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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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렉과의 끈질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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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8년 03월호>

육신과의 전쟁은 어느 한쪽이 완전히 굴복할 때까지 계속 싸워야 하는 아주 집요한 전쟁이다. 싸움을 포기하는 순간 승리는 저만치 달아난다.

"아말렉"(Amalek)은 에서의 후손이었고(창 36:12),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이집트 건너편 술에 이르는 지역까지(삼상 15:7), 즉 카나안 남부(민 13:29), 에돔 땅 근처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 이름의 히브리어 어근들은 "죄," "해악," "실수," "사악함," "괴롭게 함"의 의미들을 갖고 있는데, 영적으로는 "육신"을 예표한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이 "육신과의 전쟁"을 선포하셨다. 『너는 아말렉의 기억을 하늘 아래로부터 완전히 지워 버릴지니, 너는 그것을 잊지 말지니라』(신 25:19). 말하자면 미국의 전 대통령 조지 W.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보다도 더 광범위한 전쟁이자, 아주 끈질기고 집요한 전쟁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아말렉과의 제1차 전투

아말렉이 성경의 역사 전면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출애굽기 17장에서였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처음 등장했던 때와 일치하는데, 아말렉과의 첫 번째 전투의 승리의 중심에 군대 대장인 여호수아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에 아말렉이 와서 르피딤에서 이스라엘과 싸우니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말하기를 "우리에게서 남자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막대기를 내 손에 들고 산 정상에 서리라." 하니라』(8,9절). 당시 아말렉은 광야의 르피딤에서 피곤하고 지친 이스라엘 백성의 맨 뒤쪽, 곧 뒤쪽에 처져 있는 연약한 자들을 공격했다(신 25:18). 이것은 마귀가 성도 개개인 또는 지역 교회를 공격하는 전형적인 방법인데, 주로 그 성도의 가장 연약한 부분이나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대열에서 낙오해 있는 성도들을 공격한다. 즉 지역 교회 안에 무질서한 자들과 낙담한 자들과 약한 자들(살전 5:14)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그들을 부추겨서 교회 전체를 불평과 내분 그리고 배교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만드는 것이다.

아말렉과의 싸움을 진두지휘할 적임자로는 여호수아가 선임되었다. 그가 백성들을 이끌고 나가 대적들과 싸우는 동안, 모세는 아론 및 훌과 함께 산 정상으로 올라가서(10절) 손을 들고 기도했다(딤전 2:8).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겼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는데(11절), 그가 위로 높이 든 손이 무거워지자 아론과 훌이 양옆에서 그의 손을 붙들어 주었다(12절). 이것은 영적 전쟁에서 기도, 특히 "중보기도"가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바울도 『하나님께 드리는 너희의 기도로 나와 함께 분투』하라고 권고했다(롬 15:30). "육신"은 틈만 생기면 언제든지 기습 공격을 감행해 온다. 그럴 때일수록 더욱더 기도에 전념해야 하고 능동적으로 기도를 무기로 활용해야 하는데, 기도는 벌어진 "틈"을(엡 4:27) 메우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세의 손에는 "막대기"가 들려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막대기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신명기 18:15,18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모세와 같은 한 선지자"를 일으키겠다고 하셨으므로, 모세의 막대기는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아론이 모세의 대변인이 되면서(출 4:16) 그 막대기가 그의 손에 넘겨질 때는(출 8:16,17) 아론의 막대기(출 7:12)로 불리게 되는데, 그는 대제사장이었기 때문에 아론의 막대기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특히 민수기 17:8에서 코라의 반역에 대한 진노의 후속 조치로 하나님께서는 친히 택하신 사람이 누구인가를 백성들에게 보여 주시기 위해(민 17:5) 아론의 막대기에 움이 돋고 싹이 나서 꽃이 피어 열매들이 열리게 하셨는데, 막대기가 기본적으로 "죽은 나무"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것은 대제사장으로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여 주는 사건이었다. 또한 다윗 역시 골리앗과 싸우러 나갔을 때 손에 막대기를 들고 있었는데(삼상 17:40,43), 후에 그가 왕이 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윗의 막대기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게 된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막대기"가 아말렉과의 전쟁의 중심에 있었으니, 그것은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만을 힘입어서 싸워야 한다는 진리를 보여 준다. 『힘으로도 아니요, 능력으로도 아니며, 오직 나의 영에 의해서니라』(슼 4:6). 다윗은 『전쟁이 주의 것』(삼상 17:47)이라 했으며, 『이 영광의 왕이 누구신가? 강하고 능력 있으신 주시며 전쟁에 능력 있으신 주시로다.』(시 24:8)라고 말했다. 전쟁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 제국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전쟁은 이 세상에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귀는 전쟁이 주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가리기 위해 사람의 수나 육신의 무기를 우리의 눈앞에 제시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낙심하게 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하지만 전쟁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지, 사람의 수나 칼과 창, 방패 그리고 육신을 따라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무엇보다도 고린도후서 10:4에서는 『우리의 전쟁 무기는 육신적인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을 통하여 견고한 요새들을 무너뜨리는 능력이라.』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믿음의 기도"가 필요한 것이다.

결국 기도의 능력을 힘입은 전사,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을 쳐부숨으로써 이스라엘은 대승을 거두었다. 이 승리는 출애굽 이후 광야 생활에서 이스라엘 군대가 거둔 최초의 승리였다.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의 백성을 쳐부수니라.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되풀이해서 들려 주라. 이는 내가 하늘 아래에서 아말렉의 기억을 완전히 없앨 것임이라." 하시니라』(13,14절).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모세는 제단을 쌓고 그것의 이름을 『여호와닛시』라고 불렀다(15절). 이것은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인데, 그렇게 부른 이유를 16절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는 주께서 대대로 아말렉과 싸우리라고 주께서 맹세하셨기 때문이라.』 하나님과 육신(아말렉) 사이에는 결코 타협이나 평화가 있을 수 없다. 여기에는 어떤 중립 지대도 없다. 서로 반목만 할 뿐이다(갈 5:17). 그래서 주님께서는 "대대로 아말렉과 싸우실 것"이라고 맹세하신 것이다. 사도 바울을 위시하여 이 "맹세"를 따랐던 찰스 스펄전, 빌리 선데이, 샘 존스, 피터 럭크만 같은 수많은 믿음의 용사들은 육신의 죄들과의 싸움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우리 역시 아말렉과의 전쟁을 선포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육신과의 싸움을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 휴거 때 예수님께서 우리의 몸을 구속하심으로써 그 싸움을 종식시키실 때까지는 우리 임의로 전쟁의 종지부를 찍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아말렉과의 제2차 전투

그런데 그 전쟁을 제멋대로 종결지으려 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사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저질렀던 일련의 커다란 잘못들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상 15장에서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주셨다. 그때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해야 했는데(1절), 당시 그에게 주어진 명령은 "아말렉을 진멸시키라."는 것이었다. 『만군의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즉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올라올 때, 그가 길에서 매복하던 일을 기억하노라. 이제 가서 아말렉을 치되, 그들이 소유한 모든 것을 완전히 멸하여 그들을 남겨 두지 말지니, 남자와 여자, 아기와 젖먹이, 소와 양, 낙타와 나귀를 다 죽이라.' 하셨나이다." 한지라』(2,3절). 이 일에 관한 한 어떤 자비도 보여서는 안 된다. 어떤 타협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들에게서 조공을 받을 필요도 없다. 그리스도인 역시 육신에 관한 한 이와 동일한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데, 죄와 육신과 세상에 대해 자신을 완전히 죽은 자로 여겨야 하는 것이다(롬 6:11, 갈 5:24; 6:14).

그러한 명령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사울로 하여금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셨다(7,8절). 그들을 진멸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사울은 주님의 명령대로 그들을 "완전히" 진멸시키지 않았고, 아말렉 왕 아각과 가장 좋은 짐승들을 남겨 두고 말았다. 『그러나 사울과 백성이 아각을 살려 두었고, 양들과 소들과 기름진 것들과 어린양들과 모든 좋은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남겨 두고 완전히 멸하기를 원치 아니하였으며, 천하고 쓸모없는 것들은 다 완전히 멸하였더라』(9절). 하나님의 명령에 부분적으로 순종하고 말았던 것이다. 부분적인 순종은 불순종이나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과 "하지 말라고 하신 것" 모두에 대하여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여전히 완전하게 진멸하지 않은 죄의 영역이나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명령에 대해 인간적인 기준으로 취사선택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다는 것은, 자신의 인간적인 발상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권위 있는 기준으로 삼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다 멸하기에 합당한 것들임에도, 사울은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 천하고 쓸모없는 것들만 완전히 멸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판단해 버린 것이다.

이 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다(11절). 그러나 사울은 불순종의 죄에 대해 회개하기는커녕 변명만 늘어놓았다. "내가 주의 명령을 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보기에 가장 좋은 짐승들을 남겨 둔 것뿐입니다"(15절).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육신의 정욕을 옹호하면서 변명했던 것이다. 사실 그는 하나님의 명령보다는 "탈취물"에 더 관심이 있었으며(19절), 사무엘의 강력한 책망에도 끝까지 변명했다. 『정녕 내가 주의 음성에 복종하여 주께서 나를 보내신 길로 갔으며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왔고 아말렉인들을 완전히 멸하였나이다. 그러나 백성이 완전히 멸했어야만 했던 탈취물 중에서 주 당신의 하나님께 길갈에서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가장 좋은 것으로 양들과 소들을 취하였나이다』(20,21절). "완전히 멸했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을 핑계 삼아 아각 왕도 살려 두고 좋은 것들을 남겨 두었다고 말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라. 왜 그는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한 것인가? 그런 그의 본심이 24절에 나온다. 『내가 죄를 지었나이다. 내가 주의 계명과 당신의 말씀을 어겼으니, 이는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고 그들의 음성에 복종하였음이니이다.』 그러니까 사울의 "부분적인 순종"은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그들의 음성에 복종한 결과였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온전한 순종"이었다. 『그러자 사무엘이 말하기를 "주께서 번제와 희생제를 주의 음성에 복종하는 것만큼 크게 기뻐하시나이까? 보소서, 복종하는 것이 희생제물보다 낫고, 경청하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나이다』(22절). 결국 이러한 사울의 불순종은 하나님께서 그로부터 완전히 돌이키시는 계기가 되었다.

아말렉과의 마지막 전투

이렇듯 사울은 아말렉을 완전히 쓸어버리라는 명령에 불순종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늘 아래에서 아말렉의 기억을 완전히 없애시겠다."라는 그 말씀을 완전히 이루시는데, 소위 "아말렉에 대한 회계 장부"의 결산을 에스더의 시대에 보시는 것이다. 에스더서에 보면, 유대인을 진멸시키려고 계략을 꾸민 하만이 등장한다. 하만은 함므다다의 아들이었는데, 함므다다는 "아각인"이었다(에 3:1). 즉 하만은 사울이 명령에 불순종함으로써 진멸시키지 않았던 아말렉인들의 왕 아각의 후손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 하만이 모르드캐가 자신에게 절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구실 삼아 유대인들을 진멸시키려 했었다. 공교롭게도 모르드캐는 사울과 똑같은 베냐민 지파 출신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끝장내지 못했던 그 일을 약 570년 뒤에 동일한 베냐민 지파 출신의 모르드캐를 통해 끝내셨던 것이다(에 7:10).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성도들이 "불순종한 어떤 명령"에 대해 직접 처리하기도 하신다. 우리가 완전히 진멸시키지 못한 그 일에 대하여 직접 끝장내시고, 우리가 해결 보지 못한 그 회계 장부의 결산을 반드시 보시는 것이다. 이 일은 우리가 지상에 있을 때 하실 수도 있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하실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주님께서는 반드시 모든 거래를 청산하실 것이다. 이에 관해 럭크만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주께서는 긴 회계 장부를 기록하신다. 나의 삶을 돌아볼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20대, 30대에 했던 일들에 대해 60대, 70대에 와서 동일한 것으로 대갚음하시는 것을 보았다. 주께서는 모든 거래를 청산하실 것이다. 이 땅에서 청산하지 않으시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하실 것이다. 반드시 그 거래를 청산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거래를 청산하시는 순간은 매우 수치스럽고 불편한 상황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런 상황에 직면하지 않으려면 "육신과의 전쟁"을 선포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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