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과도기의 경륜적 진리 분류

왕국과 교회,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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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5월호>

하나님께서는 “나누시는” 분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책인 성경은 “올바로 나누어야” 제대로 깨달을 수 있다. 창세기 1장에서는 처음 다섯 구절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나누다”(divide)라는 단어가 등장한다(창 1:4). 재창조는 빛과 어두움을 나누면서 시작되었다. 올바른 성경공부 역시 하나님께서 “같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들을 구분하면서 시작된다. 올바로 나누면 성령님의 조명으로 진리를 깨달아 빛 가운데서 행할 수 있지만, 나누지 못하면 어둠 속에서 길을 헤매게 된다.
따라서 과도기적인 책들을 공부할 때는 보다 더 정확하게 나눠야 한다. 마태복음은 왕국에서 교회로 전환되는 책이다. 이 말은 왕국과 교회를 구분하지 못하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많은 구절들이 모순처럼 보이게 된다는 뜻이다. 결국 교리적인 혼란 속에서 마태복음은 “열린 책”이 아니라 “닫힌 책”이 되고 만다. 하나님께서는 성경공부의 기본 원칙, 곧 “올바로 나누라”는 명령을 무시한 자들에게 아무것도 계시하시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신학자들 및 목사들이 마태복음에서 혼란과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가 다르듯이 왕국과 교회도 같지 않다. 그런데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가 동일하다고 여기는 자들은 왕국과 교회도 같은 것으로 본다. 물리적인 천국과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 모두 왕국이라 불릴 수 있지만, 성경 전체적으로 왕국(kingdom)이라고 하면 지상에 속한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왕국의 의미가 강하다. 그런데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를 구분하지 않고, 또 영적인 왕국(하나님의 나라)과 교회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은 결국 “왕국과 교회는 같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교회 시대가 곧 왕국 시대가 된다. 그러면서 교회를 통해 이 땅에 왕국이 확장되고 완성되면, 그때서야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는 가증스런 후천년주의 이단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유대 광야에서 침례인 요한이 『너희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고 외쳤을 때, 이것은 말 그대로 실제적인 왕국을 전파한 것이지 그리스도의 죽으심이나 교회를 전파한 것이 아니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올리브 산에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이 드린 질문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주여, 이 때에 이스라엘에 그 왕국을 다시 회복하시겠나이까?』(행 1:6) 말하자면 이들은 주님께서 다스리실 실제적인 지상 왕국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결코 영적인 왕국이나 교회에 대해 기대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성경을 나누어 공부할 줄 모르는 자들은 이것을 오해하여 다음과 같이 그들의 무지를 드러내고 만다.
“구약에는 실제적인 왕국의 개념이 존재했지만 신약에는 더 이상 그런 왕국의 개념은 없다. 구약적인 왕국이 영적인 왕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왕국은 교회를 통해 만들어 나가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실제적인 지상 왕국 자체를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분은 구약적인 왕국을 무시하셨다. 그래서 지상 사역 동안에 항상 영적인 왕국을 염두에 두시고 설교하셨지만, 유대인들은 이를 오해하고 말았다. 이들은 여전히 구약적인 실제적 왕국을 기대했던 것이다.”
정말로 이들의 주장이 옳다면, 산에서 했던 제자들의 마지막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잘못된 기대와 잘못된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바르게 깨우쳐 주셔야 했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였느냐? 도대체 몇 번이나 더 말해야 알아듣겠느냐? 내가 전파했던 왕국은 영적인 왕국이지, 너희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실제적으로 지상에 세워지는 왕국이 아니다. 쓸데없는 기대는 버리고 교회를 통해 왕국을 확장시켜 나가도록 하라!”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너희에게는 그 때나 시기를 알게 하신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자신의 권한에 두셨느니라.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으리니 그러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게 증인이 되리라』(행 1:7,8). 무슨 말인가? 실제적인 왕국을 세우시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다. 영적인 왕국으로 전환되었다는 뜻도 아니다. 구약적인 왕국을 교회가 대체했다는 말도 아니다. 구약에서 예언되었던 그 왕국을 분명 세우기는 세울 것인데, 다만 그 때와 시기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하실 일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 권한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말고, 이 시대에 해야 할 복음 전파의 의무를 다하라는 것이다. 높은 곳으로부터 능력을 입게 되면(눅 24:49) 복음을 전파하는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말하자면 이것은 “교회가 곧 왕국이므로, 교회(또는 교세)의 확장을 통하여 모두가 살기 좋은 왕국을 이 땅에 건설하고 확장시켜 나가자!”라고 주장하는 모든 후천년주의(무천년주의) 교회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짓에 몰두하고 있는지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자,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 클라렌스 라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경이 모세의 율법을 한 세대로 보고, 예수님의 은혜를 다른 한 세대로 구분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질서를 존중하고 하나님께서 나누신 것을 혼합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누셨다면 우리도 나눠야 한다. 주께서 구분해 놓으신 질서를 임의로 혼잡케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며 오히려 죄를 짓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질서를 가지고 일하시나(고전 14:40) 사탄은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고전 14:33).
마태복음을 올바르게 깨닫기 원한다면 왕국과 교회를 구분하라. 마태복음에는 왕국에 관한 교리와 교회에 관한 교리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이 중첩되는 서로 다른 교리들을 올바로 나누기 위해서는 먼저 기본적으로 왕국과 교회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1. 왕국은 물리적이고 눈에 보이지만, 교회는 영적이며 보이지 않는다. 다만 유기체로서의 교회가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 지역 교회(조직체)이다.
2. 왕국에는 왕이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왕국은 왕과 왕국의 관계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교회는 머리와 몸(골 1:18), 신랑과 신부(계 21:2,9) 또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이다(엡 5:23-32).
3. 물리적인 통치 영역(땅)에서 백성들을 다스리는 실제적이고 정치적인 왕국과 달리, 교회는 이 시대에 통치할 땅도, 정치적인 권세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이 약속은 미래에 속한 것이다(롬 8:17). 대신에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엡 2:21), 그리스도의 몸(엡 1:23), 하나님의 집(딤전 3:15)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교회 시대에 “왕국이 곧 교회”라고 생각하는 자들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계”(비정상적인 왕국)가 성경적인 왕국을 흉내내고 있다. 그 중심에는 로마카톨릭이 있는데, 교황이 그 조직의 수장이다. 그는 정치적 왕국(바티칸 시국)을 소유하고 있다. 작지만 면적 0.44km2의 통치 영역과 1천여 명 정도의 적은 국민, 그리고 수도도 있다. 다만 군대는 없다. 치안과 교황의 안위를 책임지는 근위대 정도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속아서는 안 된다. 교황은 배후에서 UN을 움직인다. 최고의 병력을 자랑하는 어떤 나라보다도 더 큰 정치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고, 영향력으로 보면 어떤 강대국보다도 훨씬 더 많은 영토를 확보하고 있다. 그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도성』(계 17:18)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이 점만 보더라도 교황과 그의 카톨릭이 하나님의 교회와 무관함을 알 수 있다.
4. 왕국에는 자녀들이 있지만(마 8:12), 교회는 자녀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을 뿐이다(롬 8:16).
5. 왕국은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준비된 반면(마 25:34), 교회는 기초가 놓이기 전에 이미 계획되었었다(엡 1:4). 그러나 구약에서 지속적으로 예언되었던 왕국과 달리, 교회는 다른 시대들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신비”였다(벧전 1:9-12). 이것이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진 바울을 통해 계시된 것이다(엡 3:1-11). 하지만 왕국은 결코 신비가 아니었다. 다만 교회 시대에 왕국이 연기되면서 신비적인 형태로 감추어져 있을 뿐이다(마 13장). 그러나 이 왕국은 예수님의 재림 때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드러나게 된다.
6. 역사 속에 다시 등장할 때, 왕국은 “한 번에 갑자기” 세워진다(set up, 단 2:44). 후천년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인간(혹은 교회)의 힘을 통해 “점진적인 방식”으로 발전되거나 건설되는 것이 아니다(진화론자들의 방식). 재림 때 진정한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이방 왕국들을 단번에 멸하시고 의로운 왕국을 세우실 것이다. 반면에 교회는 천천히 지어져 간다(builded, 엡 2:22). 예수 그리스도라는 모퉁잇돌 안에서 하나의 건축물처럼 차근차근 지어져 가고, 구원받은 성도들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돌들로서 영적인 집으로 지어져 간다(벧전 2:5).
7. 왕국은 그것이 임하도록 간구하고(마 6:10) 또 받아들일 수 있는 속성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왕국을 받을 만한 사람에게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눅 19:12). 그러나 교회는 왕국처럼 임하도록 간구할 수 없다. 초청을 한다면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초청하신다. 또 왕국처럼 받아들일 수도 없다. 오히려 교회가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이미 형성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것이다.
8. 왕국은 물리적인 유업으로서의 속성이 있어 그것을 상속하는 자들이 있지만(약 2:5), 교회는 유업의 개념과 무관하므로 그것을 상속한다고 말할 수 없다.
9. 교회는 휴거되고 심판받으며(그리스도의 심판석) 혼인할 수 있지만(어린양의 혼인식), 왕국에는 그런 속성이 없고 영원히 세워질 뿐이다.
10. 왕국은 왕국 복음 및 왕국 시대의 경륜과 관계되지만, 교회는 은혜의 복음 및 교회 시대의 경륜과 관계된다. 그러므로 왕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과 인내의 행위가 필요하지만, 교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믿음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어거스틴의 책 <하나님의 도성>이 나왔을 때, 가증스런 후천년주의 누룩은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하나님의 도성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은 하늘의 새 예루살렘과 땅의 예루살렘인데, 어거스틴과 그의 후천년주의자들은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가운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정한 예루살렘은 하늘에 있다. 그런데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했으니,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신정국가를 세워야만 한다. 그 일을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그것은 교회와 국가의 불의한 결탁을 가져왔고, 역사적으로 이단 사냥이라는 미명 아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피의 대학살”로 이어졌다. 왕국과 교회를 구분하지 못한 무지가 가져온 결과였다. 그런데 이런 무지의 잔재는 오늘날의 “영적 대학살”로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