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성경에 나오는 동식물 분류

나귀가 보여 주는 죄인과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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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2년 12월호>

성경에서 나귀는 독특한 동물이다. 짐승인데도 사람처럼 양에 의해 구속받아야 하는 동물로서 언급된다. 출애굽기 13장은하나님께서 첫태생의 율례에 관해 전반적으로 말씀하시는 장인데, 거기서 주님은 짐승에서 나온 첫배 새끼를 주님께 따로 떼어놓으라고 하시면서(12절) 유독 나귀의 첫배 새끼만은 어린양으로 대속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려면 목을 꺾으라고 하신다.『나귀의 모든 첫배 새끼는 네가 어린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네가 그것을 대속하지 않으려면 너는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또너의 자손 가운데서 사람의 모든 첫태생을 대속할지니라』(13절). 사람의 모든 첫태생과 나귀의 모든 첫배 새끼를어린양으로 대속하라는 말씀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사람과 나귀는 동급으로 취급된다. 욥 역시 『사람이 들나귀 새끼같이태어나도 허망한 사람이 현명하게 되느니라.』(욥 11:12)라고 함으로써 사람을 직접적으로 들나귀 새끼에 비유한다.

욥기에서 나귀는 “구원받지 않는 죄인”으로 묘사된다. 『한 심부름꾼이 욥에게 와서 말하기를 “소들은 밭을 갈고 나귀들은그 옆에서 풀을 뜯는데』(욥 1:14). 이 말씀을 영적으로 적용해 보면, 소들은 몸값을 지불하고 자신을 사 주신 주님을위해 일하는 성도들을 예표한다. 그에 반해 옆에서 풀을 뜯고 있는 나귀들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일하고 자신의 욕구만을채우는 데 급급한 죄인들을 보여 준다. 이사야 1:3도 이 점을 암시한다. 즉 『소도 자기의 주인을 알고 나귀도 자기주인의 구유를 알건만』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도로서 예표되는 소는 자기를 구속해 준 자기 주인을 알지만, 죄인으로예표되는 나귀는 자기본위적이어서 자기의 밥그릇밖에 모르는 것이다.

이처럼 죄인의 예표로 쓰인 나귀가 주님의 초림 때에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구원받고 주님께 쓰임받는 성도의 모습으로등장한다. 주님께서는 구속 사역을 이루시려고 십자가에 못박하시기 전에 그 남은 한 주간을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입성하시는 것으로 시작하셨는데, 이 일은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마 21:1-9, 막 11:1-10, 눅19:28-40, 요 12:12-16).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왕으로서 공개적으로 나타내신 사건이었으며,스카랴 9:9의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는 순간이었다. 『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하라. 오 예루살렘의 딸아, 소리지르라. 보라, 네 왕이 네게 오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지니셨고, 겸손하시며 나귀를 타시리니 나귀의 새끼인 어린나귀니라.』 역사의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 될 갈보리 십자가 사건에 앞서서 나귀가 등장한다는 점을 주목하라. 나귀는 주님의십자가를 통해 변화될 죄인을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입성 때 나귀를 쓰시기 위해 제자들을 보내어 끌고 오게 하셨다. 주님께서 쓰시려 했던 나귀 새끼는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길들여지지 않은 어린 나귀로서(눅 19:30) 문밖에 매여 있었다(막 11:4, 요10:9). 문밖에 매여 있는 나귀의 모습은 아직 주님을 모른 채 평생을 죄 가운데서 죽음과 썩어짐에 속박당하고(롬8:21, 히 2:15) 자신의 죄의 줄에 매여 있는(잠 5:22) 죄인을 보여 준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두 제자를보내셔서 그런 나귀 새끼를 풀어서 끌고 오게 하셨다. 그리고 『만일 누가 너희에게 묻기를 ‘어찌하여 그것을 푸느냐?’고하면 너희는 그에게 ‘주께서 그것을 쓰신다.’고 말하라.』(눅 19:31)라고 하셨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에 따라맞은편 마을에 묶여 있던 나귀 새끼를 보고서 풀려고 했다. 그 순간 나귀 주인들이 나타나서는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푸느냐고 물었는데, 주인들의 이러한 모습은 이 세상의 신인 사탄이 자신에게 속한 믿지 않는 죄인들에게 복음의 광채가비치지 못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과 같다(고후 4:4). 더욱이 나귀가 묶여 있던 곳은 사거리“갈림길”이었다(막 11:4).



고집 센 나귀가 예표하는 죄인은 자신을 묶고 있는 죄의 줄을 풀어 주고자 하는 음성에 반응하여 생명과 죽음, 복과 저주중에서 생명과 복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사탄은 죄인에게 구원의 복음조차 전해지지 못하게 방해한다. 설사 복음이전해지더라도 마음으로 믿고 순종하지 못하게 한다. 만약 누군가가 복음을 마음으로 믿어 구원받았다 해도 사탄은 재빨리 손을써서 그의 구원을 의심하게 만들고 그의 믿음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방해한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쓰신다고 말하면서 나귀 새끼를 풀어 주님께로 데려온다(막 11:6,7). 나귀 같은 “죄인”이 죄의줄에서 풀린 순간이다! 제자들은 그 어린 나귀를 주님께로 데려왔고, 주님께서는 나귀의 등에 타심으로써 곧바로 그것을길들이신다. 사복음서에는 나귀에게 재갈을 물렸다는 말씀은 없다. 하지만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재갈이요,어리석은 자의 등에는 매니라.』(잠 26:3)라는 말씀에 비추어 보면 주님께서는 재갈을 물려서 나귀를 길들이셨을 것이다.예수님께 길들여진 나귀는 이제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등에 타시어 고삐를 쥐신 주님의 뜻대로 움직여야한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역시나 주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주님께서 알려주시는 대로 가야만 한다. 내 뜻대로 행하는 것이아니라 죄인인 나를 몸값을 지불하고서 사 주신(마 20:28, 딤전 2:6) 주님의 뜻대로 움직여야 한다. “주님께서원하시면 어디든지 가겠습니다.”라는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죄의 줄에서 벗어난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자세이다.

나귀는 외모가 말과 비슷하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우선 말보다는 덩치가 좀 작다. 그리고 말보다 귀가길고 배와 주둥이가 하얀색이며 빳빳한 갈기를 지니고 있다. 나귀는 “당나귀 고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집이 세고의심도 많은 동물이다. 울음소리는 길고 거칠다. 말보다는 이동 속도가 느리지만, 힘이 세서 예로부터 짐을 운반하는가축으로 활용 가치가 높다. 이처럼 힘이 센 나귀가 짐을 지기 위해 구부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자기 아들들에 관해서 아비야곱이 예언하는 창세기 49장에 언급된다. 『잇사칼은 두 짐 사이에 구부리고 앉아 있는 강한 나귀로다. 그는 쉼을 좋게여기고 땅을 보고 기쁘게 여기며, 그의 어깨를 낮춰 짐을 지고 조공에 종이 되었도다』(14,15절). 두 짐 사이에구부리고 앉기 위해서는 무릎을 꿇어야 하는데, 이는 구원받은 성도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성도의 영적호흡인 기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성도는 매일 기도의 제단을 쌓음으로써 주 하나님께서 흠향하시고기뻐하실 만한 기도의 향이 지속적으로 올라가게 해야 한다(계 8:4).

아울러 나귀로 표현되는 잇사칼은 어깨를 낮춰 짐을 지고 조공에 종이 되었다(창 49:15). 이는 성도의 겸손에 관한말씀이다. 겸손하지 않고 눈꺼풀이 높이 들린(잠 30:13) 교만한 모습은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성도의덕목 중 하나인 “겸손”은(골 3:12)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먼저 그 위대한 본을 보여 주셨다. 주님께서는 섬김을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고, 또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몸값으로 주려고 오셨다(막 10:45).주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신 모습 자체가 그분의 겸손하심을 보이신 것이다(슼 9:9). 주님께서는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시어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되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순종하셨다(빌 2:8). 『그러나 우리가 죽음의 고난 때문에 천사들보다 조금낮아지신 예수를 보니,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도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기위함이더라』(히 2:9). 이와 같은 주님을 눈으로 직접 보고 주목하여 살폈던 베드로 역시 우리에게 겸손함으로 옷입으라고 권면한다. 『이와 같이 너희 젊은이들아, 장로에게 복종하라. 너희 모두가 서로 복종하고 겸손함으로 옷입으라.이는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심이니라』(벧전 5:5).

또한 짐을 지는 강한 나귀의 모습은 서로의 짐을 짐으로써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라는 권면의 말씀을 떠오르게 한다. 『너희는서로의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라』(갈 6:2). 그리스도의 법은 사랑의 법이며(요 15:12), 다른성도의 짐을 나눠 지는 것도 포함한다. 지금까지 가장 무거운 짐을 졌던 사람은 온 인류의 죄 짐을 지셨던 예수그리스도시다!(사 53:3-10) 그런 주님께서 이제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라고 하시면서 그분의 멍에와짐을 함께 지고서 그분께 배우라고 초청하신다(마 11:30). 시편 기자는 우리의 짐을 주님께 맡기라고 권면한다(시55:22).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섬김의 짐을 나눠 져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인생의 짐을 주님께 맡기고, 대신주님의 쉬운 멍에와 가벼운 짐을 지고서 주님의 온유하심과 겸손하심을 배워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때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쓰였던 나귀는 주님의 재림 때에도 모습을 드러낸다. 즉 『만왕의 왕, 또만주의 주』(계 19:16)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의 뒤를 따라 내려오는 존재가 있다. 요한계시록19:14은 『또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정결한 세마포를 입고 흰 말들을 타고 그를 따르더라.』라고 말씀함으로써 그존재가 바로 하늘에 있는 군대라는 점을 보여 준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군대는 “두 부류”로 이루어져있다.



첫 번째 부류는 요한계시록에서도 볼 수 있듯이 희고 정결한 세마포를 입은 어린양의 아내(계 19:8), 곧 그리스도의몸인 교회이다. 이들은 흰 말들을 타고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지상으로 내려올 것이다. 두 번째 부류는 재판관기5장에서 볼 수 있다. 재판관기 5장은 바락과 드보라의 승리의 찬송이 불리는 장인데,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예언된다. 『내 마음이 백성 가운데서 그들 자신을 기꺼이 드린 이스라엘의 치리자들에게 향했도다. 너희는 주를 송축하라.흰 나귀들을 탄 너희는 재판에 앉은 너희는 말하라, 길을 따라 걸으라』(판 5:9,10). 이 말씀에서 “흰 나귀들을 탄너희”는 “그들 자신을 기꺼이 드린 이스라엘의 치리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대환란 때 구원받는 유대인들로서, 바로이들이 재림 때 만왕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내려올 두 번째 부류이다. 그들은 아마겟돈 전쟁이 끝난 뒤수립되는 천년왕국에서 주님과 함께 통치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죄인으로부터 시작하여 구원받은 성도의 모습까지 짐승인 나귀에게서 배울 수 있는 교훈들이 많다. 인간은 그중에서 고집 센나귀 같은 죄인으로는 남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주님께서 그 등에 타심으로써 그분께서 필요하신 곳에 들어쓰시는 성도가되어야 한다. 구원받지 않은 채 고집 센 나귀처럼 인생을 허망하게 끝내 버리는 죄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이 들나귀새끼같이 태어나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으면 그 허망했던 사람도 유용하게 쓰임받을 수 있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