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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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랜 책을 읽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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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12월호>

엄밀히 말해서,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책은 성경이다. 흔히 불교의 경전들이나 유교의 사서삼경이 제일 오래된 책인 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불경이나 사서삼경이라고 해야 기록 연대가 2,500년 이상 거슬러 오르기가 어렵다. 고타마 싯다르타의 생몰 연대가 대략 B.C. 563년에서 B.C. 483년이고, 공자의 생몰 연대는 B.C. 551년에서 B.C. 479년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성경은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만 해도 B.C. 1451년 이전에 모두 기록되었다. 가장 오래된 책인 욥기는 B.C. 1780년 무렵에 기록되었으니, 불교나 유교의 경전들보다 자그마치 1,300년가량이나 앞선다.

가장 오래된 책에 걸맞게 모세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에는 여러 가지 것들의 "시작"이 기록되어 있다. 하늘과 땅의 시작, 식물과 동물의 시작, 인류의 시작, 죄와 구속의 시작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다른 종교의 경전들에는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만약 그들이 성경처럼 모든 것의 시작을 알고 있었다면 그런 점에 대해 침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그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기에 자신의 경전들에 그것을 기록할 수 없었다. 다만 모든 것의 시작 대신에 자기들이 말할 수 있는 것, 곧 인간의 머리로 짜낼 수 있는 것만을 그들의 경전에 기록했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흔히 반만년 역사라고 하면서, 보다 자세하게는 올해가 단기 4349년이라고 하는데, 이를 성경의 연대기와 비교해 보면 그 시작은 "노아의 대홍수"(B.C. 2349년경)가 일어난 해보다 약 16년이 뒤진 무렵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민족 역사의 유구함을 지나치게 강조하려는 나머지 거품이 들어가도 한참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이때는 아직 노아의 세 아들들인 셈과 함과 야펫이 한곳에 모여 살았을 때이고, 인류가 나뉘고 확산된 것은 그보다 100년 정도 뒤인 B.C. 2247년경의 "바벨탑 사건" 때 언어의 혼란과 더불어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역사성이 인정되는 우리나라 고대의 역사는 삼국 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빠른 신라의 건국은 B.C. 57년경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이었다. 그런데 신라의 건국 신화인 박혁거세의 소위 탄생 신화를 보면 황당무계한 난생 설화로 되어 있다. 신약성경 가운데 하나인 사도행전이 A.D. 65년경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보다 불과 100여 년 전에 생성된 신화가 이처럼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수준 차이가 실로 엄청나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시니 그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전들에는 계시지 아니하시며 또한 무슨 필요한 것이 있는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아야 되는 것도 아니시니 이는 그분이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심이라. 또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피로 만드시어 온 지면에 살게 하시고 미리 계획하신 시기와 그들이 거주하는 경계를 정하셨으니 이는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사람들이 하나님을 감지하려 하면 만나리니 그분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아니하도다』(행 17:24-27). 보는 것처럼 이 말씀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난생 설화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인간과 세상에 대한 실로 높은 수준의 지식이자 당당한 통찰이다.

시편은 총 150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다윗이 가장 많은 시들을 지었다. 그 외에 모세, 솔로몬, 아삽, 에단 등이 저자로 되어 있는 것도 있고, 코라의 아들들을 위한 시들도 있으며, 작자 불명의 시들도 49편이나 된다. 따라서 시편에 수록된 시들은 그 저자에 따라 각기 다른 시대에 기록되었을 것은 자명하다. 예컨대 가장 오래된 "모세의 시"의 경우, 어셔의 연대표에 따라 그가 죽은 연대는 B.C. 1451년경이므로, 그의 나이 100세 때 지었다고 보면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의 시가 된다. 시편의 주요 저자인 다윗만 해도 그가 B.C. 1015년경에 죽었으므로 그가 지은 시들 역시 적어도 3천 년 이전의 작품들이다. 우리가 성경을 펼치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작품들"이기에 그 시들을 별 생각 없이 읽곤 하지만, 연대상으로 볼 때 참으로 까마득한 시절의 시들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고대시(古代詩) 중에는 신라 시대의 정형시인 "향가"(鄕歌)라는 것이 있다. 현재 총 14수의 노래가 <삼국유사>라는 책에서 전해지고 있는데, 이 가운데에는 향가 중에서 명작으로 꼽히는 『제망매가(祭亡妹歌)』라는 시가 있다. 제목이 보여 주는 그대로 죽은 누이동생을 추모하는 노래다. 이 시는 향찰문자로 표기되어 전해지고 있는데, 그 전반부를 양주동 시인의 해석으로 옮겨 보면 『(1연) 생사(生死) 길은 / 예 있으매 두려워하여 / 나는 간다 말도 / 못다 이르고 가는가. // (2연)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 이에 저에 떨어질 잎같이 / 한 가지에 나고 / 가 는 곳 모르는구나.』로 풀이된다. 여기서 사람들이 칭송하는 부분은 두 번째 연인데, 이것을 보다 알기 쉽게 풀이해 보면, "어느 가을 일찍 부는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나뭇잎같이,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고도 죽어서 가 는 곳은 알 수가 없구나." 정도가 된다. 보다시피 이 시의 "사생관"(死生觀)은 전형적인 세상 사람들의 그것이다.

이쯤에서 "모세의 시"인 시편 90편의 몇 대목을 보도록 하자. 『산들이 생기기 전, 주께서 땅과 세상을 조성하시기도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2절). 죽도록 세월을 살고도 자신을 이 세상에 살게 하신 창조주를 알지도 못한 채 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이 얼마나 하나님의 영원하심에 대한 빼어난 진술인가!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어도 그 연수의 힘은 수고와 슬픔이니, 그것이 곧 끊어지면 우리가 멀리 날아가나이다』(10절). 나이 팔십을 넘긴 사람 중에도 , 이웃이나 친구들이 죽는 걸 보면서도 자신만은 영원히 살 것처럼 죽음에 대해 무감각한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이 한 구절은 또 얼마나 덧없는 생에 대한 솔직한 토로인가 ! 『그러므로 우리에게 우리의 날들을 세도록 가르치시어 우리의 마음이 지혜에 이르게 하소서』(12절). 하나님의 뜻을 행하거나 그분과 교제하면서 보내지 않은 시간은 계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어 지혜에 이르게 해 주시라는 것은 이 얼마나 겸허의 극치를 다하는 간구인가! 신라의 『제망매가』가 동서남북도 분별할 줄 모르고 칭얼거리는 어린애 같은 시라면, "모세의 시"는 창조주와 자신의 근본을 알고 지혜를 갈망하는 장성한 사람의 시인 것이다.

가을이 깊을 대로 깊어서 어느새 또 밤이 긴 계절이 우리를 찾아왔다. 사람은 누구나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두 지점 중 하나의 도착점에 닿게 되어 있다. 그대는 아직도 자신의 도착점을 확인하지 못했는가? 아니면 그것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정작 그곳에 가 보아야만 알게 될 일이라고 지레 단정하며 안심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하루속히 이 지상에서 "가장 오랜 책"을 읽어 보라. 그리하여 그대를 이 지상에 살게 하시고, 그대가 믿고 영접하기를 기다리시는 "한 분"을 서둘러 대면해야 한다. 그분의 입에서 "동작 그만!"이라 는 최후의 준엄한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에 말이다!

갈보리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영생은 이것이니, 곧 사람들이 유일하시고 참 하나님이신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옵니다. - 요한복음 17:3 -

1

갈보리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주님은 아버지께 기도하셨네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그 일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영생이라고

<후렴>

참 하나님 참 소망 영원한 생명

주 예수 그리스도 오직 한 분

2

갈보리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주님은 아버지께 간구하셨네

아들에게 속하는 모든 이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켜 달라고

3

갈보리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주님은 아버지께 부탁하셨네

그 진리 듣고 믿은 우리까지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켜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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