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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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구령자로 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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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06월호>

유난히 죽을 고비가 많은 인생이었는데, 2003년에 당한 사고는 특히 그러했다. 당시 주일학교 중고등부교사였던 나는 7명가량의 학생들을 봉고차에 태우고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러 가던 중이었는데, 날벼락처럼 트럭 한 대가 다가오더니 우리 차를 들이받았다. 나는 그 충격을 온몸에 그대로 받아 숨을 쉴 수 없었고, 오른쪽 콩팥은 찌그러졌으며 고관절도 허리 뒤쪽으로 튀어나와 피범벅이 되었다. 다행히 다친 건 나 하나뿐이었다. 그 순간 내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나는 구원을 받았던가? 지금 죽으면 지옥에 안 갈 수 있을까?' 나는 스스로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10년이나 교회를 다녔고 소위 권사에 주일학교 부장교사 일까지 도맡아 해 왔지만, 죽음 앞에서는 구원의 확신이 없었다. 그것은 당장 숨이 막히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었다. 그 순간 하나님께 한 번만 기회를 주시라고 기도했고, 주님께서는 병원으로 실려 간 내게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다. 그래서 나는 가장 먼저 형식적으로 알아 왔던 예수님을 진지하게 믿고 영접했다.
입원한 지 한 달 뒤에 하나님께서는 "파격적인" 기회를 한 가지 더 주셨는데, 바른 성경인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만나게 하신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성경대로 믿는 교회에 인도되어 주님을 제대로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이것을 절대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주님께 사랑을 빚진 자로서 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사』(딤후 2:3)로 살아가겠다고 고백했다. 내게 죽음의 공포를 준 사고가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 드려야 할 산 제물이 병들고 다 죽어 가는 몸이면 안 되지 않겠는가! 워낙 크게 몸이 망가진 터라 1년간의 회복기를 가졌고, 매일같이 운동하며 내 몸에 맞는 약초효소를 개발해서 꾸준히 마셨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경기도 전역을 누빌 수 있는 체력으로까지 내 몸을 회복시켜 주셨다. 한편 이때의 후유증으로 장애판정을 받아 이전까지 다녀야 했던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 "이유"가 생겼고,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이동도 훨씬 수월해졌다. 즉 주님께서는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을 뿐 아니라 구령에 필요한 모든 상황도 마련해 주신 것이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혜 속에서 최상의 열매를 주님께 드리는 것이기에, 주님께서 온 세상보다 귀하다고 하신 혼들을 효과적으로 이겨오기 위해 모든 생활을 그 일에 집약시켰다. 우선 매주 3일간, 하루 4시간 정도를 구령하는 시간으로 떼어 놓았고, 그 일정을 한 주의 앞부분에 배치함으로써 비가 오더라도 일정을 조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아 구령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최소화했다. 구령 장소를 선정하는 일에도 지혜가 필요했는데, 같은 시간을 쓰더라도 최대한 많은 혼들을 이겨올 수 있는 사역이 되어야 하므로 공원이나 학교를 끼고 있는 주거 밀집 지역을 장소로 택했다. 낮 12시쯤에 집을 나서서 공원으로 가면 나이 많은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는데, 그분들께 여유롭게 말을 걸며 복음을 전할 수가 있다. 그러다가 1시쯤이 되면 초등학교 근처로 가서 하교하는 저학년 학생들을 상대하고, 2시부터는 우르르 몰려나오는 고학년 학생들을, 3시 무렵에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거 만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하면 구령을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빈틈없이 시간을 사용했을 때 하루에 50-80명가량의 혼들을 이겨올 수 있다. 나이가 많을수록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복음 앞에 완고해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혼의 가치는 나이와 상관이 없지만, 조금이라도 더 순수한 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구령자의 시간을 아끼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수원과 화성을 비롯하여 천안, 병점, 동탄, 평택, 안양, 의왕, 군포, 안산, 시흥, 광명, 용인 등지에서 복음을 전해 왔다.
초창기에 자주했던 실수는 말을 너무 많이 한 것이었는데, 복음을 충분히 설명한답시고 한 사람 당 10분 정도를 할애했다가 결국은 하루 종일 돌아다녀서 얻은 열매가 20명 정도에서 웃돌 뿐이었다. 물론 이것도 소중한 열매들이지만 "효과적인" 구령이 되지는 못했던 것이다. 한번은 주일 설교 중에 "때로는 복음을 20초 내로도 전할 수 있다."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일까 고심하던 차에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신, 이 단순한 복음(고전 15:3,4)을 말하는 데 10초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10-20초까지는 아니지만 복음을 성경적으로 간단하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실전에서 더욱 효과적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복음의 "단순함"으로 무장했더니 열매도 많아졌는데, 최근에는 한 달 평균 700명 이상의 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이겨오고 있다. 간혹 내가 구령한 숫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는데, "나는 그저 성경적으로 단순하게 복음을 전했고, 하나님께서는 구령의 열매들을 통해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 경험하게 해 주셨다."는 것밖에는 그들에게 해 줄 말이 없다!
한번은 용산역 앞에서 구령하고 있을 때였는데, 한 주일학교 교사가 10명의 학생들을 영화관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밝은 얼굴로 다가가 인사를 건네며 "하나님을 믿고 있니?"라고 물었더니, 교회에 다니는 이 학생들은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 기세를 몰아 구원을 점검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들은 많은 교인들이 그러하듯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머리로만 알고 있었고 믿음도 확신도 없이 교회만 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믿고 영접할 것을 촉구했는데, 그 순간 인솔 교사까지 마음이 열려서 총 11명의 혼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받았다. "지식"이 "믿음"으로 바뀐 학생들 안에는 진정한 감사가 있었다. 인사하고 헤어지려는데 옆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듣고 있던 한 아저씨가 "지옥에 안 가는 방법을 알려 주시는 거예요? 저도 알려 주세요!"라고 말했다. 이처럼 복음을 들고 나가면 그 복음은 계속해서 준비된 혼들을 끌어당긴다. 어느 초등학교 앞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학교 앞 건널목에는 학생들의 보행을 돕는 할아버지들이 양편에 서 있었다. 그 앞에서 6명의 학생들을 차례로 구령하자, 그 얘기를 듣던 할아버지가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그렇게 쉽게 풀어서 전합니까?"라고 말하며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복음을 전했더니 기꺼이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런 뒤에는 건너편을 가리키며 "저 할아버지에게도 전해 주세요!"하고 요청했다. 준비된 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가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마귀의 방해도 맹렬했다. 최근 들어서는 경기도 일대 학교 주변에 하교 시간마다 경찰들이 주둔하기 시작했다. 부모들의 극성도 날로 심해졌다. 다툼이 일어나면 전의를 상실하고 시간을 빼앗길 수 있으므로 필요 없는 다툼을 피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작전이 필요했다. 게릴라 전술처럼 치고 빠지는 전술을 반복해야 할 때도 있지만, 사전에 선전포고를 해야 할 때도 있다. 학생들의 보행을 돕는 녹색어머니들이나 경비원들에게 미리 물 한 병씩을 건네며 "저는 멀리 서울에서 왔는데요, 한 시간 동안 복음만 전하고 갈 겁니다. 멀리서 왔기 때문에 교회로 끌고 가지 않아요. 여기 보이는 데서만 할 테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안심시키면 방해가 줄어든다. 가능한 한 화목을 유지하면(롬 12:18) 더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 기회가 생긴다. 언젠가 한 노숙자가 다가와 다짜고짜 먹을 것은 왜 안 주냐고 화를 냈다. 나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제가 무슨 잘못을 했지요? 제가 어떻게 해 주길 원하세요?"라고 묻자, 금세 김밥 한 줄만 사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그거라면 얼마든지요. 대신 한 시간 동안 방해하지 말고 기다리세요. 그러면 제가 꼭 사 드릴게요."라고 응대했더니 그 노숙자는 끝날 때까지 얌전한 고양이처럼 제자리를 지키고 기다렸다. 나는 김밥 두 줄을 사다 주었고 끝내 그 노숙자도 복음으로 이겨올 수 있었다.
복음은 믿는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담대하게 전파할 헌신된 구령자를 찾으신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믿는다면 마땅히 구령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는 최상의 삶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전장에서 직면하게 될 실제적인 고난도 각오하고 있다. 종종 어려움이 닥칠 때면 앞만 보고 달리도록 눈가리개를 착용시킨 경주마들을 생각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말들은 옆을 기웃거리거나 뒤를 돌아보지 않게 되어 경주에만 집중하게 된다. 나 역시 구령을 중단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든지 단절하려고 한다. 그것이 어떤 환경이라면 제거해 주시라고 기도하고, 누군가와의 만남이라면 그 악한 교제를 단호히 끊는다. 오직 고귀한 부르심의 상을 받을 때까지 막판 전속력을 내듯 앞만 보며 질주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래서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하늘의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마지막 호흡이 다하는 순간까지 내달릴 수 있는 시간과 은혜와 능력과 열정과 육체의 힘을 주시라고 기도하는 바이다. BB

구령이야기 51 / 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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