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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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거리두기에 실패한 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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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10월호>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퍼졌고,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고통받고 있다. 세계 국가 대부분이 코로나19로부터 자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손 세정제와 마스크를 권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으니,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용어까지 대두되었다. 이 바이러스는 사람의 기침이나 재채기 등과 같은 비말(飛沫)을 통해 전파되는 특성이 있어서 밀폐된 공간이나 밀집된 장소 그리고 운집한 사람들의 밀도가 높은 상황에서 강력하게 전파되는 경향이 있다. 바이러스를 막기 위한 백신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또 만들어진다 해도 바이러스의 변이가 곳곳에서 발견되어 그 효능을 기대하기가 그리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질병관리청”(질병관리본부)이 가장 효과적이고 즉각적인 바이러스 억제책의 하나로 사람들과의 접촉을 자제하고 마스크를 착용하며 비대면을 통해 가급적 사회적 접촉을 자제할 것을 권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개인 또는 집단 간의 접촉을 최소화하여 감염병의 전파를 최소화하는 “공중보건학적 감염병 통제 전략”으로 전 세계에서 활용되고 있다.

한편 성경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더럽고 악한 바이러스, 곧 “영적 바이러스”에 오염되지 않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삶을 유지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영적 거리두기”라 할 수 있는 “성경적 성별”이다. 세상에는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사는 죄인들이 있는가 하면(엡 2:2),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롬 8:14).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죄인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나라의 큰 기쁨이지만(눅 15:10), 타락한 죄인들로 인해 영적 바이러스에 오염되어 자신의 믿음마저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께는 큰 슬픔이요(엡 4:30), 그 당사자에게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끔찍한 비극이다. 그래서 성경이 성별을 강조하는 것이다.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의가 불의와 어찌 관계를 맺으며 빛이 어두움과 어찌 사귀겠느냐? 그리스도가 벨리알과 어찌 조화를 이루며 또한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어떤 부분을 같이하겠느냐?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일치되겠느냐?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임이라.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들 가운데서 살 것이며 그들 가운데서 다닐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주가 말하노라. 너희는 그들에게서 나와 따로 있고 더러운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 6:14-17).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어기면서까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지 않는 몰지각한 자들로 인해 입게 된 사회적, 경제적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으며, 결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극심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명령인 “성경적 성별,” 곧 “영적 거리두기”를 무시한 자녀들의 결말은 어떠한가? 이와 관련하여 구약에 등장하는 “롯”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교훈을 살펴보도록 하자.

아브라함을 통해 시작된 롯의 믿음

“롯”은 테라의 손자이자, 하란의 아들이며, 또한 셈의 10대손인 아브라함의 조카다(창 11:27,31; 14:12). 그는 조부인 테라가 칼데아 우르에서 나와 하란에 거할 때 아브라함과 함께 기거했고(창 11:31),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란을 떠날 때도 그와 함께 떠났다(창 12:1-4). 아버지를 여읜(창 11:28) 롯은 늘 아브라함 곁에서 보살핌을 받았고, 아브라함의 생활 방식을 보면서 성장했다. 기근이라는 고난 속에서도 아브라함은 그를 버리지 않았는데, 그 덕분에 롯은 이집트에서 나올 때 많은 소유를 가질 수 있었다(창 12:10; 13:1,5). 그뿐만 아니라 함께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 그들의 소유로 인해 서로 분리해야 했을 때도 롯은 자신에게 “선택권”을 먼저 부여한 아브라함의 친절과 겸손함을 배웠다(창 13:6-9). 심지어 시날 왕 아므라펠의 때에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재산을 빼앗기고 포로 신세가 된 상황에서(창 14:1-12),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와 자기를 구출하고 빼앗긴 재산을 되찾아 준 아브라함을 통해 뜨거운 형제애가 어떤 것인지를 배우기도 했다(창 14:13-16, 물론 이것은 그가 소돔에 정착한 이후의 일이다). 어쨌든 롯은 그런 것들을 언제 배웠느냐는 듯이 절대로 가까이 가서는 안 될 소돔을 향해 눈을 들었고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말았다(창 13:10-13).

“영적 거리두기”에 실패한 롯

아브라함의 생활 방식을 보고 자란 롯은 그를 방문한 두 천사에게 아브라함처럼 동일한 친절을 보였다(창 18:3-8; 19:1-3). 비록 그가 아브라함처럼 천사들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은 가지지 못했지만(히 13:2), 소돔 성읍의 “사악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과 “그들의 불법적인 행동”을 날마다 보고 들음으로써 그의 혼은 고통당하고 있었다(벧후 2:7-9). 하지만 심판과 멸망의 경고 앞에서 그가 보인 “미온적인 태도”는, 이미 소돔의 악인들과의 “영적 거리두기”에 실패한 그의 영적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잘 암시해 준다. 결국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영적인 중립 지대(?)에 서 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1. 조롱하는 자들의 자리에 앉아 있음(시 1:1) :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들에게 내리신 첫 번째 심판은 물로 인한 심판, 즉 “노아의 홍수”였다. 두 번째 심판은 성경에서 “죄인”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불의 심판”이었다. 이 두 성읍은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동성애가 만연한 성읍들로서 “저주받은 성읍들”이었다. 아브라함이 소돔 왕으로부터 아무런 전리품도 받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창 14:22-24, 수 7:1). 말하자면 롯은 이런 사악한 “영적 타락의 현장”에서 빠져나오지는 않은 채 20년 이상 머물며 괴로워하고만 있었던 것이다(벧후 2:8).

2. 영적 분별력을 잃음(왕상 3:9, 겔 44:23) : 롯은 방문한 두 천사를 매우 극진히 대접했다(창 19:1-3, 히 13:2). 그뿐만 아니라 음욕을 채우기 위해 집으로 몰려온 동성애자들의 가증한 요구를 막아서면서 『그처럼 악하게 행하지 말라.』(창 19:7)라고 말하며 천사들을 보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들인 두 딸에 대해서는 “너희 눈에 좋을 대로 행하라.”(창 19:8)라는 말을 함으로써 사악한 악인들의 음행에 자녀들을 내어 주려 했다.

3. 성별을 유지하지 못함(벧전 1:15) : 그는 소돔에서 죄인들과의 “영적 거리두기,” 곧 “성경적 성별”을 실행하지 못했다(고후 6:14-16). 롯이 했던 말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악을 행하려는 그들을 향해 강경한 대응은커녕 단순한 거절조차 명확하게 하지 못한 것이다. 더욱이 그렇게 사악한 자들을 향해 “형제들”(창 19:7)이라는 호칭까지 사용했다.

4. 영적 권위가 실추됨(삼상 2:22-25) : 아브라함과 함께 이집트에서 나올 때 롯은 부유했고 소돔에서도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창 19:1,9). 그에 걸맞게 그는 나이 든 자로서 믿음의 본이 되어야 했고 가정도 잘 다스려야 했다. 하지만 “소돔의 멸망”에 관하여 전하는 그의 말을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길 만큼 그의 영적인 권위는 이미 심하게 실추되어 있었다(창 19:14).

5. 미지근한 신앙으로 머뭇거림(계 3:15) : 롯은 자신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데리고 저주받은 소돔 성읍을 빠져나가야 했지만, 사위들의 거부로 인해 자신의 아내와 미혼인 두 딸만 데리고 탈출했다. 그런데도 아침이 밝아 오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롯은 여전히 머뭇거렸고, 이에 천사들은 그들을 강제로 이끌고 성읍 밖으로 나갔다(창 19:16). 이후 롯은 산으로 도피하라는 명령에도 여전히 미적거리면서 근처에 있는 “소알”로 가게 해 달라고 요구했고(창 19:17-22), 나중에는 소알 역시 두렵게 느껴져 원래 갔어야 할 산으로 처소를 옮겼다(창 19:30).

돌이킬 수 없는 롯의 결말

아브라함과 롯, 두 사람의 믿음의 행보는 창세기 18장과 19장에서 잘 대조되고 있다. 곧 늙은 “아브라함”은 이삭을 선물로 약속받았던 것에 반해, “롯”은 소돔의 심판으로부터 간신히 빠져나온 것이다. 그는 아내와 기혼인 두 딸과 사위들을 포함하여 모든 소유의 풍부함을 잃어버렸고, 살아남은 미혼의 두 딸과 관련해서는 술 취함과 근친상간의 죄로 말미암아 모든 간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1. 소금 기둥이 된 아내(창 19:26) : 롯의 아내는 멸망하는 고향을 뒤에 둔 채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뒤처졌고 롯의 뒤에서 소돔을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 이와 반대로 모압 여인 “룻”(cf. 오르파)은 자신의 고향을 뒤로한 채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따라 이스라엘로 향했다(룻 1:16-18). 룻은 자신이 바라보아야 할 올바른 장소를 정확하게 바라본 것이다. 우리의 믿음 역시 바로 이와 같아야 한다(빌 3:13,14,20,21).

2. 술 취함과 근친상간 : 노아는 물로 심판받은 세상에서 구원받은 이후, 포도주에 취한 채로 벌거벗었고 아들 함에게 동성애의 죄를 허용하고 말았다. 이렇듯 술 취함은 다른 죄들로 이어지는 통로가 된다. 롯도 그와 마찬가지로 불로 심판받은 소돔에서 건짐을 받았지만, 포도주에 취하여 벌거벗었고 그로 인하여 딸들에게 근친상간의 죄를 허용하고 말았다. 『아버지의 씨를 보존하기 위함이라.』(창 19:34)라는 큰딸의 동기는 인간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으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였다. “씨의 보존”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기 때문이다. 씨의 보존과 관련된 “유전자 조작”과 소위 “과학적 진화론”은 모두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 결국 큰딸과 작은딸의 행위는 향후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게 될 모압과 암몬을 만들어 낸 시발점이 되고 말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감염과 확산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 “사회적 거리두기”와 “손 씻기”인 것처럼, 악한 현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성경적 성별”과 “말씀에 의한 물로 씻는 일”이 마귀가 퍼뜨리는 영적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정결하게 지키고 주님께서 오시는 날까지 온전히 보호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다(살전 5:23). 그런데 롯은 영적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고 악의 씨들을 낳는 참담한 결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와는 달리 경건한 모습을 계속 유지했던 아브라함은 약속된 씨와 더불어 영원한 복을 누렸다. 두 사람 간의 차이는 바로 “성경적 성별”에 있었다. 『미혹되지 말라. 악한 사귐은 좋은 행실을 부패시키느니라.』(고전 15:33)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반드시 기억하고 성경적 성별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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