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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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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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4년 09월호>

대사라는 말은 성경에 10번 나오는데, 이를 세분하면 구약에 8번, 신약에 2번 나온다. ‘대사’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나라를 대표하여 다른 나라에 파견되어 외교를 맡아보는 최고 직급, 또는 그런 사람. 주재국(駐在國)에 대하여 국가의 의사를 전달하는 임무를 가지며 국가의 원수와 그 권위를 대표한다.’라고 풀이되어 있고, ‘전권대사,’ 또는 ‘특명전권대사’ 등이 대사와 비슷한 뜻을 지닌 말이라고 덧붙여져 있다.

대사는 치외법권을 가지는데, 이것은 ‘다른 나라의 영토 안에 있으면서도 그 나라 국내법의 적용을 받지 아니하는 국제법에서의 권리’라고 흔히 정의된다. 따라서 대사는 외교사절로서 그 주재국에서 누리는 국제법의 특권, 사절의 신체와 명예, 사무소의 주택 및 외교문서의 침해를 받지 않는 불가침권과 주재국의 재판권, 경찰권, 과세권 따위가 미치지 못하는 치외법권이 있다. 이는 외교사절이 본국과 원수를 대표한다는 뜻으로 외교사절의 가족이나 국제기관의 직원들도 같은 특권이 있다. 대사가 누리는 이러한 권리를 ‘사신권,’ 또는 ‘외교사절의 특권’이라고도 한다.

‘대사’라는 말이 성경에 처음으로 나오는 곳은 역대기하 35:21이다. 『그러나 느코가 대사들을 요시야에게 보내어 말하기를 “유다 왕이여,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나는 오늘 당신을 치러 온 것이 아니라 내가 더불어 싸우는 그 족속을 치려는 것이니 이는 하나님께서 내게 명하사 속히 행하게 하셨음이니이다.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께 간섭하지 마소서. 그래야 하나님께서 당신을 멸하지 아니하시리이다.” 하더라.』 보는 것처럼 여기에 ‘대사’라는 말이 처음으로 나온다. 바로 앞 20절을 보면 『이 모든 일 후 요시야가 성전을 정돈한 후에 이집트의 느코왕이 유프라테스 옆 칼크미스를 치러 올라오므로 요시야가 그를 대적하여 나가더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느코의 침략 목표는 유다가 아니라, 유프라테스 옆 칼크미스였다. 그러나 요시야에게는 느코의 군대가 자기 왕국의 영토인 므깃도를 통과하는 일을 용인할 너그러움이 없었다. 그래서 요시야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느코의 말에 경청하지 아니하고』(대하 35:22) 변장을 한 채 싸움에 임했다가 허망하게도 활 쏘는 자들이 쏜 화살에 맞아 죽고 만다.

우리가 아는 바대로 요시야는 열왕기상 13:2에서 『그가 주의 말씀으로 제단을 향하여 외쳐 말하기를 “오 제단아, 제단아,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한 아이가 태어날 것이요, 그가 네 위에서 분향하는 산당의 제사장들을 네 위에 제사하리니 사람들의 뼈가 네 위에서 불살라지리라.”』고 그가 태어나기 300년 전에 이름이 거명된, 유다의 성군 중의 성군이었다. 그에 대한 평가도 여느 왕과 같지 않다. 『그가 주의 목전에 옳은 것을 행하며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여, 오른편이나 왼편으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더라.』(왕하 22:2)나, 『그의 앞에 어떤 왕도 그와 같이 모세의 율법에 따라 자기의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께 돌이킨 자가 없었고, 그의 후에도 그와 같은 왕은 일어나지 아니하였더라.』(왕하 23:25)에서 보듯 최고의 평가였다. 이렇듯 훌륭한 왕인 그가 힘 한 번 써 보지도 못하고 39세의 젊은 나이로 화살에 맞아 허망하게 죽고 말았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죽음인가.

그가 범한 잘못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느코의 말에 경청하지 아니한 단 한 번의 교만이었다. 결과적으로 옥에 티라 할 이 교만이 그의 죽음을 재촉한 것이었다. 느코가 보낸 대사들의 말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변장하고 기어이 싸우려 한 것은 자신의 뜻이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신의 뜻을 고집하다가 그는 비극을 초래하고 만 것이었다. 요시야왕의 느닷없는 죽음에 대해 어떤 사가(史家)들은 사람의 뜻이 하나님의 뜻에 앞선 탓이기도 하지만, 유다의 급격한 쇠락을 보지 못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라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갑작스런 죽음 후 남왕국 유다는 이집트와 바빌론의 속국으로 급격히 전락하여 얼마간 유지되다가 바빌론의 느부캇넷살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기록한 옥중서신인 에베소서에서 자신을 『사슬에 묶인 대사』(엡 6:20)라고 칭한다. 대사의 다른 이름은 전권대사이다. 이는 왕의 메시지를 가지고 파송된 자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 말은 바울이 자신을 온 우주만물을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전권대사로 확신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마땅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는 것이니라.』(엡 6:20)는 서술은 비록 옥에 갇힌 신세였지만 로마에 모여든 여느 나라의 사신과도 비교가 안 되는 자신의 영광스런 직책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에 다름 아니다. 그의 이러한 확신과 자신감은 막연한 추측이나 공상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우주 저편의 셋째 하늘 낙원을 직접 견학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고후 12:2-4). 따라서 그에게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왕이신 주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증거하여야만 했고, 그에 걸맞게 두려움 없이 담대히 복음을 전파할 각오가 불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대사의 직책이 바울 한 사람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한 대사들로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신 것같이 우리도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너희에게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해하라』(고후 5:20). 말하자면 바로 앞 18절과 19절에서 『화해의 직분』과 『화해의 말씀』이 우리에게 맡겨졌고, 그 결과 여기 20절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광스럽게도 이 우주의 절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한 대사가 된 것이다. 하나님과 어떻게 화해할 수 있는가를 세상에 전하는 사명이 바로 우리에게 맡겨져 있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이 세상의 대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절대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치외법권이 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고 있느니라.』(벧전 1:5)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호받고』(유 1:1)라는 구절들이 그 사실을 잘 보여 준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우며 마음 든든한 직책이란 말인가!

성도여 우리들도

『이는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나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리스도의 향기이기 때문이라... 너희는 우리 마음에 기록된 우리의 편지라...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한 대사들로서...』(고후 2:15; 3:2; 5:20).

1

꽃들이 바람 속에 풍겨 내는 향기처럼

성도여 우리들도 그리스도 향기라네

눈멀고 귀가 먹고 코와 혀도 모두 막힌

불쌍한 혼들에게 생명 향기 풍겨 내세

2

종이에 먹물로 쓴 두루마리 아니지만

성도여 우리들도 그리스도 편지라네

빛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는 이들에게

금보다 귀한 복음 가슴마다 전해 주세

3

나라를 대표하는 대사들도 귀하지만

우리는 더욱 귀한 그리스도 대사라네

마귀의 종이 되어 주 하나님 등진 이들

날마다 화해시켜 영생으로 이겨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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