사기 같은 범죄는 너무 시시해서 뉴스 축에도 끼지 못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살인에 대하여 구약성경은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인 자와 부지중에 살인을 범한 자(민 35장, 신 19장, 수 20장)로 구분하여 도피성 제도를 두고 있으며, 신약성경은 아비를 죽이는 자들, 어미를 죽이는 자들, 살인자들 이렇게 세 종류로 살인자들을 구분하고 있다(딤전 1:9). 이 중 전자의 경우, 현실적으로 용돈 문제로 아비나 어미를 죽이는 자들이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또 층간소음, 욕설, 애정, 사소한 말다툼 등으로 순간적인 분노를 억제하지 못해 살인을 범하는 예들도 많다.
흔히들 살인 사건의 증가 원인으로 살인범들의 사형 보류를 꼽는다. 사실 두 좌파 정권이 들어선 이후 사형이 선고된 사람들에게 사형을 보류하는 바람에 지금도 사형수 60여 명이 국가 예산을 축내면서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죽은 사람들의 인권을 송두리째 무시한 채 퍼렇게 목숨들을 이어가고 있다. 하기는 살인을 하더라도 자유는 제한이 될지언정 목숨 하나는 고스란히 남는 판이니 사람들이 사람 죽이는 일에 겁이 없어질 만도 하다. 그러나 살인사건의 증가가 꼭 그 한 가지 원인에만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에덴동산에서의 단 한 번의 범죄 이래 아담이 소유했던 세상의 왕권을 사탄에게 넘기고 말았음을 여러 곳에서 기록하고 있는데, 누가복음 4:6도 그 중 하나다. 『그것이 나에게 넘겨졌으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줄 수 있느니라.』에서 보는 것처럼 사탄은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세상의 모든 권세와 그것들의 영광이 자신에게 넘겨졌음을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세상이 아담의 범죄 이래 사탄의 지배 아래 놓여 있음은 여러 죄악들로 점철된 인류 역사가 그 사실을 잘 말해 준다. 인류는 6천 년 동안 무수히 평화를 외쳤지만 한 번도 평화로운 세계를 이룬 적이 없었다. 세상이 분란과 악의 근원인 사탄의 지배 아래 줄곧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마귀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크게 분노하며 너희에게로 내려갔음이라』(계 12:12). 이것은 그 시기가 대환란 때에 해당하는 말씀이지만, 그 대환란이 시시각각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지금,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마귀가 모를 리가 없다. 따라서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사탄의 활동이 더욱 극성을 부리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여러 가지 범죄들로 피폐해지고 IS(이슬람 국가) 같은 악의 세력들이 기존 국가들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성경은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차기까지는 이스라엘의 일부가 완고하게 된 것이라.』(롬 11:25)고 말씀한다. 여기서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차기까지』라는 말은 “이방인들의 죄가 충만해지기까지”라는 의미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창세기에 『그러나 사 대 만에 그들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인들의 죄악이 아직 다 차지 않았음이라.』(창 15:16)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잘 보여 준다. 선민인 이스라엘이 돌아온다고 해서 무조건 명분도 없이 아모리인들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악이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어떤 수위에 도달했을 때에야 비로소 그들을 카나안 땅에서 쫓아내고, 대신 이스라엘을 그곳에 심으신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원리로, 이방인들의 죄가 충만해지면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교회 시대가 막을 내리고 교회의 휴거가 일어나며, 이어서 대환란이 시작되어 이 기간에 구원받은 유대인 환란성도들이 천년왕국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성경의 위대한 예언이다.
진화론자들과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 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대신 그들은 교육과 그들 자신의 노력으로 이 지상에 완전한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관해 성경은 매우 비관적이다. 성경은 세상의 종말을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들은 없는 것같이 하며 또 우는 사람들은 울지 않는 것같이 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은 기뻐하지 않는 것같이 하며 또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소유하지 않은 것같이 하라. 그리고 이 세상을 이용하는 자들은 다 이용하지 못할 것처럼 하라. 이는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져 감이라』(고전 7:29-31). 이 얼마나 멋없고 소극적이며 암담한 말씀인가! 부지런히 돈을 벌어 빌딩도 사고 아름다운 배우자를 만나 천년만년 즐거움을 누리며 살고 싶은데 성경은 너무 재미없게도 마치 질그릇 바구니를 바위 위에서 뒤엎은 듯 그 모든 희망을 산산조각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절대 진리인 성경은 권면한다. 『우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혐오스런 우상 숭배를 행하여 이방인들의 뜻을 행한 것은 지난날의 생활로 충분하도다』(벧전 4:3). 그렇다. 빛의 자녀인 성도들이여, 지난날 우리가 누린 세상 즐거움은 이미 그것만으로 충분하니 세상이 죄악으로 충만할수록 깨어 주님 만날 준비를 하도록 하라. 오늘 저녁이든 내일 아침이든 주님께서 오시면 즉시 모든 것을 두고 떠날 준비를 하라.
주님 다시 오실 날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말할 때에, 아이 밴 여인에게 진통이 오듯 갑작스런 멸망이 그들에게 임하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3).

1.
방주에 여덟 식구 들어가던 그날까지
사람들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였지만
산들을 묻어 버릴 깊음의 큰 물덩이
우주의 저편에서 건너오고 있었네

<후렴>
주님 다시 오실 날 시시각각 다가오네
빛의 자녀 성도들아 늘 깨어 준비하세

2
소돔과 고모라가 진노 아래 놓이던 날
사위들 롯의 말이 농담인 줄 알았지만
두 천사 그 가족을 성읍 밖에 두시고
때 되자 어김없이 유황불 쏟아졌네

3
모두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말하여도
날 가고 달 갈수록 더해가는 세상 죄악
아이 밴 여인에게 진통이 임하듯이
드높은 이 바벨탑 홀연히 무너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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