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율법과 은혜 분류

대환란과 열 명의 처녀들 (마태복음 25:1-13)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2년 08월호>

한국 교계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구약의 율법을 지키거나 계명들에 순종함으로써 구원을 유지하려고 애쓰거나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교리로 적용함으로써 이단 교리들을 확산시키는 자들이다. 그들은 율법과 은혜에 관한 진리의 지식이 없다.
복음의 진리를 아는 것은 단지 은혜의 복음을 아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과 은혜를 성경적으로 분별하는 진리의 지식에 이름으로써 가능하다. 이제 율법과 은혜를 혼란스럽게 하는 이단 교리들을 바로잡고 건전한 교리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


마태복음 25:1-13에 나오는 “열 명의 처녀들”에 대한 말씀은 매우 중요한 교리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처녀들”이 누구인가를 잘못 해석하고 적용하면 심각한 이단 교리가 된다. 처녀들에 대해 대부분의 학자들이나 목사들이 가르치는 일반적인 해석은 현재 교회 시대의 성도들 중에서 깨어 있는 성도들은 현명한 처녀들로서 신랑을 맞이하고(혹은 휴거되고) 깨어 있지 못한 성도들은 어리석은 처녀들로서 신랑을 맞이하지 못한다(휴거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열 명의 처녀들을 현 교회 시대의 성도들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이 문제이다. 특히 열 명의 처녀들 중에서 현명한 처녀들이 기름을 준비한 것을 두고 현재 교회 시대 성도들의 행위가 온전해야 구원받고 휴거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심각한 이단 교리이다.
신학적으로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어리석은 다섯 처녀들이 신랑을 맞이하지 못한 것을 두고 현재 구원받은 성도들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뜻이라고 주장하며, 칼빈주의자들은 어리석은 다섯 처녀들을 구원받지 않은 형식적인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모두 마태복음 25:1-13을 교회 시대의 성도들에게 잘못 적용하고 있다. 한국 교회의 교단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 교회가 이단시하는 많은 사이비 단체들도 마태복음 25장의 열 명의 처녀들에 대하여 한국의 교단 교회들과 똑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무지한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25장의 열 명의 처녀들이 누구이며 그들을 통해서 배워야 할 진리의 지식은 무엇일까?

1. 마태복음 25:1-13은 교회 시대가 아니라 “환란 시대”에 교리로 적용되는 말씀이다.

마태복음 25장은 24장과 연결되는 “올리브 산의 설교”이다. 이것은 25장 역시 교리적으로 대환란 때의 유대인에게 적용되는 말씀이지 이 시대의 교회에게 교리로 주신 말씀이 아니라는 뜻이다. (지난 호에서 설명한 마태복음 24장이 누구에게 기록된 것인가에 관한 내용을 참고하시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왕이요 메시아이신 주님을 거부함으로써(마 16-23장) 그들에게 임하는 “대환란”(마 24장)을 통과해야 한다. 그들은 대환란 끝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마 25장)을 맞이하게 되는데, 마태복음 25장은 주님께서 재림하신 후에 대환란을 통과한 사람들에 대한 심판을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대환란 때에 사람들의 행위가 어떠했는지에 대하여 심판하는 말씀이 마태복음 25장이기 때문에, 25장은 절대로 교회 시대의 성도들에게 교리로 주어진 말씀이 아니다. 교회는 대환란 전에 휴거되며, 대환란 중에는 지상이 아니라 천상에 주님과 함께 있고, 주님이 재림하실 때 주님을 따라 함께 지상으로 오기 때문에 교회는 마태복음 25장에서 말씀하는 심판의 대상에 결코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25장의 첫부분(1-13절)에 나오는 열 명의 처녀들에 관한 천국의 비유는 교회 시대가 아니라 환란 시대에 교리로 적용되는 말씀이다. 이 사실에 무지한 채 마태복음 25장을 해석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비성경적인 거짓 교리들을 만들어 내게 된다.

2. 열 명의 처녀들은 누구인가?

1) 마태복음 25장의 “열 명의 처녀들”을 바르게 해석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처녀“들”(virgins)이라는 복수형 표현이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복수가 아닌 단수로 표현되는 “한 순결한 처녀”(고후 11:2)이기 때문에 마태복음 25장의 “처녀들”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와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다.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처녀,” “신부,” “아내” 등으로 불리는데 항상 단수로만 표현된다.
창세기 2:24에서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 둘이 한 몸이 되라고 하셨고, 예수님께서도 친히 이 말씀을 인용하셨다(마 19:5).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아내로 취하여 남편과 아내가 되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에베소서에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나타내는 위대한 신비라고 말씀한다(엡 5:25-32).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처녀들”이 아니라 “한 순결한 처녀”를 “신부”로 취하신다. 고린도후서 11:2은 “이 시대의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한 순결한 처녀”라고 말씀한다. 『이는 내가 경건한 질투로 너희에게 질투를 느낌이라. 내가 너희를 한 남편에게 정혼시켰나니 이는 한 순결한 처녀로 너희를 그리스도께 바치려는 것이라』(고후 11:2). “한 순결한 처녀”라고 단수로 표현되는 “신부”(아내, 교회)는 “거듭난 성도들”을 지칭하는 성경 용어이다. 비록 “처녀”(신부)에 속하는 많은 성도들이 있지만, 이들을 “처녀,” “신부,” “아내,” “교회”(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이지 지역 교회가 아니다.) 등으로 부를 때는 복수가 아니라 항상 단수로만 표현한다. 『왕후가 육십이요 후궁이 팔십이요 처녀들은 셀 수도 없으나 나의 비둘기, 나의 더럽혀지지 않은 자는 오직 하나요, 그녀는 그 어머니의 외동딸이며 그녀를 낳은 어머니의 귀한 사람이라. 딸들이 그녀를 보고 그녀를 축복하니, 정녕, 왕후들과 후궁들과 그들이 그녀를 칭찬하는도다』(솔 6:8-9). 따라서 두말할 나위 없이 마태복음 25:1-13의 “처녀들”은 이 시대에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하는 “한 순결한 처녀”가 결코 아니다. 성경에서 교회가 “처녀”가 아닌 “처녀들”로 언급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2) 마태복음 25장의 열 명의 처녀들은 “신랑과 혼인하는 신부”가 아니라 『신랑을 맞으러 나간 처녀들』이다. 누가복음 12:36에 보면 밤중에 돌아오는 한 주인이 등장하는데, 그는 신부와 혼인하고 돌아오는 신랑이다. 『그러면 너희는 주인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같으니, 주인이 혼인 잔치에서 돌아올 때 그가 와서 문을 두드리면 그들은 즉시 열어 주리라』(눅 12:36). 이와 같이 마태복음 25장의 열 명의 처녀들은 이미 신부와 혼인하고 돌아오는 신랑을 맞으러 나간 사람들이기 때문에 결코 신부인 교회가 아니다.
어린양의 혼인식을 설명하는 시편 45편은 마태복음 25장의 열 명의 처녀들이 “신부”를 따르는 사람들, 즉 “신부”를 따르는 신부의 동료 처녀들이라고 말씀한다. 『왕의 딸이 안에서 온갖 영화를 누리나니 그녀의 옷은 금으로 짰도다. 그녀가 수놓은 옷을 입고 왕께로 인도될 것이요, 그녀를 따르는 그녀의 동료 처녀들도 왕께로 인도되리니』(시 45:13-14). 어린양의 혼인식의 신랑은 만왕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오직 하나인 신부는 그분께로 인도되는데, 그 신부를 따르는 동료 처녀들도 왕께 인도된다. 그러나 동료 처녀들은 신랑과 혼인하는 신부로서 왕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신부의 들러리들처럼 신부를 따를 뿐이다. 따라서 처녀들은 결코 신부가 아니다.
한편 성경에서 “처녀들”(혹은 “동정들,” virgins)로 불리는 일단의 사람들은 교회 시대가 아니라 환란 시대에 등장한다(계 14:1-7, 마 25:1-13). 성경은 대환란 끝에 환란 시대의 성도들이 주님께로 인도된다고 말씀한다. 『그 날들의 환란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또 하늘들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이라. 그후에 하늘에 있는 인자의 표적이 나타나리니, 땅의 모든 지파들이 통곡할 것이며, 또 그들은 인자가 권세와 큰 영광으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마 24:29-30). 『우리 하나님이 오셔서 잠잠하지 아니하시리니 그의 앞에는 불이 삼키고, 그의 주위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그가 위로부터 하늘들과 땅에까지 부르시리니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려는 것이라. 내 성도들을 내게로 다 모으라. 그들은 희생제로 나와 언약을 맺은 자들이라』(시 50:3-5). 주님께서 대환란 끝에 환란 성도들을 모으시는 일은 교회 시대의 끝에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휴거되는 것과 전혀 다르다. 이것을 혼동하여 마태복음 25장을 교회에 적용하면 이단 교리가 되는 것이다.

3) 자신의 행위로 기름을 준비하거나 사야 하는 사람들
열 명의 처녀들에 관한 해석에서 그들에게 부족했던 기름을 성령의 모형으로 해석하면서 마태복음 25:1-13을 교회 시대에 적용할 때 더욱 심각한 오류가 발생한다. 교회 시대에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결코 잃어버릴 수 없으며(엡 1:13; 4:30) 살 수도 없다. 성령이 믿음이 아니라 행위로 얻어지는 때는 현재의 교회 시대가 아니라 대환란 시대이다(마 25:8,9). 따라서 마태복음 25:1-13을 교회에 적용할 수 없다. 기름을 준비한 현명한 “처녀들”은 현재 교회 시대의 성도가 아니라 대환란 때 믿음과 행위로 구원받는 환란성도들이다.
대환란 때에는 믿음만이 아니라 행위가 구원에 필요하며, 행위가 온전하지 못하거나 부족하면 구원을 지키지 못하고 잃어버릴 수 있다.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9 그 날들에는 아이를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 있으리라! 21 이는 그때에 대환란이 있으리니, 그와 같은 것은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지금까지 없었으며, 또 결코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 22 만일 그 날들이 단축되지 아니하면 어떤 육체도 구원받지 못하리라. 그러나 택함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그 날들이 단축될 것이라.』(마 24:13,19,21-22).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가 있으며 여기에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느니라.”고 하더라』(계 14:12). 이와 같이 대환란 때에 “처녀들”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고, 실제로 그들 중 일부는 구원을 잃어버린다. 교회 시대와 다르게 환란 시대에는 그리스도를 성실히 기다리지 않으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한 번 드려지셨고, 두 번째는 자기를 바라는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죄 없이 나타나시리라』(히 9:28). 주님께서 두 번째로 나타나실 때에 『자기를 바라는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오신다고 말씀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 구절은 교회 시대의 그리스도인의 휴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의 거듭난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거나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비록 그들이 타락했을지라도 거듭났다면 반드시 휴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란성도는 다르다. 대환란 때 믿는 자들은 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하지 않고 그의 표나 이름을 손이나 이마에 받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성실히 기다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런 자들이 바로 마태복음 25장에서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어리석은 다섯 처녀들이다. 이것은 구약 시대와 비슷한데, 구약 시대에는 성령이 오셨다가 떠나가기도 하셨다. 그래서 시편에서 다윗은 『주의 면전에서 나를 내어쫓지 마시고 주의 거룩한 영을 내게서 거두어 가지 마소서.』(시 51:11)라고 고백했다. 이 말씀은 구약의 교리이지 신약의 교리가 아니다. 신약 시대에는 성령께서 믿는 자 안에 들어오셔서 그를 거듭나게 하시고 영원히 그와 함께 거하신다. 그러나 구약 시대와 대환란 시대에는 성령께서 떠나실 수 있다.
대환란 때 구원받기 위해서는 믿음과 행위가 요구된다. 그런데 이 행위에 대해 성경은 자신의 행위로 대가를 지불하고 무엇인가를 사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내가 너에게 권고하노니 내게서 불로 단련된 금을 사서 부요하게 되고, 흰 옷을 사서 입음으로 너의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지 않게 하며, 또 안약을 네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 3:18). 현재 교회 시대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자신의 피로 값주고 사셨기 때문에 이 복음의 진리를 듣고 믿으면, 그 믿음으로 인해서 구원받는다. 반면 대환란 때는 각자가 자신의 행위로 값주고 사야 할 것이 있다. 불로 단련된 금을 사지 못하면, 즉 행위로 대환란의 끝까지 고난을 견디지 못하면(마 24:13)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며, 또 흰 옷을 사서 입지 못하면, 즉 대환란의 끝까지 견딤으로써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흰 옷을 입지 못하면(계 3:5; 6:11; 7:13) 구원받지 못한다. 이것은 대환란 시대의 진리지만, 현재 교회 시대에 성도들에게 교리로 가르치면 이단 교리가 되는 것이다. 마치 지금 교회 시대에 십자가의 구속을 믿는 것이 아니라, 구약의 희생제사를 드림으로써 죄 용서를 받고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면 이단 교리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BB <다음 호에 계속>

전체 288 / 7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