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영적 생활 분류

성도들에게 주어진 특권을 경시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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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11월호>

야곱의 쌍둥이 형 에서는 자신의 동생보다 조금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장자로서의 엄청난 특권을 누릴 수 있었던 사람이다. 구약에서 "장자권"을 가진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특권이 제공되었는데, 아버지의 유산에서 두 분깃을 취할 수 있었고(신 21:15-17), 아브라함의 복을 물려받을 수 있었으며(창 12:1-4), 가족의 머리로서 축복하기도 하고 예언하는 선지자로서의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창 20:7; 27:28,29; 48:8-22; 49:1-33; 50:24,25). 심지어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속할 수도 있었다(대상 5:1,2). 그러나 에서는 이러한 특권들 중 단 한 가지도 향유하지 못했다. 이는 그가 자신 안에 가득했던 육신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 버렸기 때문이다. 창세기 25장에서 에서가 야곱과 주고받은 경솔하기 짝 없는 이 육신적인 거래는 그야말로 순간의 제단 위에 영원한 것을 희생시킨 본보기가 되고 말았다. 성경은 에서의 그와 같은 경솔한 행동의 원인이 "장자권을 경시한 것"에 있었다고 말씀한다(창 25:34).

히브리서에서는 한 그릇 음식을 위해 장자권을 팔아넘긴 에서를 『속된 자』라 부르고 있다(히 12:16). "속된"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profane"은 "성당의 문 밖"을 의미하는 중세 라틴어 "프로파에누스"에서 유래한 말인데, 그것은 자기 몸의 절반은 하나님께, 나머지 절반은 세상을 향해 있는 이중적인 모습을 의미한다. 세상이라는 들판에서 솜씨 좋은 사냥꾼으로 활약했지만 자신의 육신적인 만족을 위해 엄청난 특권을 팔아 버린 에서의 모습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오늘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도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고, 주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특권을 저버리며 살아가는 "속된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 역시 에서가 자신의 장자권을 경시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성도로서 누려야 할 특권을 경시하고 있는 것이다.

"특권"이란, 그에 대한 권리를 가진 사람 외에는 그것을 누리거나 향유할 수 없는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권리를 뜻한다. 특권을 악의적으로 남용한다든지, 부당한 방법으로 탈취하여 부정한 권리를 행사한다든지 등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그 특권을 지닌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정당한 권리를 감사함으로 향유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특권은 무엇인가? 많은 것들을 열거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세 가지만 제시할 것이다.

1. 우선 그리스도인에게는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듣기 원하신다.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가운데 믿음으로 구하게 되면, 주님께서는 성도가 원하는 간절한 간구에 그분의 귀를 여시고 기꺼이 응답하시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의 목전에 기쁨이 되는 일들을 행함이라』(요일 3:2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기도할 때에 바라는 것들은 무엇이나 받은 것으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 것이 되리라』(막 11:24). 믿음으로 주님께 간구하는 기도는 주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에게 허락하신 특권 중의 특권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17에서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고 말씀하는데, 다시 말해 하나님께 항상 밀착해 있으면서 그 특권을 쉬지 말고 사용하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소이지만, 이 교회 시대 마지막 때에는 마지못해 건성으로 기도하거나 아예 기도하는 것조차 고의적으로 잊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허다하다. 그렇기에 영적인 능력을 상실한 채 무기력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오스왈드 스미스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이 '약골'로 살고 있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기도는 하나님 앞에 무작정하고 드리는 것이 아니라 질서가 있고 합당하게 드려야 한다. 자신의 정욕에다 쓰려고 잘못 구하는 기도는(약 4:3)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을 남용하거나 오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동시에 우리의 기도는 끈질겨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한밤중에 찾아와 빵을 달라고 끈질기게 문을 두드린 친구나(눅 11:5-8), 원한을 갚아 달라며 불의한 재판관을 귀찮게 했던 과부의(눅 18:2-5) 이야기를 통해 그분의 자녀들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끈질기게 나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점들을 제쳐 두고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는 불평만 늘어놓으면서 기도하기를 중단하는 사람은 자신의 특권을 저버린 매우 비참한 사람이다. 성도가 기도를 쉬거나 게을리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서도 기도하지 않는 것은 자녀의 기도를 들어주시겠다는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을 거절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기도의 특권을 경시하고 살아가는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고, 결국 자신의 육신만을 의지한 채 세상을 살아 보려는 어리석은 불신의 태도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2. 한 통계에 의하면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1초에 약 3명씩 죽는다고 한다. 오늘날 세계 인구를 약 70억 명으로 추산할 때, 하루 동안에 그중 26만 명 정도가 죽는 것이며, 한 달이면 약 780만 명의 혼이, 일 년이면 약 1억 명에 달하는 혼이 지옥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수치상으로만 봐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옥의 대기자들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으며, 또한 지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유는 한 가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런 죄인들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강권하고 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대비하라』(딤후 4:2).

"복음 전파"는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복음의 능력을 맛본 그리스도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위대한 특권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특권을 신실하게 사용한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풍성하게 보상해 주시는데, 곧 자랑의 면류관으로 해 주시는 것이다(살전 2:19).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함께 자랑의 면류관을 보상받은 그리스도인은 이내 『오 주여, 주께서는 영광과 존귀와 권세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니, 이는 주께서 만물을 창조하셨고,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으며, 또 창조되었기 때문이니이다.』라고 큰 소리로 찬양하면서, 주님께로부터 받은 그 면류관을 다시 그분의 보좌 앞에 기쁨으로 던져 드리게 될 것이다(계 4:10,11).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이 일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복음 전파의 특권을 충실히 향유한 성도만이 동참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생의 가치를 아는 자들로서 세상으로 나가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일은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위대한 특권이며, 동시에 하늘의 시민권을 지닌 자로서 다해야 할 의무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천하보다 귀한 혼을 그리스도께로 신실하게 이겨오는 사람이야말로 하늘에다 썩지 않을 금, 은, 보석 등의 보물들을 쌓아 놓는 현명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 반면에 복음을 부끄러워하여 전파하기를 꺼려하거나 주저하는 자들은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들은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귀한 씨를 가지고 나가서 우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의 단들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라는 말씀에 결코 "아멘!"으로 화답할 수 없으며, 결국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특권을 경시하는 가운데 헛된 일에만 분주하다가 어리석게 인생을 낭비하게 될 것이다.

3.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잠시 거하는 삶을 전부라 생각하지 않고, 장차 다가올 세상과 영원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소망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태도와 방식은 세상 사람들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이렇듯 확실하고 영광스런 미래를 대비하면서 "영원의 관점을 지니고 살아가는 삶" 역시 그리스도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특권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순간을 위해 살지 말고 영원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곳곳에서 말씀하신다. 자신의 특권을 평가 절하했던 에서는 영적인 복을 육신적인 것에 팔아 버린 비참한 사람이었는데, 이는 그가 영원한 것들을 내던지고 눈앞의 현실만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이와 같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고, 죄 가운데 살며, 세상의 향락과 육신의 욕망을 추구함으로써 자신들의 영원한 유익을 팔아먹는 사람들이 즐비하다. 과연 그러한 인생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유익을 줄 수 있겠는가? 다가올 영원한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 과연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말이다.

밥 존스 시니어는 "순간의 제단 위에 영원을 희생제물로 드리지 말라."라는 말을 남겼다. 자신의 죄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썩어져 버릴 이 땅에서의 장밋빛 인생만을 쫓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순간에 지나지 않는 세상의 만족을 잠시나마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게 된다. 그야말로 순간을 위해 영원을 희생해 버린 꼴이다. 또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주님을 위해 살지 않으면, 그 역시 영원에서 주님과 함께 누리게 될 모든 상급과 유업과 영광이 전무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생의 자랑만을 추구하느라 바쁘게 살고 있다면, 그는 세상과 함께 불타 없어질 한순간의 만족을 위해 영원을 희생했던 에서와 같은 사람이 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인생의 매 순간을 영원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상황에 직면한다 해도 끝없는 영원과 찰나적 순간을 맞바꿔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영원"이라는 무한한 시간 개념을 한번 상상해 보라! 참으로 그것은 거듭난 성도들에게 특권으로 주어진 영광스런 "현실"이다. 그렇기에 그 영원을 소망하는 사람들로서 보다 더 크고 높은 안목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고백했던 것처럼, 잠시 동안 죄의 낙을 누리고 육신적인 만족을 누리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정진하는 삶, 순간을 위해 영원을 희생하지 않고 영원을 위해 순간을 기꺼이 불사를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들이나 형식적으로 종교 놀이만 하고 있는 교인들은 결코 그리스도인들이 지닌 특권을 행사하거나 향유할 수 없다. 처음부터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마련하신 특권들을 마음껏 향유하도록 하라.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자기가 지니고 있는 특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은 성경적 지식에 관한 한 게으르거나 열매도 없는 무지한 사람이며, 자신의 특권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것을 향유하지 않는 사람은 성경의 약속을 경시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여, 주님께서 주신 특권을 경시하지 말라!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특권을 향유하면서 구주이신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삶을 살도록 하라!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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