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복음서와 그리스도의 생애 분류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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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8년 02월호>

다음 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한 복음서 전체의 말씀들을 단락으로 나누어 “일련번호”를 #1, #2 등과 같이 부여했고, [ ] 안에 “연대” ․ “장소”․ “복음서의 근거 구절들”을 함께 비교할 수 있도록 제시했으며, [ ] 밖에 그 단락에서 기록하고 있는 내용을 요약한 “제목”을 썼다. 일련번호부터 제목까지는 고딕체를 사용했으나, “일련번호에 해당하는 단락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줄을 바꿔 제시하면서 명조체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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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B.C. 4년 ․ 베들레헴 ․ (마 1:25; 2:1) / 막 / 눅 2:1-7 / (요 1:14)]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

• 탄생의 의미
예수님의 탄생 자체에 관한 말씀은 누가복음 외의 다른 복음서에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마태복음에는 1:25; 2:1에 단지 태어나셨다는 말씀만 있고 탄생 자체에 대한 기록이 없으며, 왕의 혈통을 따라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유대인의 왕을 찾아 경배하러 온 현자들의 방문과 이로 인해 이집트로 피신해야 했던 사건이 주로 기록되어 있다(마 2장). 요한복음의 경우는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역시 예수님 탄생 자체에 대한 기록은 없으며, 말씀이신 하나님께서(요 1:1)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기록하고 있다(요 1:1-14). 특히 요한복음 1:14이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밝혀 준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요한복음의 말씀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요 1:17, 딤전 3:16 참고).

• 조세등록과 예수님의 탄생
누가복음 2:1-3에 따르면,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의 로마는 시이저가 암살되고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가 권력을 잡았을 때였다. 옥타비아누스가 누가복음 2:1에서 말하는 “카이사 아우구스토”(B.C. 63 - A.D. 14)이다. 그는 공식적으로 B.C. 27년부터 A.D. 14년까지 로마의 황제였는데, 그가 한 칙령을 내려 로마의 지배 아래 있는 지역의 모든 사람들에게 『조세등록』을 하게 했다. (이 조세등록은 쿠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이었을 때 처음 실시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때 모든 사람이 각기 자기의 고향으로 조세등록을 하러 가야 했다. 『조세등록』이라는 표현은 <한글킹제임스성경>이 보존하고 있는 바른 말씀이며, 영어 <킹제임스성경>의 “taxing”(눅 2:1)과 “be taxed”(눅 2:1,3,5)를 바르게 번역한 것이다. 이는 또한 헬라어 “아포그라페”(ἀπογραφή)와 “아포그라포”(ἀπογράφω)의 바른 번역이다. 반면 <개역성경/개역개정판>을 비롯한 변개된 성경들은 “호적하러” 가야 했다고 변개시켰다. 인구조사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세금을 걷기 위한 조세등록을 하는 것이 맞다. 조세등록이라는 표현은 누가복음 2장 외에 사도행전 5:37에도 나온다.
[예수님의 초림 때 조세등록이 있었고, 재림 때도 마찬가지다. 재림 전에 오게 되는 적그리스도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첫 3년 반 동안 세금을 올리는 것이다(단 11:20). 그 모형은 사울이며(삼상 8:10-18), 이스라엘에서 가장 세금을 압박했던 사람은 666과 관련 있는 사람(솔로몬)이다(대하 9:13 - 금 666달란트). 따라서 누가복음 2:1-5의 조세등록에 대한 말씀은 초림과 재림을 비교하여 적그리스도의 행적을 분별하게 하는 한 예표가 된다. 따라서 이 단어를 변개하는 것은 이런 사실을 가리는 것이다.]
누가복음 2:4-7에 따르면, 각기 자기 고향으로 가서 조세등록을 하라는 칙령에 따라, 요셉은 그가 살고 있던 갈릴리 나사렛 성읍에서 유대 다윗의 성읍인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는데, 요셉은 다윗 가문의 계열이기 때문에(눅 2:4; 1:27) 베들레헴으로 간 것이었다. 누가복음 2:5,6에 따르면, 요셉은 『자기와 정혼한 아내 마리아와 함께 조세등록하러 갔는데』 그곳 베들레헴에서 마리아가 해산하게 되었다. 마리아가 요셉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갔을 때 그녀는 아이로 인하여 배가 불러 있었고 그곳에 있는 동안 날이 차서 해산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만삭의 아내와 동행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한 결과 예수님께서 유대의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이라는 성경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미 5:2). 마리아가 자기의 『첫아들』(눅 2:7)을 낳아 포대기로 싸서 구유에 누였는데, 당시 여관에 그들이 묵을 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첫아들』이라는 말씀은 마리아가 이후에 다른 아들을 포함한 자녀들을 낳았음을 뜻한다. 따라서 마태복음 1:25과 함께 누가복음 2:7은 마리아가 영원히 처녀였다는 로마카톨릭의 거짓 교리를 바로잡는 말씀이다.

#9. [B.C. 4년 ․ 베들레헴 ․ 마 / 막 / 눅 2:8-20 / 요] 주의 천사가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고 목자들이 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님을 방문했고 천사에게 들은 말을 널리 알렸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그 고을에 목자들이 있었는데, 들에서 묵으면서 밤에 양떼를 지켰다(눅 2:8). 이렇게 목자들이 들에서 묵으면서 양떼를 지키는 일은 겨울에 행해지는 일이 아니었다. 소위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에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들에서 묵으면서 양떼를 지킬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탄생은 결코 겨울이 아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고자 “주의 천사”가 목자들 위에 임하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자 그들이 몹시 두려워했다(눅 2:9,10). “주의 천사”가 나타났을 때 두려움을 갖는 것은 사카랴와 마리아도 경험했던 일반적인 현상이었다(눅 1:12,13,30). 이는 “주의 천사”가 “주”의 현현이기 때문이다. 목자들은 “주의 천사”에게서 들은 말씀을 “주”께서 자신들에게 알게 하신 것이라고 여겼다(눅 2:15).
“주의 천사”가 목자들에게 전한 말씀은 다음과 같다. 『두려워 말라. 보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알림이니 이것은 모든 백성을 위한 것이라. 이는 오늘 다윗의 고을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음이니, 그분은 주이신 그리스도시니라.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리라』(눅 2:10-12). 예수님의 탄생은 “모든 백성을 위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구주”이시며, “주”이신 “그리스도”시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5:10에서 한 죄인의 회개가 하나님의 천사들의 면전에 “기쁨”이 되며, 누가복음 19:6에서도 삭캐오가 “기쁨”으로 주님을 영접한 말씀에서 보듯이 죄인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이다.
아기 예수께서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것을 보는 것이 목자들에게 표적이 된다고 말씀했는데(눅 2:12), 누가복음 2:16,17에서 그들은 포대기에 싸여 누워 있는 아기를 보고서 천사가 예수님에 관하여 한 말을 널리 알렸다. 이는 그들이 아기 예수에 대해 표적에 관해서 듣고 또 그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누가복음 2:20에 따르면, 목자들은 자기들이 듣고 본 것이 주의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것과 같으므로 그 모든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을 드리며 돌아갔다. 이것은 목자들이 표적을 따라 믿고 행했던 전형적인 유대인의 특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주의 천사”가 목자들에게 말씀을 선포한 후에, 갑자기 수많은 하늘의 군사들이 그 천사와 함께 있었는데 하나님을 찬양하여 이렇게 말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 위에는 화평이요, 사람들에게는 호의로다(on earth peace, good will toward men)』(눅 2:14). 천사들의 메시지는 둘로 구분되는데, 첫째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것이며, 둘째는 “땅 위에는” 화평이요 사람들에게는 호의라는 것이다. 그런데 <개역성경/개역개정판>을 비롯한 변개된 성경들은 두 번째 메시지를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변개했다. 이것은 제한 없이 땅 위의 화평과 모든 사람들에게 호의가 베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한적으로 땅에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가 베풀어지는 것으로 왜곡한 것이다.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간 후에, 목자들은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그들에게 알려 주신 일이 일어난 것을 보자고 서로 말했고, 그들은 황급히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워 있는 그 아기 예수를 보았다. 이렇게 보고 나서 천사가 예수님에 관해 그들에게 한 말을(눅 2:10-12) 널리 알렸고, 목자들이 말한 그런 일에 대해서 들은 모든 사람들이 놀랐다. 예수님께서는 탄생 때부터 널리 전파되셨다.
목자들의 모든 말을 마리아는 마음속에 간직하고 되새겼다(눅 2:19). 마리아는 이미 예수님을 잉태할 때 주의 천사를 통해서 예수님에 관해 말씀을 들었던 경험이 있었고(눅 1:28-38), 성령으로 충만하여 마리아가 말한 내용 중에도 포함되어 있었다(눅 1:46-55).

#10. [B.C. 4년 ․ 예루살렘 ․ 마 / 막 / 눅 2:21-38 / 요]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에게 할례를 주고 주께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데려왔으며, 시므온이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을 송축했으며, 안나가 주께 감사하며 아기 예수님에 관해 말했다.

• 예수님의 할례와 마리아의 정결례(눅 2:21-24)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의 할례를 위한 팔 일이 되었을 때(레 12:3) 그 이름을 예수라고 했다(눅 2:21). 이것은 마리아에게 잉태되기 이전에 천사를 통해 마리아에게 알려진 이름이었고(눅 1:31), 요셉에게도 주의 천사가 알려 준 이름이었다(마 1:18-21). “예수”는 구약의 “여호수아”(‘여호와는 구원이시다’는 뜻)의 헬라어식 표기이다. 그래서 마태복음 1:21은 예수님의 이름의 뜻이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레위기 12:1-8에는 남자 아기나 여자 아기를 낳은 여인의 규례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 율법의 규례대로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에게 할례를 행했고(눅 2:22-24), 이제 그녀의 정결례를 위한 날들, 곧 삼십삼 일이 차게 되었을 때(레 12:4) 그녀의 속죄를 위해 번제물을 드려야 했다(레 12:7,8). 또한 출애굽기 13:2,13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첫태생의 남자는 다 주께 거룩하다고 하였고 주의 것으로 따로 떼어놓아야 했으며, 그 남자를 위해 대속해야 했다. 따라서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를 주의 것으로 따로 떼어놓아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갔고, 그녀의 정결례를 위한 번제물을 드렸다. 레위기 12:8에 따르면, 어린양 한 마리를 번제물로 가져올 수 없으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가져와서 한 마리는 번제물로 한 마리는 속죄제물로 드리라고 되어 있는데, 마리아의 제물에 대해 누가복음은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눅 2:24) 마리아와 요셉이 양 한 마리를 드릴 수 있는 여유가 없을 정도로 다소 가난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 시므온의 송축(눅 2:25-3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했으며, 『이스라엘의 위로』(눅 2:25)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시므온에게 성령께서 임하셨고 계시로 알려 주신 것이 있는데,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눅 2:26)는 것이었다. 이 말씀대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에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것은 『주의 그리스도』(눅 2:26)이셨기에 이스라엘의 위로는 다름 아니라 구주이시고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시므온이 성령에 의하여 성전으로 들어오는데 아기 『예수』를 보고서 자기 두 팔로 안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주의 말씀대로 이제는 주의 종을 평안히 가게 하옵소서.』(눅 2:29)라고 말했는데, 이는 그가 『주의 구원』(30절)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시므온의 찬양 속에 나오는 말씀 중에서 예수님을 『주의 구원』(30절)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구원은 모든 백성 앞에 예비하신 것이며 이방인들에게 비치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옵니다.』(눅 2:31,32)는 말씀에 주목해야 한다. 예수님을 통해 얻는 이 구원은 이스라엘은 물론 이방인들에게도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누가복음 1:67-79에서 사카랴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언한 것은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심의 예언”이었다(68,69,71,77절). 그런데 시므온을 통해서 선포된 말씀에서는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구원을 『이방인들에게 비치는 빛』(눅 2:32)으로 기록함으로써 이방인을 향한 말씀을 함께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유대인 중심의 마태복음과 비교되는 누가복음의 특징이다. 요한복음 1:9에서도 예수님을 『세상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비치는 참 빛』으로 기록함으로써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구원을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유대인 중심의 마태복음과 비교되는 요한복음의 특징이다. 이와 같은 교리적 차이는 누가복음 2:33에서 요셉과 주의 모친이 아기 예수에 관해서 시므온이 한 말에 대해서(눅 2:29-32) 이상히 여겼다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요셉과 주의 모친은 유대인 중심의 구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눅 1:54,55 - 『그분은 그의 자비를 기억하여 자기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으니 우리 조상들과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영원히 말씀하신 것처럼 하신 것이라.”고 하니라』).
시므온은 요셉과 마리아, 아기 예수를 축복하고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보라,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 있는 많은 사람의 패망과 흥성을 위하여, 또 비방받을 표적을 위하여 세워졌으니, (정녕 칼이 또 네 자신의 혼을 찌름같이 되어,)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이 드러나게 되리라』(눅 2:34,35). 예수님을 따르거나 따르지 않는 것에 따라 많은 사람의 패망과 흥성이 결정되며, 또 비방을 받는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에 대한 자세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생각이 어떠한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누가복음 2:33의 『요셉과 주의 모친』이라는 말씀은 “요셉”과 “주의 모친 마리아”를 구분함으로써 마리아의 동정녀 탄생을 나타내는 구절이다. 물론 『그 부모』(눅 2:27), 『그의 부모』(눅 2:41)라는 말씀이 이 문맥에서 두 번 나오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관점에서 평이하게 쓴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33절에서 『요셉과 주의 모친』이라고, 또 43절에서도 『요셉과 주의 모친』이라고 의도적으로 구분해서 기록하셨다. 특히 48절에서 마리아가 일반적인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걱정하며 너를 찾았다.』(눅 2:48)고 말했을 때, 4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나의 아버지의 일을 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말씀하심으로 자신의 신분을 분명히 밝히셨다. 그런데 <개역성경/개역개정판>을 비롯한 변개된 성경들은 33,43절을 “부모”라고 변개함으로써 마리아의 동정녀 탄생 및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말씀을 제거했다.

• 안나의 감사(눅 2:36-38)
아셀 지파 파누엘의 딸인 안나라고 하는 여선지자가 있었는데, 나이가 매우 많았다. 그녀는 결혼하여 칠 년을 남편과 함께 살았고, 과부가 된 지 약 팔십사 년이 되었으며, 그녀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 금식과 기도로써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다. 마침 같은 시간에 그녀가 와서 주께 감사를 드리고, 예루살렘에서 『구속』(눅 2:38)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그 아기에 관하여 말했다. 여기서 “구속”은 “이스라엘의 위로”(눅 2:25), “주의 구원”(눅 2:30)과 같은 의미이다.
안나는 여선지자였는데,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때는 구약이었기에 여선지자의 직분이 있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또한 신약 시대에도 교회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졌기에(엡 2:20) 사도 시대에는 선지자가 있었고 물론 여선지자도 있었다(행 21:8,9). 그러나 신약 교회의 직분에서 목사는 한 아내의 남편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딤전 3:2) 여자는 목사가 될 수 없으며, 여선지자가 여자 목사의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특히 성경은 디모데전서 2:12에서 여자가 가르치는 것이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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