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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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구원받지 못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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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7년 12월호>

믿는다는 말에는 두 가지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첫째는 말 그대로 ‘믿음’이고 둘째는 ‘믿음의 대상’이다. 즉 무엇을 믿느냐는 것이다. 사실상 믿음 그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믿음은 어떤 신비한 능력이 아니라 단순히 믿음의 대상을 자신에게 끌어올 수 있는 연결 통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믿음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는 대상인 것이다. 아무리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믿는 대상이 부처나 모하멧 혹은 “다른 복음”(갈 1:9)이라면 그 믿음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믿음이 아무리 굳세어(?) 금식하고 철야로 기도하며 ‘믿습니다!’라고 고함을 질러도, 믿는 대상이 빛의 천사로 가장한 마귀(고후 11:14)라면 그 사람의 믿음은 그에게는 저주일 뿐이다.
구원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죄인이 구원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도 “믿음”이지만, 믿어야 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복음”인 것이다. “오직 믿음”을 외치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예수 믿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흔히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실제로 거듭나지 못한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심지어 선교단체에 속해 있으면서도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있는 것인가?

첫째, 믿는 대상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믿음이라고 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이 아니다. 이교도의 신이나 우상을 섬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소위 ‘기독교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일례로,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것은 진리이며 마땅히 믿어야 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 사실을 믿는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여호와의 증인과 안식교도, 카톨릭교도들이 구원받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 믿는다’는 것도 그렇다.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가셨고 죽은 사람을 살리셨다는 것을 믿는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소위 ‘예수 영화’를 보고 난 후 ‘역사적 예수’를 “영접”한 선교단체의 회원들이 구원받지 못했던 것이다.
한 유명한 선교단체에서 회원들을 모아 놓고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고 한다. 손을 드는 사람이 몇 명밖에 없자, 인도하는 사람이 심각한 얼굴로 “그럼 기도합시다.” 하더라는 것이다. 몇 분 간의 ‘통성기도’ 후에 다시 한 번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라고 했지만 여전히 손들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는 “다시 기도합시다.”라고 했다. 또 한 번의 뜨거운 통성기도 후에 “이제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손드십시오.”하자, 드디어 거의 모든 회원이 손을 들더라는 것이다. 이것은 웃을 일만이 아니다. 이들은 복음을 전해서 구령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자극해서 집단 최면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성경을 공부하고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복음을 이야기하고 전도지 비슷한 것을 사용해서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도, 무엇을 믿어야 구원받는지는 모르는 것이다. 사복음서만 가르친다는 모 선교단체처럼 예수님의 생애를 믿는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여호와의 증인)이며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삼일만에 살아나신 사건(그리스도의 교회)과 심지어 예수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신다는 것(몰몬교)을 믿는다 해도 단순히 그것 자체가 구원을 가져다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죄인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오직 바울이 말한 “복음”을 믿는 방법밖에는 없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이 복음이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복음이란 말 그대로 복된 소식이다. 즉 죽어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들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보혈을 통하여 모두 용서되었다(골 1:14)는 기쁜 소식이다. 이 사실을 믿으면 구원받는 것이다. 󰡔만일 너희가 내가 전한 복음을 굳게 잡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다면, 복음을 통하여 너희도 구원받은 것이라...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셔서󰡕(고전 15:2-4).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믿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 사건이 왜 일어났으며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것을 알고 믿어야 하는 것이다. 교회 다녀 본 사람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서 자신의 죄가 모두 용서되었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그는 아직 구원받지 못한 채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것이다. 󰡔그가 친히 나무에 달린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죄들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낫게 되었느니라󰡕(벧전 2:24).

둘째, "실제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제시하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말씀을 아무런 의심도 없이 어린아이처럼 믿는 것을 말한다. 믿음은 어떤 기분이 아니고. 하나의 가상도 아니며,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믿는 것이다. 복음을 머리로만 안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흔히 교회 다니는 학생들에게 예수님께서 왜 죽으셔야 했는가를 질문하면 대부분 “우리의 죄 때문에요.”라는 대답이 거의 자동적으로 나온다. 그래서 “그러면 학생의 모든 죄들도 다 용서되었나요?”라고 물으면 그냥 씩 웃거나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심지어 “아니요.”라는 대답까지 나온다. 그들은 자신이 말하는 것을 실제 마음으로는 믿지 않는 것이다.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이에 속한다. 말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해 죽으셨다고 하면서도 막상 구원을 받으려면 모종의 종교행위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어디 믿음만 갖고 되나요?”,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잖아요.”라며 발뺌한다. 또한 순수한 복음에 무언가를 덧붙이는 사람들도 있다. “침례가 구원의 필수요건이다.”(그리스도의 교회), “택함받아야 구원받는다.”(장로교), “끝까지 견뎌야 한다.”(여호와의 증인). 이처럼 그들은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대속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다. 세상의 죄를 제거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들러리로 만드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된 것으로 돌려 버리는 것이다(갈 2:21).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죄를 온전히 제거할 만큼의 효력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다.

셋째, “예수 믿는다”는 말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 이 말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따라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려 죄를 없애신(히 9:26) 그 예수님을 믿는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 믿는다는 말을 너무도 오해한 나머지 ‘교회 다니면서 종교생활을 한다’는 정도로 생각한다. 아마도 그래서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하면 “교회다닐 시간 없어요..” 하면서 묻지도 않은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흔히 예수를 ‘잘 믿는다’라는 말이 쓰이기도 하는데, 이는 교회 열심히 다니며 헌금도 잘 내고 봉사도 잘하는 등, 그야말로 교회를 ‘잘 다니는 것’을 지칭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기에 “예수 믿는다고 다 천국가나? 믿어도 잘 믿어야지.”라는 말들을 하는 것이다. 복음은 사라지고 일련의 종교행위를 하는 것이 예수 믿는다는 말로 대치되어 버린 것이다.

사탄은 참으로 교활하여 교회 비슷한 것, 복음 비슷한 것으로 사람들을 미혹해서 멸망의 길로 인도하며, 용어들의 의미를 바꾸어서 사람들의 사고체계를 혼란시킨다. 이런 연유로 우리는 흔히 말하는 ‘불신자’는 물론이려니와 소위 교회 다닌다는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은 다른 복음과 다른 예수(고후 11:4)가 난무하는 시대이다. 믿음은 사라지고 보이는 것이 믿음을 대신해 버린 시대이다. 순수한 복음을 외치면 오히려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시대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 다닌다는 명분을 내세워 복음을 듣는 것조차 거부한다. 교회 다니는 것과 구원받는 것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유명한 부흥사였던 D. L 무디가 사역하던 시대에도 교회 다니는 사람의 90%가 구원받지 못한 상태였다고 한다. 어떻게 지금 상황이 그때보다 더 나을 수 있겠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은 하나님도 알고, 예수님도 알고, 헌금도 내고, 교회도 다니다가 지옥에 가는 사람일 것이다. 구원은 심각한 문제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스스로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못하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들이라󰡕(고후 13:5). 복음에 너무 익숙해져서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당신은 정말 구원받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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