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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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실한 구령자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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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7년 02월호>

매년 1,2월이 되면 어김없이 치러지는 행사가 있다. 바로 졸업식과 대입 합격자 발표이다. 많은 사람들이 입학을 하고 또 졸업을 한다. 이 가운데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거나 사역을 하기 원하여 기도하면서 신학교에 지원한 그리스도인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순수한 열정을 품고 “신학”이라는 학문을 접하지만, 점차 성경에 대한 신뢰감이나 영혼에 대한 구령의 열정은 사라지고, 오히려 특정 교단 신학교의 교리, 즉 교회의 전통에 얽매이게 되어 자신들의 교단 교리를 옹호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가끔 우리는 농담 삼아 신학교 입학 때는 목사의 믿음, 2학년 때는 장로의 믿음, 3학년 때는 권사의 믿음, 4학년 때는 집사의 믿음, 졸업을 하게 될 때는 믿음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를 지경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학교 생활과 공부와 직장 그리고 교회 봉사로 인해 개인적인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학생들의 바쁜 모습을 풍자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이면에 숨어 있는 현실을 안다면 왜 이러한 말들이 생기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신학교의 지원 자격부터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듯하다.
일반적으로 신학대학의 지원자격은 ① 고등학교 졸업(예정)자 및 동등 이상의 학력소지자, ② ①항의 해당자로 세레교인인 자, 단, 신학과 지원자는 본 대학에 소속된 교단의 노회에서 추천을 받은 자로 정해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하는 그리스도인의 자격은 과연 무엇인가? 고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자로서, 진정한 믿음의 고백 없이 세례만 받고 교단의 교리를 옹호하기 위해 노회에서 추천받은 사람들을 교육시켜 배출하면 하나님의 일을 할 자격이 갖추어지는 것인가? 주님의 일에 진정 필요한 사람은 모두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열정과 성경이 최종권위라는 사실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는 거듭난 사람들이었다. 어부였던 베드로, 목동이었던 다윗, 목수의 아들이었던 우리 주 예수님, 모두 고등학교 졸업장 같은 것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신학교에 개설되는 과목들은 성경 자체를 가르치기보다는 철학사, 논리학, 상담학, 심리학, 헌법 등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교육을 “충실히” 받고 목회에 임하는 목자들의 “열매들”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그들에게 “구원 받으셨습니까?” 하고 물으면 대부분 이렇게 답한다. “모태신앙입니다.” “세례 받았어요.” “교회 다녀요.” “구원 받았냐구요? 자기가 구원 받았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답변을 듣게 될 때마다 그들의 신앙뿐 아니라 그들의 양육을 맡은 목자의 신앙과 믿음에 회의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 목자가 참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인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역을 하고 있는지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순신대학교 장국원 교수는 ’96. 10. 29자 국민일보에서 「세계적 신학자를 키우자」라는 제목 하에 “현재 유럽이나 미국에도 칼빈, 루터 같은 거물급 신학자가 없다. 한국에서 이제 세계 기독교와 세계 신학을 이끌어갈 수 있는 인물을 길러내고 배출해야 한다.”라고 논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위대한 신학자가 배출될 수 없다.
아마 여러분은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이 나라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들이 많이 있으며 4만 개나 되는 교회가 있지 않은가? 이 나라에는 1200만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지 않은가? 이 나라에서는 수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있으며 교단 신학교에서 많은 신학생들을 배출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는 이 나라에서도 위대한 신학자가 나올 때가 된 것 같은데...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확실하게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니라』(롬 10:17)고 말씀해 주신다. 즉 말씀을 통해서만 올바른 신앙과 신학이 나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약만 해도 22,000 단어가 삭제되고, 30,000 군데 이상이 변개된, 다시 말해서 변개와 오역으로 점철된 <개역한글판성경>을 가지고 믿음을 성장시키며 신앙의 부흥을 일으키고 위대한 신학자를 배출해 낼 수 있겠는가? 진정 위대한 신학자를 원한다면 먼저 루터와 칼빈과 웨슬리와 스펄전, 휫필드, 무디, 에드워드, 선데이가 읽었던 바른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위대한 “신학자”보다는 신실한 “구령자”(또는 거리 설교자)들에 대해 수없이 언급하고 있다. 주님께서 예레미야(렘 11:6), 에스겔(2:1-7, 3-33장), 이사야(사 58장), 요나, 노아, 에스라(스 10:9, 느 8:1-5),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막 16;15)에게 명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개적으로 전파하는 것이었다. 또한 신약 사역의 모델이 되는 바울(행 9:15; 23:11)과 디모데(딤후 4:2)에게도 이 명령은 동일했으며, 스테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최고의 거리 설교자, 즉 구령자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신학을 공부하는 목적도 구령자나 설교자가 되기 위한 것이다. 신학을 별도로 공부하지 않더라도 구령을 할 수 있고, 설교나 심지어 목회도 할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을 올바로 하기 위해서는 신학을 공부하는 것이 필수적임은 말할 것도 없다. 설교하는 사람이나 목회하는 사람은 성도들을 올바로 양육시키기 위해서 바른 지식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러나 “위대한 신학자”만을 목표로 하는 대부분의 신학교에서 “신실한 구령자”가 나오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바른 성경도 없이 교단 교리로 무장시키는 신학대학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신실한 구령자들을 위한 신학교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섭리로 보존된 바른 하나님의 말씀(KJV,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사용하며, 그 순수한 말씀의 젖으로 양육하고, 그 성경에 근거한 올바른 신학으로 교육시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최종권위를 심어 주고,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열정을 품게 하고, 그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선포할 수 있는 구령자를 배출해 내는 신학교, 은사주의나 극단적 칼빈주의를 비롯한 온갖 난무하는 이단교리에 물들지 않고 진리의 지식으로 무장해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어디서든지 싸울 수 있는 영적인 전사를 만들어 내는 신학교가 필요한 것이다. 여러분 주위에 이렇게 양육하는 신학대학이나 신학교가 있는가? (펜사콜라성경신학원에서는 이러한 일들을 신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 학교들이 바른 말씀과 진리의 지식으로 학생들을 무장시키는가? 그 학교를 졸업하면 최종권위에 대한 확신을 가지며, 구령의 열정을 품게 되는가? 진정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헌신하고자 한다면 올바른 성경도 없이 기독교 철학이나 교단 교리를 가르치는 신학교를 찾지 말고, 바른 말씀을 가지고 바른 교리로 양육하며,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구령자를 만들어내는 신학교를 찾으라.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은 “위대한 신학자”가 아니라 “신실한 구령자”이다. 만일 당신이 성경을 진지하게 공부한다면 성경이 우리에게 거리에서 공개적으로 그리스도를 알리며 호별방문 등을 통해 복음을 전하도록 명령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우리는 자주 “예수님같이 되기 원하네”라는 말을 하곤 한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원하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위대한 구령자이자 위대한 거리설교자이셨다. 당신이 예수님을 닮기 원한다면 거리로 나가서 크게 외쳐야 한다. 『아끼지 말고 크게 외치며 나팔처럼 네 목소리를 높이라. 그들의 허물을 내 백성에게 그들의 죄를 야곱의 집에 보이라』(사 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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