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율법과 은혜 분류

교회 시대에 행위로 의롭게 된다는 이단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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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2년 07월호>

- 야고보서 2장, 마태복음 24장 -

한국 교계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구약의 율법을 지키거나 계명들에 순종함으로써 구원을 유지하려고 애쓰거나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교리로 적용함으로써 이단 교리들을 확산시키는 자들이다. 그들은 율법과 은혜에 관한 진리의 지식이 없다.
복음의 진리를 아는 것은 단지 은혜의 복음을 아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과 은혜를 성경적으로 분별하는 진리의 지식에 이름으로써 가능하다. 이제 율법과 은혜를 혼란스럽게 하는 이단 교리들을 바로잡고 건전한 교리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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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또는 구원을 지키기 위해서 율법의 행위가 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성경 구절들이 있다. 즉 마태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 야고보서, 요한계시록 등은 행위가 없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거나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런 책들은 교리적으로 매우 주의해서 읽고 해석하고 적용해야 할 “과도기적인” 책들이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루시는 섭리적인 방법에 따라 여러 시대들로 구분되는데,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전환되는 시기를 과도기라고 말하며, 그 시기에 해당하는 말씀들을 기록한 성경을 “과도기적인 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의 말씀들이며, 사도행전은 “이스라엘에서 교회로,” 히브리서와 야고보서는 “교회 시대에서 환란 시대로,” 요한계시록은 “교회 시대에서 환란 시대로, 또 환란 시대에서 천년왕국 시대와 영원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의 말씀들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들에는 “교회 시대의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교리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말씀들이 있다. 이런 사실에 무지하면, 이 책들에 기록된 특정 말씀들을 교회의 교리로 적용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야고보서 2장과 마태복음 24장이다.
1. 야고보서 2장을 왜곡한 이단 교리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받고, 또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주로 붙드는 성경이 야고보서 2장이다. 이 장의 몇 구절들은 사람이 행위로 의롭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약 2:21,24,25).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나 진리의 지식이 결여된 사람들이 야고보서 2장을 교회 시대의 구원 교리라고 주장함으로써 이 시대의 이단 교리를 확산시키고 있다. 분별 없이 성경의 특정 구절들을 교회의 교리로 적용하면 사람들을 지옥으로 인도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야고보서 2장을 왜곡한 이단 교리를 바로잡으려면, 구약과 신약의 의롭게 됨이 서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1) 신약의 의롭게 됨은 한마디로 이신칭의(以信稱義)이다. 즉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이다(롬 4:5, 갈 2:16, 행 13:39, 롬 3:22; 5:1).

2) 구약의 의롭게 됨을 한마디로 말하면, “믿음과 행위로 의롭게 된다.”는 것이다. 야고보서 2장에 언급된 아브라함과 라합의 사례를 통해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① 아브라함의 사례를 보면(약 2:21-24, 창 15:1-6, 창 22:1-12),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을 때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롬 4:3, 창 15:5-6).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단지 인정하신 것을 뜻한다. 그리고 나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드렸을 때 그는 행함으로 의롭게 되었다(약 2:21, 창 22:12, 약 2:24). 의롭게 된다는 것은 법률적인 용어로 판사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무죄, 즉 의롭다고 선언하는 것을 뜻한다. 판사가 재판 중에 죄인의 고백과 증거들을 보고 무죄라고 여기면, 재판 끝에 판사는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그가 무죄라고, 즉 의롭다고 선언함으로써 그를 의롭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단에 드림으로써 자신의 믿음이 진실함을 행위로 입증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하심으로써 그를 의롭게 하신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드렸을 때, 그가 하나님을 믿은 것이 의로 여겨졌다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씀한다(약 2:23).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에 관하여 야고보서 2:22은 “믿음”이 행함과 더불어 작용하였고 “믿음”이 행함으로 온전케 되었다고 말씀하며, 이것을 “행함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말한 것이다(약 2:24). 이처럼 구약에서는 믿음과 믿음의 진실함을 보이는 행위가 있어야 의롭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신약의 교회 시대에는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영접하는 순간에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며, 또 그가 의롭게 된다. 신약에서는 믿음이 의로 여겨지는 것과 의롭게 되는 것이 동시에 일어난다. 반면 구약에서는 아브라함에게서 보듯이 의로 여겨지는 것(창 15장)과 의롭게 되는 것(창 22장)에 시간적 차이가 있다. 나중에 행위로 그의 믿음이 입증될 때 그는 의롭게 되는 것이다.
② 라합의 사례(약 2:25, 수 2:1-22)를 보면, 라합은 주 하나님을 믿었고(수 2:9-11) 그 믿음에 따라 정탐꾼들을 영접하고 다른 길로 그들을 보냈을 때 행함으로써 의롭게 되었다(약 2:25). 라합은 정탐꾼들이 오기 전에 이미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에 관한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참 하나님이 누구인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정탐꾼들이 왔을 때 그녀의 믿음은 발휘되었고 그들을 돕는 행위로 드러났고, 그녀는 자신의 믿음과 행위로 의롭게 된 것이다.
③ 구약에서는 ‘율법’이 주어진 유대인이나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나 모두가 율법을 듣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행함으로써 의롭게 되었다”(롬 2:6-16). 특히 로마서 2:12-13에서 이런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율법 없이 죄를 지은 사람들은 모두 율법 없이 멸망할 것이요, 율법 안에서 죄를 지은 사람들은 모두 율법에 의하여 심판받게 되리니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들이 의인이 아니요, 율법을 행하는 자들만이 의롭게 될 것임이라.』 율법 안에 있는 사람은 율법에 의하여 심판을 받되, 율법을 행하는 자들만이 의롭게 된다. 하지만 교회 시대에는 이런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2. 마태복음 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 시대에 행위로 의롭게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구절을 가지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죽을 때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구원을 잃어버린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 구절은 “교리적으로” 교회 시대의 죄인들이나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지 않고, 미래에 있을 대환란 시대의 죄인들과 환란 성도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이다. 이 구절을 중심으로 마태복음 24장을 주의 깊게 공부하면 이와 같은 거짓 교리의 오류를 깨닫게 될 것이다.

1) 마태복음 24:13의 『끝』은 어떤 “끝”을 말하는가?
여기서 말씀하는 끝은 교회 시대의 끝이나 개인의 삶의 끝이 아니라 미래에 있을 “대환란의 끝”이다(마 24:1-4,14,15,21,29).
마태복음 24:1-4에는 언제 이런 일(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는 일)이 있을 것인가, 주께서 오실 표적이 무엇인가, 세상 끝의 표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들이 나오는데, 이것들은 모두 동일하게 한 때를 지칭한다. 그 때가 언제인가에 대한 질문에 예수님께서 답하신 것이 마태복음 24:4-51까지 24장 전체의 말씀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는 것(마 24:2)은 미래의 대환란 때 있을 일이다. 또 주께서 오실 표적(마 24:3)은 미래의 대환란 때에 나타날 것이며, 세상 끝의 표적도 대환란 때 나타날 것이다.
마태복음 24:14에서 13절의 『끝』과 관련되어 언급되는 복음은 “왕국 복음”이다. 왕국복음이 전파되는 때는 교회 시대가 아니라 주님의 재림 전이며, 미래의 대환란 때이다. 교회 시대에 전파되는 복음은 은혜의 복음이며, 교회 시대에 왕국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갈 1:6-8). 또한 마태복음 24:15에서 말씀하는 멸망의 가증한 것(단 8:18; 11:31; 12:11)이 거룩한 곳에 설 때는 대환란 때이다(살후 2:1-12). 마태복음 24:21,29에는 『끝』이라고 언급되는 이 때를 『대환란』이라고 직접적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기간에 대한 논란은 무의미하다. 이 때는 『대환란』(계 7:14), 『야곱의 고난의 때』(렘 30:7), 『고난의 때』(단 12:1), 『고난』(막 13:9) 등으로 불린다. 이 기간은 산고를 겪는 여인의 고통으로 비유되기도 한다(사 66:7-8, 미 5:3, 렘 30:6; 49:24, 호 13:13, 살전 5:3).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씀하는 대환란을 통과하는 사람들은 대환란의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구원받는다. 그러나 교회는 대환란 전에 휴거되어 주님과 셋째 하늘에 있기 때문에 교리적으로 마태복음 24장과 교회는 전혀 상관이 없다.

2) 누구에게 말씀하시는 것인가?
마태복음 24:13은 교회 시대의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유대인에게 주어진 말씀이다(마 24:3,14,16,15-20,22,31,32-35).
마태복음 24:3에 따르면 24장 전체는 예수님께서 유대인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13절의 끝까지 전파되는 것은 왕국 복음인데(마 24:14), 왕국은 유대인들에게 약속된 메시아의 왕국이며(행 3:19-26), 왕국 복음은 유대인을 대상으로 하는 복음이지(마 10:5-6) 교회에게 주어진 복음이 아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언급되는 사람들은 유대에 있는 사람들이며, 지역도 유대이다(마 24:16. 계 12:1-17, 미 7:14-16, 렘 50:19-20, 호 2장 참조). 24장 전체 말씀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경배하며(15절, 살후 2:10 참조) “안식일”(20절)을 비롯한 구약의 율법을 준수해야 하는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마 24:15-20). 또한 마태복음 24장의 문맥상 택함받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이다(마 24:22,31). 유대인들이 “택함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증거하고 있다(사 45:4,14; 65:9- 12; 28:4). 특히 31절은 교회 시대의 거듭난 성도의 휴거가 아니라 대환란 때의 성도들의 휴거를 말씀한다. 마태복음 24:32-35의 무화과 나무도 유대인을 지칭한다. 이와 같이 24장 전체는 교리적으로 대환란 때의 유대인들을 향한 말씀이지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니다.

3) 교리적 적용
마태복음 24장은 교회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대환란 시대의 유대인들이 행위로 믿음을 지킴으로써 구원받는다는 말씀이다. 마태복음 24장 전체는 대환란과 환란 후에 있게 될 환란 성도들의 휴거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교회 시대의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끝까지 확고하게 지켜 주신다(고전 1:7-8). 따라서 마태복음 24:13을 지금 교회 시대의 구원 교리로 가르치는 것은 이단 교리이다. BB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