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구약의 교훈 분류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구약의 7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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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8년 11월호>

성경은 이름들이 많이 나오는 책이다. "이름"(name)이란 단어가 900회 이상 언급되고, 성경에 기록된 인명과 지명만 해도 2,950개가 넘는다. 성경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이름은 당연히 이 책을 기록하신 『하나님』(God, 창 1:1)이시고, 가장 마지막에 언급되는 이름 역시 하나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Lord Jesus Christ, 계 22:21)이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시작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끝나는 것이다. 동물들 중에는 "고래"가(창 1:21), 행성들 중에는 "지구"가(earth - 땅, 창 1:1), 지명들 중에는 "에덴"이(창 2:8) 처음으로 등장하는 이름들이고, 인명들 중에는 "아담"이 가장 먼저 언급된다(창 2:19). "인간의 이름"만 놓고 보면, 성경은 첫 사람 아담으로 시작해서 마지막 아담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 끝이 난다. 이것은 아담의 형상을 따라 태어난 모든 죄인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함으로써 그 인생을 마감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래서 성경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름들"에 관심이 많으시다. 성경에서 종종 읽기가 지루하고 따분할 만큼 많은 이름들을 담고 있는 긴 목록이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흔히들 이런 구절들을 만나면 하찮은 내용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영적인 교훈조차 얻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대충 읽거나 아예 건너뛰기도 하지만, 그 이름들 역시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졌고 하늘에 영원히 세워진 "하나님의 말씀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에게는 보잘것없어 보여도 하나님께는 아주 중요하며, 또한 그 자리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결코 삭제되어서는 안 되는 말씀들이기에 그곳에 기록해 두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눅 4:4)라고 말씀하셨을 때, 『모든 말씀』에는 당연히 그 "이름들"도 포함되는 것이다.

주께서 이름들에 주목하시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바라보실 때 다른 어떤 것보다도 "사람들"에 대해 연민을 가지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 이름이 가지인 사람』(슼 6:12)이신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온 인류를 위해 죽으실 만큼 사람들을 사랑하셨다(요 3:16).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그의 사랑을 나타내셨느니라』(롬 5:8).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아무 이름에나 관심을 표명하시지 않는 것인데,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된 사람들의 이름들에만 특별한 관심을 두신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현존 인물들의 인명사전인 <후즈후, Who's Who>란 책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유명 인사의 이름들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시다. 오직 주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이름을 생각하는 성도들에게만 관심을 두신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과 그의 이름을 생각하는 자들을 위하여 한 기념의 책이 그의 앞에 기록되어 있느니라』(말 3:16). 주님의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성경대로 믿는 성도들에게만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죽는다면 지구상에 사는 75억 명의 사람들 중에서 과연 몇 명이나 우리의 이름을 기억해 주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죽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우리란 존재가 이 땅에 살아 있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이름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우리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해 주신다. 기억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 이름을 하늘에 있는 생명책에 기록해 두셨다. 기록하시되 그것을 아무도 지울 수 없도록 혹은 어떤 실수에 의해서도 지워지지 않도록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영원히 봉인해 두셨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할 수 있고(눅 10:20), 또한 우리의 『이름이 생명의 책에』 있다는 것을(빌 4:3) 마치 우리의 두 눈으로 실제 본 것처럼 확신하면서 다음과 같이 찬양하게 된다. 『생명책에 기록된 것은 주의 십자가 공로요 / 나 항상 주님을 따르며 나의 이름 보도다 / 하늘 생명책 위에 기록된 그 이름 내 것일세 / 기쁨 넘쳐 천사 노래하네 나 구원받았네 / 생명책 위에 새로이 기록된 그 이름 내 것일세 / 내가 구원받았으니 내 갈 곳은 천성이로다』(<영광을 주께> 212장, 3절 가사). 얼마나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인가! 세계적인 인명사전에 이름이 있든 없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인류의 역사 속에 이름을 남겼든 못 남겼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있는가이다. 소위 세상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자들은 장차 백보좌 심판에 섰을 때 자기 이름, 곧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아준다는 그 이름이 생명책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상당히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또한 세상에서 그 어느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는 평범한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한 번 더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형제들아, 너희는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육신을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않고 권력 있는 자도 많지 않으며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자도 많지 아니하니라』(고전 1:26).

이처럼 하나님의 성도들은 멸망해 가는 이 세상에서는 이름 없는 자들 같지만 영원한 셋째 하늘에서는 유명 인사들이나 다름없다(고후 6:9). 그런데 그 이름들, 특히 "구약"에 나오는 이름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인정하신 "일곱 명"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가?"라는 질문을 생각해 볼 때, 그들은 훌륭한 모범 답안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우선 노아와 다니엘과 욥, 이상 세 사람이 있다.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그 땅에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의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혼들만을 구해 낼 뿐이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겔 14:14). ① "노아"는 하나님께서 땅 위에 사람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시어 홍수로 전 지구를 심판하셨을 만큼 인간의 타락이 절정에 달했던 그 시대에 홀로 주님과 동행했던 사람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했다는 평판을 받았다(히 11:7). 뿐만 아니라 그는 의인이었고(창 6:9), 의의 전파자였으며(벧후 2:5), "믿음"에 의한 의의 상속자로도 불렸는데(히 11:7), 이로써 그는 세상을 극복하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다름 아닌 "믿음"에 있음을(요일 5:4) 보여 준 것이다. ② "다니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지조를 지킨 사람이었는데, 이교도인 바빌론 왕이 제공한 음식과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결심을 공개적으로 담대하게 표명함으로써(단 1:8) 어떻게 하면 육신적인 욕망들을 억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좋은 모범을 보여 주었다. 다시 말해 공개적인 시인과 주님을 두려워하는 데서 비롯되는 용기가 "성별된 생활"의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미래의 세계 역사에 대한 위대한 환상을 계시 받을 만큼 하나님께서 크게 사랑하시는 사람이기도 했다(단 9:23; 10:11,19). ③ "욥"은 하나님께서 자랑하고 높이실 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당대에 주님께서 자신 있게 내세우실 수 있는 챔피언이었다. 『너는 내 종 욥을 유의해 보았느냐? 세상에 그와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나니 그는 온전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피하는 자니라』(욥 1:8; 2:3). 이에 그는 물밀듯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견디기 어려운 시험 속에서도 끝까지 마귀에게 굴복하지 않는 견고한 신뢰를 보여 주었다. 심지어 이렇게 고백하기까지 했다. 『그분이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분을 신뢰하리라』(욥 13:15).

다음으로 모세와 사무엘이 있다. 『그러자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니라.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서 있다 할지라도 내 마음이 이 백성에게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목전에서 쫓아내어 그들로 가게 하라』(렘 15:1). ④ "모세"는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일에 있어서 좋은 모범을 보여 주었는데(히 3:2,5), 그 신실함이 얼마나 돋보였는지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기 친구와 말하는 것같이』 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기까지 했다(출 33:11). ⑤ "사무엘"은 자신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말씀들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삼상 3:19) 사람들에게 말씀을 정확하게 전해 준 신실한 설교자의 모습을 제시해 주었다. 『또 나로서는 결단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침으로 주께 대하여 죄를 범하지 아니하며, 내가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니』(삼상 12:23). 특히 그의 신실함은 어린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 동안 지속되었는데, 이처럼 "신실함"이라는 것은 중단되지 않고 지속될 때만 진가가 발휘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브라함과 다윗을 들 수 있다. ⑥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약 2:23)로 불릴 만큼 하나님으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은 사람이었는데, 특히 그에 관한 기록을 읽고 있으면 일평생 믿음의 좁은 길을 걷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배우게 된다. ⑦ "다윗"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 주는 인물로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한 사람』(삼상 13:14)이었고, 특히 죄를 지었을 때도 겸손히 죄를 자백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교제를 지속적으로 유지했다는 점에서 둘도 없는 귀감이 된다. 심지어 이스라엘 왕들의 역사에 있어서 항상 하나님의 명령을 지켰고 마음을 다해 주님을 따랐으며 하나님의 목전에 옳은 것만을 행했던 왕으로(왕상 14:8) 자주 회자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보고 계실까? 『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생각들을 아소서』(시 139:23). 과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들을 살피실 때 우리의 삶에 대해 만족해하고 계시는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인정하실 만한 성도인가? 앞선 "구약의 7인"처럼 어느 누구 앞에라도 내세우고 싶어 하실 만큼 자랑스러워하실 만한 성도인가? 『내가 그를 아나니』(창 18:19).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인지 아셨다. 『그가 자기 자식들과 자기 뒤에 올 자기 집안 식구들에게 명하겠고 그들은 주의 도를 지켜 정의와 공의를 행하리니』(창 18:19). 곧 아브라함이 자기 집안 식구들에게 주의 도를 가르쳐 지키게 할 인물임을 분명히 아셨던 것이다. 그만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알고 계시는가? 훌륭한 그리스도의 군사요, 신실한 청지기이자 동역자로 인정하시는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대사로 세우신 것에 대해 만족해하시는가? 아니면 주님의 마음속에 슬픔과 탄식과 실망만을 불러일으키는 성도인가? 혹시 주님을 분노케 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비와 진리가 너에게서 떠나지 않도록 그것들을 네 목에 걸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의 목전에서 은총과 인정을 받으리라』(잠 3:3,4).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인생을 살면서 주님께 인정받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