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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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으로 발돋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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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8년 02월호>

교인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발돋움하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이 일에는 무엇보다도 바른 성경이 있어야 하고, 바른 말씀에 바탕을 둔 영적 분별력이 아울러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진작부터 『주의 말씀들이 들어가면 빛을 주며 그것이 우매한 자에게 명철을 주나이다.』(시 119:130)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주의 말씀들"이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바른 말씀을 지칭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고, 삭제되고 변개된 개역성경이 너무 혼미해서 인간의 마음에 빛을 줄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따라서 개신교회들에서 형식적인 교인으로 머물러 있는 한, 틀린 교리를 눈치채기도 어렵거니와, 더더구나 영적 분별력을 가진다는 것은 요원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인간적인 열성을 참된 믿음과 헌신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심전력으로 신앙생활을 하는데, "설마하니 하나님께서 나를 어여쁘게 안 보시겠느냐"라는 심리가 바로 그것이다.

열여덟 살이 되었을 무렵, 교회 목사가 새벽기도회에 출석하는 성도가 신앙이 좋은 성도라는 설교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설교를 들은 후 좀 더 잘 믿어 보겠다는 생각에 "의지" 하나로 한동안 새벽기도회에 나갔었다. 그러나 워낙 잠이 많은 체질이라 두어 달 후에는 그 일을 그만두고 말았다. 훗날 진리를 알고 나서 들은바, 기독교의 종주국인 미국에서는 새벽기도회가 없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새벽기도회는 길선주 목사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는데, 불교에서 새벽예불을 하는 것에 착안하여 그가 창안한 것으로서, 이른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인간적 열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우리가 진리를 거슬러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해서만 할 수 있느니라.』(고후 13:8)라는 말씀에 비추어 볼 때, 그리스도인이 새벽기도회로 모이는 것은 명백히 비성경적인 일이다. 일찍이 예수님께서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요 14:6)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결혼 이후 경상남도 진영에서 교사로 잠시 정착했을 때의 일이다. 그곳의 어느 교회에 출석했었는데, 마침 세례를 주는 일정이 잡혀 있는 관계로 아이에게 유아세례를 받게 할 사람은 신청하라는 광고가 있었다. 우리 부부는 그때 막 첫아들을 얻어서 애지중지하던 참이었는데, 귀하디 귀한 아들을 주님께 바친다는 순박한 생각 하나로 유아세례를 받게 했다. 목사가 그릇에 담긴 물을 손가락으로 찍어 아이의 머리에 바르면서 "하나님의 아들 OOO에게, 성부 성자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하고 엄숙한 선언을 했을 때, 우리 부부는 정말이지 아들을 주님께 드리기라도 한 듯 매우 흐뭇하고 기쁜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 『킹제임스성경신학교』에 입학하여 반카톨릭 신약 교회사를 공부하며 알게 된 것은, 개역성경의 세례는 틀렸고 침례가 성경적인 용어라는 사실이었다. 아울러 인간적 의식인 유아세례는 사탄적인 가르침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세례를 받지 못한 유아들은 지옥에 간다."라는 교리를 만들어 낸 자는 다름 아닌 아우렐리우스 어거스틴(A.D. 354-430)이었다. 그는 그의 생애 동안 유아세례에 반대하는 수백 명의 그리스도인들을 살해하는 데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으며, 그의 사후에도 수십만 명이 살해된 일에 대해 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의 문을 닫아 버린 장본인인데, 카톨릭을 통해 물 뿌림을 받아야만 거듭날 수 있다고 가르침으로써 수많은 죄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게 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개신교회들은 그런 진실을 깨닫지 못한 채 로마카톨릭의 인간적인 전통을 따라 세례라는 미망에 사로잡혀 여전히 유아세례를 주고 있거니와, 아들로 하여금 유아세례를 받도록 한 우리 부부의 무지에 지금도 새삼 얼굴이 화끈거린다.

어디 새벽기도회와 유아세례뿐이겠는가? 고향 마을의 한 장로교회에 다니던 어린 시절, 12월만 되면 크리스마스 때 공연할 연극을 연습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12월 25일 이른 새벽에는 "새벽 송"이라 해서 목사와 제직들이 교우들의 집을 돌면서 간단한 찬송과 기도를 해 주곤 했는데, 나 역시 크리스마스이브에 교회 집사의 집에서 밤샘하고 목사를 따라 새벽 송을 돌았던 기억이 아련히 남아 있다. 물론 그때는 크리스마스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날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에 그것을 당연한 일로만 여겼을 뿐, 거기에 거대한 마귀 집단인 카톨릭의 거짓이 개입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물론 우리 주님께서 탄생하신 날은 결코 12월이 아니었다. 이는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성경이 증명해 주는 사실이다. 『그때 그 고을에 목자들이 있었는데 들에서 묵으면서 밤에 양떼를 지키더라... 그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두려워 말라. 보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알림이니 이것은 모든 백성을 위한 것이라. 이는 오늘 다윗의 성읍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음이니, 그분은 주이신 그리스도시니라』(눅 2:8,10,11). 당시에 목자들이 들에서 묵고 있었다는 사실은 아직 겨울이 오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크리스마스는 성경적인 교회 의식도, 경배도 아니다. 이날은 태양신의 출생을 기념하는 날로서 가증한 로마카톨릭의 명절에 불과하다. 사도행전이 기록된 A.D. 65년 무렵까지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한 적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354년경 카톨릭의 주교 리베리우스가 태양신의 출생일인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정하여 지키기 시작했고, 급기야 394년부터는 카톨릭 전체가 이날을 연례행사로 지켜 오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크리스마스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시점은 이스라엘의 일곱 가지 절기 중에서 일곱 번째 달, 곧 9월(현대력)에 있는 "장막절"과 연관되어 있다. 혹자는 이 기간 중에 어느 한 날이라도 정해서 주님의 탄생일을 기념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사실 이것은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간단한 문제다. 이에 대해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는지"만 살펴보면 답은 저절로 나온다. 『너희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분이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이라』(고전 11:26). 보는 것처럼, 성경은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라고 했지, 그 어디에서도 "탄생"을 기념하라고 한 부분은 없는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여전히 개신교회에 몸담고 있는가? 앞서 열거한 "세 가지" 비성경적인 전통들에 아직도 연루되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로마카톨릭 편에 서 있는 구원받지 않은 교인임이 분명하다. 『두 사람이 동의하지 않고 함께 걸을 수 있겠느냐?』(암 3:3)라는 말씀이 그 사실을 증명해 준다.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이 오기 전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써 그리스도인으로 발돋움해야 한다. 지금까지 가고 있던 종교적이고 형식적인 교인의 길에서 과감히 돌이킬 수 있는 큰 용기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어두운 세상에서 갈 곳 몰라 헤맬 때

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셔서 그것들로 나를 인도하게 하시며 주의 거룩한 산과 주의 장막들로 나를 데려가게 하소서.- 시편 43:3 -

1

어두운 세상에서 갈 곳 몰라 헤맬 때

내 깊은 마음속에 한 기도가 있었네

진리의 바른 길로 날 인도해 달라고

깊은 밤 홀로 잠 깨어 기도한 적 있었네

2

사방을 둘러봐도 불빛 한 점 없는 밤

남몰래 마음속에 한 간구가 있었네

내 삶의 참 의미를 깨닫게 해 달라고

숱한 밤 홀로 잠 깨어 간구한 적 있었네

3

주님은 내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어느 날 선한 길로 나를 인도하셨네

내 가슴 많은 의문 일일이 답하시며

참 빛과 진리의 길로 나를 인도하셨네

4

벌레보다 못한 날 그 피로 구속하사

주님은 천년왕국 상속자 삼으셨네

열두 보석 황금길 그 복락 끝이 없는

영원한 새 예루살렘 시민권도 주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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