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성경의 비유들 분류

살인자 다윗을 겨냥한 "트코아 여인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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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10월호>

"트코아 여인의 비유"는, 압살롬이 자기 누이 타말을 욕보인 암논을 죽인 후에 그술 왕 암미훗의 아들 탈매에게로 도망한 사건이(삼하 13:28-37) 발단이 된 비유다. 암논은 이미 죽은 자식이므로, 다윗이 그 아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마음을 추스르고 위로를 받았지만, 문제를 일으킨 또 다른 아들 압살롬을 향한 사랑은 너무나 대단하여 날마다 그 아들을 위해 슬퍼하고 그의 혼이 압살롬에게 가기를 바랄 정도였다(삼하 13:37-39). 압살롬이 3년간 그술에 피해 있는 동안(삼하 13:38)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향한 줄을 알았고(삼하 14:1), 이에 압살롬을 데려오기 위한 계획으로 트코아의 한 여인을 찾아내어 그녀에게 다윗에게 고할 비유를 알려 주면서 상복을 입혀 보낸 것이 트코아 여인의 비유의 배경이다. 『요압이 트코아에 보내어 거기서 현명한 한 여인을 데리고 와서 그녀에게 말하기를 "내가 청하노니, 너는 애곡하는 자로 가장하여 이제 상복을 입고, 기름도 바르지 말고, 죽은 사람을 위하여 오랫동안 애곡한 여인같이 하고, 왕에게 가서 이렇게 고하라." 하고 그녀의 입에 말을 넣어 주니라』(삼하 14:2,3).

요압의 요청을 받은 트코아의 여인은 다윗 왕을 만나자 그를 향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서는 『오 왕이여, 도우소서.』(4절)라는 말로 비유를 위한 물꼬를 텄다. 상복을 입은 가련한 여인이 찾아와 다짜고짜 도와 달라고 하니, 연민의 감정이 남달랐던 다윗의 마음이 흔들릴 법도 하다. 『왕이 그녀에게 말하기를 "무엇이 너를 괴롭게 하느냐?" 하니 그녀가 대답하기를 "나는 참으로 과부이며 내 남편은 죽었나이다』(5절). 여인은 다윗에게 자신을 남편이 죽은 과부로 소개함으로써 그의 동정심을 유발했다. 이스라엘에서 과부는 연민과 보호의 대상이었기에(출 22:22, 신 24:17-21; 27:19), 다윗 왕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대신한 재판관으로서 과부를 특별히 보살펴야 했던 것이다.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아비 없는 자들의 아버지시며 과부들의 재판관이시라』(시 68:5).

트코아의 여인은 이어서 『왕의 여종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 둘이 들에서 서로 싸웠으나 그들을 말려 주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이편이 저편을 쳐 죽였나이다.』(6절)라고 말했다. "두 아들의 싸움으로 한 아들이 죽었다"는 것인데, 이로써 다윗의 두 아들 압살롬과 암논 간의 관계를 넌지시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녀의 비유에서는 두 아들 간의 살인이 우발적이었으나(들에서 말려 주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서로 싸우다가 엉겁결에 쳐서 죽였음) 압살롬이 암논을 죽인 사건은 계획적인 살인이었기에, 이 점에 있어서는 "비유"와 "현실" 사이에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요압이 압살롬의 계획적인 살인을 비유 속의 우발적인 살인과 중첩되게 한 것은, 그의 치밀한 구상에 따른 것이었다. 즉 비유 속 두 아들 간의 우발적인 살인 이야기로 인해 다윗의 두 아들 간의 계획적인 살인의 이미지가 약화되고, 압살롬의 살인에 대한 다윗의 불쾌한 감정이 희석되는 효과가 있게 한 것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지도 어느 새 3년이나 흘렀으니 비유의 효과가 극대화되었음은 분명하다.

여인은 요압이 지시한 대로 이야기를 이어갔고, 다윗과의 대화도 자연스레 오갔다. 『그런데 보소서, 온 가문이 왕의 여종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나서 말하기를 '자기 형제를 죽인 자를 넘겨 달라. 그가 죽인 그의 형제의 생명을 위하여 우리가 그를 죽여 그 상속자도 멸하리라.' 하나이다. 이처럼 그들이 남아 있는 내 숯불씨를 꺼 버려서, 내 남편에게 이름도, 대를 이을 자도 세상에 남겨 두지 아니하려 하나이다." 하니 왕이 그 여인에게 말하기를 "네 집으로 가라. 내가 너에 대하여 명령을 내리리라." 하더라. 트코아 여인이 왕에게 말하기를 "오 내 주 왕이여, 그 죄악이 나와 내 아비의 집에 돌려지고 왕과 그의 보좌는 무죄하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왕이 말하기를 "네게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를 내게 데려오라. 그가 너를 다시는 건드리지 아니하리라." 하더라. 그러자 그녀가 말하기를 "내가 청하오니, 왕께서는 왕의 하나님 주를 기억하사 피를 보복하는 자들로 더 이상 죽이지 못하게 하소서. 그들이 내 아들을 죽일까 하나이다." 하니 왕이 말하기를 "주께서 살아 계시거니와, 네 아들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더라』(7-11절).

비유 속 여인의 아들처럼 적대심을 갖고 싸우다가 살인한 자는 율법에 따르면 피의 보복자에 의해 죽어야 했다(민 35:16-21). 다윗이 현 상황을 율법대로 처리한다면 여인의 아들을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게 하라고 했겠지만, 여인은 온 가문이 과부 자신의 "남아 있는 숯불씨"를 꺼 버리려 한다면서(7절) 다윗의 마음에 갈등을 일으킨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과부를 보호해야 했는데, 남편도 없는 과부의 딱한 사정을 생각하니 집안의 대를 이을 유일한 아들, 곧 그녀를 부양할 수 있는 유일한 아들마저 죽음에 넘겨준다는 것은 도저히 못할 짓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에 다윗이 그 자리에서 판단을 못 내리고 여인에게 『네 집으로 가라. 내가 너에 대하여 명령을 내리리라.』(8절)라고 말하자, 여인은 곧바로 『그 죄악이 나와 내 아비의 집에 돌려지고 왕과 그의 보좌는 무죄하기를 원하나이다.』(9절)라고 말한다. 여인의 아들들 간의 살인죄가 여인과 여인의 아비의 집에 돌려지기를 바란다는 것은, 다윗이 율법을 거슬러 여인의 살인자 아들을 살려 주는 조치를 내린다 해도 다윗과 그의 보좌는 그 살인죄의 영향을 받지 않기를 원한다는 뜻이었다. 이 역시 『살인자의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민 35:31)라는 율법에 위배되는 것인데, 다윗은 그만 여인의 비유에 휘둘려서 『네게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를 내게 데려오라. 그가 너를 다시는 건드리지 아니하리라... 주께서 살아 계시거니와, 네 아들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10,11절)라고 말해 버리고 만다. 인간적인 동정심을 율법 위에 두는 어리석음을 범한 것인데, 이로써 그는 남편도 없이 아들을 잃은 불쌍한 과부의 남아 있는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요압의 덫에 걸려들고 말았다.

『그때 여인이 말하기를 "내가 청하오니, 왕의 여종으로 내 주 왕께 한 말씀 고하게 하소서." 하니, 왕이 말하기를 "말하라." 하더라. 그 여인이 말하기를 "그러면 어찌하여 왕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하여 그러한 일을 생각하셨나이까? 왕께서 잘못한 사람같이 이 일을 말씀하신 것은, 왕께서 내쫓은 자를 다시 집으로 데려오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니이다. 우리는 마침내 죽어야만 하며, 땅에 물을 쏟아 다시 끌어모을 수 없는 것같이 되나이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존중하지 않으시나, 방책을 강구하시어 내쫓긴 자도 그에게서 버림받지 않게 하시나이다』(12-14절). 여인은 돌연히 자신의 가정사에서 하나님의 백성에게로 다윗의 관심을 돌린다. 과부의 아들들 간에 벌어진 살인 사건에 대해서는 그토록 자비로우면서, 하나님의 백성과 관련된 큰일에는 왜 그렇게 무자비하냐는 것이다. 말하자면 여인은 왕의 아들(압살롬)의 문제를 불쑥 꺼내면서, 여인의 아들이나 왕의 아들 압살롬이나 살인자인 것은 매한가지인데, 왜 "한 개인"에 대해서만 자비롭고 "하나님의 백성 전체"와 관련된 중대사, 곧 왕의 아들에 관해서는 그토록 차갑고 매정하게 마음을 닫고 있느냐고 적시했던 것이다. 여인은 압살롬의 일에 관하여 무자비한 것은 왕의 잘못이라는 말로 다윗의 마음을 깊숙이 찔러 들어갔다. 『왕께서 잘못한 사람같이 이 일을 말씀하신 것은, 왕께서 내쫓은 자를 다시 집으로 데려오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니이다』(13절). 다시 말해 이미 죽은 자식은 별 수 없는 노릇이므로, "과부의 살아 있는 아들"에 대해 방책을 강구한 것처럼 "다윗의 살아 있는 아들(압살롬)"에 대해서도 대책을 강구해 달라는 얘기인 것이다. 『우리는 마침내 죽어야만 하며, 땅에 물을 쏟아 다시 끌어모을 수 없는 것같이 되나이다[죽은 암논에 대한 암시].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존중하지 않으시나, 방책을 강구하시어 내쫓긴 자도 그에게서 버림받지 않게 하시나이다[살아 있는 압살롬에 대한 암시]』(14절).

여인은 위와 같은 암시적인 말을 한 후 이렇게 비유를 이어갔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와서 내 주 왕께 이런 일을 고하는 것은, 백성들이 나를 무섭게 하였기 때문이니, 왕의 여종이 말하기를 '내가 이제 왕께 고하리니, 그러면 아마 왕께서 자기 여종의 간청을 시행하시리라. 왕께서 들으시고 나와 내 아들을 함께 하나님의 유업에서 멸하려고 하는 자의 손에서 그의 여종을 구해 내시리라.' 하였나이다. 그때 왕의 여종이 말하기를 '내 주 왕의 말씀이 이제 위로가 되리라.' 하였사오니, 이는 내 주 왕께서 선과 악을 분별하심이 하나님의 천사와 같으심이니이다. 그러므로 왕의 하나님 주께서 왕과 함께하시리이다." 하더라』(15-17절).

이제 다윗은 낌새를 채기 시작한다. 여인의 말에서 요압의 냄새를 맡은 것이다. 『왕이 말하기를 "이 모든 일에 요압의 손이 너와 함께하지 않았느냐?" 하니 그 여인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내 주 왕이여, 왕의 혼이 살아 계시거니와, 내 주 왕께서 말씀하신 데서 오른편이나 왼편으로 돌이킬 자가 없나이다. 왕의 종 요압이 내게 명하였고, 그가 이 모든 말을 왕의 여종의 입에 넣어 주었으니, 이런 형식의 말을 가져오려고 왕의 종 요압이 이 일을 행한 것이니이다. 내 주께서는 하나님의 천사의 지혜를 따라 현명하시기에,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아시나이다." 하니라』(19,20절).

다윗은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죽이는 일에 요압과 공모했었다. 밧세바와 간음하여 아기를 밴 죄를 숨기려고 남편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계획적으로 죽이고, 그가 죽자마자 밧세바를 데려와 자기 아내로 삼아 버렸던 것이다. 그 아기는 백성들에게 다윗의 소생처럼 보였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아기를 죽이심으로써 다윗에 대한 징계 절차를 밟기 시작하셨다. 요압이 이 비유를 지을 때 "살인 사건"을 핵심 소재로 잡은 것은 단순히 압살롬과 암논의 살인 사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살인 사건의 원인이 되었던바 다윗의 집안에서 칼이 떠나지 않게 했던 원초적인 살인죄, 곧 "다윗이 우리야를 살해한 일"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요압의 비유 이면에는 다윗의 양심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철퇴가 숨겨져 있었다. "오 살인자여, 살인자(다윗)가 살인자(압살롬)를 거부하는 것이 합당한 일입니까? 피장파장 아니겠습니까!"

우리야를 죽이는 일에 요압과 공모한 다윗은 그 자신도 살인자였으므로 요압에게 약점이 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요압이 원하는 대로 해 주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청년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오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다(21-23절).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압살롬을 통해 다윗에 대한 징계 절차를 계속 밟아 나가셨다. 암논이 타말을 범하고 압살롬이 암논을 살인한 일에 더하여 "압살롬의 반역"이라는 더 큰일로 다윗을 징계하셨던 것이다(삼하 15-18장). 비록 요압의 머리에서 나온 비유였지만, 그 일에는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성도의 인생에 우연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사랑하시는 "다윗"을 다루시는 일에 "요압" 같은 인물을 들어 쓰시기도 하는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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