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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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루 건축과 전쟁 승산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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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2년 06월호>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속을 시험하는 분이시다. 주님께서 사람을 시험하시는 이유는 사람의 마음이 본래 거짓되고 심히 악하다는 데 있다.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악하니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으리요? 나 주는 마음을 살피고 나는 속을 시험하며 그 사람의 행위와 행실의 결과대로 각 사람에게 주노라』(렘 17:9,10). 즉 사람의 마음은 악한 생각과 간음, 음행, 살인, 도둑질,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악한 눈, 하나님을 모독함, 교만,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이러한 것들이 마음에서 나와 그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다(막 7:21-23).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가치를 두시는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깨끗해진 마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긴 마음을 소유하면 그때부터 믿음의 온전한 확신 가운데서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기에(히 10:22), 비로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황소와 염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도 불결한 자들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함으로써 거룩하게 한다면,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흠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죽은 행실에서 너희 양심을 정결케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3,14)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받아서 양심이 정결케 되지도 않은 자들이 매 주일 교회에 나가 주님을 섬기겠다고 소란을 피우는 것은 육신의 죽은 행실로 벌이는 비성경적인 종교 행위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거듭났다고 해서 마음이 단번에 온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섬김의 바탕이 마련된 것일 뿐, 마음은 그 뒤로 진정한 제자도에 관해 시험을 받는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지(막 12:30),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입증하고 있는지(롬 12:2), 거듭남과 별도로 마음은 늘 시험대에 오르는 것이다. 이 점은 초림 당시 예수님께서도 큰 관심을 두셨던 부분으로, 주님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의 구원이 아닌 “제자도”에 관해서 시험하셨다. 『누구든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나, 정녕,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은 채 내게로 오면 그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느니라. 또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나를 따라오는 자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느니라』(눅 14:26,27).

제자도에 관한 시험은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주님을 온전히 따르는 일은 초림 당시나 지금이나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흔히 구원과 제자도를 혼동하는데, 구원과 제자도는 분명 다르다. 구원은 비용이 들지 않는 “값없는 선물”인 반면(롬 5:15-19, 벧전 1:18,19), 제자도는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즉 주님을 그분의 제자로서 따르는 데에는 대가가 따르는 것이다. 구원은 어떤 행위나 훈련도 요구되지 않지만(롬 4:5), 제자도(discipleship)는 행위와 훈련이 요구되는데, 이는 제자도를 뜻하는 discipleship에 “훈련하다”(discipline)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과 같다. 제자가 되는 훈련이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훈련이며, 그 모든 것은 전적으로 “나”와 관련되어 있다. 즉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 자식, 형제, 자매, 내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26절).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을 포기할 때 “나”가 아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사랑하는 제자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그분을 섬긴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서” 혹은 “구원받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섬기지 않는다. 우리가 섬기는 것은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분명 선한 일들을 해야 하지만(엡 2:10), 그 행위들은 구원받았기 때문에 나오는 구원의 결과물일 뿐이다. 구원에 관해서는 그 어떤 행위도 자랑할 수 없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8,9). 행위가 아닌 믿음과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구원받은 뒤에 “선한 일들을 행하라”고 창조된 하나님의 작품들이다.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들을 위하여 창조되었느니라. 이 일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시어 우리로 그것들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신 것이라』(엡 2:10). 예수님께서는 “나”와 관련된 것들을 미워하며 주님을 따라야만 제자의 자격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뒤 두 가지 예를 비유로 드셨는데 우리는 그것을 “망루 건축과 전쟁 승산의 비유”라고 부른다.

▣ 망루 건축의 비유(눅 14:25-30) ▣

『그때 큰 무리가 주와 함께 가더니, 주께서 돌아보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나, 정녕,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은 채 내게로 오면 그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느니라. 또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나를 따라오는 자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느니라. 너희 가운데 누가 망루를 세우려고 하면 먼저 앉아서 자기가 가진 것으로 그것을 완공할 수 있는지, 그 비용을 계산해 보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그렇지 못하여 기초만 세워 놓고 완공할 수 없게 되면 그것을 쳐다보는 모든 사람이 그를 비웃기 시작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이 공사는 시작하였으나 완공은 못 하였구나.’라고 하리라』(눅 14:25-30).

지난 1월 11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에서 현대산업개발이 공사 중이던 화정 아이파크 2단지 201동의 23-38층 대부분이 붕괴한 사고가 발생했다. 현장 관계자들은 입주 일정을 맞추기 위해 공사 기간에 쫓기다 보니 윗선에서 가장 기본적인 공정을 지키지 않고 현장 작업자들을 닦달하며 속도를 낸 것이 사고의 원인으로 보인다고 했다. 시공사의 압박에 겨울철 영하의 날씨에 콘크리트가 양생도 되지 않았는데 4,5일에 한 층씩 올린 것이 화근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시공사 측은 이에 반박했지만, 세간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대부분의 건설사들이 비용을 아끼거나 기타 이유로 공사 기간을 단축한다. 거의가 공사 비용에 발목이 잡히는데, 충분한 돈이 없다면 건물을 아예 올리지 말아야 함에도 그들은 공사비를 아끼려고 부실 공사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망루 건축 비유는 “완공할 비용을 가지고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건축가이다(고전 3:10-12). 우리가 세우는 건축의 기초, 곧 “구원”은 이미 놓여 있지만(눅 14:29), 구원받은 후 그 기초 위에 “그리스도인의 인격의 망루”를 세워 완공하는 데 드는 비용은 별도로 계산해 봐야 한다. 망루는 “적이나 주위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높이 지은 방어와 감시용 누각”을 말하는데, 말하자면 제자도는 영적 전쟁이며, 그리스도인은 그 전쟁을 위한 “인격의 망루”(마 11:29)를 건축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죄의 공격을 감시하고 방어하는 높은 누각을 쌓아올리는 일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죄의 공격을 감시함으로써 자신과 교회를 지킬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망루로서 세우는 데에는 “인내의 비용”이 필요한 것이다. 자신이 주님의 제자로서 합당한 인격을 함양하는 일에 자신을 온전히 부인하고 임할 의향이 없다면 제자로서의 길을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낫다. 즉 얼마만큼의 인내가 요구된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길러 갖추겠다는 마음이 없다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나섰다가 중도에 포기한다면, 데마처럼 “수치스럽고 무능한 건축가”임을 드러낼 뿐이다(딤후 4:10). 그렇다면 주님의 제자로서 영적 인격을 함양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세상의 육신적인 가치관을 버리고 성경적인 가치관만을 “인내로” 쌓아올리는 것이다. 마귀들과의 치열한 영적 전쟁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마 11:29) 성경적인 인격의 망루를 인내로 쌓아올리는 것이 주님의 제자가 되는 길이다.

▣ 전쟁 승산의 비유(눅 14:31-33) ▣

『또한 어떤 왕이 다른 왕과 싸우러 나갈 때 먼저 앉아서 이만 명을 데리고 자기를 대적해 오는 그를 일만 명으로 물리칠 수 있는지 숙고해 보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할 수 없다면 그 적들이 아직 멀리 있을 때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요구하지 아니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느니라』(눅 14:31-33).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은 특별 군사 작전 개시 명령을 선포한 후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이 러시아의 침공으로 유명해진 인물이 바로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이다.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진 국가를 떠나지 않고 오히려 국방색 티셔츠를 입고서 수염을 깎지 않은 얼굴로 화상 연설을 하며 결사 항전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애국애족의 자세가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은 것이다. 초보 정치인임에도 군사 대국인 러시아에 항전하는 모습은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헌신인가를 보여 주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군사력은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에 침공 당시 우크라이나가 “1시간도 못 버틸”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결사 항전에 부닥쳐 아직까지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전쟁 승산의 비유를 통해 “어떤 적이라도 맞설 정도로 헌신되어 있는가?”를 제자가 되려고 하는 이들에게 물으신 것이다. 왕은 출정하기에 앞서서 적의 군사력을 가늠해 보고 자기가 보유한 군사와 장비로 적을 물리칠 수 있는지를 앉아서 따져 봐야 하는데, 계산해 보니 안 되겠다 싶으면 가서 화친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본 비유의 요점은, 안 되겠다 싶으면 원수와 타협하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자신이 주님의 제자로서 이생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자기 목숨까지도 내려놓고 영적 전쟁을 치를 수 있는지를 돌아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즉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제자도는 원수와 타협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바쳐서 결사 항전하는 자세이다. 주님은 전쟁 승산의 비유의 결론으로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느니라.』(33절)라고 하셨는데, 이 점은 전체 비유의 시작에서부터 주님께서 타협의 여지 없이 강조하신 바이다. 『누구든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나, 정녕,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은 채 내게로 오면 그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느니라. 또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나를 따라오는 자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느니라』(26,27절).

주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은 이후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하여 그리스도인다운 인격의 망루를 참고 견딤으로 완공해야 한다. 또한 자기의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영적 전쟁에 임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꾸준히 함양함과 동시에, 타협 없는 결사 항전의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가 되는 길이다. 이 점을 망각하면 그 누구도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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