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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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예루살렘/유대사역 (3) - 예수님의 증거와 바리새인들의 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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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0년 10월호>

#119
[ A.D. 29년 9-10월(장막절) 이후· 올리브 산 / 예루살렘 성전· 마 / 막 / 눅 / 요 8:1-11 ]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셨다.
이제 장막절의 마지막 날(요 7:37)은 지났고,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에 가셨다가 이른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나오셔서 자신에게 나온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본문(8:1-11)은 이것을 기록한 말씀이다(요 8:1-2).
그런데 변개된 성경 필사본들은 이 구절들(8:1-11)은 물론 7:53을 포함한 12구절을 삭제했다. 또한 대표적으로 변개된 현대의 헬라어 성경인 네슬-알란드의 원문은 1975년의 25판까지 이 12구절을 통째로 삭제했었다. 그리고 26판(1979년)부터는 본문에 넣되 후대에 첨가된 것이라는 의미로 이중 괄호로 표시했다. 네슬-알란드판의 편집자들은 이 12구절을 원본에 있던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도 이 구절들을 원본에 없던 것이었으나 후대에 첨가되었다는 의미로 꺽쇠괄호([ ])로 표시했다.
그러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이러한 삭제가 얼마나 앞뒤가 안 맞는 모순된 것인가를 확인할 수 있다. 7:53-8:11의 12구절이 삭제되면, 7장은 『그리하여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더라.』(7:52)는 말씀으로 끝나고, 8장은 『그때에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시더라.』(8:12)로 시작되는데, 7장에서 8장으로의 연결되는 문맥이 전혀 맞지 않는다. 이는 7:52에서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사람들이 있던 곳에는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8:12은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이라고 기록되었기에 말씀하시는 대상인 "그들"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다시』라는 말 역시 앞에서 한 번 말씀하신 적이 있기에 나올 수 있는 표현이기 때문에 8:12의 말씀은 모순된 것이다. 성경 변개자들이 12구절을 삭제했으나, 전후 문맥에 기록된 말씀들이 그들의 악한 행위를 명백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8:1은 7:53과 전혀 다른 상황이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논의하려고 모였던 자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는 말씀으로 7장이 끝난다. 그리고 8장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말씀하신 후,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가 하루가 지난 다음 날 이른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나아오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 나아온 『모든 사람들』(8:2) 속에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있었다. 이들 반대자들은 예수님께서 무리를 가르치시고 기적을 베푸시는 곳에는 언제나 함께 있었다. 그런데 그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고소할 구실을 찾기 위해(8:6)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데려와 모세의 율법에서는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고 명령했는데, 예수님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었다(8:4,5).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말을 못 들으신 척하시고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다 무엇인가를 쓰셨다. 그런데도 그들이 계속 묻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말씀하셨고(8:7), 다시 몸을 굽히셔서 땅에다 무엇인가를 쓰셨다. 그러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자들은 양심에 가책을 받아 늙은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맨 나중 사람까지 하나씩 하나씩 자리를 떠났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포함해서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떠나게 된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갑자기 양심의 가책을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 단지 주님의 말씀에 양심이 가책을 받았을까?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고소할 구실을 찾으려는 완악한 사람들이 단지 죄 없는 자가 먼저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는 말에 찔림을 받았겠는가? 우리는 한 근거를 예수님께서 땅에 쓰신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성경에 명시적으로 그 내용이 나오지는 않지만 당시 상황에 맞는 율법의 규정을 구약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그들이 인용한 율법이 이 문제에 관해 율법이 말씀하는 것의 절반을 삭제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 여인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다고 했는데, 그들은 함께 간음한 남자는 놔두고 여자만 예수님 앞으로 데려왔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만일 어떤 남자가 한 남편과 결혼한 여자와 동침하는 것이 발견되면 그들을 둘 다 죽일지니, 즉 그 여자와 동침한 그 남자와 그 여자니라. 이같이 너는 이스라엘로부터 악을 제할지니라』(신 22:22). 『다른 사람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즉 자기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음한 자와 그 간음한 여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레 20:10). 율법은 여자만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 둘 다를 죽이라고 말씀한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여자만 데려왔다. 그 남자는 그들이 봐주어야만 할 한통속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비록 그렇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들이 그 남자를 놔두고 왔다는 것은 이미 율법을 어긴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들이 그 남자를 놓아주었다는 것은 그들이 죄를 지은 것이었다. 예수님을 고소하려던 자들이 율법을 인용하여 예수님을 궁지에 몰려고 했으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율법대로 하지 않은 것을 알려 주는 율법 말씀을 땅에 쓰시고,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그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양심에 가책을 받게 된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과 의도를 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죄와 모순된 행동을 아셨기에 그들을 한 번에 물리치신 것이다. 그것은 율법을 기록된 그대로 인용하고, 그 말씀에 따라 죄를 지적하는 방법이었다.
죄를 지은 여인을 정죄하던 자들은 아무도 없게 되었고, 주님께서도 그녀를 정죄하지 않으셨으며, 그 여자에게 단지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 여인이든지, 교회 시대의 구원받은 성도들이든지 주님께 죄를 용서받은 사람들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죄를 용서하신 분에게 우리가 합당히 행하는 길이다.


#120
[ A.D. 29년 9-10월(장막절) 이후 · 예루살렘 성전 · 마 / 막 / 눅 / 요 8:12-59 ] 자신이 세상의 빛이신 사실과 아브라함의 씨에 관해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8:12에는 간음하다 잡혀 온 여자를 놔두고 떠나갔던 바리새인들을 포함한 무리가 다시 주님 앞에 있게 된 상황이다. 그래서 12절은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13절에 "바리새인들"이 등장하여 예수님을 논박하는 내용이 나오는 것이다.
이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선포하신 것은 『나는 세상의 빛이라[I am the light of the world].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결코 어두움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8:12)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선포는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알리는 말씀이다. 첫째, "나는...이다."라는 표현은 구약의 『나는 곧 나니라』(I AM THAT I AM)(출 3:14)는 말씀에서처럼 신성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자신을 밝히신 것이다. 둘째, 요한복음 6:48에서는 자신을 『나는 그 생명의 빵이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께서 여기서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은 『생명의 빛』을 얻게 된다고 하셨는데, 빛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 『그러므로 우리가 그에 관하여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말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그분 안에는 어두움이 전혀 없다는 것이라』(요일 1:5). 따라서 구원받은 성도들은 "빛의 자녀들"이다 - 『너희가 한때는 어두움이었으나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니 빛의 자녀들로서 행하라』(엡 5:8). 셋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빛으로 오신 것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이다. 『나 주가 의로 너를 불렀으니 내가 네 손을 붙들고 너를 지킬 것이며, 백성의 언약과 이방인들의 빛으로 너를 주어』(사 42:6). 『그가 또 말씀하셨도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의 보존된 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라. 내가 또한 너를 이방인들에게 빛으로 주리니 네가 땅 끝까지 나의 구원이 되리라』(사 49:6). 이런 예언의 성취는 곧 예수님의 신성을 확정해 주는 것이다.
12절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선포되자마자 바리새인들은 13절에서 예수님의 증거가 옳지 않다고 바로 논박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8장 마지막 절까지 바리새인들의 반박과 예수님의 증거가 계속된다. 예수님의 말씀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핵심은 예수님의 증거가 신뢰할 수 있으나 바리새인들의 말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증거가 옳다는 것이다. 그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시지만, 바리새인들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증거는 옳다고 말씀하셨다(8: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한한 인간이 아니시기에 영원부터 계시고, 때가 되어 세상의 빛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며, 또 미래의 언제, 어떻게 이 땅으로 다시 오실 것인가를 모두 알고 계신다. 이런 분의 증거가 옳지 않다면 누구의 증거가 옳을 수 있겠는가?
둘째,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판단과 증거가 옳은 이유가 아버지께서 자신과 함께하실 뿐만 아니라 아버지께서도 예수님 자신에 대해 증거하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8:16,18). 이는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거는 옳다고 말씀하기 때문이다(8:17).
셋째,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을 바리새인들은 올 수 없으며, 그들은 그들의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8:21). 이렇게 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위에서, 즉 하늘에서 나신 분이시지만, 그들은 아래에서, 즉 땅에서 난 자들이기 때문이며,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지만,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이다(8:23).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죄들 가운데서 죽는다(8:24). 그러므로 그들의 논박은 옳지 않으며, 예수님의 말씀은 옳은 것이다.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번 자신의 신성을 나타내는 이름을 사용하셨는데, 『내가 그[I am he]인 줄 믿지 아니하면』(8:24) 바리새인들이 그들의 죄 가운데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예수님께 네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도 『내가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해온 대로니라.』(8:25)고 말씀하셨고, 또 그들에게 『너희가 인자를 들어올리는 그때에야 너희는 내가 그[I am he]인 줄 알게 되리라.』(8:28)고 말씀하셨다.
넷째,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는 사실을 통해서 자신의 증거를 확증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분"은 "내 아버지"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버지께서 참되시고 자신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말씀하신다고 증거하셨다(8:26,28,29,42).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깨닫지 못했다(8:27). 그러나 한편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었다(8:30). 이렇게 믿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때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그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되리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시더라』(8:31,32). 사람들을 자유케 하는 "진리"는 요한복음 8:36의 말씀대로 바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 『그러므로 만일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참으로 너희가 자유롭게 되리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을 증거하신 예수님께서는 반대로 믿지 않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아브라함의 씨라고 주장하자, 그들이 육신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씨이지만(8:37), 영적으로는 아니며 오히려 그들의 아비가 마귀라고 천명하셨다(8:38,44). 따라서 그들의 아비 마귀가 살인자인 것처럼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지적하셨다(8:37,38,40). 또한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자식들이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고 그들의 영적 실체를 지적하셨다(8:43-47). 이런 자들의 논박은 옳지 않으며,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증거는 옳다.
다섯째,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곧 영원부터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아비가 마귀라는 사실을 지적받자 예수님께서 음행을 통해 태어났다고 비방했다(8:41). 그리고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씨라고 자랑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나는 있느니라[I am].』(8:58)고 말씀하심으로써 자신의 신성을 나타내 보이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바리새인들은 깨닫거나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은 마귀의 자식들이었으며, 그들 안에 가득한 그들 아비의 거짓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자리를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 했으나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기에(8:20; 7:30,44) 피하셨다. BB <다음 호에 계속>

복음서와 그리스도의 생애 18 / 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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