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영적 생활 분류

그리스도인의 “절제”와 “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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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7월호>

구원받은 성도라면 누구나 이제 곧 직면하게 될 두 가지 현실이 있다. 즉 예수님께서 공중으로 오시어 우리의 이름을 부르실 때 우리 모두가 영원히 썩지도 죽지도 않는 몸을 입고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간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반드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날이 이를 때까지 성도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믿음의 경주를 달려야 한다(히 12:1). 이 경주는 믿음의 선한 싸움이기도 하다(딤후 4:7, 히 12:4). 완주해야 할 코스와 거리는 주님께서 정하신다. 또한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경주이므로, 순간적인 스피드보다 꾸준한 인내가 요구된다. 그래서 마지막 결승선을 통과하기까지 긴장과 경계를 절대로 늦추어선 안 되며,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야 한다. 달리는 동안 믿음을 지키는 것은 물론, 끝까지 완주하며 페이스도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
우리들 중에는 인생의 전반전을 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프타임에 도달한 사람도 있다. 또한 후반전을 뛰기 시작했거나 경주 막바지에 이른 사람도 있다. 어느 시점에 도달해 있든지, 믿음의 경주가 끝나고 그에 대한 결산을 봐야 할 시간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대부분은 광야에서 낙오하고 말았다(고전 10:5). 마가 요한은 바울과 함께했던 제1차 선교여행에서 끝까지 완주하지 못했고(행 13:13), 데마 역시 악한 현 세상을 사랑한 나머지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딤후 4:10). 잘 달려가던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은 사탄의 방해로 막히기도 했다(갈 5:7).
반면 사도 바울은 인생의 끄트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내가 이미 제물로 드려질 준비가 되어 있고, 떠날 때가 이르렀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8). 죽음의 문턱에서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성공적인 인생은 바로 이런 것이다. 바울에게는 아무런 미련도, 후회도, 아쉬움도 없었다. 감옥에 갇혔고 순교를 앞둔 상황이었지만 그는 결코 낙담하거나 위축되어 있지 않았다. 비굴하게 굴지도 않았다. 오직 승리의 환호성과 강한 확신과 소망만이 넘치고 있었다.
이렇듯 모든 성도는 자기 앞에 놓인 경주를 완주해야 한다. 완주하되 온전한 승리와 더불어 마칠 수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처럼 말이다. 이에 그는 믿음의 경주자들이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할 중요한 덕목 하나를 제시하는데, 곧 “절제”이다. 『이기려고 애쓰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일에 자제하나니』(고전 9:25). 교회 시대 마지막 날들의 특징 중 하나는 무절제한 모습이지만(딤후 3:3),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열매를 통해 절제해야 한다(갈 5:23). 또한 주님의 다시 오심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절제해야 하는데(빌 4:5), 이는 바로 그날에 자신이 달렸던 경주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들에게는 절제가 생명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육상 100m 경기에서 세계신기록을 달성했음에도, 약물 복용으로 선수 자격을 상실하고 기록이 취소되었던 벤 존슨 선수가 있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약물을 복용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라는 질문에, “우승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절제하지 못했고 훈련에 소홀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약물 복용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음식, 수면, 기호, 고된 훈련, 체중 조절 등에 있어 절제를 못하면 승리자가 될 수 없다. 절제하지 못한 선수에게는 “패배”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기는” 경기를 해야 한다. “이기는” 싸움을 싸워야 한다. 애초부터 지는 경기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에 성경은 『상을 얻게 되도록 달리라.』고 말씀하는데, 이는 상이 승리자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이다(고전 9:24). 또한 성도는 『이기려고 애쓰는 사람』이지(딤후 2:5), 경기에 재미삼아 참여하거나 단순히 참가하는데 의의를 두는 사람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성도가 있다면, 그는 상을 주시기 위해 준비하고 계신 주님을(계 22:12) 무시하는 것이다.
반드시 상을 받을 수 있도록 경주해야 한다. 그만큼 우리가 달리는 믿음의 경주는 분명한 목적이 있고 필사적으로 달려야 하는 경주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자에게 정해진 레인을 믿음으로 열심히 달리면서, 결승 지점에서 상을 주시기 위해 기다리시는 주님만을 응시해야 한다.
소금기둥이 되었던 롯의 아내처럼(창 19:26), 달리다가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 “요한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관해 질문하며 쓸데없는 관심을 보였던 베드로처럼(요 21:21,22), 옆에 있는 성도가 어떻게 뛰고 있는지 흘깃흘깃 쳐다보면서 불필요하게 간섭하기 위해 옆 레인으로 넘어갈 필요도 없다. 소돔 성읍에서 떠나기를 머뭇거렸던 롯처럼(창 19:15,16), 눈앞에 닥친 장애물만 쳐다보느라 머뭇거려서도 안 된다. 우리의 믿음의 경주를 시작하시고 완성하신 후(히 12:2), 저 목표 지점에 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어떤 장애물이라도 훌쩍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엄격한 훈련을 통해 몸에 익힌 “절제”가 필요하다. 절제하지 못하면 성도로서의 삶을 살 수 없다. 그것은 곧 “패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나쁜 습관 하나 제어하지 못한 성도에게는 이기기 위한 경주에 출전할 자격이 없다. 좋지 않은 습관, 쉽게 넘어지는 죄들, 나쁜 버릇 등 모든 것들을 과감하게 잘라 버리고 자제할 수 있어야 한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생의 자랑, 음란함, 술 취함, 방탕함, 혐오스런 우상 숭배 등, 이런 모든 것들은 지난날의 생활로 충분하다(벧전 4:3). 우리는 개처럼 토해 낸 것으로 돌아갈 만큼 충분히 돌아갔었고, 돼지처럼 지겨우리만치 진창 속에 뒹굴며 살았다(벧후 2:22). 이제는 성령의 능력으로 엄격한 경건의 훈련을 통하여 절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물론 이것은 이 세상 종교인들의 육신적이고 종교적인 금욕과는 다르다.
또한 절제는 한 번만으로 불충분하며,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운동선수는 체중 조절에 실패하면 모든 게 끝이다. 그래서 이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다. 성도들 역시 지속적으로 자신을 단련하고 말씀으로 무장한 가운데, 정확한 목표를 향해 민첩하게 달려가는 경주자가 되어야 한다. 먹고 싶은 대로 다 먹고, 자고 싶은 대로 다 자며, 자신의 몸 단련하기를 게을리한 선수는 몸이 비대해지고 둔해져서 결코 승리자가 될 수 없다.

“절제”는 그리스도인 경주자로서 지켜야 할 일종의 “경기 규칙”이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2:5에서는 『규칙대로 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하리라.』고 말씀한다. 이 규칙을 제대로 준수하지 못하면 불확실하게 달리거나 허공에다만 주먹질을 해대는 우스꽝스러운 선수가 되고 만다(고전 9:26). 이것은 수치이다. 하늘나라의 시민권이 찍힌 마크를 가슴에 달고 출전한 대표 선수로서 주님의 영광을 가리고 성경대로 믿는 성도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큰 수치인 것이다. 벤 존슨의 세계신기록이 취소될 당시, 그의 모국인 캐나다는 공영방송을 통해 “이것은 우리 국가의 수치입니다.”라고 보도했었다.
결국 주님께서는 절제에 실패한 성도가 더 이상의 수치를 낳지 못하도록 “버림받게” 만드신다(고전 9:27). 물론 이것은 구원을 잃어버린다는 말이 아니다. 섬기는 일을 더 이상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즉 지속해 오던 사역을 중단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도중하차나 낙오자라는 불명예와 수치를 안게 된다. 결국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서 더 이상 쓰시지 않는 비참한 그리스도인으로 전락하고 만다. 더 나아가 상급(면류관)과 유업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데 한 번 쌓아 놓은 상은 어떤 이유로도 잃어버릴 수 없다고 말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다. 이 가증한 위선자들은 다음 내용을 유의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6:9과 갈라디아서 5:21에서는 불의한 자와 육신의 일들을 행하는 자들이 유업을 상속받을 수 없다고 말씀한다. 요한이서 1:8에서는 주의하지 않으면 온전한 상을 받지 못한다고 경고한다. 심지어 요한계시록 3:11에서는 굳게 붙들지 않으면 면류관을 빼앗길 수 있다고 말씀한다.
자, 상을 얻고 싶은가? 이기는 경기를 하라! 이기고 싶은가? 마땅히 해야 할 값을 지불하라! 즉 경건의 훈련으로 자신을 단련하며 절제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썩지 않을 면류관이 주어지고(고전 9:25) 영원한 왕국에 들어가는 입구가 풍성하게 마련될 것이다(벧후 1:11).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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