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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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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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01월호>

인생의 바다에서 잔잔하든, 높고 거친 물결이든, 파도를 경험해 보지 않은 성도는 한 명도 없다. 가난이든지, 죽음이든지, 질병과 고통, 시련, 절망 그리고 낙심은 "언제나" 있었고, "어디에서나" 존재했으며, "누구에게나" 있었다. 이 세상에서 시련과 낙심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래서 욥기 5:7에서는 사람이 고생하려고 태어난 존재라고 말씀한다. 『불티가 위로 날아가는 것과 같이 사람은 고생하려고 태어나느니라』(욥 5:7). 노아가 태어났을 때, 그의 부모는 그의 이름을 "노아"라 이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는 주께서 저주하셨던 땅으로 인한 우리의 일과 우리의 손의 노고에 관하여 우리를 위로할 것이라』(창 5:29). 이것은 성경에서 "위로"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구절이다. 노아의 부모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 땅이 죄로 인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는 것과 그 때문에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했던 것이다.

인간에게는 위로가 필요하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그리스도인에게는 더욱 위로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타국인이요 순례자로 살아가는 성도에게는 이 세상이 결코 살 만한 데가 못되기 때문이다(히 11:38). 성도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고통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당해야 하는 고난도 있으므로, 그 어떤 이들보다도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다.

그런데 진정한 위로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얻을 수 있다. 주께서는 "위로의 하나님"(고후 1:3)이시다. 로마서 15:5에서도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라 말씀하고 있으며, 고린도후서 7:6에서는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한다. 생각해 보라. 사랑하는 가족을 땅에 묻어야만 했던 성도들, 가정 파탄이나 실직을 경험한 이들, 질병으로 인해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야 하는 성도들, 진리를 믿고 실행한다는 이유로 비난과 박해를 감수하고 피를 나눈 친족들과 영적 전쟁을 치러야만 하는 그리스도인들, 여러 가지 이유로 큰 실의와 낙담에 빠진 성도들, 과연 누가 이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위로해 줄 수 있단 말인가! 이 땅에서는 참된 위로자를 결코 찾을 수 없다. 『비방으로 내 마음이 상하였으니 내가 근심으로 가득 찼나이다. 누가 불쌍히 여겨 줄까 내가 찾았으나 아무도 없었으며 위로자를 찾았으나 아무도 찾지 못하였나이다』(시 69:20).

모두 다 욥의 세 친구들처럼 헛되이 위로하는 형편없는 위로자들뿐이다(욥 21:34; 16:2). 그렇다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위로할 수도 없다. 이는 그것이 낙심만 더욱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내가 슬픔에 대하여 나 자신을 위로하고자 할 때 내 마음이 낙담하는도다』(렘 8:18).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사람을 위로하실 수 있는 주님의 위로를 거절하는 것은 교만이고 무지이며 불신이자 어리석은 행동이다. 따라서 고난에 처한 성도는 마땅히 하나님의 위로를 구해야 하고, 그것을 기다려야 하며, 그 위로 안에서 평안히 쉴 수 있어야 한다. 마치 어머니의 품속에 안겨 잠든 어린 아기처럼, 모든 짐을 주님께 맡겨 드림으로써 힘과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품 안에서 위로와 안식을 얻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 하나님께서는 "모든 환난 가운데서" 위로하실 수 있고(고후 1:4), "영원한" 위로(살후 2:16)를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가 구속받은 이래로 단 한 번도 자비와 은혜를 거두신 적이 없으시고, 그분의 자녀들을 고난 가운데 사생아처럼 내버려 두신 적이 없으시다. 또한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만 혹은 어떤 특정한 사람들만 위로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다. 성도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주님께서는 반드시 그 고난을 넉넉하게 이길 수 있도록 위로도 주신다는 사실을 결코 의심치 말라! 진정한 위로자이신 하나님이 없으셨다면 우리의 인생은 실로 눈물과 슬픔으로만 얼룩졌을 것이다.

그런데 인생의 문제는 고난이 길어질 때 더욱 복잡해진다. 우리의 생각대로 또는 예상했던 시기에 고난과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저 마음 깊은 곳에서는 불편한 생각들이 고개를 치켜드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요 불평이자 불신이며, 허공을 향해 부르짖는 헛된 푸념이자 부질없는 항변이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지 않아! 하나님은 나를 버리셨어! 능력도 없으신 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지 않아! 하나님의 위로가 내게 너무 작은 것 아닌가!(욥 15:11)"

이처럼 고난이 길어지면 그동안 받았던 위로의 말씀조차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 사실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고난이 "잠시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너무 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시간표와 인간의 시간표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또한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같지도 않다(사 55:8). 문제는 어떤 일에도 서두르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항상 성미가 급한 우리 사이에서 발생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 안절부절 못하는 우리의 스케줄에 맞추어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시다. 피터 럭크만 목사는 말하기를, "주님께서는 종종 당신의 마감 시한을 이리저리 옮기시어 주님 보시기에 적절한 때에 당신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가장 합당한 때가 되기를 기다리셨다가 모든 일을 완벽하게 이루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듭난 성도는 로마서 8:32과 8:28의 말씀을 믿음으로 붙들고 인내로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위로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우선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신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값없이 주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롬 8:32). 그러면 그것을 값없이 주시는 "시점"은 언제인가? 언제 이 문제와 고난을 해결해 주시는 것인가? 그에 대한 답이 로마서 8:28에 있으니, 곧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바로 그 순간"이다. 자, 주님께서는 결코 실수하지 않으시며, 그분께서 하시는 모든 일이 옳다는 것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이에 관한 확실한 증거들을 극심한 압박과 삶의 절망에까지 이르렀으나 믿음으로 이겨 낸 신실한 성도들을 통해 보여 주셨다. 그래서 위로가 필요할 때면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어떠한 위로로 고난들을 이겨 냈는지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욥의 고난과 인내가 어떠했는지, 그리고 사도 바울이 겪었던 삶의 절망이 어느 정도였을지 성경을 통해 확인해 보라. 리차드 움브란트나 하랄란 포포프가 겪었던 고난이 어떠했을지 한 번 생각해 보라. 버마 땅에 열병에 걸린 아내와 자녀들을 묻을 수밖에 없었던 아도니람 저드슨이라든지, 인도에서 말라리아로 한 아들을 잃을 수밖에 없었고 우울증에 걸린 아내마저 그 땅에 묻을 수밖에 없었던 윌리엄 캐리와 같은 선교사들의 심정을 한 번 헤아려 보라.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위로를 받았는지도 숙고해 보라. 윌리엄 캐리는 말라리아로 아들이 죽었던 날, 자신의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했다.

"하나님은 부요하신 분이시며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내가 주님을 바라보았을 때, 모든 근심을 내어 맡길 수 있었습니다. 내가 이곳에서 생명을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내게 이 고귀한 사명이 맡겨진 사실만으로도 기뻐하고 또 기뻐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가장 큰 위로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에 나의 위로가 되었으니 이는 주의 말씀이 나를 소생시키셨음이니이다』(시 119:50).

누군가에게 위로가 필요하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현 상황에 맞는 위로의 말씀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윌리엄 틴데일은 "가서 성경을 읽고 가르침과 위로를 얻으라. 그리고 당신의 눈 앞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을 보라... 당신이 하나님께로 돌아서기만 한다면 성경에 기록된 모든 자비하심은 당신을 위한 약속이 된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 위대한 약속들 가운데 주어진 가장 큰 위로가 여기에 있으니, 곧 "휴거에 대한 소망"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13-18에서 이 소망에 대해 설명한 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18절).

"휴거"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받는 모든 고난의 종지부이자, 모든 위로의 절정이다. 주님께서는 소망을 붙잡기 위해 피난처를 찾아 나온 성도들에게 반드시 든든한 위로로 갚아 주신다(히 6:18).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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