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성경에 나오는 동식물 분류

여우 같은 자들이 거부하는 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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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2년 08월호>

지난 글의 늑대에 이어서 다룰 동물은 “여우”이다. 여우는 성경에서 총 9번 언급된다. 비록 언급 횟수는 적지만, 자세히 보면 문제의 구절로부터 성경 변개와 그리스도인을 위한 영적 교훈, 그리고 적그리스도의 예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풍성한 진리를 알려 준다. 우선 성경에서 여우가 처음 등장하는 곳은 재판관 삼손이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복수하는 재판관기이다. 『삼손이 가서 삼백 마리의 여우를 붙잡아 홰들을 취하고 꼬리에 꼬리를 매어 두 꼬리 가운데 한 홰를 끼워』(판 15:4). 언뜻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평이한 말씀이지만 성경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이 구절을 문제 삼고 나선다.

그들의 주장은 삼손 혼자서 어떻게 여우 300마리를 한 번에 잡을 수 있었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믿지 못하는 학자들은 재판관기 15:4에 여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슈알”(l['Wv)이란 단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삼손은 여우가 아닌, 여우와 유사한 “자칼”(Jackal)을 잡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여우는 독립적인 반면, 자칼은 무리지어 다니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학자들은 삼손을 도와주겠다고(?) 나섰지만 사실 어떤 도움도 필요 없다. 삼손은 성문과 두 기둥과 빗장과 모든 것을 메고서 약 30km나 이동할 수 있었던 괴력의 사나이였다(판 16:3). 더욱이 성경은 삼손이 여우를 잡은 기간이 정확히 얼마라고 기록하지 않는다. 따라서 삼손이 하루에 여우 5마리씩을 잡았다면 300마리를 잡는 데에 대략 2개월 정도가 걸렸을 것이고, 그 기간이 지난 후에 성경에 기록된 대로 여우 두 마리의 꼬리에 홰 하나씩을 끼워 묶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단순한 사실적 관계를 나타내 주는 말씀에 관한 문제 제기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믿음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에는 이외에도 인간의 이성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기적들과 이적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삼손이 고작 여우 300마리를 붙잡았다는 사실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결국 성경의 기적들과 이적들에도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같다. 성경의 이것을 믿지 못하면 저것도 믿지 못하는 법이다. 그들은 성경이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하시고 섭리로 보존하신 무오한 책이 아니라 오류가 있는 인간의 책이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NIV와 NASV, NRSV 등의 변개된 성경들에서는 여우 대신 자칼로 단어를 바꾸어 버렸는데, 그런 여우 같은 짓으로 얻을 것은 지옥의 영원한 형벌뿐임을 알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여우라고 하면 개체수가 가장 많은 종인 붉은여우를 말한다. 붉은여우는 몸길이가 90cm이고, 꼬리 길이 60cm, 어깨 높이가 55cm, 체중이 10kg 정도로 중소형 개와 비슷한 크기를 하고 있다. 이런 작은 외형적 특징 때문에 느헤미야 시대에 성벽을 재건할 때 이스라엘의 대적들은 다음과 같이 조롱했다. 『그때 그 곁에 있던 암몬인 토비야가 말하기를 “그들이 건축하는 것 위에 여우 한 마리가 올라가도 그들의 돌 성벽을 부수어 내리리라.” 하더라』(느 4:3).

여우는 새끼일 때는 강아지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자라면서 뾰족한 입과 귀, 털로 풍성한 꼬리 등으로 개와는 다른 여우 자신만의 외형적인 특징을 나타낸다. 이런 겉모습을 지닌 여우는 잡식성 동물인데, 그래서 시편 63:10에서는 『그들이 칼에 쓰러지며 여우들의 몫이 되리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사체를 먹는 여우를 언급하고, 솔로몬의 노래 2:15에서는 『우리를 위하여 여우들, 포도 넝쿨을 망치는 작은 여우들을 잡으라. 우리의 포도 넝쿨에는 부드러운 포도가 있음이라.』라고 함으로써 과일을 먹는 여우를 제시한다. 위의 시편 63:10과 관련하여 학자들은, 여우는 사냥하는 습성이 있고 죽은 고기를 먹는 것은 주로 자칼의 습성이므로 그 구절에서 여우는 사실 자칼일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여우 또한 죽은 고기를 먹기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솔로몬의 노래에서 묘사되는 여우와 같이 언급되는 포도 넝쿨이 자라는 포도원(사 5:1-5)과 포도나무는(시 80:8-15) 교리적으로 이스라엘에 비유되지만 우리는 이 말씀을 그리스도인에게 영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즉 그리스도인의 삶을 죄로 물들여서 영적 성장은 물론 모든 간증을 잃게 하는 것은 작은 여우 같은 “작은 죄”라는 것이다. 포도원의 “작은 여우”가 포도 넝쿨을 망치듯이 “작은 죄”가 성도의 인생을 망칠 수 있는 것이다. 창세기 3장에서 뱀의 간교한 질문 한마디에 여자가 죄를 짓고, 그 죄에 남편이 동참함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된 것을 보면(롬 5:12), 언뜻 보기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작은 일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전체를 파멸시킬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탄은 그리스도인에게 접근할 때 그 자리에서 즉시 거부할 만한 큰 죄로 접근하지 않는다. 언제나 이 정도면 죄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될 만한 “작은 것”을 던져 줌으로써 그에 욕심을 내다가 결국 죽게 만드는 것이다(약 1:15).

여우는 매우 영리하다. 이 영리함에서 오는 여우의 이미지는 교활함이나 간교함인데, 여우는 어떤 위기가 닥쳤을 때 짧은 거리는 시속 70km까지 달릴 수 있어서 빠르게 도망칠 수 있지만, 대개는 꾀를 써서 위기를 모면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와 같이 교활하고 간교한 여우의 모습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헤롯을 여우에 비유하셨다고 말하기도 한다.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가서, 그 여우에게 말하라. 보라, 오늘과 내일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려니와 셋째 날에는 온전하게 되리라』(눅 13:32). 물론 교활하고 간교하다는 점에서 헤롯과 여우가 상통하는 면이 있긴 하지만, 이 말씀에는 보다 더 심오한 진리가 내포되어 있다. 우선 여우(fox)라는 단어를 보자면 “X”로 끝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X”는 적그리스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라틴어와 영어에서 “X”는 적그리스도를 보여 준다. 즉 적그리스도는 이제 곧 “평화”(pax)롭게 와서 술책으로 왕국을 얻을 것이다(단 11:21).

적그리스도가 “왕”(rex)으로서(계 6:2) 그의 권좌에서 “권위 있게” 말할 때 하나님의 “음성”(vox)을 흉내 낼 것이다(계 13:5,6). 그의 특징은 “입맞춤”(XXXX, 1900년대 미국 십 대들의 “사랑과 키스”의 표시), 즉 “음행”(sex)이며(계 2:20,21), 온 세상에서 “세금”(tax)을 거둘 것이다(단 11:20, 눅 2:1-5).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짐승의 표”인 “666”(six, hex) 표를 받게 할 것인즉, 이 표를 받은 자들은(계 13:18) 악취가 나는 심한 헌데가 생기는 “매독”(pox)으로 고통당하는 저주를 받게 된다(계 16:2). 이 “짐승의 표”는 신비의 바빌론인 로마카톨릭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계 17:5). 카톨릭(catholic)이라는 말은 “cat-holic”으로, “고양이”(cat)에게 “전적으로 드려진”(holic) 집단을 의미한다. 대환란 때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짐승”은 고양잇과에 속한 표범으로 “검은”(styx) 점이 있다(계 13:2). 그래서 이 “검은 고양이”(Felix)인 로마카톨릭에 속한 신부들과 수녀들은 검은 옷을 입고 다니며, 카톨릭교도들은 마리아 상의 발등에 “입맞추며” 경배를 한다. 또한 사자와 곰과 “표범”은 나무의 높은 곳까지 올라가 “X” 자 표시를 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성경에서 나무는 사람을 나타내는데(막 8:23,24), 사자와 곰과 표범이 복합된(계 13:2) 짐승인 적그리스도는 대환란 기간에 사람의 오른손과 이마에 표시를 하려고 할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사람들을 “괴롭히고”(vex)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자들을 “도끼”(ax)로 목을 쳐낸 뒤(계 6:9; 20:4) “관”(box)에 던져 넣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헤롯을 여우에 비유하신 것은 여우가 단순히 교활한 이미지를 가진 동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헤롯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예표가 되기 때문에 그를 여우라고 부르신 것이다. 주님께서 초림하셨을 때 왕국을 다스리던 자는 적그리스도의 예표인 헤롯이었고, 이제 곧 재림하실 때에는 진짜 적그리스도가 왕국을 다스리고 있을 것이다. 또한 헤롯은 초림 때 엘리야가 될 수도 있었던(눅 1:17, 마 17:12) 침례인 요한의 목을 베었는데, 이는 대환란 기간에 적그리스도가 엘리야의 목을 베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계 11:3-7). 이뿐 아니라 사도행전 12:21-23의 말씀을 보면 헤롯이 왕복을 입고 왕좌에 앉아서 연설을 하는데 사람들이 그의 음성을 신의 음성이라고 했을 때 헤롯은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아 죽게 된다. 이는 대환란 기간에 적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할 영광을 스스로 취하다가 멸망한다는 점에서 읽을 수 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헤롯을 여우에 비유하신 일에는 “여우 - 헤롯 - 적그리스도”로 연결되는 진리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신약에서 여우는 총 3번 언급된다. 앞서 살펴본 헤롯과 관련된 비유에서 등장한 누가복음 13:32 외에 마태복음 8:20과 누가복음 9:58에서 언급된다. 마태복음 8:20과 누가복음 9:58은 같은 상황을 다루고 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여우들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인자는 자기 머리 둘 곳조차 없노라.”고 하시며』(눅 9:58). 이 말씀은 바위틈이나 흙으로 된 굴에서 생활하는 야행성 동물로서 스스로 굴을 파기도 하고 다른 동물의 굴을 빼앗아 이용하기도 하는 여우의 특성을 언급하신 말씀이다. 사실 위의 말씀이 속한 누가복음 9:57부터 마지막 62절까지는 주님을 따르고자 할 때 사람들의 갈채와 주목을 받으며 걸어가는 레드 카펫을 상상해서는 안 된다는 “제자도”와 관련이 있다. 즉 주님께서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하신 58절 말씀은 어떤 사람이 주님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내가 따르겠나이다.』(57절)라고 한 것에 대한 답변으로 주신 말씀이다. 주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주님 자신은 머리 둘 곳조차 없으시다고 하심으로써, 주님을 따르고자 한다면 이 세상에서의 소유와 무관한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신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59절에서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먼저 장사 지내고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는 사람이 나오는데, 주님께서는 죽은 자들로 그들의 죽은 자를 장사 지내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하셨다(60절). 가족에게 먼저 작별 인사를 고하고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는(61절) 사람에게는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적합지 않다고 말씀하셨다(62절).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왜 위와 같은 말씀을 하셨던 것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disciple)가 되려면 훈련받고 단련되어야(discipline)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구원만 받은 것으로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 수 없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죄인이 죽으면 그가 그리스도인답게 살았든 안 살았든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맞지만, 제자로서의 그리스도인, 곧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그가 구원받은 후에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영적인 훈련에 들어간 사람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 훈련에는 앞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기 육신의 안위와 가족에 대한 사랑보다도 하나님을 우선적으로 섬기는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점은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나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해야만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누가복음 14:26 말씀과도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당신도 이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훈련에 임한다면 주님의 제자가 되는 영예를 누리게 된다.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믿을 때 여우라는 동물을 통해서도 풍성한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성경을 손에 들고서 믿는 척만 하는 여우 같은 자들이 성경의 여우를 자칼이라며 거부할 뿐이다. 비록 포도원을 망치는 여우라지만 그것을 잘만 공부한다면 성경 지식에 있어 결코 뒤지지 않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