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복음서와 그리스도의 생애 분류

후기 갈릴리 사역 (2) - 예수님의 고난, 죽음, 부활에 대한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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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0년 04월호>

#92
[A.D. 29년 ․ 갈릴리 서쪽 막달라에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는 바다 위 배 안․ 마 16:6-12 / 막 8:14-21 / 눅 / 요] 누룩을 조심하라는 말씀의 의미를 알려 주셨다.
마가복음 8:14에 따르면 당시 주님과 제자들은 배 안에 있었는데, 갈릴리 서쪽 막달라에서 건너편 동쪽으로 가는 중이었다. 공교롭게도 제자들은 빵을 가지고 가는 것을 잊었고(마 16:5) 그들에게는 빵 한 덩어리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래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삼가고 조심하라고 말씀하셨다(마 16:6).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의 누룩을 삼가고 조심하라는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제자들은 빵을 가져오지 않아 빵이 없는 것만을 두고 의논했다.
한편 마가복음 8:15은 마태복음과 다르게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가복음에 나오는 "헤롯의 누룩"에서 "헤롯"은 바리새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대적하여 죽이려고 모의했던 헤롯 당원들(Herodians)을 지칭한다(마 22:16, 막 3:6; 12:13). 헤롯 당원들은 정치집단이었는데, 종교적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바리새인들이 정치적으로 결탁한 사람들이었다. 마가복음 8:15과 비교하여 사두개인이 헤롯 당원이 아닌가 오해할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다. 마태복음 22:15-22은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우려고 함께 의논하고 질문한 것을 기록하는데, 국가에 내는 세금과 카이사와 연관된 정치적 문제를 이슈로 삼았었다. 반면 이 일이 있었던 그 날에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사두개인들이 바리새인들과는 별도로 예수님께 와서 그들의 거짓 교리에 따라 죽은 자의 부활과 연관된 질문으로 예수님을 문제 삼으려고 했으나, 예수님의 답변에 놀라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마 22:23-33). 이 일 후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사두개인들을 조용하게 만드셨다는 말을 듣고 모였고, 바리새인들 중 한 율법사가 주님을 시험하여 또 질문을 했다(마 22:34-35). 이와 같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둘 다 예수님을 대적하는 일을 했고, 때로는 함께 대적하는 일을 하기도 했으나, 헤롯 당원과 관련한 성경의 기록을 보면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이 함께 모이고, 사두개인들은 별도로 움직였던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성경 말씀들에 따르면 헤롯 당원이 사두개인들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마가복음은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대적하는 것에 집중해서 기록했고, 마태복음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모두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과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상기시키시며, 그들이 아직도 알지 못하여 깨닫지 못하는 것을 책망하셨고, 아직도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것이냐고 반문하셨다(막 8:17,18,21). 그리고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교리"를 조심하라는 것이라고 알려 주시자, 그때서야 제자들은 깨달았다(마 16:11,12).
"누룩"에 대해서는 천국의 비유를 다루면서 마태복음 13:33에서 한 번 설명한 바 있다.
여기에서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교리에 대해서 경고하셨다. 그들의 교리를 경고하신 이유는 그것이 거짓 교리이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그들의 교리에 있어서 각각 다른 거짓 교리를 가르치고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자선을 행하며, 십일조도 하고, 의롭고, 금식도 하며, 기도도 하고 영과 천사와 부활을 모두 믿는 소위 정통주의자이지만, 긴 옷을 입은 "아버지"들이었다(마 23장, 눅 18장, 행 23장). 이들은 보수주의자들과도 같고 로마카톨릭과도 같으며, 한 사람의 개종자를 얻으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얻고 나면 그를 자기들보다 두 배나 더 악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드는 자들이었다(마 23:15). 사두개인들도 자선을 행하며, 십일조도 하고, 의롭고, 금식도 하며, 기도도 하지만 그들은 어떠한 영적 존재나 육체적 부활도 믿지 않는 자유주의자들이며, 긴 옷을 입은 "회의론자"들이었다(마 23장, 행 23장, 마 22장).
따라서 본문의 누룩은 기독교계에 퍼진, 또는 교회 안에 퍼진 거짓 교리를 지칭한다. 특별히 마지막 때인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에는 거듭난 성도들로 구성된 교회들도 이 누룩으로 잔뜩 부풀어 있음을 우리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건전한 교리와 거짓 교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시대에도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오 너희 믿음이 적은 자들아,... 깨닫지도 못하며 기억하지 못하느냐?... 어찌하여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는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도 못하느냐? 아직도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느냐?... 어찌하여 너희는 깨닫지도 못하느냐?』(마 16:8,10,11, 막 8:17,21)는 책망을 반복적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교리를 터부시하고 사랑과 봉사를 앞세우는 교회들이 영적 암흑상태에서 깨어나야 한다.

#93
[A.D. 29년 ․ 갈릴리 북동쪽 벳새다 / 벳새다 마을 밖․ 마 / 막 8:22-26 / 눅 / 요] 벳새다 마을 밖에서 소경을 치유하셨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서쪽 막달라에서부터 건너오신 곳은 북동쪽의 벳새다였다(막 8:22). 이곳에서 사람들이 한 소경을 데려왔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소경의 손을 붙잡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고 안수하시어 눈을 뜨게 해주셨다. 그리고 "마을로 가지 말고 마을에 사는 어떤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라."(막 8:26)고 말씀하셨다. 벳새다는 마태복음 11:21-24에서 회개하지 않는 것으로 인해 심판을 예고하신 곳이었다. 벳새다는 전체적으로 심판이 예고되었지만, 각 개인에 따라 주님께 나아오는 자에게는 자비를 보여 주셨으며, 벳새다 안에서 기적을 행하지 않으시고 밖으로 데리고 나오셔서 치유해 주셨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도 벳새다에서 떨어진 외딴 곳에서 행해진 것이었다.)

#94
[A.D. 29년 ․ 카이사랴 빌립보 지경․ 마 16:13-16 / 막 8:27-33 / 눅 9:18-22 / 요 6:67-69]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신가에 대해 베드로가 고백했다.
마태복음 16:13은 주님께서 『카이사랴 빌립보 지경에 오셨을 때』, 마가복음 8:27은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랴 빌립보의 여러 마을로 가시면서 도중에』, 누가복음 9:18은 지역에 대한 언급 없이 『주께서 혼자 기도하고 계실 때 제자들도 함께 있었더라.』고 기록함으로써 당시의 정황을 구체적으로 알려 준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누구라고 사람들이 말하는가를 질문하셨으며, 베드로가 주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있는가를 고백한 것이 이 단락의 내용이다.
베드로의 고백은 매우 중요한 신앙고백이다. 각 복음서는 『주는 그리스도,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주님은 그리스도시니이다』(막 8:29),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눅 9:20)라고 기록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막 8:30, 눅 9:21).
후기 갈릴리 사역의 초반부에 있었던 몇 가지 사건에 대해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이 기록한 반면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다. 누가복음은 9:10-17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끝으로 전기 갈릴리 사역의 내용을 기록한 이후에 다른 사건들을 기록하지 않다가 9:18-21에서 베드로의 고백을 기록함으로써 후기 갈릴리 사역으로 바로 넘어간다. 한편 요한복음 6:66은 사람들이 주님을 떠나는 것을, 요한복음 6:67-69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요한복음 6:70-71은 유다 이스카리옷이 마귀이며, 그가 배반할 것을 기록한다. 요한복음은 보리 빵 다섯 덩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후에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억지로 왕으로 세우려고 했을 때, 단지 육신의 빵을 찾는 이들에게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말씀하신 이후(요 6:22-65) 그때부터 제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물러가고 더 이상 주와 함께 다니지 않았음을 알려 준다(요 6:66). 중간의 여러 사건들에 대한 기록은 하지 않고 누가복음과 같이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시작으로 후기 갈릴리 사역에 대해 기록한다.

#95
[A.D. 29년 ․ 카이사랴 빌립보 지경․ 마 16:17-20 / 막 / 눅 / 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실 것을 말씀하셨다.
베드로의 고백 이후에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고백에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너에게 나타낸 것은 혈과 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니라.』(마 16:17)고 말씀하셨으며, 또 『이 반석 위에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교회를 세우실 것을 예언하셨다.
베드로의 고백은 로마카톨릭에 의해서 오용되고 있다. 그들은 베드로의 고백으로 말미암아 베드로라는 "반석"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고 말하며, 그러므로 베드로를 계승한 로마카톨릭만이 지상에서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유일한 교회가 되며, 더 나아가 베드로가 천국의 열쇠들을 가졌으니 로마카톨릭을 통해서만 천국이 확장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 "반석"은 베드로가 아니다. 만약 베드로 위에 세워진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는 사탄의 교회가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6:23에서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이 교회는 베드로 위에 세워진 것도, 베드로의 믿음의 고백 위에 세워진 것도 아니다.
헬라어에서 베드로는 "페트로스"(πέτρος)로 "작은 돌"을 뜻하는 반면, "반석"은 "페트라"(πέτρα)로 "거대한 바위"를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작은 돌 위에 그분의 교회를 세우지 않으셨다. 성경적으로 보아도 반석은 베드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로마카톨릭이 자신들을 위해 왜곡하고 있는 베드로는 오히려 이 반석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언했으며(벧전 2:4,8), 사도 바울도 반석을 그리스도라고 말했고(고전 10:1-4), 예수님께서도 자기 자신이 반석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1:42,44, 단 2장). 신명기 32:31 말씀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반석이심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로마카톨릭의 사사로운 해석은 전혀 성경적 근거가 없는 거짓 교리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미래시제로 말씀하시어, 미래에 나타날 교회에 대해 예언하셨다. 성경에서 "교회"라는 말이 일차적으로 쓰이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또 "지역 교회"이다. 18절에서는 먼저 그리스도의 몸을 언급하신 것이고, 마태복음 18장에서는 "지역 교회"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여기 마태복음 16장에서 약속되었고, 갈보리에서 실현되었으며(행 20:28), 에베소서 1장에서 알려졌고, 에베소서 5장에서 설명되었다. 이 교회는 어린양의 혼인식에서 신부로서 등장할 것이다(솔 4장, 시 45편, 계 19장).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들"을 주어 복음을 전할 기회를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마 16:19). 열쇠는 문을 열기 위한 것이며, 문은 복음이 전파되기 위한 "기회"로 제시된다(고후 2:12, 계 3:7,8). 영적으로 적용한다면 이 복음의 문을 베드로가 열었고, 베드로는 이 권세를 단독으로 받아 사도행전 2장에서는 유대인에게, 사도행전 10장에서는 이방인에게 복음의 문을 여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교리적으로 이 열쇠는 "천국"에만 해당된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열쇠는 "천국의 열쇠들"이었지 "복음의 열쇠들"(은혜의 복음을 포함하는)이 아니었다. 교리적으로 볼 때 이 구절은 베드로가 이스라엘에게 천국복음을 선포하여 그들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 준 것에 적용된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2,3,4,5장에 걸쳐서 유대인들에게 여러 번에 걸쳐 천국복음을 전파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부하여 자신이 그리스도이신 예수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마태복음 16:17-20의 교회에 대한 예언과 베드로에 대한 말씀은 생략하고 신앙고백의 내용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신 말씀을 기록한다.

#96
[A.D. 29년 ․ 카이사랴 빌립보 지경․ 마 16:21-23 / 막 8:31-33 / 눅 9:22 / 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6:21에 따르면, 『그 때로부터』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고난받고, 죽임을 당하며, 셋째 날에 다시 일으켜지실 것을 제자들에게 알려 주시기 시작하셨다. 구체적인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언급이다. 사역 내용이나 메시지의 변화를 알려 준다. 후기 갈릴리 사역의 특징을 보여 준다.
마태복음 16:27에서 언급하는 "영광"이 있기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다. 이것은 "십자가 없이는 왕관이 없다"(No Cross, No Crown!)라는 명제를 잘 설명해 준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영광 사이에 제자들이 해야 할 일도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십자가를 져야 할 일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셨다. 이것은 초림과 재림 사이에 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이 된다. 우리는 주님과 더불어 왕으로 통치하기 위해서 반드시 고난을 겪어야 한다(롬 8:17).
주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베드로가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이런 일이 결코 주께 있어서는 아니되옵니다.』(마 16:22)라고 가로막았을 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이 되는도다. 이는 네가 하나님의 일들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들을 생각함이라.』(마 16:23)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영적 상태가 아니었다.
비록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했으나, 그가 한 말은 "하나님의 일"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요 6:29).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만 기억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께서 죽으셔서,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이고(요 6:40), 하나님의 일은 또한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요 6:29).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의 죄 가운데 죽게" 됨에도 불구하고(요 8:24) 사람들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만을 외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모르기에 사탄의 종이 되는 것이다.

#97
[A.D. 29년 ․ 카이사랴 빌립보 지경․ 마 16:24-27 / 막 8:34-38 / 눅 9:23-26 / 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에 대해 말씀하셨다.
주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신 이후에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함을 말씀하셨다(마 16:24). 또한 자기 생명을 구하는 것은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잃는 것으로 말씀하셨다(마 16:25, 막 8:35). 이것이 온 세상보다 귀한 자신의 혼을 얻고 아버지 하나님께 상을 받는 길임을 말씀하셨다(마 16:26-27, 막 8:36-37, 눅 9:25). 또한 누가복음 9:26은 『나와 나의 말들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은 누구든지 인자가 자신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럽게 여기리라.』고 말씀함으로써 제자의 길에 대해 잘 강조하고 있다.
이 말씀은 제자들뿐만 아니라 무리를 함께 불러서 말씀하신 것이다(막 8:34). 사역의 내용에 표적만이 아닌 메시지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BB

복음서와 그리스도의 생애 18 / 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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