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구령이야기 분류

영원히 후회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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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1년 07월호>

“니나 잘해라. 니 믿음 다리고 내 믿음 다린 기라. 그러이 니 믿음대로 니 살고, 내 믿음대로 내 살마 되는 기다. 고마 됐다... 그런데 니 술 끊은 거 하나는 참 자알했다. 다시는 술 마시지 마라. 입에 대지도 마라.”
아버지는 복음을 전할 때마다 그런 식으로 대답하셨다.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대답인지도 몰랐다. 70년 동안 성당에 다니셨으니, 복음이라면 마이동풍 아니라 석마(石馬)이동풍이라 해도 이상할 건 하나도 없을 것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하는 것은 바로 나였다. 나 자신도 40년 동안이나 카톨릭이 진리인 줄로 믿고 성당에 다닌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복음을 받아들인다면(물론 혼의 가치란 모두 평등한 것이지만) 하늘의 천사들이 아마 다른 사람의 70배 정도는 더 기뻐할 것이다. 내 생각에 그렇다는 말이다.

토요일 구령 모임에 나가서도 나는 카톨릭에 몸담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특히 더 신경을 써서 복음을 전하는 편이다. 더 애착이 간다. 더 안타깝고 더 안쓰럽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아야 하지만, 카톨릭에 빠져 있는 사람을 만나면 더 마음이 갈 수밖에 없다. 나 자신이 40년 동안이나 그들에게 맹종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를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또 내 아버지이기에 나는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했다.

그러나 얼마 전에 가까운 친척의 결혼식이 있을 것이란 소식이 들려 왔다. 나는 그때 문득 아버지를 내 차로 모시고 가면서 이송오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들려드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늘 그렇지만, 걸림돌은 있었다. 내가 외아들이라면 아버지를 내 차로 모셔오는 것이 당연지사겠지만, 우리 형제는 모두 4형제였다. 서울 큰 형님이 모시러 가는 것이 상례였고, 서울 큰 형님이 안되면 대구 형님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이 나였다. 그러니 생각은 좋았지만 실현될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가까이 있는 교회의 형제들에게도 연락을 해서 기도 부탁을 했다. 아버지가 내 차에 타시게 해 달라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실현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것이 급선무였다. 일단 차에 올라타야 설교를 듣든 부흥회를 하든 할 것이었기에.

드디어 결혼식 당일이 되었다. 아침에 성주에서 느닷없는 전화가 걸려 왔다. 카랑카랑한 아버지 목소리였다. “니가 데리러 온나. 서울 너그 큰 히는(兄은) 무신 차를 타고 오던동 두 명밖에 몬 타는 차라 카고, 대구 너그 히는 일이 있어가 오늘 몬 온단다. 니밖에 엄따. 퍼뜩 온나!”
너무나 감사하며 나는 다시 한번 무기 점검을 하고(테이프가 잘 있나 확인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결혼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처음 떠오른 화제는 술이었다. 결혼식에서 어느 목사가 주례를 섰는데 주례 중에 지나가는 말로 술에 관한 언급을 했던 것이었다.
“술 마시지 마소. 결혼식 전날 술이 떡이 되도록 퍼마싰다가 결혼식 당일날 식도 몬 올린 신랑을 내가 봤다 아잉교. 그러이 지발 술 마시지 마이소. 이기 내 부탁입니다. 신랑, 내 말 알아듣겠지요?...”
이 인상 깊은 주례사의 한 대목이 차 안에서 화제로 발돋움했다. 우리 부자는 술이라면 다소 할 말이 있었다. 아버지는 예순에 술을 끊고, 나는 나이 마흔에 술을 끊었으므로, 술이 얼마나 지독한 놈인가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신부(司祭)들이 참말로 앞에 서가 지도를 하는 사람들인데...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참 문제라. 문제도 여간 문제가 아이라.” 아버지가 장탄식을 섞어 말했다.
“술 마시는 기 죄고, 죄는 대가가 있는 거 아입니까. 죄가 얼마나 무섭은 기든동 사람이 그 죄 때문에 지옥에 가는 거 아입니까? 죄를 가볍게 생각하는 그것도 무섭은 죄 아이겠심니꺼.” 그러면서 스을쩍 이야기를 꺼냈다. (뜨거운 침을 한번 꿀떡 삼킨 뒤에 말이다.)
“아부지 설교 한번 들어 보실랍니꺼? 우리 서울 교회 목사님 설굔데요, 가는 길에 심심하기도 할 낀데 우리 설교나 한번 들어봅시더.”
“뭐할라꼬. 고마 댔다. 집안 이바구나(이야기나) 좀 하자...”

처음에는 그렇게 마다하시던 아버지도 나중에 거의 마지못해 동의를 하셨다.
“자 테이프 돌아갑니다.” 이송오 목사님의 <영원히 후회하지 않으려면>이라는 제목의 설교가 시작됐다. 설교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저녁에 씻고 자고, 다음날 또 일어나서 뼈빠지게 일하다가 또 저녁에 씻고 자고, 그렇게 아둥바둥 살다가 죽어선 또 지옥에 가면... 이 얼마나 비참한 인생입니까?”
아버지는 이 부분에서 자신도 모르게 내뱉는 말처럼, “저거 내 이야기네!”하고 말했다. 아버지는 일흔 아홉이 되신 지금까지 고향 성주에서 참외 농사를 짓고 계신다. 그러니 그 하루 종일 땀흘려 일하고 저녁에 씻고 자고, 또 다음날 일어나서는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은 바로 영락 없는 아버지의 일과였다. 평소 아버지는 그렇게 정정하게 사시면서 자신이 손수 일구는 농사일과 그 열매를 자랑스러워 하시며 자식들 앞에서도 항상 당당하신 분이다. 그리고 살아서 큰 죄를 지은 적이 없으니 죽어서는 연옥이나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굳건히 지키며 사시는 분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그토록 완강히 지키신 것도 ‘하루 종일 일하고 저녁에 씻고 자고, 다음날 또 일어나서 뼈빠지게 일하다가 또 저녁에 씻고 자는’ 생활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설교가 끝나고 나서 나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여쭈었다.
“아부지 설교에서 뭐라꼬 캅디까?”
“설교에서 뭐라고 카더냐꼬? 니가 이단에 빠져 있으니 빨리 성당으로 델꼬오라고 설교 하더라.” 그러나 그렇게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이미 예전 같은 진심이 담겨 있지 않았다.

잠시 후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그리고 그분의 십자가 보혈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때문에 돌아가셨고, 오직 그 사실을 받아들임으로 구원을 받는 거거든예. 예수님밖에는 구주가 없는 깁니다. 아부지 그 사실을 믿겠습니까? 그걸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마 되는 깁니다.”
“그래, 그래. 그래야겠다.”
집에 와서 저녁을 드시는 아버지의 얼굴에 예전엔 볼 수 없었던 밝은 기색이 깃들어 있었다.

『주는 나의 힘이시요, 나의 방패시라.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받았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즐거워하니 내가 내 노래로 그를 찬양하리라』(시 28:7).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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