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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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장이 하나님께 너를 맡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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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5월호>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에 아담을 살게 하시고,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네가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나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6,17)고 말씀하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류 최초의 조상 아담에게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주시고, 그 선택에 따른 응분의 책임을 지게 하셨다. 아담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었을 때, 그 날로 그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몸과 혼과 영 가운데 영이 즉시 죽어야 했으며, 낙원에서마저도 쫓겨나야 했다.
이러한 하나님의 원칙은 아담으로부터 약 2,550년 후인 모세의 마지막 책인 신명기에서도 계속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서 너희에 대하여 증거를 삼아 네 앞에 생명과 죽음, 복과 저주를 두었은즉, 그러므로 너와 네 자손이 살려면 생명을 택할지니라』(신 30:19). 보는 것처럼 생명과 죽음, 곧 복과 저주를 앞에 나란히 놓아두고 너와 네 자손이 살려거든 생명을 택하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이렇게 분명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은 얼마간의 영광을 거두었을 뿐 끝내는 생명과 복 대신 죽음과 저주를 택하여 모든 민족 가운데서 속담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되는 비운을 겪었다(대하 7:20).
하나님의 자유 의지에 의한 선택의 원칙은 이 신약 시대에 와서도 변함이 없다.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을 아노라』(살전 1:4). 보는 바대로 선택권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 쪽에 여전히 주어져 있다. 그런데 이것이 개역성경에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라고 되어 있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선택권자로 되어 있다. 그러나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성경이 스스로 그 사실을 증명해 준다. 바로 몇 구절 뒤에 『너희가 어떻게 우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서서』(살전 1:9)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진술은 너희(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가 의지를 발휘하여 우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섰다는 의미이지,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그들을 선택하여 우상으로부터 돌아서게 하셨다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에덴 동산에서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 의지가 4천 년 구약 시대를 거쳐 신약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에게 유효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믿지 않는 혼들을 구령할 때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언제나 그의 자유 의지에 따른 선택을 질문을 통해 확인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세주로 선택하고 생명의 길을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외면하고 멸망의 길을 가시겠습니까?” 이것이 그리스도의 대사들에겐 너무도 익숙한 질문이지만 개개의 혼들에겐 난생처음으로 듣는 기상천외한 질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의 선택에 따라 한 사람의 운명이 ‘생명과 복과 영생이냐, 죽음과 저주와 멸망이냐’로 결정된다는 사실은 놀랍다.
사람들은 곧잘 “왜 하나님은 생명 나무의 열매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두셔서 하필이면 죽음 쪽을 택하도록 하셨는가?” 하고 불평들을 한다. 물론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니 우리 사람을 주파수가 고정된 북한의 라디오처럼 창조할 수도 있으셨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굳이 그 로봇 같은 인간의 사랑을 마다하고 자유 의지를 부여하여, 인간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창조주를 사랑할 수도 있고 미워할 수도 있도록 지으셨다. 그리고 그 자유 의지에 따라 모든 사람이 그분 자신과 밀착하기를 간절히 고대하셨다.
토기장이의 비유에서도 인간의 자유 의지는 그대로 지속된다. 『토기장이가 같은 진흙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겠느냐?』(롬 9:21) 이 말씀을 피상적으로 보면 마치 하나님의 뜻이 절대적인 것처럼 기술되어 있다. 물론 하나님은 토기장이이시므로 흙덩이들을 귀하게도 만들고 천하게도 만들 권한을 갖고 계신다. 다만 그 전에 흙덩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귀한 그릇이 될 수도 있고 천한 그릇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각각의 흙덩이들은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흙덩이인 개개인이 자신의 자유 의지를 적극 발휘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구원을 받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귀한 그릇으로 빚어 금과 은과 보석 같은 것들이 담기게도 하시고,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기를 끝내 거부할 경우는 천한 그릇으로 대충 빚어 방치하다가 종당에는 지옥 쓰레기장에 내던져 버리기도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그분은 실로 자비의 하나님이시기에 배은망덕한 흙덩이들이라도 절대로 쉽게 버리는 법이 없으시다. 『하나님께서 그의 진노를 나타내시고 또 그의 능력을 알게 하시려고 멸하기에 합당한 진노의 그릇들을 심히 오래 참음으로 인내하시며 영광에 이르도록 예비된 자비의 그릇들에게 그의 영광의 풍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다면 어찌하겠느냐?』(롬 9:22,23) 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멸하기에 합당한 진노의 그릇들임에도 불구하고 심히 오래 참음으로 인내하며 기다리시는 분이다. 그리하여 언제라도 그가 돌이키면 즉시 유용한 그릇으로 빚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신다. 필자는 젊은 날 너무도 완고하고 자만에 찬 한 사람이 순전히 오래 참음으로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자비 덕분에 늘그막에 놀라운 은혜를 입어 그분의 영광의 풍요함에 이른 실화를 알고 있다. 그는 인생의 황금기를 자신만을 위해 탕진한 뒤라 그 상태에서 폐기처분을 당해도 하등의 불평이 있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운이 좋게도 은총을 입었고, 막차로나마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뜻하지 않은 때에 흙으로 돌아갈 진토이다(시 103:14). 자신이 진토로 돌아갈 날과 때를 아는 이는 이 지상에 한 사람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덧없는 진토임을 처음부터 알고 계신다. 또한 그러기에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늘 측은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시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계신다. 아직도 구원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여, 혹은 구원을 얻고도 흔쾌히 자신을 맡기지 못한 채 미적대는 사람들이여,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서둘러 토기장이이신 분께 그대 흙덩이 전부를 맡기지 않으려는가.

큰 우주 긴 역사의 주인


『그러나 이제, 오 주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우리의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만든 작품이니이다』(사 64:8).

1
큰 우주 긴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사람이 진토임을 처음부터 아시지만
진흙이 제 자신을 내맡기지 않으면
그분은 어떤 그릇도 빚으실 수가 없네

2
수많은 물레들을 소유하신 하나님
매 세대 걸작들을 빚어내신 솜씨로도
말씀의 정한 물로 이겨지지 않은 흙
그 또한 어떤 작품도 빚으실 수가 없네

3
단 한 분 아버지요 토기장이이신 주
돌 같은 네 흙덩이 속속들이 부수어서
자비의 그 손길에 온전히 맡기어라
주께서 새 그릇으로 너를 빚어 주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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