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영적 생활 분류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11월호>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롬 3:23). 이 구절은 거리설교자들과 구령자들이 길거리나 공원 등지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 죄인들의 비참한 상태를 알려 주기 위해 자주 인용하는 말씀이다.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바로 “죄” 때문이다. 과녁을 향해 쏜 “화살”이 적중하지 못하고 빗나가는 것처럼, 이 땅의 모든 인간은 자기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과녁에 화살을 적중시키지 못하고 있다. 즉 자신의 모든 말과 행동들, 심지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생각들까지도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셨으나, 인간은 거기에서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하나님의 명령에서 이탈하여 자기 뜻을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불순종한 아담”이 『자기의 형상을 따라』(창 5:3) 자식들을 낳았다고 말씀한다. 이렇듯 아담의 불순종은 모든 인류가 죄의 속박 아래 놓이게 했다.

하나님께서는 “생각으로 범하는 죄”도 죄로 취급하신다. 따라서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본 것(마 5:28), 형제에 대해 독한 시기를 품고 살인하려는 마음을 가진 것(요일 3:15), 탐욕스러운 마음을 품은 것(골 3:5) 자체가 바로 각각 “간음”이고, “살인”이고, “우상 숭배”인 것이다. 혹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만 안 끼치면 되지, 마음의 생각으로 짓는 죄까지 죄로 단정하는 것은 너무 불합리한 조치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하면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기준에 반기를 든다. 마치 자기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보다 더 공의롭고 합리적인 것인 양 여기는 것이다.
세상의 법은 “행위”에만 국한하여 죄를 판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더 높은 기준을 제시하신다.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형상에 부합하지 않은 모든 것이 다 “죄”인 것이다. 그러므로 첫 사람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류는 모두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는 마음의 모든 악한 상상들이 다 “죄”이다. 『내가 해가 비치는 것을 보거나 달이 밝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내 마음이 몰래 유혹되었거나 내 입이 내 손에 입맞추었다면 이것 역시 재판관에 의해 형벌을 받아야 할 죄악이었으니 이는 내가 위에 계신 하나님을 부인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라』(욥 31:26-28). 욥이 말한 이 구절들을 읽어 보면, 죄에 관한 기준에 있어서 어떤 일을 행하여 타인에게 실제적인 피해를 준 것뿐만 아니라, 죄를 지으려고 하는 마음의 상태까지도 죄가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 상황에서 마음의 구상과 상상을 실행할 능력이 부족하고 환경이 조성되지 않아서 그렇지, 그렇게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충분히 “알리바이”를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기만 하면, 얼마든지 죄를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결코 마음의 죄들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생각하면 주께서 내게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8).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려면 행위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절대로 자기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킬 수 없다! 과녁을 “완전히 빗나가 버린 화살”인 것이다. 인간 자신의 능력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분명하게 선언하신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몇몇 성도들을 “의인”이라고 부르신 경우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처럼 “죄가 전혀 없는” 존재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아담의 형상”을 따라 태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 역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죄인인 인간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면할 때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양심이 살아 있는 한 자기 안에 존재하는 죄로 인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시내 산에서 주의 영광이 나타났을 때, 그 모습을 지켜보았던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그 영광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기를 원했다(신 5:24-27).


선지자 이사야는 높게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신 만군의 주의 영광을 뵈었을 때 “내게 화로다! 내가 끊어졌도다.”라고 고백했으며, 그 이유를 “자신이 불결한 입술을 가졌고, 또한 그런 불결한 입술을 가진 백성 가운데 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사 6:5).
다니엘에게 주의 천사가 나타났을 때도,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그가 대면하고 있는 주의 천사를 보지 못했으면서도 큰 두려움이 그들에게 임하는 바람에 도망쳤다(단 10:7-9).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았어도 주의 천사가 지닌 영광의 힘에 압도되었음이 분명하다.
초림 당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아본 베드로는 죄인인 자신에게서 떠나 달라고 말하며 엎드렸고(눅 5:8), 요한도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을 때 죽은 것처럼 엎드렸다(계 1:17). 과연 하나님의 영광 앞에 누가 설 수 있단 말인가? 누가 세상의 빛이신 “참 빛” 앞에서 감히 떳떳하게 서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구약에서 이례적으로 셋째 하늘, 곧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의 장소”인 하늘나라로 들어간 인물은 “에녹”과 “모세”와 “엘리야” 세 명뿐이었다. 이들은 특별한 성경적 예표가 되는 인물들이었기에 예외적으로 그것이 허용된 것이지만, 구약 성도들 대부분은 죄들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기에 죽음 이후에 “음부,” 곧 “지하 세계”로 내려갔다(눅 16:22,23). 지하 세계에는 죄들의 “용서함”(remission)을 받은 구약 성도들이 잠시 머물렀던 “낙원”이 있는데, 그곳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옆에 함께 매달렸던 “회개한 강도”에게 말씀하신 바로 그 장소였다(눅 23:43). 아직 죄들의 “구속”(redemption)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의인은 없나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롬 3:10).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타락한 이래로 모든 사람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풀고 계신다. 죄인이 지은 죄에 대해 즉결 심판하여 곧바로 형벌을 내리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면서 그 죄인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그러한 기다리심에 부응한 구약 성도들은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는데, “짐승들의 피”를 통해 용서받았다(히 9:22). 율법 시대뿐만 아니라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 시대에도 사람들은 전능하시고 두려우신 하나님 앞에 짐승들의 피를 흘림으로써 죄들의 용서와 자비를 간구했다(욥 1:5). 죄는 누군가의 피를 흘림으로써, 곧 누군가의 생명을 드림으로써 용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엄중하신 주 하나님께서는 죄를 극렬하게 미워하시기에, 어떤 사람이 죄와 결합하게 되면 그 죄의 대가로 그의 생명을 요구하신다. 그래서 죄인은 “자신의 생명”으로든, “다른 존재의 생명”으로 대신하든, 반드시 생명으로 그 값을 치러야 한다.


침례인 요한이 유대인들에게 모습을 드러냈을 때도, 그는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회개의 침례를 전파』(눅 3:3)했다. 즉 유대인들로 하여금 “회개”는 물론, 짐승들을 속죄제물로 바침으로써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죄들의 사함, 곧 “용서함”을 다시 기억하게 하고, 그들의 마음을 준비시켜 의로우신 메시아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침례인 요한의 임무였던 것이다. 세례나 침례처럼 “물”로는 결코 죄들을 용서받을 수 없다. 성경에 계시하신 하나님의 기준에 의하면, 물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만큼 허튼소리도 없는 것이다.

죄는 죽음을 요구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죄는 누군가의 생명이 드려져야만 용서되는 것이다. 구약 시대에는 소들과 양들과 염소들 등 “짐승의 피”로 자신의 생명을 대신하여 용서를 받았다. 하지만 짐승의 피로 드려진 희생제사로는 죄인을 “영원히 구속”해 주지(히 9:12) 못했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흘려진 “피”는 죄들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완전히 제거함으로써 영원한 구속을 이룬다. 이 피는 우주 역사상 가장 값진 것이었고, 또 앞으로도 영원히 이 가치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이 피는 “하나님의 피”(행 20:28)이기 때문이다. 주 하나님께서 친히 죄 아래 팔렸던 노예들인 우리의 몸값을 “그분의 피”로 치르셨고, “그분의 의”를 우리에게 주셨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음이라』(롬 3:24).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 즉 예수님을 자신의 “주”라고 시인한 사람은 누구나 지옥의 영원한 형벌로부터 구원받고 그분께 속한 성도가 된다. 구원받은 당시에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을지라도, 자신의 몸과 혼과 영 그리고 자신의 생명과 모든 소유가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귀속되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핏값을 주고 사신 바 되었으니, 곧 구속받은 것이다. 어떤 죄인이 하나님께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게 되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정당한 값을 지불하시어 그를 구속하시고 그의 “구주”가 되어 주신다. 그 값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통해 이미 지불되었다. 따라서 그 어떤 것도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 성도를 주님으로부터 떼어 내어 지옥에 던져 넣을 수 없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주인이시고, 또 온당한 값을 이미 지불하셨기 때문이다.


이로써 구원받은 성도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분명해진다. 구원은 결코 “피상적인 것”이 아니다. 죽음 이후에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선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한 그 순간부터 이미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지불된 실제 값으로 구속받은 것이기에 더 이상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값 주고 사신 소유물이다. 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하시려고 죄로부터 구속하셔서 자신의 모든 것과 생명까지도 내어놓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한다. 죄인인 우리를 먼저 찾아오셔서 사랑해 주신 은혜로 인해 무한한 감사를 드리도록 하자! BB

영적 생활 38 / 1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