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분류

성경대로 믿는 믿음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09월호>

성경대로 믿는 믿음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믿음이 아니다. 학자나 권력자 또는 유명 인사보다는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것이 없는 보통 사람들 가운데 오히려 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무슨 법칙처럼 일률적이지는 않다. 이름 있는 사람 중에서도 드물지만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보통 사람이나 일자무식 가운데도 마음이 완고하여 진리가 전혀 먹혀들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고 보면 성경 말씀은 합당한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 하나님께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이 세상에 장치해 두신 일종의 "체"(거름망)인지도 모른다.

십수 년 전 한문에 정통한 한 노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사서삼경에다 제자백가서를 두루 섭렵했고 불경도 웬만한 것은 다 읽어 보았을 정도로 한문에는 두루 박식한 사람이었다. 참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아들이 몇 번이고 복음을 전해 보았지만, 그 노인은 그때마다 퇴짜를 놓았다. 한국의 전통적인 종교나 사상을 제쳐 두고 천박한 서양의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한번은 아들이 대만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서 한문성경 한 권을 사 와 선물로 드렸는데, 한문을 좋아하는 노인은 그 책을 받자마자 도수 높은 돋보기를 끼고 펼쳐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모세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 1:1을 읽었을 때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한평생을 살아오면서, 하늘과 땅이 저절로 된 것은 아닐 테고 반드시 지으신 분이 있을 터인데, 그분이 누구인가를 규명할 수 없어 그 사실이 늘 궁금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생 한문 서적들을 샅샅이 훑었지만, 그것에 대해서만큼은 사서삼경, 제자백가서, 불경 등 그 어떤 기록들에서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에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창 1:1)는 첫 구절에서 평생토록 그리도 궁금했던 창조주의 이름이 뚜렷이 나와 있었던 것이다. 노인은 감격했다. 그날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음은 물론이다. 성경은 『너는 이제 너의 젊은 날에 곧 재앙의 날이 이르지 않고 "나에게는 즐거움이 없다."고 말할 해가 가까워 오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전 12:1)고 말씀한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80세라는 노인의 연치는 창조주를 기억하기엔 썩 불리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악조건을 넘어 통쾌하리만치 극적으로 창조주를 대면했으니, 실로 망외의 복을 받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이 한 종교의 경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소위 교육을 받은 현대인들은 창세기 1:1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이는 그들이 태양이 먼저 있었고, 그 태양의 회전에 의해 떨어져 나온 불덩어리들이 식어서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등의 행성들이 되었다고 배웠는데, 성경은 하늘과 땅(지구)이 먼저 창조되었고, 하늘 다음으로 존재했어야 할 태양은 지구보다 늦게 재창조의 넷째 날이 되어서야 창조되었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현재의 다양한 생물상은 원시 스프 속에서 우연히 발생한 원시 생명체가 오랜 세월에 걸쳐 분화해 온 진화의 결과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왔고, 학교에서도 여러 번에 걸쳐 그것에 대한 시험을 쳤는데, 성경은 처음부터 물고기, 새, 짐승 등 각종 생명체들이 각각 종류대로 창조되었음을 말하고 있으니 엉터리도 이만저만한 엉터리가 아닌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성경이 좀 모자라는 사람들이나 믿는, 옛 사람들이 지어낸 황당한 설화쯤으로 취급되어 온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이들 무신론자들의 경멸하는 눈길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지구가 해, 달, 별보다 먼저 창조되었음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피터 럭크만의 주석서 창세기 I>에서, "하나님께서 일곱 저녁과 아침 동안 땅을 재창조하시기 전 지구의 나이가 4백만 년이나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읽더라도 당황하지 않는다. 지구는 하늘 공간에서 큰 광명과 작은 광명, 그리고 무수한 별들보다도 더 먼저 창조되었다고 무오한 말씀이 분명히 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있어 왔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어떻게 하면 꼬투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인가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창세기 14장에는 놀라운 실화 하나가 기록되어 있다. 당시에 엘람 왕 크돌라오멜과 민족들의 왕 티달과 시날 왕 아므라펠과 엘라살 왕 아리옥은 싯딤 골짜기에서 사해 남쪽의 다섯 왕들과 싸워 이기고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사로잡아 갔었다. 이에 아브라함은 318명의 종들을 데리고 단까지 추격하여 약 4만 명으로 추산되는 메소포타미아의 대군을 무찌르고, 롯과 그의 재물과 여자들과 백성들을 모두 되찾아오는 전과를 거둔다. 그런데 학자들은 아므라펠이 함무라비법전으로 유명한 왕임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적은 군대에게 그렇게 막강한 함무라비 대왕이 패했을 리 없다는 논리를 내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난도질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편에 선 무적의 전사이셨음을 송두리째 간과해 버린 것이다.

고래가 요나를 삼킨 사건을 두고도 철학 및 과학 등의 학문으로 무장한 학자들은 온갖 억측을 쏟아 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요나서 2장을 찬찬히 읽어 보면 요나가 고래에게 삼켜진 후 죽었으며 그 혼이 지하 세계에 있는 지옥까지 갔었음이 분명한데도, 2:1-6의 말씀을 두고 "New Bible 주석"을 쓴 로빈슨은 "요나가 죽지 않고 삼 일 동안 의식 불명 상태에 있었을 뿐"이라고 주석했으며, 제미에슨, 포셋, 브라운 등은 "물고기의 배가 단지 스올을 닮았을 뿐"이라고 주석했다. 그리고 "리빙 바이블"은 6절의 『주께서 내 생명을 부패함에서 건져내셨나이다.』라는 부분을 "당신은 나를 벌어진 죽음의 턱으로부터 낚아채셨나이다."라는 아주 희귀한 억측으로 주석을 썼다.

성경의 모든 기적과 이적은 믿음이 없는 학자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다. 그래서 그들은 기적과 이적이 기록된 부분에 이를 때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기라도 한 듯 활기를 띤다. 예컨대 『밤 제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그들에게 다가오시니』(마 14:25)라는 대목을 만나는 순간, "사람이 물 위를 어떻게 걸어. 이건 말이 안 돼."라고 단정한 다음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한다. 곧 예수님은 물 위를 걸으신 것이 아니라 갈릴리 호수 위에 떠 있는 얼음 조각들을 징검다리 건너듯 밟으신 것이라고 주석해 놓고서는 참으로 멋진 주석이 아니냐고 으스대는 것이다. 그분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심을 몰라보는 불경을 범한 줄을 미처 깨닫지도 못한 채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성경 말씀을 기록된 대로 믿어야 한다. 고래가 요나를 삼킨 것이 아니라 요나가 고래를 삼켰다고 기록되었다 하더라도 단 한 오리의 의심도 없이 믿고 아멘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주 하나님 찬양하세

아, 주 하나님이여! 보소서, 주께서는 주의 큰 권능과 펴신 팔로 하늘과 땅을 지으셨으니 주께는 어려워서 못 하실 일이 없나이다. - 예레미야 32:17 -

1

하늘들과 땅들을 지어서 펴신 이는

모든 일에 능하신 오직 한 분이시니

주께는 어려워서 못 하실 일 없나이다

하늘들아 땅들아 주 하나님 찬양하세

2

해와 달과 별들을 우주에 켜신 이는

빛으로 거하시는 오직 한 분이시니

주께는 어려워서 못 하실 일 없나이다

해와 달과 별들아 주 하나님 찬양하세

3

푸른 산과 바다에 뭇 생명 두신 이는

영원에 거하시는 오직 한 분이시니

주께는 어려워서 못 하실 일 없나이다

숨 쉬는 생명들아 주 하나님 찬양하세

4

독생자 보내시어 영생을 주신 이는

죄인과 화해하신 오직 한 분이시니

주께는 어려워서 못 하실 일 없나이다

복 받은 성도들아 주 하나님 찬양하세

전체 175 / 6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