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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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인이요 나그네라는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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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07월호>

역대기상 29:10-19은 다윗의 마지막 감사 기도인데, 한 편의 장려(壯麗)한 시의 형태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다윗은 전반부를 온전히 하나님을 높이는 일에 할애하고 있으며, 후반부에서는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자신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후계자인 솔로몬의 미래를 전적으로 의뢰하고 있다. 이 기도에서 특히 눈길이 가는 대목은 "타국인이요 나그네라는 의식"이다. 『우리의 모든 조상이 그러하였듯이 우리는 주 앞에서 타국인들과 나그네들이오니 지상에서 우리의 날들은 그림자와 같으며 머무름이 없나이다』(대상 29:15). 이 얼마나 자신의 뿌리와 스스로에 대한 철저한 통찰인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다윗은 헤브론에서 7년, 예루살렘에서 33년을 치리한 이스라엘의 제2대 왕이었으며, 『충분히 장수하여 연수와 부와 영화를 다 채우고 죽으니』(대상 29:28)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한 국가의 최고 절대권을 가진 자로서 우쭐하며 으스댔을 만도 한데, 그가 하나님 앞에 인생을 총결산하면서 오로지 겸손으로 무게중심을 잡고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바빌론 왕국의 느부캇넷살왕은 어느 날 궁의 뜰을 거닐며 『이것이 내가 내 권세의 힘으로 내 위엄의 영예를 위하여 왕국의 집을 건설한 위대한 바빌론이 아니냐?』(단 4:30) 하고 교만한 마음을 먹었다가 하나님께서 내리신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는 낭광병(狼狂病, lycanthropy)에 걸려 무려 7년간을 들에서 소처럼 풀을 먹고 지내야 했으며, 이때 그의 머리털은 독수리의 깃털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들의 발톱과 같이 되었다. 그에게 그런 벌이 주어진 이유는 성경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즉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인간들의 왕국을 다스리시며 그분께서 원하시는 자에게 그것을 주신다는 것』(단 4:32)을 그로 하여금 알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그는 그 모든 일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이제 나 느부캇넷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고 칭송하고 존경하노니 그분의 모든 일은 진리이고 그의 길들은 공의로우시니 교만하게 행하는 자들을 그분께서 능히 낮추시느니라.』(단 4:37)는 솔직한 고백을 남길 수 있었다.
물론 다윗이라 하여 교만한 행위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을 요압으로 하여금 계수하게 한 것이 그것이었다. 이를 불쾌하게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선지자 갓을 보내시어 7년간의 기근, 원수 앞에서 3개월간 도망하는 것, 3일간의 전염병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하셨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3일간의 전염병을 보내셨으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무려 7만 명의 백성들이 죽는 재앙이 임하였다. 이에 다윗은 『보소서, 내가 죄를 지었고 내가 악하게 행했나이다. 그러나 이 양들이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청하오니,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삼하 24:17)라고 자신의 죄를 시인하면서 몸소 벌을 받기를 요청했다. 비록 다윗은 연약한 부분이 있었지만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하나님 앞에 정직한 사람이었다. 선지자 나단이 밧세바와의 간음과 우리야를 죽게 한 일을 지적했을 때, 다윗이 왕의 권위를 내세워 숨기려 하지 않았고 솔직하게 시인한 태도에서도 그의 정직성은 잘 나타난다.
사실 "타국인이요 나그네라는 의식"은 자신에 대한 "정직하고 냉정한" 평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라. 사람으로 말하면 그의 날들은 풀과 같고 그의 번영은 들의 꽃과 같아서 바람이 그 위를 지나가면 사라지나니 그 자리가 그것을 더 이상 알지 못하리라.』(시 103:14-16)에서 보는 것처럼, 다윗은 지금부터 3천여 년 전의 사람이었지만 자신이 한 줌 흙덩어리에 지나지 않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비록 사람이 자신의 젊음을 자랑해도 그 생명을 보내신 분이 거두어 가시면 그것으로 그만인 것을 가슴에 사무치게 새기고 살아간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다윗은 『주여, 나의 종말과 내 날들의 분량이 어떠한지 나로 알게 하시어 내가 얼마나 연약한지 알게 하소서.』(시 39:4)라고 기도하기를 마지않았다. 또한 그러하기에 『보소서, 주께서 내 날들을 손 너비만큼 주셨으므로 내 연수가 주 앞에서는 없는 것 같사오니 진실로 가장 좋은 상태에 있는 모든 사람도 다 헛될 뿐』(시 39:5)이라고 자신이 누리는 생명의 덧없음을 고백할 수 있었다.
요즈음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사람들은 돈이 많은 사람들이다. 시쳇말로 돈이면 안 되는 일이 거의 없으니 사람들은 너나없이 돈을 한 푼이라도 더 가지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그래서 많은 자살 사건과 살인 사건이 돈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성경은 진작부터 이 돈에 대해 경고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니, 이것을 욕심내는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다가 많은 슬픔으로 자신들을 찔렀도다』(딤전 6:10). 보는 것처럼 돈은 모든 악 가운데 하나의 뿌리(a root of all kinds of evil)가 아니라 모든 악의 뿌리(the root of all evil)라고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수년 전 많은 국민들의 숭앙을 받던 한 사람이 벼랑 아래로 몸을 던진 사건이 있었다. 지난 연말 중국 여성이 제주도에서 살해당한 사건도 있었다. 얼마 전 남매가 자신들을 낳아 준 아버지를 죽인 존속살인도 있었다. 그 모든 사건 뒤에는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돈 문제가 얽혀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자살이나 살인 사건 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돈을 사랑함으로써 많은 것들을 잃게 된다. 특히 구원받은 성도들의 경우 돈에 눈이 멂으로 해서 하늘에 있는 상을 잃어버릴 우려가 큰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니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이것들로 만족할 것이니라.』(딤전 6:7)고 말씀한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 항목에 해당한다. 미국은 일찍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유럽을 떠난 청교도들이 세웠고, 땅이 넓을 뿐만 아니라, 사람도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더 많이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고 지킨 사람은 열 명이 채 되지도 않는다고 피터 럭크만 목사는 말했다. 그렇다면 1994년에야 바른 말씀이 생겨났고, 땅덩이가 작으며, 인구도 적은 우리나라는 이 명령을 제대로 지키고 사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한 신실한 성도는 초라한 다락방에서 죽어가며, "우리 주님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 이런 방 한 칸마저도 없으셨지 않은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현재 이 나라는 불만족의 아우성이 도처에서 넘쳐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그것들이 먹고 입는 문제에 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타국인이요 나그네라는 올바른 의식" 속에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설사 여러 가지가 부족하더라도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잠시 머물다 가는 이 세상 나그네 길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니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이것들로 만족할 것이니라. - 디모데전서 6:7,8 -
1
잠시 머물다 가는 이 세상 나그네 길
먹을 것 입을 것이 모두 다 은혜일세
날마다 필요한 만큼 주님 채워 주시네
날마다 필요한 만큼 주님 채워 주시네
2
잠시 머물다 가는 이 세상 나그네 길
누리는 시간들도 모두 다 은총일세
날마다 열에 하나를 주께 내어 드리네
날마다 열에 하나를 주께 내어 드리네
3
잠시 머물다 가는 이 세상 나그네 길
거듭난 성도들은 그분의 작품일세
날마다 주 말씀 따라 선한 일에 힘쓰리
날마다 주 말씀 따라 선한 일에 힘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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