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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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하나님과 영적 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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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11월호>

성령님께서는 삼위일체 가운데 한 분으로 하나님이시며 인격체이시다. 그러나 성령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 중에 실제로는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만 믿을 뿐 성령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즉 성령님이 아버지 하나님이나 아들 하나님과 결코 동등하지 않고, 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성령님을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여기거나, 전기처럼 생명이 없는, 어떤 물리적인 힘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심이라』(요일 5:7). 이 구절은 삼위일체를 가장 확실하게 설명해 주는 말씀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님이 신격의 제3위의 위격이시며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심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이는 우리가 마땅히 기도해야 할 것을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친히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기 때문이라』(롬 8:26). 이 말씀에서는 성령님께서 인격체이심이 확인된다.

성령님에 대한 무지는 특히 가짜 성경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병폐다. 그들이 가진 성경은 구절들이 완전히 삭제되거나 많은 부분이 변개되기도 해서 바른 교리를 확립하려야 할 수가 없다. 성경 해석의 대원칙은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이지만, 구절들 상호 간의 아귀가 맞지 않아 그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목사들은 저마다 은유적(풍유적)인 해석을 일삼음으로 해서 같은 구절을 두고도 백이면 백 사람의 해석이 다르기가 일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진리에 목마른 사람들이 아무리 열심히 경청한다 해도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것이다.

방언 문제만 해도 그렇다. 절대다수가 말씀에 비추어 판단하지 않고 방언이라면 무조건 성령님의 역사라 생각한다. 그래서 어디 부흥회라도 참석해서 저도 모르는 방언이라도 하게 되면 그야말로 자신에게 거룩한 성령님이 임한 줄로 알고 기뻐하면서 틈날 때마다 방언하는 데 열중하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큰 착각이다. 사도행전 2장에서 보듯 방언은 외국어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누군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마귀가 준 가짜 방언임을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데 그러기가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필자의 죽마고우 가운데도, 열아홉 살 때 이웃 마을 부흥회에 참석하여 소위 방언 체험을 하고서는 그것이 자신의 거듭난 체험인 양 굳게 믿었다가 나이 일흔이 넘도록 여전히 미망(迷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친구가 있다. 그의 결정적 병폐 원인은, 자신의 방언 체험이 과연 구원의 경험이 맞는가 하는 문제를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보지 않고 자기 교회 목사의 말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데 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마 15:14). 그가 이 말씀에서 앞의 소경이 그의 목사이고 뒤의 소경이 그 자신인 줄 모를 뿐만 아니라, 구덩이가 바로 지옥 구덩이인 줄도 까맣게 모르고 있다는 사실은 딱하기 그지없다.

성령님에 대한 그릇된 지식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교회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이 사실은 그들이 사용하는 찬송가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짐작건대, 미국의 은사주의자들이 작사, 작곡한 찬송가가 우리나라 은사주의 교회들을 통해 유입되고, 소위 정통이라 자처하는 교단들에서 성령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 없이 자기들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찬송가에 그런 곡들을 무분별하게 수록함으로써 빚어진 현상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이런 일의 폐단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다. 그들이 사용하는 <새찬송가> 184장(<통일찬송가> 173장)에는 "불길 같은 주 성령"이라는 제목의 찬송이 있는데 1절과 후렴 가사만 보면 다음과 같다. 『(1절) 불길 같은 주 성령 간구하는 우리게 / 지금 강림하셔서 영광 보여 주소서 / (후렴) 성령이여 임하사 우리 영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소서 / 기다리는 우리게 불로 불로 충만하게 하소서.』 이 가사를 보면 "불 침례"를 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불길 같은 주 성령"이란 말도 그렇고, "불로 불로 충만하게 하소서"라는 끝부분 역시 그렇다. 이것은 사도행전 2:3의 『거기에 불 같은 모양으로 갈라진 혀들이 나타나 그들 각 사람 위에 머물더니』라는 말씀을 곡해(曲解)한 데서 비롯된 가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말씀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갈라진 혀들"을 직유법으로 표현한 것일 뿐 실제 불이 아니다. 실제 불은 마태복음 3장에 나온다. 『그분은 성령으로 또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시리라. 그분은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철저히 정결케 하시며, 자기의 알곡은 모아서 창고에 들이실 것이나,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로 태우시리라."고 하더라』(마 3:11,12). 여기에 나오는 불은 지옥 불을 의미한다. "불길 같은 주 성령"의 작사자는 심판의 지옥 불을 성령 침례(영적 침례)로 잘못 알고 이 가사를 쓴 것이다. 일찍이 이 나라의 소위 부흥 강사들은 대부분 무지했다. 그들은 강단을 요란하게 치면서 "불 받아라!"라는 말을 외치곤 했는데, 성령이 아닌 지옥 불을 받으라고 외친 격이었으니 실로 끔찍한 무지가 아닐 수 없다.

사도행전 2장의 성령 침례는 유대인의 명절인 오순절에 거기 모여 있는 유대인들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신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교회 시대 2천 년의 기간 중에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들로 태어나게 된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요 1:12). 구원받지 못한 자연인(natural man)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성령님께서 그의 몸 안으로 들어가시는데, 이때 그의 안에서는 놀라운 영적 수술이 행해진다. 『또한 너희가 그의 안에서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그리스도의 할례로 육신의 죄들의 몸을 벗어 버린 것이라』(골 2:11). 이 말씀은 몸속으로 들어오신 성령님에 의해 죽어 있던 영이 살아남과 동시에 서로 밀착하여 붙어 있던 혼과 몸이 각각 분리된다는 의미이다. 또한 분명히 알 것은 이렇게 성도들의 몸 안으로 들어오신 성령님께서는 다시는 몸 밖으로 나가시지 않고 영원히 내주하신다는 사실이다.

성령님께서 부흥회 때 잠시 몸 안에 들어와 머물다가 떠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직 그리스도인의 자격이 없다. 『또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의 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라』(고전 6:19). 성령님의 내주하심과 우리 몸이 곧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는 것은 놀라운 신비다. 그래서 성경은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요, 곧 영광의 소망이라.』(골 1:27)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의 의미는 분명한데, 성령님께서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영원한 생명과 천년왕국은 물론, 영원한 세계의 복과 영광이 두루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아직도 만금보다 더 소중한 이 신비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는가? 그렇다면 부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일을 서두르기 바란다. 하염없이 미루기만 하다가 기회를 놓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의 표본이기 때문이다.

성령 하나님

또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의 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라. - 고린도전서 6:19 -

1

구주이신 예수님 영접했던 날

내 안에 들어오신 성령 하나님

기쁘나 슬프거나 함께 계시네

이 세상 끝 날까지 함께 계시네

2

구주이신 예수님 영접했던 날

내 몸의 주인 되신 성령 하나님

육신을 따라 살면 근심하시네

몸의 행실 죽이면 기뻐하시네

3

구주이신 예수님 영접했던 날

나를 성전 삼으신 성령 하나님

내 몸은 그날부터 내 것 아닐세

내 안에 거하시는 그분 것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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