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성경과 고고학 분류

성경을 부인하는 고고학자들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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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06월호>

성경을 비평하고 대적하는 자들 중에 평생 "땅"만 파면서 돈과 인생을 낭비하는 두 부류가 있는데, 진화론자들과 고고학자들이다. 전자는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면서 진화를 입증하기 위해 화석을 찾아다니는 무리들이고, 후자는 무오한 성경에서 역사적인 오류를 드러낸답시고 유적지를 발굴하러 다니는 군상들이다. 그러나 화석은 발견되는 족족 하나님의 창조가 사실이었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유적지는 발굴될 때마다 성경의 사건들이 역사적인 진실이었음을 보여 줄 뿐이다. 고고학자들은 물론, 기독교 교육에 편승한 철학으로 노략질당한 많은 신학자들 및 목사들은 구약 역사의 일부를 "초역사"(원역사)로 분류하여 신화(설화)로 취급하거나, 역사성은 인정해도 구체적인 "숫자들"은 오류가 있다고 거짓말한다. 때로는 고고학자들이 정해 놓은 연대기에 성경의 연대기를 후퇴시켜 끼워 맞추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출애굽 사건"이다.
이 사건의 배경이 된 이집트는 B.C. 3000년경 메네스왕에 의해 최초로 통일된 이래로 로마 제국령이 된 B.C. 30년에 이르기까지 총 32개 왕조가 있었다. 그중 제14,15왕조의 시기를 즈음하여 "힉소스"(Hyksos)족이라 불리는 셈족이 이집트를 침입했다. 이후 이집트인들은 이들을 다시 몰아냄으로써 제18왕조부터 시작되는 "신왕국 시대"를 맞는다. 이 시기에 제19왕조에 속한 "람세스 2세"가 등장했는데, 일반 역사에서는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을 박해했던 파라오가 이 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모세와 동시대의 인물이 아니었는데, 이는 출애굽 시기가 B.C. 1500년경이었던 반면, 람세스 2세의 통치 기간은 기원전 13세기 말경(B.C. 1279-1212)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때를 전후해서 출애굽한 시점을 설정하면 성경 역사는 200-250년 정도 후퇴하여 예수님의 탄생 시기도 A.D. 200-250년이 되어 버린다. 세실 B. 드밀의 영화 『십계』는 성경대로 파라오가 홍해에 수장되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들을 추격했다가 살아서 되돌아온 것으로 묘사했는데,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가 그렇게 연출한 이유는 당시의 파라오를 람세스 2세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시신은 이집트의 매장 관습에 따라 미라로 만들어져 현재 카이로 박물관에 남아 있다. 그러나 분명 파라오는 홍해 속에 수장되었기에(시 136:15) 그의 시신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찾았다 해도 "익사체"의 미라가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성경적으로 보면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파라오는 람세스 2세와 무관하고 그 이전에 이집트를 침략한 힉소스 정복자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다. 힉소스는 "이민족 통치자"를 가리키는 고대 이집트어에서 유래한 말인데, 그들은 북동쪽으로부터 침입해 들어와 나일 강 하류의 삼각주 지역을 점령했다. 이들은 셈족으로서 앗시리아 계통이었을 것임이 분명한데, B.C. 1720년경 이집트를 침략하여 100년 이상 이집트인들을 통치했던 것이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 제2권 9장에 보면 이 시기와 관련하여 "왕권이 다른 가문으로 넘어갔다"는 내용이 나온다. 왕조가 바뀌었다는 말인데, 이집트인들이 아닌 외부의 이민족, 곧 앗시리아인들에게 왕권이 넘어간 것이다. 이사야 52:4은 이를 확증해 준다. 『내 백성이 이전에 이집트에 내려가 거기서 기거하였고, 또 앗시리아인이 까닭없이 그들을 압제하였느니라.』 백성들이 이집트로 내려가 기거하다가 압제를 당한 것은 출애굽 이전인데, 이때 압제를 당했다면 당연히 "이집트인"에게 압제를 당했어야 옳지, 왜 "앗시리아인"에게 압제를 당한 것인가? 바로 이 앗시리아인이 그 즈음에 이집트를 침략하여 통치했던 "힉소스인들의 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애굽기 1:8에서는 『요셉을 모르는 새 왕이 일어나서 이집트를』 다스렸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만일 당시의 파라오가 이집트인이었다면 요셉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자국의 역사를 잘 알고 있어야 할 왕이, 한때 파라오가 이집트 온 땅의 치리자로 세웠던(창 41:43) 요셉이 어떤 존재였고 그가 속한 이스라엘이 어떤 민족이었는지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따라서 요셉을 모르는 새 왕이 일어났다는 것은 왕조가 새롭게 바뀌되 외부에서 침입한 이민족의 왕조로 바뀌어 버렸음을 의미한다. 그때 이집트 왕좌에 앉았던 "파라오"가 힉소스인들의 왕인 "앗시리아인"이었고, 이 자에 의해 이스라엘은 힘든 노역의 시기를 보내게 되었다. 에스겔 31:2,3에서 이집트 왕 파라오가 또다시 앗시리아인과 연결되고 있음을 주목하라. 특히 이 둘은 모두 적그리스도의 예표이고, 장차 대환란이 오면 이들이 예표하는 적그리스도에 의해 이스라엘은 또다시 고난의 때를 보내게 될 것이다. 바로 출애굽 당시처럼 말이다!
성경을 버리고 고고학자들의 말을 따라가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다. 이들의 장단에 놀아나며 성경을 신화나 인간적인 저작물로 저하시키려는 자들은 철학에 노략질당한 자들이요, 성경 변개와 이단 교리의 온상지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후예들이다. 이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믿지 않고 "알레고리적인 방법"(비유적 ㆍ 우화적 ㆍ 풍유적 해석법)을 사용하여 해석하는데, 본래 이것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그들의 신화를 역사적인 사실로 믿지 않고 어떤 교훈을 주기 위한 내용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것을 플라토를 추종했던 배교한 유대인 "필로"가 구약성경을 해석하는 데 이용했고, 영지주의자 "판테누스"가 뒤따랐다. 소크라테스, 플라토, 아리스토텔레스의 글들이 영감받았다고 주장한 "클레멘트" 역시 이 방법으로 성경을 우화적으로 풀었고, 그것은 "오리겐"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창조 기사, 아담과 이브에 관한 내용, 노아의 홍수, 아브라함의 이야기 등의 역사성을 믿지 않았는데, 오늘날 이들을 추종하는 자들은 출애굽 사건의 역사성 자체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면서 당시 이스라엘이 건넌 것은 "홍해"가 아니라 "갈대숲의 늪지대"였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시판되는 대부분의 성경 지도들은 홍해를 건너지 않은 것처럼 이동 경로를 그려 놓음으로써 고고학자들의 불신에 타협하고 말았다. 그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더 "큰 믿음"이 요구되는데, 이는 물에 겨우 발만 잠기는 갈대숲에서 파라오와 그의 군대가 수장되었기(?) 때문이다! 한 번 성경의 역사성을 부인하기 시작하면 역사적인 진실은 걷잡을 수 없이 꼬이게 된다.
카일의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피돔』(출 1:11)이란 지역에서 세 가지 유형의 벽돌들로 층층이 쌓여 있는 건물들이 상당수 발견되었는데, 하부 층에는 "잘게 썬 짚으로 만든 벽돌들"로, 중간 층에는 "뿌리째 뽑힌 짚이 섞인 진흙 벽돌들"로, 상부 층에는 "순전히 짚이 들어 있지 않은 벽돌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출애굽기 5:7-9의 말씀이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보여 주는데, 백성들을 가게 해 달라는 모세와 아론의 요청에 대해 파라오가 "너희가 게으르도다."라고 말하면서 "이전처럼 짚을 제공해 주지 말되 벽돌 생산량은 동일하게 채울 것"을 명령했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 동일한 양을 채우기 위해서는 중간 층 및 상부 층에서 발견되는 벽돌들처럼 "대충"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집트 고고학자 플린더즈 페트리는 나이가 몇 개월도 채 안 되서 죽은 아기들의 유골들이 담긴 상자들을 상당수 발견했는데, 이는 출애굽기 1:16에서 "히브리 여인들이 출산할 때 아들을 낳거든 죽이라."는 파라오의 명령과 일치한다. 또한 당시의 이스라엘 노예들이 연장과 가재도구를 일터나 집에 내버려 둔 채 갑자기 떠나 버린 흔적들도 발견되었는데, 출애굽기 12:33,39은 이를 잘 설명해 준다. 『이집트인들이 백성들을 재촉하였으니... 그 땅에서 그들을 속히 내보내려 하더라... 그들이 이집트에서 쫓겨났기에 지체할 수 없었고... 준비하지 못했음이더라.』 또한 출애굽기 10:7의 말씀대로 당시에 한 나라를 망하게 할 만큼의 열 가지 국가적인 대재앙도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쉽게 잊히지 못했을 법한데, 당시의 정황을 보여 주는 문서 하나가 네덜란드의 라이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재앙이 땅을 휩쓸었고 곳곳에서는 유혈이 낭자했다... 강에서는 핏물이 범람한다. 그것을 어떻게 마시겠는가?...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다... 외부에서 낯선 사람들이 이집트로 들어왔다... 곡식은 곳곳에서 말라죽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못 참겠다."며 한숨 쉬고 곡간은 텅텅 비어 버렸다.』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하겠는가? 고고학적 발견은 결코 성경을 부정하지 못한다. 누군가가 계속해서 성경을 무너트리기 위해 공격할 때, 오히려 성경은 전혀 손상되지 않은 채 그 기치가 더욱 드높여진다. 성경을 믿고 안 믿고는 개인의 자유이지만, 성경을 믿지 않은 결과는 매우 참담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믿지 않는 자들"은 홍해에 수장된 파라오와 함께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던져질 것이기 때문이다!(계 21:8)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