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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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디쓴 패배가 주는 값진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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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11월호>

여호수아의 카나안 정복 전쟁에서 "유일한 패배"는 여호수아 7장의 아이 성 제1차 전투 때였다. 주된 원인은 저주받은 여리코 성읍의 물건을 몰래 취한 아칸 한 사람의 죄 때문이었다. "아칸"이란 이름의 의미는 "괴롭히는 자"이다. 그는 그 죄로 인해 자기 자신과 가족은 물론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괴롭게 만든 장본인이 되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분노가 "백성들 전체"를 향해 일어났기 때문이다(1절).

『지혜가 전쟁의 무기들보다 나으나 한 명의 죄인이 많은 선을 파괴시키느니라』(전 9:18). 이것이 바로 "한 사람의 죄"가 지니는 끔찍한 파괴력이다! 한 사람에 의하여 죄가 세상으로 들어왔고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다(롬 5:12). 백성을 계수한 다윗 왕 한 사람의 죄로 인해 7만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삼하 24:15).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히틀러(독일), 히로히토(일본), 무솔리니(이탈리아) 세 사람의 죄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최대 7천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북한에서는 피에 취한 김정은 한 사람의 죄로 인하여 그가 집권했던 지난 5년 동안 340명이 총살되고 숙청되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강물을 흐리는 법이다! 깨진 유리창 하나가 사회 전체를 범죄로 물들게 할 수 있고, 한 사람의 배교자가 수많은 성도들을 쓰러트리기도 한다. 럭크만 목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1900년 이래로 오늘날 서구 문명의 영적, 도덕적 상태를 파괴시킨 책임은, 찰스 다윈,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마르크스, 알버트 아인슈타인, 웨스트코트, 홀트, 교황 피오 12세, 어거스틴, 오리겐, 마틴 루터 킹 주니어, 프랭클린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 아돌프 히틀러 이상 13명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게 하며, 작은 여우들이 포도 넝쿨을 망치고(솔 2:15), 또한 성벽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것이다(느 4:3).

아칸 한 사람의 "죄"로 인해 이스라엘은 전투에서 패배했다. 고작 6천 명 남짓한 군대에게 일격을 당해서 죽지 않았어도 될 36명이 전사했고, 백성들의 마음은 물같이 녹아내리기까지 했다(5절). 그만큼 죄가 한 개인뿐 아니라 가정, 교회, 지역 사회, 국가, 심지어 온 인류를 파괴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결코 죄를 짓는 일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성도들이 영적 전쟁에서 패배하는 주요 원인도 바로 이 "죄"에 있다. 죄가 있으면 결코 승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낙담하여 엎드려 있는 여호수아를 향해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어나라. 어찌하여 네가 이렇게 네 얼굴을 대고 엎드려 있느냐? 이스라엘이 죄를 지었고』(10,11절). 항상 죄가 문제다. 이사야 59:2에서는 죄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나누고 주님의 얼굴을 가리게 한다고 말씀한다.

특히 12절에서는 죄로 인한 세 가지 부정적인 결과들이 나온다. 첫째, 죄가 있으면 원수들 앞에 설 수 없다. 적들에게 대항하여 담대하게 맞설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가 씻긴 사람들이기에 원수들 앞에 담대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마귀의 강력한 고소를 이겨 낼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피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잊어버린 채 자기 의에 사로잡혀 있거나 죄에 찌들어 살게 되면, 이내 담대함을 잃고 원수들 앞에서 등을 보이게 된다. 그것은 결국 죽음으로 이어진다. 둘째, 죄가 있으면 저주를 받는다. 물론 거듭난 성도는 대신 저주가 되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갈 3:13) 영원한 불못으로 던져지는 저주를 받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몸에 사형 선고가 임하게 하는 저주를 받을 수 있다. 즉 일찍 죽을 수 있다는 말이다. 육신을 따라 살면 죽게 된다(롬 8:13).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 곧 그 몸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실 것이다(고전 3:17).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약하고 병들었으며 상당수가 잠들었느니라』(고전 11:30). 이처럼 죄는 육신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셋째, 죄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다. 구원을 잃어버린다는 말이 아니다. 몸이 구속되는 휴거의 날까지 성령께서 인을 치신 봉인이 잠시 풀리는 것도 아니다. 구약에서 다윗은 죄를 지었을 때 『주의 거룩한 영을 내게서 거두어 가지 마소서.』(시 51:11)라고 기도했지만, 교회 시대에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몸에 거하시기 위해 오신 이후로는 그런 기도가 불필요하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또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시리니 그가 너희와 함께 영원히 거하시리라.』(요 14:16)고 약속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죄 가운데 있으면 주님과의 교제를 잃어버릴 수 있다(요일 1:7). 주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기도에도 응답하지 않으신다. 말씀에 대한 조명도 꺼버리신다. 성령님을 슬프시게 해 드릴 수도 있다(엡 4:30). 이런 비극에 직면하지 않기 위해선 우리 안에 있는 "저주받은 것"을 속히 멸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멸해야 할 대상은 "육신의 행위들"이다. 자신을 죄에게는 죽은 자로 여김으로써(롬 6:11)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하는 것이다(엡 4:22). 쉽게 에워싸는 죄를 벗어 버려야 한다(히 12:1). 이렇게 할 때 우리가 죄로 인해 넘어져 있다가도 다시 일어나 담대히 행할 수 있다. 오직 죄를 제거할 때만 가능한 일인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 그것을 제거하는 일만 남았다. 이에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명령을(14,15절) 실행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이스라엘을 지파대로 불러냈는데, 열두 지파 중에 유다 지파가, 또 그중에서 삽디가 뽑혔다(16,17절). 범죄자를 향한 포위망이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이런 과정이 진행될 때 아칸은 마음이 얼마나 조마조마했겠는가! 처음에는 약 150만 명의 백성들 중에 자기가 범죄자라는 사실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150만분의 1"이면 0.001%도 안 되는 확률이다. 수학적인 확률상 그를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당시에는 검찰도, 과학 수사팀도, 지문 감식반도 없었다. 목격자도 없었으며, 죄를 부인할 수 있는 알리바이도 완벽했다. 하지만 아칸은 인간의 마음속에 생기는 일들을 일일이 아시는(겔 11:5) 하나님을 간과했다. 아니 감안했다 해도 그 사실을 고의로 잊고 싶었을지 모른다. 온 우주에서 하나님께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나무들 사이에 숨어 있던 아담을 찾아내셨다. 배 밑층 은밀한 곳에 숨어 있던 불순종한 요나도 끄집어내셨다. 아무도 찾아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 속에 편안히 잠들어 있던 그를 흔들어 깨우신 것이다. 우리야를 죽게 해서 자신의 간음을 완벽하게 은폐시키려 했던 다윗도 하나님의 수사망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은밀히 토지 대금을 감춘 아나니아와 삽피라 역시 좁혀 오는 포위망을 피해가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토요일 밤 어느 으슥한 곳에 세워 둔 자동차 안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다 알고 계신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들을 주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빛 가운데 두셨으니』(시 90:8).

자, 아칸은 자기의 이름이 지목되기(18절) 전에 먼저 죄를 자백했어야 했다. 하나님의 "최종적인 판결"이 떨어지기 전에 말이다. 만일 그랬다면 그 결말은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의 지파가 거명되었을 때도, 족속이 뽑히고 가족이 뽑혔을 때도, 심지어 그의 이름이 지명될 때까지 계속 기다리며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내 아들아 내놓으라...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께 자백하라. 그리고 이제 네가 행한 일을 내게 고하고 그것을 내게 숨기지 말라』(19절). 이때서야 비로소 아칸은 자신의 죄를 시인하게 된다(20,21절). 그러나 늦었다! 주님께서는 죄 지은 성도를 불꽃같은 눈동자로 감찰하시면서 그가 언제 자백하고 돌아올지 지켜보신다. 오래 참으시며 기다리시는 것이다! 아칸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처음 저주받은 물건을 취한 1절의 시점부터 전투의 패배로 백성들이 낙담하고 여호수아가 주님 앞에 엎드렸던 9절의 시점까지 기회는 있었다. 아직은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지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심판이 안 내려졌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내로 참아 주시는 기간이다. 하지만 심판이 내려지면 자백해도 소용이 없다. 너무 늦은 것이다. 백보좌 심판에서도 수많은 죄인들이 자신이 죄인임을 자백하며 죄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었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성도들 역시 이 세상에서 많은 일들에 있어서 범죄하고 자백하고 또 책망도 받는다. 또한 징계를 받는 경우도 있다. 이미 징계를 받는 상황에서는 죄를 자백해도 징계가 철회되지 않는다. 죄를 자백하고 버리는 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래야 자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잠 28:13).

결국 아칸이 지은 죄의 모든 전말이 밝혀졌고(22,23절), 그와 그의 가족은 아콜 골짜기에서 돌에 맞아 죽고 불태워졌다(24-26절). "아콜 골짜기"는 "괴로움의 골짜기"이다. 패배의 쓰라림, 죄의 고통, 심판의 엄중함을 깨닫게 한 장소였다. 저주받은 여리코, 곧 저주받은 세상을 사랑하면 안 된다는 것과 주님의 명령을 무시한 대가는 심판과 저주로 이어진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게 해 준 장소인 것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투수 크리스티 매튜슨은 "승리하면 조금 배울 수 있지만, 패배하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이후로 이스라엘은 더 이상 패배하지 않는다. 때로는 쓰디쓴 패배를 통해 얻는 교훈이 값질 때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지 못한 성도에게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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