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영적 생활 분류

순간의 제단에 불살라진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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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1월호>

『에서가 그의 아비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한 가지 복밖에는 없나이까? 오 내 아버지여, 내게도, 내게도 축복하소서." 하며 에서가 소리 높여서 울더라』(창 27:38).

『아버지께는 한 가지 복밖에는 없나이까?』라는 에서의 이 질문은 그가 참으로 아버지 이삭을 통해서 주어지는 복을 갈망한 것인지 의문을 품게 한다. 그는 자신의 타고난 장자권으로 얻을 수 있는 그 엄청난 복을 그의 이름 "에서"처럼 "붉은" 팥죽 한 그릇에 팔아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이삭은 아들 에서의 소리 높여 우는 소리에 복을 빌어 주었다. 『그의 아비 이삭이 대답하여 그에게 말하기를 "보라, 너의 처소는 땅의 기름진 곳과 위로부터 하늘의 이슬이 내리는 기름진 곳이 되리라. 너의 칼로 네가 살 것이며 네 아우를 섬기리라. 네가 다스릴 때에 네가 네 목에서 그의 멍에를 끊어 버릴 것이라." 하더라』(창 27:39,40). 에서가 장자권을 팔아 버린 후 받은 복은 야곱이 받은 복과 달랐다. 야곱의 복은 하나님께서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과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주시는 복인 반면(창 27:28), 에서의 복은 그의 처소가 『땅의 기름진 곳과 위로부터 하늘의 이슬이 내리는 기름진 곳』일지언정 거기에 『곡식과 포도주』가 빠져 있으며, 또 에서 자신의 칼로 살 것이라고 한 복이기 때문이다. 에서는 그것을 육신의 수고로 얻게 될 것이다. 장자권을 판 뒤 팥죽을 목구멍으로 부드럽게 넘긴 대가로 "질기고 팍팍한" 복을 약속받게 되었다.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권을 판 에서와 같이 속된 자가 없도록 하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후 그가 축복을 유업으로 받으려고 했을 때 거절당하였으며, 눈물로 간절히 구하였지만 회개의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 12:16,17). 에서는 신약성경에서 "속된 자"의 전형으로 제시되며, 히브리서 12장의 문맥에서 『너희』(히 12:13,15,17)라고 언급되는 성도들의 교제권에 "접근이 금지된" 인물로 묘사된다. 속된 자의 전형으로서의 에서에 관해 성경은 무어라고 말씀하는가?

첫째, 『에서는 솜씨 좋은 사냥꾼이며 들사람』이었다(창 25:27). 그와 대조되는 야곱에 대해서는 같은 절에서 『평범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에서는 실로 범상치 않은 특기를 지닌 사냥꾼이었음이 분명하다. 또 그를 『들사람』 곧 "a man of the field"로 묘사하고 있는데, 성경에서 들(field)은 밭(field)과 동의어이며, 주님께서는 『밭은 세상』(마 13:38)이라고 말씀하셨다. 『솜씨 좋은 사냥꾼』인 에서는 세상에서 자신의 일을 솜씨 좋게 처리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끌며 세상적으로 잘 나가는 인물의 전형이다. 그가 살았던 유목민 사회에서 에서와 같은 인물은 선망의 대상이다. 마치 님롯이 주님 앞에 힘센 사냥꾼으로 명성을 날리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서 자신의 왕국을 세운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창 10:9,10). 아버지 이삭 역시 그를 사랑했는데 『이는 그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먹었기 때문』이다(창 25:28). 『들사람』 에서는 세상에서 육신의 재주로 부와 명예를 이루고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부모에게 최고급 음식을 대접하여 사랑을 받는 아들과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둘째, 에서는 아버지 이삭에게 자기가 사냥한 고기를 먹였는데(창 25:28), 이삭은 『네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로 가서 내게 사냥한 고기를 가져다가 내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혼이 너를 축복하게 하라.』(창 27:3,4)고 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에서가 이삭에게 종종 대접했던 『별미』는 어머니 리브카가 만든 음식이 아니었다. 에서는 그가 사냥한 고기로 직접 별미를 만들어 이삭에게 대접했다. 그 별미는 그야말로 "에서표" 별미였다. 이삭이 먹고 좋아하며 그를 사랑할 정도라면 에서의 "음식 솜씨"는 사냥 솜씨만큼이나 "솜씨 좋은"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이 정도면 에서는 팔방미인이다. 그는 밖에서도 성공하고 안에서도 성공한 사람이었다. 만일 그가 당시에 결혼한 상태였다면, 그는 가정에서도 훌륭한 음식 솜씨로 인해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아내와 어린 자녀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멋지고 자상한 가장이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을 세상은 선망하지만, 그는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셋째,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 몹시 지쳤을 때 야곱에게 한 말을 주목해 보라. 『보라, 내가 죽을 지경인데, 이 장자권이 내게 무슨 유익이 되겠느냐?』(창 25:32) 에서는 그가 들에서 돌아왔을 때 느꼈던 "배고픔"을 "죽음"에 비유했다. 이것은 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 그가 사는 이유이자 목적임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에서는 동물적 본능으로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가문의 맏아들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보다는 한 그릇의 따듯한 팥죽으로 배를 채워 육신이 편안해지는 것을 갈망했다. 배고픈 마당에 손에 잡히지 않는 장자권은 거추장스러운 허상에 불과했다. 에서는 육신이 불편해지면 영적인 것을 귀찮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기회만 닿으면 영적인 것을 포기하고 사냥할 짐승을 뒤쫓듯 육신적인 것에 빠르게 달려가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배고픔은 죽음과 동의어였다. 순간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날 때 거저 얻은 장자의 복을 영원히 팔아 버린 사람이었다.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권을 판 에서와 같이 속된 자가 없도록 하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후 그가 축복을 유업으로 받으려고 했을 때 거절당하였으며, 눈물로 간절히 구하였지만 회개의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 12:16,17). 말하자면 에서가 거절당한 유업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천년왕국의 유업"이었다(창 12:1-3; 15:18; 17:4-8, 히 11:8). 하나님께서는 그 유업에 대한 약속을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도 반복하셨다. 『이 땅에 기거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와 함께하고 너에게 복을 주리라. 내가 너와 네 씨에게 이 모든 지역들을 주고, 또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리니, 내가 네 씨를 하늘의 별들처럼 번성하게 할 것이며, 이 모든 지역들을 네 씨에게 주리라. 네 씨 안에서 땅의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음성에 복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들과 내 규례들과 내 법들을 지켰음이니라』(창 26:3-5). 이 약속은 만일 에서가 장자권을 경시하지 않았더라면 고스란히 그에게 반복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약속은 그가 장자권을 팔아 버린 야곱에게 반복되고 만다. 『보라, 주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주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씨에게 주리라. 네 씨는 땅의 티끌같이 될 것이며, 너는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까지 멀리 퍼지리라. 땅의 모든 족속들이 너와 네 씨 안에서 복을 받으리라.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모든 곳에서 너를 지키며,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리니, 내가 네게 말한 바를 이룰 때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할 것이라." 하시더라』(창 28:13-15). 에서가 경시한 것은 궁극적으로 아브라함의 복이었고, 천년왕국의 유업이었다.

"속된 자 에서"는 신약 교회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훈과 경고로 주어졌다. 그리스도인도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 버린 에서처럼 순간의 제단에 영원을 불사르면 천년왕국에서 유업이 없게 된다. "순간의 제단"은 "죄의 제단"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라.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속지 말라. 음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이나 간음하는 자들이나 여자처럼 행세하는 자들이나 남자 동성 연애자들이나 도둑질하는 자들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들이나 주정뱅이들이나 욕설하는 자들이나 착취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 갈라디아서 5:20,21은 여기에 "마술, 원수 맺음, 다툼, 질투, 분노, 투쟁, 분열, 이단들, 시기, 살인" 등과 같은 "육신의 일들"을 추가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다"는 것은 천년왕국에서 유업을 상속받는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자신을 죄의 제단에 드리면 천년왕국에서 누릴 유업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 죄를 지으면 "영원"이 불살라진다. 구원은 잃지 않으나 영원에서 누릴 것이 없게 된다. 당장 뱃속에 "팥죽"을 채워 주지 않는다고 이 진리를 경시한다면 그 역시 에서와 다를 바 없다. 세상에서 좋은 직업을 가지고 많은 수입을 거두며 부모에게 잘하고 가정에서 모범적인 가장으로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의 영적인 것들을 실질적인 것들로 붙잡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것을 육적인 것보다 우선시하는 사람을 존중하신다. 영원을 "팥죽 한 그릇"보다 낫게 여기는 사람을 사랑하신다. "순간의 제단에 영원을 불사르지 말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원한 생명을 붙잡으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딤전 :12,14).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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