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성경과 고고학 분류

성경의 역사성을 의심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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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09월호>

한창 큰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바빌론 궁전에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손가락들이 갑자기 나타나 회벽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기록된 글은 이것이니, 메네 메네 테켈 우파르신이라』(단 5:25). 이 글은 "이제 함량 미달인[테켈] 바빌론 왕국을끝내고[메네], 그 왕국을 메데 페르시아에게 넘겨주겠다[우파르신, 페레스]."(단 5:26-28)라는 하나님의 엄중한심판의 메시지였다. 이로써 70년간 세계를 제패했던 바빌론은 짧았던 영화를 마감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이후 "바빌론 성읍"은 꽤 오랜 시간을 땅속에 파묻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바빌론의 역사성 자체를 의문시했다.그저 신화적인 바빌론으로만 여겼던 것인데, 이로 인해 바빌론의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 성경까지도 신화적인 책으로간주했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을 도덕적이고 영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종교적인 서적" 정도로만 인식할 뿐 역사적이고과학적인 책으로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국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책이 아니라 인간의 저작물 정도로만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고고학의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넬슨 글루에크 박사는 "성경의 기록이 고고학적인 발굴을 통해 확실하게부정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오히려 그러한 발견들은 성경이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뿐이다."라고말했다. 미국 예일대학교의 고고학자 밀러 버로우스 박사도 이렇게 말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성경에 대한 과도한의심은, 그에 관한 자료를 세밀하게 분석하여 유추한 데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무조건 배격하려는 마음에서비롯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고학적인 발견들은 성경의 역사적인 기록들이 신뢰할 만한 것임을 더욱 강하게 보여 주고있다." 말하자면 세상 학자들이나 성경을 믿지 않는 신학자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은 없다."라는 전제 속에서 자료를조사하다 보니까 그런 과도한 편견과 의심을 품게 되는 것이다. 『그는 교만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고 다만 질문과언쟁만을 좋아하는 자니, 거기서 시기와 다툼과 악담과 사악한 의심이 생겨나며』(딤전 6:4). 그런 교만한 자들의 편견에싸인 강의를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 강의실에 앉아서 듣고 있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인 것이다!

실제로 바빌론이 고고학적으로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성경이 옳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독일의 고고학자 로베르트콜데바이가 이라크 남쪽의 바빌론 지역을 중심으로 1899년부터 1917년까지 무려 18년 동안 발굴한 끝에 모래 속에감춰져 있던 거대한 바빌론 문명이 역사 전면에 드러났던 것이다. 발굴 당시 바빌론은 "성경 말씀 그대로" 꽤 거대하고화려한 도성임이 밝혀졌다. 바빌론 왕 느부캇넷살은 궁전을 거닐다가 너무 자만한 나머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이것이내가 내 권세의 힘으로 내 위엄의 영예를 위하여 왕국의 집을 건설한 위대한 바빌론이 아니냐?』(단 4:30) 이것은"모든 권세를 정하시고"(롬 13:1), "인간들의 왕국을 다스리시며, 그 왕국과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원하시는 자에게주시는"(단 4:17; 2:37)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교만한 발언이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느부캇넷살을치시어 7년 동안 짐승처럼 살도록 만드셨다.

그 심판의 기간이 다 찼을 무렵, 하나님께로 돌이킨 느부캇넷살은 인간의 이성을 회복한 후 다시 왕위로 돌아왔다(단4:34-37). 그가 미쳐 있던 7년 동안 그의 아들 "에윌므로닥"이 그를 대신하여 섭정했는데, 이 이름은 성경에도나온다. 그는 바빌론 제2차 침공 때(B.C. 598년) 포로로 사로잡혀 온 유다 왕 여호야킨을 석방시켜 준 왕이었다.『유다의 여호야킨왕이 포로된 지 삼십칠년, 곧 바빌론 왕 에윌므로닥이 치리하기 시작한 해 열두째 달, 그 달 이십칠일에그가 유다의 여호야킨왕을 옥에서 내어 주어 머리를 들게 하고 그에게 친절히 말하며 그의 보좌를 바빌론에서 그와 함께한왕들의 보좌보다 높여 주고 그의 죄수복을 갈아입혔으니 그가 평생 동안 계속해서 왕 앞에서 음식을 먹었더라』(왕하25:27-29).

바빌론 유적지에서 발굴된 느부캇넷살 왕의 명각(銘刻)에는 그가 정신이 나가서 들의 짐승들과 함께 소처럼 풀을 먹고 살았던그 공백기에 관한 기록이 새겨져 있는데, 그 기록 내용과 시기가 성경 말씀과 일치했다고 한다. 사실 다니엘서에 나오는바빌론에 관한 내용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고고학적 증거들은 많이 있다. 일례로, 바빌론 성읍 안의 어떤 건물 앞에 있는돌로 만든 기념비에는 다니엘 1장에서 보듯이 포로로 잡혀 왔던 유다의 왕족들과 고관들에게 칼데아(바빌론) 학문을 가르치기위해 사용된 건물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지역에서 발굴된 거대한 용광로 앞쪽에는 다니엘 3장의 내용처럼느부캇넷살이 세운 금상에 절하지 않는 자들을 "화형"시키는 데 사용된 용광로라고 적혀 있기도 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과학자로 손꼽히는 아이작 뉴턴은 성경을 깊이 있게 연구한 끝에 이렇게 고백했다. "성경의 역사적인기록들은 세상의 어떤 역사적인 문서들보다 더 확실한 사실이며 '진리'이다."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콜리 렌프류 교수는"고고학자들의 시대 추정에 있어서 새로운 혁명이 진행 중에 있다. 다시 말해 역사는 다시 쓰여야 하는 것이다."라고주장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의 고고학연구소 소장이었던 클리포드 윌슨 박사는 "내가 아는 한 지금까지의 어떤 고고학적 발견도성경과 상반된 적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느부캇넷살이 죽자 에윌므로닥이 왕위를 계승했는데, 그는 2년간의 통치를 끝으로 느부캇넷살의 사위인 네리그릿살을 주축으로한 모반자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네리그릿살은 4년을 치리한 후 B.C. 556년에 전쟁터에서 죽었고, 그의 아들라보로소알코드가 뒤를 잇지만, 그는 저능아로서 1년도 못 되어 신하들에게 맞아 죽었다. 결국 왕위는 느부캇넷살의 또 다른사위인 "나보니두스"에게 찬탈되었고, 그가 바빌론이 멸망할 때까지 치리하게 된다. 그런데 다니엘 5장에는 바빌론의 마지막왕이 나보니두스가 아닌 "벨사살"로 나온다. 사실 벨사살은 나보니두스가 죽은 이후에 왕이 된 것은 아니었고, 아버지와더불어 공동으로 통치한 왕이었다. 당시 그의 아버지 나보니두스는 대외적인 전쟁을 위해 출정한 상황이었고, 그 대신 그가왕궁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세속 역사에서는 벨사살이 등장하지 않는다. 고대 근동의 문서들에는 나보니두스가 바빌론의 마지막 왕으로 나와 있기때문이다. 이 때문에 성경을 믿지 않는 고고학자들은 다니엘서의 역사성을 의심하면서 5장을 비롯한 많은 내용들이 신화적으로꾸며 낸 이야기들이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발굴을 통해 바빌론 폐허에서 토판들이 발견되었고, 이 토판들에는벨사살이 나보니두스 왕의 아들이었으며, 아버지 나보니두스가 전쟁으로 인해 약 10년 동안 바빌론을 떠나 있으면서 벨사살을공동 통치자로 지명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고고학적인 증거들은, 다니엘 5장에서 난데없이 등장한 손가락이궁전 회벽에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글자를 썼을 때, 왜 벨사살 왕이 이 글자를 읽고 해석하는 사람을 왕국에서 자기다음으로 "둘째 치리자"가 아니고 "셋째 치리자"로 세워줄 것(7,16절)이라고 말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말하자면 자신의 아버지가 "첫째 치리자"였고, 공동으로 통치하고 있었던 벨사살 자신이 "둘째 치리자"였기 때문에, 당연히그 다음으로 "셋째 치리자"를 언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곧 멸망할 왕국에서 "셋째 치리자"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다니엘은 왕국의 권세가 허망한 것임을 잘알고 있었고, 더군다나 왕국이 몰락하는 마당에 벨사살에게는 그 약속을 이행할 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벨사살에게 『왕의 선물들은 왕께서 가지시고 왕의 상들도 다른 사람에게 주소서.』(단 5:17)라고 담대히말했는데, 말하자면 "그런 헛된 영광 따위는 너나 가져라!"라고 말했던 것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老)선지자"는더 이상 두려울 게 없었다. 오직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분의 백성을 멸망시킨 이방 왕국의 멸망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다니엘이 그 글을 해석해 주었을 때 벨사살은 셋째 치리자에 대한 약속을 이행했다(단 5:29). 적어도 벨사살은 약속을지킬 줄은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멸망이 지금 당장 자신이 통치하는 날에 일어날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것은성경의 예언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성경에 주님께서 이제 곧 오신다는 예언이 있을 때, 지금 당장 자신의 때에그 예언이 성취될 것으로 믿어야 한다. 의심하거나 먼 미래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벨사살은 다니엘을 셋째 치리자로삼았다. 그러나 그의 약속은 "공수표"였다. 결국 그날 밤 벨사살은 죽임을 당했고 왕국은 끝나 버렸다. 난공불락의요새였던 바빌론 성읍이 무너진 것이다. 성경의 역사성을 의심하는 자는 그 누구라도 이와 같이 무너질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