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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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전쟁의 승리를 위한 유일무이한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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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07월호>

갈릴리 바다의 바로 위쪽 "메롬 물가"에서, 여호수아를 위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북쪽의 대규모 연합군을 상대로 카나안 땅 정복을 위한 최후의 결전을 치르게 된다(수 11:1-14). 카나안 거민들은 이 전투가 더 이상 물러설 수도, 물러설 곳도 없는 전투였기에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배수진을 치고 결사 항전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이에 하솔 왕 야빈을 중심으로 갈릴리 주변 지역의 모든 왕들과 군대들이 모여들었는데, 그 규모가 "해변의 많은 모래" 같았고 많은 말들과 병거들도 참전했다(1-4절).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이번 전투가 카나안 정복 전쟁의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전투가 될 수 있었기에, 아무리 그것이 지금까지 카나안 중남부 전선에서 치러 왔던 전투들과 비교도 안 될 만큼 가장 힘든 전투가 될지라도, 반드시 승리하고 정복해야 하는 전투였다.

이기는 싸움을 싸우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수적이다. "전략"(strategy)이란 단어는 "군대의 지도자"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스트라테고스")에서 유래한다. 즉 최상의 군대를 조직하고, 공격과 방어, 대형 유지와 지형 상황에 걸맞은 군대 배치, 유리한 고지와 우위를 점유하기 위한 책략, 역습과 포위, 우회 및 기만술, 심리전 등 전체적인 군사 작전을 "지휘하는" 기술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략은 마치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망망대해에서 "키잡이"로 하여금 뱃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해 주는 것과 같기에, 전략이 없는 지도자는 전쟁의 목표와 방향을 제시할 수 없으며, 군사들의 사기 또한 진작시킬 수 없다. 오히려 무모한 싸움만 싸우다가 자신의 군사들을 허무한 죽음으로 내몰 뿐이다. 지혜로운 전략가만이 억울하고 비참한 패배를 모면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유능한 군대 대장은 기본적으로 "전략가"가 되어야 한다. 유능한 전략을 통해 완전한 승리를 쟁취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 메롬 전투에서 군대 대장인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전략은 "기습"이었다. 『여호수아가 모든 군인들과 더불어 와서 메롬 물가에서 갑자기 그들을 치니 그들이 그들 위에 쓰러지더라』(7절). 기습 시점도 알려 주셨으니 『내일 이맘때』였다(6절). 상대보다 한 발짝 빠르게 판단하고 움직이는 기습 전략은 적군의 규모가 아군보다 크고 우세할 때 종종 효과를 발휘한다. 적들이 생각하고 준비를 갖추기도 전에 기습을 감행하면 적들은 균형을 잃고 실수를 남발하여 공황 상태에 빠지기 십상이다. 즉 상대의 허를 찌르면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중심을 잃고 무너지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제1차 세계대전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전술을 구사하여 프랑스를 공격했는데, 융통성은 없어도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한 프랑스를 정면으로 공격하지 않고, 아무도 예상치 못한 아르덴 숲으로 기갑 부대를 들여보내서 프랑스 군대의 배후를 기습했던 것이다. 그 결과 혼란에 빠진 프랑스의 200만 대군은 6주 만에 궤멸되고 말았다. 기원전 3세기 초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어느 누구도 감히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방식으로, 곧 알프스 산맥을 넘어서 이탈리아 반도를 기습 공격하여 칸나 전투에서 창과 방패로 중무장한 로마군을 패주시켰다. 기동성 있게 움직이는 적에 맞서서 융통성 없이 대응을 하는 것은 적에게 이로움만 줄 뿐이다. 13세기 초반 몽골 제국의 칭기즈칸은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기동성"을 무기로 기습전을 감행하여 당대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 일대에서 패권을 쥐고 있던 이슬람의 호라즘 왕국을 멸망시켰다. 무하마드 2세가 거느린 40만 명의 정예군이 몽골 초원에서 길러진 15만 명의 기마병 앞에 완전히 무력화되어 버린 것이다. 그들이 섬기는 "알라"는 기습전조차 막지 못하는 한심한 "신"인 것이다!

믿음의 싸움을 싸우다 보면, 여기 이스라엘 백성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처럼 "대규모의 강력한 적들"을 맞닥뜨릴 때가 반드시 있다. 전세가 너무나 불리하여 전면전이 힘들어 보일 때가 있고, 적들의 위세에 억눌려 두려워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으며, 전에 몇 번 패배한 경험이 있어서 싸우기도 전에 한없이 무력해져 쉽게 주저앉는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는 것이다. 사실 마귀와 그의 세력들이 노리는 부분이 바로 "이런 점"이다! 마귀는 "심리전"에 능한 적장이다. 그는 6천여 년 동안 인간을 다뤄 본 풍부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각 개인을 무너트릴 수 있는 최적의 공격 방법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마귀가 우주에서 하나님 다음으로 강력한 존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처럼 "전지전능한" 존재는 아니다. 마귀의 능력을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 이상으로 너무 과장해서 부풀릴 필요까지는 없다.

어쨌든 우리가 그런 "불리한 전세"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싸워야 할 필요가 있는데, 곧 "기습"을 활용하는 것이다. 기습은 일종의 "적들이 예기치 못한 행동 전략"이다. 이를테면 두려워 떨기를 기대하는 적을 향해 용기 있는 믿음을 발휘하거나, 도망갈 것을 예상하는 대적에게 뒤로 물러서지 않고 확고하게 서 있는 강건함을 보여 주는 것이다. 맥없이 처진 손과 쇠약한 무릎으로 낙심해 있을 것을 기대하는 원수의 눈앞에서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한다든지 혹은 담대히 일어서서 전신갑옷을 입고 그들을 향해 대적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또는 과거에 자주 그랬듯이 이번에도 육신적인 방법을 따르고 주변 환경을 의식할 것을 예상하는 적에게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기습에 성공하려면 한 가지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적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과 용기다. 여호수아가 이전 전투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최대 규모의 적들을 목도하고 있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담대함과 용기가 절실한 시점이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카나안 땅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계속해서 강조하신 말씀, 곧 『내가 네게 명령하지 아니하였느냐? 강건하고 담대하라. 무서워 말고 낙심치 말라.』(수 1:9)는 말씀을 다시 한 번 여호수아에게 상기시켜 주시면서 용기를 북돋워 주신다. 『그들로 인하여 무서워 말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넘겨 몰살시키리니 너희는 그들의 말 뒷다리의 힘줄을 끊고 불로 병거들을 태우라』(6절). 여호수아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강력한 힘과 위로는 없었을 것이다.

사실 "적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쟁의 법"에 관해 말씀하셨을 때 최우선으로 강조하신 부분이었다. 『너는 네 원수들과 대적하여 싸우러 나가서 말들과 병거들과 너보다 많은 사람들을 보더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이집트 땅에서 너를 데리고 나오신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계심이라』(신 20:1). 그때까지의 모든 전쟁이 그러했듯이 하나님께서는 항상 이스라엘 편에 서 계셨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은 "승리를 약속받고" 싸우는 사람들이었다. 영적 전쟁을 싸우는 성도들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의 대적이 아무리 많고 강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승리를 약속해 주셨다.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는 누구든지 세상을 이기기 때문이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 외에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요일 5:4,5) 이 약속을 주신 분은 만군의 주시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온 우주의 왕으로부터 승리를 약속받은 성도들에게 무엇이 두렵겠는가? 우리가 두려워하고 도망치면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지 못하신다! 그러나 승리를 약속하신 분을 온전히 신뢰하여 용기 있는 "기습 작전"을 펼친다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보는 앞에서 대적들을 "몰살"시키실 것이다.

물론 눈앞에 빤히 보이는 수많은 적들 앞에서 이런 담대한 믿음을 발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우리의 영적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유일무이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 다른 방법은 없다. 이유가 무엇인가? 왜 이것이 유일한 전략인가? 이는 적들의 수가 많든 적든, 전세가 유리하든 불리하든, 어떤 영적 전쟁의 상황에 직면하든지 "하나님"만이 우리의 전부, 곧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이다 . 여기 메롬 물가로 모여든 해변의 수많은 모래 같은 연합군이 "다수"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그 사람이 진정한 "다수"다. 열왕기하 6장에서는 시리아 왕이 선지자 엘리사 한 사람을 잡기 위해 대규모의 군대와 말들과 병거들을 보내서 그가 머물고 있는 성읍을 포위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엘리사의 종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됩니까?"라고 걱정을 하자 엘리사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두려워 말라. 이는 우리와 함께하는 자들이 그들과 함께하는 자들보다 많기 때문이라』(왕하 6:16). 그러면서 주님께 종의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자, 그는 눈이 열렸고 "엘리사를 에워싼 말들과 불병거들이 산을 가득 채웠던 것"을 볼 수 있었다.

자, 영적 전쟁의 승리를 위한 전략은 다른 데 있지 않다. "과연 지금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는가 하지 않으시는가!" 바로 이 한 가지 사실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에 실패하면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그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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