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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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약속과 아름다운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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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8년 04월호>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 보는 것처럼 여기 "누구든지"라는 말에서 칼빈주의자들은 발붙일 곳을 잃어버린다. 택함받은 자가 아니라, 말 그대로『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라고 선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요 3:16)라는 말씀이나,『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라는 말씀에서도 잘 뒷받침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라는 말씀이나,『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사람 안에서 온전해지니』(요일 2:5)라는 말씀을 보아도 역시 택함받은 자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이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라』(롬 10:9,10). 신약의 구원 체계를 가장 일목요연하게 천명하고 있는 놀라운 말씀이다. 창세전에 택함받았다면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할 필요도,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믿을 필요도 없다. 그냥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창세전에 택함을 받았으므로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를 필요도, 굳이 입으로 고백할 필요 역시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에는 누구누구는 창세전에 택함을 받았고, 누구누구는 창세전에 택함을 받지 못했다는 하등의 제약이 없기에 말 그대로 누구든지 그분을 시인하고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오직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함으로써 구원은 아주 쉽게 이루어진다. 굳이 구원을 받기 위해 새벽기도회를 나가거나 방언을 받기 위해 부흥회에 참석하는 수고를 할 이유가 없다.

입은 마음의 출구이다. 따라서 입은 마음의 상태를 드러낸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은, 그 대상을 어떠하다고 여기면서 전폭적으로 신뢰한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믿는다"(believe)고 하면서 자신의 행위에 신뢰를 둔다면 그것은 주님을 마음으로 믿는 것, 곧 "신뢰하는"(trust) 것이 아니다. 이런 믿음은 종교성에서 나온 거짓 믿음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것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입으로 하는 고백은 마음으로 믿을 때 드러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므로 입의 고백이 반드시 믿음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벙어리는 입으로 고백하지 못하지만 마음으로만 믿고도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 보면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고는 싶은데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여 머뭇거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예배 시간에 초청을 받으면 역시 옆 사람을 의식하여 손을 들지 못하거나 앞으로 선뜻 나오기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부끄러움에서 비롯된 태도다. 그러나 성경은『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롬 10:11)라고 말씀한다. 진정으로 큰 부끄러움은 믿을 기회를 놓쳐 지옥에 떨어지는 일이지, 결코 복음에 순종하여 구원받는 일이 아닌 것이다. 갓난아기가 남의 시선이 부끄러워 자신의 배고픔을 참고 잠잠히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주위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더라도 갓난아기는 엄마가 젖꼭지를 제 입에 물려 줄 때까지 두 발을 바동거리며 운다. 이런 솔직하고도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구원에 이르는 첩경인 것이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 이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이다. 누구는 구원받고 누구는 구원받지 못하고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위대한 약속이다. 이 말씀은 로마서 10:9,10의『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나『입으로 고백하여』라는 대목과 맥을 같이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들로 인해 대신 죽으셨고, 장사되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바로 그분을 마음으로 믿고 구주로 영접하려고 그분의 이름을 입으로 발설하는 순간, 우리의 영이 살아남과 동시에 혼이 구원받는다. 우리가 구령자를 따라 "위대하신 하나님"이라고 부를 때, 이 부름은 마음으로 믿는 믿음의 고백이자 구원의 증거이다. 설령 입 밖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마음으로 그분의 이름을 불렀더라도 그 순간 우리의 구원은 이뤄진 것이다.

『파송되지 아니하였는데 어찌 전파하리요?』(롬 10:15) 이것은 "보냄"(파송)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받던 날, 우리에게 와서 복음을 전한 형제나 자매는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려고 파송하신 사람이라는 말이다. 우주를 창조하시고 우리의 죄들을 제거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어 십자가에 죽게 하신 그 위대한 하나님께서 벌레만도 못한 나를 구원하시려고 복음 전파자를 파송하셨다니, 이 얼마나 고맙고 황송한 일이란 말인가!

구원받고 그리스도인이 되면 우리는 너나없이 복음 전파자가 된다.『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과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겨 주신 것이라.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한 대사들로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신 것같이 우리도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너희에게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해하라』(고후 5:19,20). 여기서 보다시피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한 대사들로 일하게 하셨다. 아울러 이 대사들에게 맡기신 임무가 하나님의 화해의 말씀을 온 세상에 전하는 일이라고 천명하신다.

그뿐이 아니다.『화평의 복음을 전하며 좋은 일들의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자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롬 10:15)라는 말씀에서 보듯, 우리가 복음 전파를 위하여 동분서주(東奔西走)할 때 주님께서는 그러한 우리의 발을 아름답다고 하신다. 얼마나 많이 걸었던지 온통 발이 부르트고 땀과 흙으로 얼룩져 있는데도 주님께서는 그 발을 높이 인정하시는 것이다. 에베소서에는『화평의 복음을 준비한 것으로 너희 발에 신고』(엡 6:15)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발이 어디를 가든지 화평의 복음을 전파할 준비를 하라는 말씀이다. 이에 대해 피터 럭크만 목사는 놀라운 간증을 남겼다. 그는 스케이트장에서, 식당에서, 자동차 전용 극장에서, 테니스 코트에서, 이발소에서, 당구장에서, 한번은 교통사고 후 찌그러진 차 안에서도 복음을 전파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는 언제 어디서든 전천후로 사용 가능한 "화평의 복음"을 두 발에 단단히 장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땅에 5만 6천 개의 교회가 있다고 하지만, 그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고대하며 거리 설교를 하고 혼들을 구령하는 교회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일찍이 주님께서는『인자가 올 때 그가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눅 18:8)라고 하셨는데, 지금이야말로 그때가 훨씬 가깝다는 느낌을 더욱 받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세상이 어두울수록 더욱 깨어 있으라!

인간의 모습 입고 세상까지 오셔서

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과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겨 주신 것이라. - 고린도후서 5:19 -

1

인간의 모습 입고 세상까지 오셔서

나의 죄 제거하신 크신 분이 계시네

수많은 사람 중에 벌레 같은 날 위해

죽어야 마땅한 죄들 감당하신 주 예수

후렴

밤바다 험악하다 내 어찌 낙담할까

새벽 바다 물결 위로 주님 다시 오시리

2

어느 날 북적이는 거리를 지나갈 때

내 맘에 천둥소리 들려준 사람 있네

나라와 나라 사이 파견하는 대사를

미천한 나에게까지 파송하신 주 예수

3

흑암에 묻혀 있는 혼들을 이겨오라

나 또한 세상으로 보내신 분이 있네

인간의 말이 아닌 왕의 법 손에 들려

고귀한 화해의 직분 맡겨주신 주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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