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영적 생활 분류

왜 일꾼이 길러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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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10월호>

그리스도인은 "추수할 곡식이 하얗게 익어 있는 밭"(요 4:35)에 대한 환상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 즉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복음 전파의 시급한 현실을 직시하고 살라는 말이다. 피터 럭크만 목사는 "지옥으로 향하는 죄인들에 대한 환상을 잃어버린 성도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말했다.

이 마지막 배교한 교회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추수할 일꾼이 턱없이 부족한 시대이다. 주님을 위해 전적으로 헌신하고 열정적으로 일할 일꾼들을 좀처럼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런 "일꾼 품귀 현상"은 초림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주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참으로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들이 적구나』(마 9:37). 사도 바울도 『모두 자기 자신의 일만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은 구하지 아니하느니라.』(빌 2:21)고 말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열악한데, 전장으로 나가 피 흘리며 싸우기보다는 상황실에 편히 앉아 전쟁 상황을 관망만 하려는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밭으로 부지런히 발길을 옮기는 일꾼들이 적고, 경기장에서 직접 뛰기보다는 관중석에 앉아 콜라나 마시며 경기를 지켜보려는 구경꾼들로 넘쳐 난다.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의 용사들 같은 믿음의 영웅들은 사라진 지 오래다.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아서 하나님의 속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믿음 같지 않은 믿음, 토해 내기 딱 알맞은 그런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계 3:16) 태반이다. 용기와 결단력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과감하게 결행하려는 진정한 승부사들이 없으며, 주님을 위해 나가서 싸우겠다고 자원하여 나서는 지원병들도 부재하다. 많은 성도들이 이생의 염려와 부와 쾌락에 억눌려 있고(눅 8:14), 세상에 의해 질질 끌려다니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생의 자랑에 질식당한 채, "참되고 유능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길러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우선 이 배교한 마지막 세대는 "성경적인 믿음"을 상실했다. 믿음을 지닌 사람이 적기에 일꾼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누가복음 18:8에서는 『인자가 올 때 그가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라고 말씀하는데, "바른 성경"을 배격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는 성경적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인 바른 성경에서 나오기 때문이다(롬 10:17).

그런 믿음이 없기에 자신을 억누르는 이 세상 염려들과 재물의 속임수와 다른 일들에 대한 욕심(막 4:19)을 이겨 낼 "힘"이 없다. 그런 가시떨기들을 과감히 "뚫고 나가"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성장하여 온전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막 4:19). 그런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지식"에서 나온다. 『현명한 사람은 강하고, 정녕, 지식이 있는 사람은 힘을 늘려 가느니라』(잠 24:5).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한 철학자 베이컨은 이 말씀을 세상적인 지식에다 도용했지만 거듭난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적인 지식이다. 성경적 지식을 통해 효과적으로 역사하는(살전 2:13) 그 힘은 우리 안에 주님을 향한 열정을 일으켜서 자원함으로 주님을 섬기는 일꾼이 되게 하고 선한 열매를 내게 하는 "원동력"을 제공한다.

그래서 성경은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기 위해 진리의 말씀을 공부하라."(딤후 2:15)고 명령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도무지 성경을 공부하지 않는다. 대학 입시합격과 높은 스펙을 위해서는 밤새워 가며 공부하지만 성경 공부를 위해서는 단 한 시간도 투자하지 않는 것이다. 여호수아 1:8에서는 인생의 "성공" 여부가 "율법의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말씀한다. 누가 똑똑한 사람인가? 말씀을 묵상하고 공부하는 데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성도이다. 누가 성공한 사람인가? 주님의 말씀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성도이다. 이 배교한 시대에 주께서 원하시는 일꾼이 되고 싶은가? 성경을 공부하라. 성경을 공부함으로써 자신 안에 "성경적 믿음"이 있음을 주님 앞에서 입증해 보일 수 있어야 한다.

둘째로 이 마지막 세대는 "정욕에 사로잡혀" 있다. 『음욕이 가득 찬 눈을 가지며 죄로부터 단절될 수 없고, 견고하지 못한 혼들을 유혹하며 그들은 마음이 탐욕으로 단련되었으니 저주받은 자식들이니라』(벧후 2:14). 육신의 정욕에 사로잡혀 있어 하나님의 거룩한 일꾼이 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TV, 영화, 스마트폰 등과 같은 "영상 매체"이다. 몸의 빛은 눈인데(눅 11:34), 다양한 영상 매체를 통해 눈으로 들어오는 더러운 영상들(images)이 온갖 정욕을 일으키는 것이다. 사탄은 이런 매체들을 통해 "육신의 일들"(갈 5:19 -21)과 연관된 영상들을 끊임없이 양산해 냄으로써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정욕에 사로잡혀 있도록 만든다. 눈을 통해 인지된 영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한번 걸려들면 쉽게 헤어 나오지도 못한다. 『악인은 자기 자신의 악들에 걸리며 자기 죄들의 줄들에 매이리라』(잠 5:22). 이처럼 오늘날에는 성도들이 세상을 향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육신의 일들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으며, 세상 정욕들에 더 쉽게 반응하고 더 빨리 함몰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주님을 온전히 따르고 주님을 위한 일꾼으로 헌신하기가 더 어렵게 되어 버렸다. 헌신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과 변명거리가 그 어느 때보다 훨씬 더 많아진 것이다. 이런 영상 매체를 통한 사탄의 공격을 저지하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몸의 빛인 눈으로 침투해 들어와 몸을 어둡게 만드는 모든 "영상들"을, 파괴시키든 뽑아 버리든, 가능한 한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다(민 33:52). 이는 그 더러운 영상을 눈으로 보지 않는 한 머릿속으로 생각할 수 없고, 생각하지 않는 한 그 더러운 영상이 보여 주는 대로 더러운 정욕을 따라 실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젊음의 정욕"을 피함으로써(딤후 2:22) 주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하고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되어(딤후 2:21) 거룩한 주님의 일꾼으로 자라나야 한다.

셋째로 마지막 세대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이다(판 3:1). 배교한 신학교나 교회들은 영적 군사들을 길러내지 않는다. 사람 숫자도 많고 교회 건물이나 그들이 입고 있는 군복 그리고 그들이 수행하는 여러 가지 의식이나 열병식은 화려해도, 실제 야전에서는 전혀 적합하지 않은 오합지졸들이다. 어떻게 싸우는지, 왜 싸우는지도 모른다. 싸우는 법을 배운 적도 없다. 적이 무서운 기세로 몰려오고 사방을 둘러쌀 때 도망가거나 타협하기 바쁘다. 그들은 싸움을 싫어하며 회피한다. 왜냐하면 진리를 위해 받는 고난이 싫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들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빌 3:18)이라고 말씀한다. 이런 자들은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전쟁을 포기하고 산다. 성도의 세 가지 대적인 세상, 육신, 마귀의 공격에 대해 반격하거나 저항하지도 않는다. 무방비 상태로 당하고만 있는 것이다. 그들은 아내나 남편, 가족을 기쁘게 하기 위해 싸워야 할 영적 전쟁을 포기한다. 질병으로 몸이 아프고 병석에 눕게 되면 선한 싸움을 포기해 버린다. 직장을 잃고 불의의 재앙이 닥치면 포기해 버린다. 조롱과 모욕을 당하고 비방을 당하겠다 싶으면 전쟁을 포기한다. 이런 한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일꾼이 길러질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사역은 일종의 영적 전쟁이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많은 투쟁"을 했다고 말했고(살전 2:2) 자신을 위해 기도로 분투하라고 요청했다(롬 15:30). 그래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길러지기 위해서는 "군사 훈련 교관"(시 144:1)이신 주님으로부터 "훈련 교범"인 성경을 근거로 영적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특히 영적 전쟁에서 성경을 모르면 절대로 이기는 싸움을 싸울 수 없다. 또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이 싸움을 포기해선 안 된다. 그리스도의 군사들은 싸우는 사람들이다. 이 영적 전쟁을 포기하게 되면, 곧 죄와 싸워 승리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영적인 부랑자, 영적인 노숙자로 남아 패전국의 국민들처럼 비참해질 것이다. 우리는 대적들 사이로 뚫고 지나가야 한다. 그러다가 쓰러지면 다시 일어 나야 한다. 또 쓰러지 면 또다시 일어나 싸워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인권으로 인해 하나님의 권리가 무시당하고 하나님의 뜻과 목적과 명령이 무시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주님을 위한 헌신과 섬김이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있다. 그렇다고 이 시대에 일꾼이 불필요한 게 아니다. 더욱더 절실하다. "주의 편은 누구인가?"(출 32:26) 주님 편에 속한 성도라면 지금 당장 주님을 섬길(수 24:15) 일꾼으로 분연히 일어나야 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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