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성경의 비유들 분류

양과 염소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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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7월호>

성경에는 양과 염소가 함께 등장하는 말씀들이 있는데, 거기에는 각 말씀의 의미를 떠나서 흥미로운 연계점이 있다. 양과 염소가 최초로 함께 등장하는 곳은 “야곱과 라반 사이의 거래 장면”이다. 외삼촌 라반을 위해 오랫동안 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집 하나 마련하지 못했던 야곱은 『그런데 이제 나는 언제 내 집을 마련하리이까?』(창 30:30)라고 외삼촌에게 하소연한다.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창 30:31)라고 묻는 라반에게 야곱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오늘 외삼촌의 모든 양떼 속을 두루 다니며, 이때부터 양들 중에서 얼룩얼룩하고 점 있는 양들과 모든 갈색 양들 또 염소들 가운데서 점 있고 얼룩얼룩한 것들을 가려내리니 그것들이 나의 품삯이 되리이다. 내 품삯에 관한 것이 외삼촌의 면전에서 있게 될 때, 내 의가 장차 나를 위해 대답하리니, 염소들 중에서 얼룩얼룩하지 않거나 점이 없는 것이나 양들 중에 갈색이 아닌 것이 있으면 내가 도둑질한 것으로 여기소서』(창 30:32,33). 그러자 라반은 바로 그날 모든 아롱아롱하고 점 있는 숫염소와, 얼룩얼룩하고 점 있는 모든 암염소와, 흰 점 있는 모든 것들과 양들 중에서 갈색인 것들을 모두 가려내어 그의 아들들의 손에 붙이고 자신과 야곱 사이에 삼 일 길을 두는 잔꾀를 부렸는데(창 30:35,36), 오히려 주님께서는 라반의 양떼 중 나머지를 먹이는 야곱에게 복을 주시어 그 뒤로 태어나는 가축 중에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게 하시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되게 하셨다(창 30:42).


이처럼 성경에서 최초로 함께 등장하는 양과 염소는 그 시작부터 “분리”를 보여 준다. 분위기도 “부정적”이다. 즉 “나는 언제 내 집을 마련합니까?”라고 하는 야곱의 하소연으로 시작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라반의 양과 염소와 야곱의 것들과의 분리였지만, 이후로 성경에서는 양과 염소가 “함께할 수 없는” 부정적인 관계이자 분리된 존재들로 등장한다. 다니엘 8장에는 숫양과 숫염소의 대결이 나오는데, 바빌론의 벨사살 왕 치리 제3년에 다니엘에게 한 환상이 주어졌을 때 그가 보았던 것은 두 뿔을 가진 숫양과 양 눈 사이에 두드러진 뿔이 있는 숫염소 사이의 싸움이었다. 『그때 내가 나의 눈을 들어 보았더니, 보라, 두 뿔을 가진 숫양 한 마리가 강 앞에 서 있는데 그 두 뿔은 길며 하나가 다른 것보다 더 길고 그 긴 것이 나중에 나왔더라... 내가 숙고하고 있는데, 보라, 숫염소가 온 지면의 서쪽에서부터 왔는데 땅에는 닿지 않았고 그 염소는 양 눈 사이에 두드러진 뿔이 있더라. 내가 강 앞에서 서서 보았더니 그 염소가 두 뿔을 가진 숫양에게로 와서 격분한 힘으로 그에게 달려가더라. 또 내가 그를 보니 숫양에게 가까이 나와서 그에게 화를 내어 그 숫양을 받아 그의 두 뿔을 꺾으니 그 숫양에게는 염소 앞에 설 힘이 없더라. 그 염소가 숫양을 땅에 집어 던져서 짓밟아도 그의 손에서 숫양을 건져낼 자가 아무도 없었더라』(단 8:3,5-7). 이 환상에서 “숫양”은 역사적으로 다리오와 코레스의 메데 페르시아이고, 이 숫양을 격렬하게 공격하는 “숫염소”는 그야말로 『격분한 힘으로』(단 8:6) 파죽지세로 페르시아를 공격했던 알렉산더 대왕의 그리스이다. 환상에서 숫염소는 숫양을 땅에 집어던져서 짓밟았는데, 이를 영적으로 보면 성경에서는 양과 염소가 공존할 수 없는 면이 있음을 읽을 수 있다.

팔레스타인 땅의 양과 염소는 라반의 양과 염소처럼 얼룩덜룩한 것들이 많아서 그들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으면 구분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양” 하면 흰 양을 떠올리고 “염소” 하면 검거나 흰 것을 떠올리지만, 팔레스타인의 양과 염소는 누런색, 갈색, 검은색, 흰색이 두루두루 섞인 것들이 많아 함께 무리 지어 이동하면 구분이 잘 안 된다. 사람들도 멀리서 무리 지어 있으면 누가 누군지 그저 어렴풋하기만 할 때가 있고, 그 가운데 누가 의인이고 악인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훗날 재림하시면 민족들을 모아 놓고 의인이면 “양,” 악인이면 “염소”로 구분하여 그 둘을 “영원히 분리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5:31-46). 『내가... 숫양과 숫염소 사이에서 심판하노라』(겔 34:17). 주님의 그 “양과 염소의 비유”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인자가 그의 영광 중에 오고, 또 모든 거룩한 천사들이 그와 함께 오면 그때에 그가 그의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그 앞에 모든 민족들을 모아 놓고 마치 목자가 양들을 염소들에서 갈라놓듯이 그들을 따로 갈라놓으리라』(마 25:31,32).


“양과 염소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대환란에 관해 말씀하신(마 24장) 후에, 뒤이은 마태복음 25장에서 추가적으로 해 주신 비유들 중에 하나이다. 25장에서 처음 두 비유는 유대인들과 연관이 있는데, “열 처녀들의 비유”(1-13절)는 대환란 때의 유대인들의 구원과 관련이 있고, “달란트의 비유”(14-30절)는 대환란 때의 유대인 종들의 섬김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같은 장에서 마지막으로 언급된 “양과 염소의 비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재림하시어 그분의 영광의 보좌에 앉으셨을 때 문자 그대로 『모든 민족들』(32절)을 모아 놓고 판결하시는 “이방 민족들의 심판”을 다룬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대환란 끝에 흰 말을 타시고 하늘의 군대들과 함께 지상으로 내려오실 것이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흰 말이 보이더라. 그 위에 앉으신 분은 신실과 진실이라 불리며 의로 심판하고 싸우시더라... 또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정결한 세마포를 입고 흰 말들을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는 예리한 칼이 나와서 그것으로 민족들을 칠 것이요 또 철장으로 그들을 다스릴 것이며,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즙틀을 밟으실 것이라』(계 19:11,14,15). 이것은 예루살렘을 총공격하러 온 적그리스도의 군대를 아마겟돈에서 짓밟는 전쟁을 예언한 내용인데, 이때 그분을 따르는 하늘의 군대는 그분의 신부인 “교회”이다. 『아침처럼 비추고, 달처럼 고우며, 해처럼 맑고 깃발들을 든 군대처럼 위엄이 있는 여자는 누구인가?』(솔 6:10) 이 “여자”는 교회로서 “그리스도의 신부”로도 불린다(솔 4:9, 요 3:29, 계 22:17). 이 신부가 어린양의 혼인식을 마치고(계 19:7-9)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재림할 때는(계 19:11-16) 두렵고 무서운 군대로서 내려오게 된다. 『흑암과 암영의 날, 구름과 짙은 어두움의 날이 산들 위에 펼쳐진 아침 같으니, 많고 강한 사람들이라. 이 같은 일은 전에도 없었고, 또 이후, 곧 많은 세대들의 연수에까지도 다시 없으리라. 불이 그들 앞에서 삼키며 그들 뒤에서는 화염이 불타는도다. 그 땅은 그들 앞에서는 에덴의 동산 같으나 그들 뒤에는 황량한 광야 같으니, 정녕, 어떤 것도 그들을 피하지 못하리라. 그들의 모양은 말들의 모양 같고 그들은 마치 기병들처럼 달리리로다. 그들이 뛰는 것은 산꼭대기들에 있는 병거들의 소리 같고, 그루터기를 삼키는 불꽃 소리와도 같으며, 전열에 배치된 강한 백성 같으리라』(욜 2:2-5).


교회를 이끌고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마겟돈에 모인 2억 명의 UN의 군대를 마치 포도즙 틀을 밟듯이 짓밟아 죽이실 것이고(사 63:3), 그 후로는 『다윗의 보좌』(사 9:7)이자 『주의 보좌』(대상 29:23, 렘 3:17)로 불리는 『그의 영광의 보좌』(마 25:31)에 앉으시어 민족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이것이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일어나는 심판이다. 그런데 “민족들의 심판”이 이루어질 장소는 “여호사밧 골짜기”이다. 『내가 또한 모든 민족들을 모아 그들을 여호사밧 골짜기 아래로 데려와서 거기서 그들과 더불어 내 백성과 내 유업 이스라엘을 위하여 변호하리라. 그들이 이스라엘을 민족들 가운데 흩뜨리고 나의 땅을 나누었고, 그들은 또 내 백성을 놓고 제비뽑았으며, 한 소년을 주고 창녀를 얻었고, 그들이 마실 포도주를 위해 소녀를 팔았도다... 이방으로 깨어서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오게 하라. 이는 내가 거기에 앉아서 주위의 모든 이방을 다 심판할 것임이로다』(욜 3:2,3,12). 바로 이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모든 민족들』, 곧 『모든 이방』을 모아 놓고 심판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이 심판이 주님께서 흰 말을 타고 내려오시어 진노의 큰 포도즙 틀을 밟는 아마겟돈 전쟁 이후에 여호사밧 골짜기에 앉으시면서(욜 3:12)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아마겟돈 전쟁을 끝내시고 “보좌에 앉으셔서” 판결하실 심판인데 이것을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인자가 그의 영광 중에 오고, 또 모든 거룩한 천사들이 그와 함께 오면 그때에 그가 그의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그 앞에 모든 민족들을 모아 놓고 마치 목자가 양들을 염소들에서 갈라놓듯이 그들을 따로 갈라놓으리라』(마 25:31,32).

민족들을 모아 놓고 그들을 “양들”과 “염소들”을 나누시는 일은 민족 단위가 아닌 “개인” 단위로 이뤄질 것이다. 자칫 민족들의 심판을 “염소로 분류된 민족들 전체”가 지옥으로 가고, “양으로 분류된 민족들 전체”가 왕국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해석하기 쉽지만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해석이다. 왜냐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호사밧 골짜기에 민족들을 모아 놓고 심판하실 때, 그분의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민족들”이 아님)에게는 『오라, 나의 아버지의 복을 받은 자들아,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그 왕국을 이어받으라.』라고 말씀하시고(마 25:34), 그분의 『왼편에 있는 자들』(역시 “민족들”이 아님)에게는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마 25:41)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대환란 때 살아남아 민족들의 심판에 서게 될 이방인들이 양과 염소로 분류되는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들인 유대인들을 대환란 기간에 어떻게 대했는가”이다. 『여기 내 형제들[유대인들] 가운데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니라』(마 25:40). 주님께서는 대환란 때 그분의 형제들인 유대인들에게 어떤 태도를 보였느냐에 따라 민족들을 양과 염소로 분류하실 것인데, 만일 어떤 이방인이 유대인들을 도와 그들에게 물이라도 한 잔 더 주고 빵이라도 한 조각 더 대접해 주었다면(마 25:35, 사 21:14) 그 사람은 양으로 분류되어 주님의 오른편에 설 것이고, 주님께서는 그들을 『나의 아버지의 복을 받은 자들』이라고 부르시면서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그 왕국을 이어받으라.』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반면에 대환란 때 유대인들을 박해하고, 고난당하는 그들을 돌아보지 않으며(마 25:42-45), 오히려 “민족들 가운데 이스라엘을 흩뜨리고 주님의 땅을 나누며, 주님의 백성을 놓고 제비 뽑고, 유대인 소년을 주고 창녀를 얻으며, 자신들이 마실 포도주를 위해 유대인 소녀를 팔았던”(욜 3:2,3) 자들은 염소로 분류하여 왼편에 세우시고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마 25:41)라고 명령하실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양과 염소는 영원히 분리될 것인데, 이러한 심판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에 기초를 두고 있다. 『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리라』(창 12:3). 아브라함과 그의 육적인 후손인 유대인에게 주신 이 약속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다. 『예루살렘의 화평을 위하여 기도하라.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번성하리로다』(시 122:6). 예루살렘의 화평은 재림 때 있을 일이기에 이것은 재림을 위한 기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간구하는 성도가 참된 믿음의 사람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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