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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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남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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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4년 12월호>

바른성경인 <한글킹제임스성경>에서 "남은 자"라는 말은 120개 구절에서 총 123번 나타난다. 그러나 성경에는 굳이 "남은 자"라는 문자로 표기되지 않아도 "남은 자"에 해당하는 많은 인물들이 있다. 노아, 욥, 에스겔,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모르드캐,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 침례인 요한, 안나, 시므온 등의 인물들이 바로 그들이다.

"남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무슨 일에나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한다. 바빌론의 느부캇넷살왕이 높이 육십 큐빗, 너비 여섯 큐빗의 금 형상을 만들어 두라 평원에 세우고, 모든 고관들과 총독들과 군대 대장들과 각 지방의 치리자들을 낙성식에 오게 하여 그것에 경배하게 했을 때, 바빌론 지방의 정사를 다스리라고 세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라는 세 유대인은 경배하지 않았다. 이에 분노한 느부캇넷살은 이들을 불러, 『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야, 그것이 사실이냐? 너희가 내 신들을 섬기지도 않으며 내가 세운 금상에 경배하지도 않느냐? 이제라도... 내가 세운 형상에 경배하면 좋거니와, 만일 너희가 경배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즉시 불타는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던져질 것이니 그러면 내 손에서 너희를 구해 낼 신이 누구겠느냐?』(단 3:14,15)라고 했다. 그러자 그 유대인들은 『만일 그렇게 된다 해도 우리가 섬기는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불타는 뜨거운 용광로에서 우리를 구해 내실 수 있으며, 오 왕이여, 그분께서는 우리를 왕의 손에서 구해 내실 것이니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되지 아니할지라도...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할 것이며 왕께서 세우신 금상에 경배하지도 아니할 것을 왕께서는 아소서.』(단 3:17,18)라고 대답했다. 하여 그들은 평상시보다 칠 배나 더 뜨겁게 한 용광로 속에 던져졌다. 그러나 그 순간 성육신 이전의 주님께서 오셔서 그들을 구해 주셨으며, 그들은 용광로에서 머리카락 한 올도 상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매 세대마다 "남은 자"를 부르셨다. 이스라엘의 아합왕은 오므리의 아들로 시돈인들의 엣바알왕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아 바알을 섬기고 경배했을 뿐만 아니라, 사마리아에 바알의 신전을 건축하고 제단을 쌓아 이스라엘의 역대 모든 왕보다 하나님을 격노케 했다. 엘리야가 칼멜 산에서 바알과 아세라들의 선지자들과 대결하여 이겨 그들을 키손 시냇가로 끌고 내려가 죽이자 왕비 이세벨이 엘리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내가 내일 이맘때까지 네 생명을 그들 중 하나의 생명같이 만들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을 내리고 더 내리기를 원하노라.』(왕상 19:2)고 위협했다. 칼멜 산에서는 용감하게 거짓 선지자들에게서 대승리를 거두었던 엘리야가 이세벨의 이 위협에는 어쩐 일인지 의기소침하여 브엘세바로 줄행랑을 놓고, 다시 광야로 하룻길을 더 가, 향나무 아래서 기진맥진하여 앉아 하나님께 죽기를 구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식 공급으로 다시 기운을 차린 뒤 사십 일 밤낮을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고, 거기 한 굴에서 유숙하게 되는데,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다. 『엘리야야, 네가 여기서 무엇 하느냐?』(왕상 19:9) 하나님께서는 산 위에서도 이와 똑같은 질문을 하셨다(왕상 19:13). 그러자 엘리야 역시 두 번에 걸쳐 같은 대답을 한다. 『내가 만군의 주 하나님으로 인하여 심히 질투하였사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의 선지자들을 칼로 죽였음이니이다. 나, 오직 나만이 남았는데, 그들이 내 생명도 앗아가려고 찾고 있나이다』(왕상 19:10). 보는 것처럼 동일한 두 번의 대답이다.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며 승승장구하던 엘리야가 여기서는 마귀의 하수인인 이세벨이 두려워, 모든 선지자가 다 죽고 오직 자신만 남았다고 하나님 앞에 하소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시 사명을 부여하신 다음, 『그러나 내가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에 아직 칠천 명을 남겨 두었나니, 곧 바알에게 꿇지 아니한 모든 무릎과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모든 입이라.』(왕상 19:18)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보면 엘리야 자신도 남은 자이지만 칠천 명의 『바알에게 꿇지 아니한 모든 무릎과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모든 입』 역시 하나님께서 부르신 남은 자임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매 세대마다 "남은 자"를 부르셨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남왕국 유다는 B.C. 606년에 느부캇넷살왕의 군대에 예루살렘이 함락됨으로써 전 민족이 바빌론으로 잡혀갔다. 예레미야 25:11을 보면 『그리하면 이 온 땅이 황폐함과 경악거리가 되며 또 이 나라들은 바빌론 왕을 칠십 년간 섬기리라.』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포로 기간이 나오는데, 바빌론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의 귀환은 바로 이 70년이 지난 후에 이루어진다. 에스라 2장과 느헤미야 7장 등에 수많은 귀환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그 온 회중의 총합이 42,360명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들이 모두 하나님께서 부르신 남은 자들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도 "남은 자"를 부르신다. 남은 자는 언제나 다수가 아닌 소수이다. 남은 자가 소수라는 증거는 마태복음 7:13,14을 보아도 명백하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이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그 길이 광대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으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소하여 그것을 찾는 자가 적음이니라.』 여기서 "좁은 문"은 성경대로 믿는 믿음을 말한다. 보는 것처럼 이 문은 좁고 그곳으로 들어가는 길은 협소하여 찾는 자가 적다. 성경 말씀이 이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큰 건물과 교인 수를 자랑하기 일쑤다. 주님께서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좁고 찾는 자가 적다고 하셨는데, 그들은 사람 많은 그들의 교회가 좁은 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우리나라 기독교인 숫자가 870만 명이나 된다면, 그들의 문과 그들의 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이자 광대한 길임이 분명하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믿는다면, 이 시대에도 주님을 섬기는 그 문이 좁고 그 길이 협소하다는 것을 마땅히 믿어야 한다. 이것이 성경대로 믿는 것이다.

교회 시대의 남은 자는 구원받은 신실한 성도들이다. 그들은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날마다 주의 말씀을 사랑하고 묵상하며, 구령의 열정을 지니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자신이 이 시대의 남은 자라고 확신하는가?

남은 자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의 선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5).

1

이스라엘 자손들이 선지자 다 죽일 때

바알에게 한 번도 그 무릎 꿇지 않고

입맞추지 아니한 신실한 칠천 명을

주님은 남겨 두셨네 엘리야가 모르도록

<후렴>

남은 자 주님께서 사랑하는 남은 자

그 앞길 인도하시네 항상 지켜주시네

2

유대인이 바빌론에 포로 되어 있을 때

형상에 경배하지 아니한 세 사람을

칠 배나 더 뜨거운 불 속에 던졌어도

주님은 보호하셨네 머리카락 한 올까지

3

몸의 양식 풍요해도 영의 양식 귀한 때

사방을 둘러봐도 어둠만 가득한데

적은 수의 남은 자 은혜로 선택하사

주님은 늘 비추시네 이 땅 가득 진리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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