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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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에게 점유당하는 주된 원인 “피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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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03월호>

사람들이 마귀에게 점유당하는 주된 원인은 “피동성”(passivity)이다. “피동성”이란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자신의 영과 혼과 몸을 통제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의지”나 의지에 따른 “믿음”을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데, 대표적인 집단이 “칼빈주의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선물로 주신 믿음을(엡 2:8) 사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구원받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어떤 죄인이라도 지금 당장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기만 하면, 영이 거듭나고 혼이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믿는 것” 자체도 “행위”로 간주하는 칼빈주의자들은 인간 스스로는 결코 믿을 수 없고 믿음을 행사하는 순간 그것은 곧 행위가 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영향으로 복음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비상식적이고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니, “저항할 수 없는 은혜”에 따라 하나님의 강권적인 방법으로 믿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 이르러서야 믿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은 “행위”가 아닐 뿐만 아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못 박고 있다!(롬 11:6, 엡 2:8,9, 갈 2:16) 특히 어떤 죄인이 자기가 믿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는 영원토록 구원받지 못하고 영원한 불못으로 던져지게 된다. 사탄이 이 땅에 깊이 뿌리 내리게 한 칼빈주의를 따라가면 “피동성에 따른 무기력감”에 빠져 지옥의 영원한 불길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도를 절대로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경은 의지에 따른 믿음을 능동적으로 사용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정녕 죄에게는 죽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는 산 자로 여기라.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 안에서 군림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정욕 가운데 죄에게 순종하지 말고 또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내어주지 말고 다만 너희 자신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자들처럼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1-13). 이 구절들에서 사용된 “표현들”을 주목하라. “자신을 죄에 대해 죽은 자로 여기라,” “하나님께는 산 자로 여기라,” “죄가 죽을 몸 안에서 군림하지 못하게 하라,” “몸의 정욕 가운데 죄에게 순종하지 말라,”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라,”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등 이상의 표현 중에서 “피동적”인 표현은 단 하나도 없다. 모두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할 것을 명령하는 것이다. “능동성”(activity)에 따른 자세와 행동은 오직 자신의 의지를 사용할 때만 나올 수 있다. 그렇게 여겨지기를 기다리거나, 순종하고 싶은 생각 또는 몸을 의의 병기로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면서 피동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면, 믿음에 관한 한 단 1mm도 전진할 수 없다.


피동성은 의지를 사용하기를 중단한 상태이기에 마치 명상이나 최면처럼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행위”와 유사하다. 이런 상태에서는 언제든지 어둠의 세력들이 개입할 수 있는 위험성이 커진다. 죄악뿐만 아니라 악령들이 인간 안에 역사하기에 가장 좋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더러운 영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와, 물 없는 곳으로 두루 다니면서 쉴 곳을 찾다가 찾지 못하자, 그가 말하기를 ‘내가 나왔던 내 집으로 돌아 가리라.’ 하고, 돌아와 보니, 그 집이 비어 있고, 소제되고, 단장되었더라. 그러자 그가 가서 자기보다 더 악한 다른 일곱 영을 데리고 들어가 거기서 사니, 그 사람의 나중 상태가 처음보다 더 악화되었더라. 이 악한 세대도 그러하리라.”고 하시더라』(마 12:43-45). 여기서 “집”은 “인간의 몸”으로서, 본문은 더러운 영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람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설명하고 있다.


더러운 영이 잠시 나갔다가 쉴 곳을 찾지 못하여 그 사람에게 다시 돌아왔을 때, 그 사람의 상태를 보니까 우선 “비어 있었고,” 즉 마음을 비워 놓은 상태였고, “소제되었으며,” 곧 자기 의로 가득 찬 상태였으며, “단장되었고,” 말하자면 종교적인 모습으로 단장된 모습이었다. 특히 그 마음이 비어 있었는데, 이것은 그 사람이 “피동적”인 상태에 빠졌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그런 상태에 놓인 사람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그 더러운 영이 자기보다 더 악한 다른 일곱 영을 데리고 들어감으로써 그 사람의 상태가 처음보다 더 “악화되고” 말았다. 영적 전쟁에서는 “중립 지대”라는 것이 없으므로, 인간의 마음은 성령 하나님으로 채워지든지, 악령들로 채워지든지 반드시 무언가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마음이 비워지고 소제되고 단장된 상태에서는 성령으로 채워지기보다는 악령으로 채워지기가 더 쉽다. “피동적인 상태”가 꼭 이와 같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모든 지체와 기능을 능동적으로 온전히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어둠의 세력은 자기 뜻에 복종하는 “피동적인 노예”를 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거듭난 성도가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 안에 굳게 서서(갈 5:1) 의지에 따른 믿음을 능동적으로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선택하며 실행하길 원하신다.


“탐 멀론”(Tom Malone)이라고 하는 미국의 근본주의 설교자가 있었다. 한번은 그가 멀리 떨어져 있는 시골 교회의 한 집회에서 설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마귀가 그의 마음속에 건전하지 못한 생각들을 집어넣고 있었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마귀는 내 옆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서 말하기를, ‘너, 미친 거 아냐. 너는 지금 너의 몸을 혹사하고 있는 거야. 그 몇 명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설교하러 그렇게 먼 거리를 운전해서 가다니. 그리고 말이야, 오늘 구원받았다고 하는 그 사람 있지, 그가 정말 구원받았는지 어떻게 알아? 네가 너무 먼 거리에서 운전해 왔으니까 너를 섭섭하지 않게 해 주려고 일부러 앞으로 나와 영접한다고 했을 거라고.’라고 했다. 마귀는 내가 더 이상 참기 힘들 정도로 마구 괴롭히며 몰아붙였다. 그래서 나는 자동차를 도로 한쪽에 세워 놓고는 시동을 끄고 밖으로 나와 조수석 쪽으로 걸어가서 문을 연 다음 이렇게 소리쳤다. ‘이 마귀야, 당장 내려! 이 자동차는 내 차야. 세금도 내가 냈고 차 보험도 내가 들었어! 너는 지금까지 내 차에 내 허락도 없이 무단으로 승차하고 온 거야. 알겠어? 그러니 이제 당장 나가!’ 그런 후 ‘쾅!’ 하고 문을 닫고는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와 편안한 마음으로 차를 몰고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영적 전쟁에서는 “능동적인 대응”이 “최선의 방어”다. 한편 피동적인 군사는 피곤하고 고단한 전쟁을 회피하기 위해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고 성문을 열어젖혀 적들을 맞아들이는 “겁쟁이”와 같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름을 받은 성도라면 군대 대장의 명령에 따라 용기 있게 적극적으로 믿음을 사용하여 악령들의 모든 접근을 거절해야 한다! 모든 거점과 영향력, 제안과 지식, 환청과 환각 등 그들이 들어올 수 있는 모든 통로를 차단하라! 물론 이런 싸움의 기간이 매우 고통스러울 수 있다. 때로는 격렬하게 분투해야 하는 힘든 순간이 찾아오기도 하고, 때로는 마귀에게 피동적으로 끌려가는 상황에서 자신의 의지를 사용하여 강하게 맞서려는 순간 그것을 저지하려는 마귀들의 거센 반발을 감지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생긴다. 하지만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빌리 선데이는 죄와의 처절한 싸움과 관련하여 자신이 너무 늙어서 주먹과 발에 죄와 싸울 힘이 없게 되면 잇몸으로라도 죄를 물어뜯으며 싸우겠다고 말했다.


피동성의 밧줄에 묶여 마귀에게 조종당하는 꼭두각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악령들의 목표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쇠잔하게 하여 더 이상 자기들에게 대항하지 못하도록 무기력한 군사들로 만드는 것이다. 마귀의 공격이 거세지면 거세질수록 성도는 그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더욱더 기도로 분투해야 한다. 분투하는 기도는 “능동적인 기도”이다. 단순히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피동적인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된다. 기도의 필요성을 인지했다면, 곧바로 기도하려는 능동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영적 전쟁에서 “기도”는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장애물을 파괴할 수 있는 “위력적인 병기”로서 언제든지 그리스도인이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다.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땀이 큰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질 때까지 기도하심으로써 승리하셨고, 결과적으로는 그 승리가 모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참된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따라서 성숙한 성도라면 더 이상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악령들에게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서도 기도로 분연히 일어나 싸워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이자,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시는 절대적인 수단이며, 영적 전쟁의 승리를 위한 절대적인 무기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군사들이여, 주님께서 주신 모든 능력을 “능동적”으로 발휘하라!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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