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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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신부와 환란 전 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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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08월호>

휴거라는 말은 성경에 직접 나오지는 않지만 지극히 성경적인 용어다. 이 단어가 영어로는 "rapture"인데, 라틴어 "rapto"(랍토)에서 유래했고 "무엇을 멀리 옮기거나 재빨리 옮겨 버린 상태"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 때에 성도들이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는 것은 주님의 강제적인 힘에 의해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사건이다. 주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성도들을 환란 전에 안전한 장소로 옮기는 일은 이치에도 맞는 일이다. 사랑하는 신부를 사지(死地)에 내버려 두는 신랑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어 보면 휴거는 세 번에 걸쳐 일어남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바대로 이미 한 번의 휴거가 A.D. 30년경에 일어났다. 마태복음 27장에 기록된 구약 성도들의 휴거가 그것이다. 『그런데, 보라,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고 땅이 흔들리며, 바위들이 갈라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잠들었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일어났으며 주께서 부활하신 후에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으로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더라』(마 27:51-53). 이 말씀은 신약성경 가운데 가장 어려운 부분에 속한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신약 성도들의 휴거가 제시되기 전에 일어난 전대미문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바위들이 갈라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잠들었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일어났으며』라는 말씀은 실로 예사로운 진술이 아니다. "잠들었던"이라는 말은 죽은 상태를 의미하기에, 이 말씀은 죽었던 많은 수의 구약 성도들의 몸이 삽시간에 부활했음을 전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 성도들이 주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해 셋째 하늘로 옮겨졌기 때문에, 이를 두고 흔히 구약 성도들의 휴거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두 번의 휴거가 예언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약 성도들의 휴거와 환란 성도들의 휴거가 그것이다. 신약 성도들의 휴거는 고린도전서 15장, 데살로니가전서 4장, 솔로몬의 노래 2장 등에 기록되어 있다. 그중 한 곳만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나서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보다시피 이 말씀은 휴거의 상황과 순서를 일목요연하게 보여 준다. 아울러 "하나님의 나팔 소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는 음성으로, 요한계시록의 조명에 따르면 그것은 『이리 올라오라.』(계 4:1)는 음성이다. 이 음성을 듣는 순간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이어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간다는 것이, 이른바 환란 전에 신약 성도들에게 일어날 휴거의 전말(顚末)이다.

끝으로 환란 성도들의 휴거는 신약 성도들의 휴거가 있은 후 약 7년 뒤에 일어나는 마지막 휴거다. 『그때 장로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여 나에게 말하기를 "흰 옷을 입은 이 사람들이 누구며, 어디서 왔느냐?" 하기에 내가 그에게 말씀드리기를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들은 대환란에서 나온 사람들이며 자기들의 옷을 씻어 어린양의 피로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으며 그의 성전에서 그를 밤낮 섬기고, 보좌에 앉으신 분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리라』(계 7:13-15). 여기에 나오는 흰 옷 입은 사람들이 대환란 끝에 휴거된 순교자들, 곧 환란 성도들이다. 신약 성도의 구원은 오직 믿음에 의해 얻을 수 있지만, 환란 성도의 구원은 구약 성도처럼 믿음에 행위가 수반되어야 얻을 수 있다. 인용된 말씀에서 보듯 그들의 옷은 어린양의 피로 희게 되었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이것은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았거나 어린양의 피로 씻겼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들이 그들의 "옷을 씻어서" 어린양의 피로 희게 했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들은 "행위로써" 자신의 믿음을 뒷받침한 사람들이며 대환란 끝에 이삭줍기 형태로 휴거된 환란 성도들인 것이다.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은 이 환란 성도들의 휴거에 대해 대체로 무지하다. 그들은 고린도전서와 데살로니가전서에 나오는 휴거를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환란 성도들의 휴거와 동일한 것으로 혼동한다. 그래서 그들은 휴거라고 하면 환란 "전" 휴거는 없고 으레 환란 "후" 휴거만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5,6년 전쯤 목포에 사는 구원파 신도 한 사람이 우리 교회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마침 이튿날이 주일이었는지라 휴거에 대한 설교를 하면서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환란 전에 휴거된다고 말했더니, 며칠 후 장거리 전화로 환란 전 휴거가 대체 성경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 왔었다. 그들 역시 여느 기독교인들처럼 성도가 환란을 통과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전국 곳곳에서 논밭을 사들이고 농장을 만들어 대환란 때를 대비해 왔다. 이것은 일종의 "집단적 미혹"이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가 환란을 통과하는지"에 대한 혼란은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을 구별하지 못하는 데서 대부분 기인한다. 공중 재림은 말 그대로 주님께서 대환란 전에 자신의 신부인 신약 성도들을 "데리러" 오시는 사건이고, 지상 재림은 주님께서 셋째 하늘로부터 성도들과 "함께" 지구로 내려오시는 사건이다. 여기서 "환란 전 휴거냐, 환란 후 휴거냐" 하는 문제는 자연스럽게 가닥이 잡힌다. 신약 성도들이 주님과 함께 지상으로 재림하자면 그 전에 주님께로 휴거되는 일이 선행되어야만 하고, 이어서 『그리스도의 심판석』(고후 5:10)과 『어린양의 혼인식』(계 19:7)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구도에서 볼 때 환란 말미에 휴거되는 사람들은 결코 그리스도의 신부가 아니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된 그들』(계 19:9)에 해당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신약 성도가 대환란과 같은 『다가올 진노』를 통과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는 우리가 그 『다가올 진노로부터 우리를 구해 내신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오시는 것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살전 1:10). 이에 성경은 신비스럽게도 여러 모형적인 가르침을 통해 이방인 신부인 교회가 환란 전에 휴거되어야 함을 보여 주고 있다. 예를 들면 먼저 그리스도의 가장 대표적 모형인 요셉은 형들에게 버림받은 후 이집트에서 총리의 자리에 올라 기근(대환란의 모형)이 닥치기 전에 이방인 신부인 아스낫(교회의 모형)과 결혼했다. 다음으로 모세도 그리스도의 충실한 모형인데, 그는 형제들인 유대인들에게 배척받은 후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파라오로부터 시련(대환란의 모형)을 겪기 전에 이방인 신부 십포라(교회의 모형)를 아내로 맞이했다. 끝으로 노아의 증조부 에녹 역시 휴거될 신약 성도의 틀림없는 모형이다. 그는 대환란의 모형인 대홍수 이전에 휴거되었다(창 5:24).

해를 거듭할수록 그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아무쪼록 이 글을 읽는 사람 모두가 빛의 자녀(살전 5:5)가 되어 놀랍고 복된 휴거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이리 올라오라 부르실 때

1

나팔 소리 울리듯 우렁찬 음성으로

이리 올라오라 주께서 부르실 때

오실 이 기다리다 약속 안에 잠든 성도

다시는 썩지 않을 몸으로 일어나리

2

나팔 소리 울리듯 우렁찬 음성으로

이리 올라오라 주께서 부르실 때

날마다 오실 이를 기다리던 우리들도

영원히 죽지 않을 몸으로 변화되리

3

나팔 소리 울리듯 우렁찬 음성으로

이리 올라오라 주께서 부르실 때

옛 성도 뒤를 따라 구름 위로 솟구치리

못 자국 그 손 그 발 만왕의 왕 뵈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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