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부흥의 깃발 분류

부흥의 깃발 4 기도 모임을 승리로 이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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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2년 03월호>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그것을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아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라. 너희가 무엇이나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3,14).

지금으로부터 160여 년 전 찰스 피니가 사역했던 당시의 미국 교회들의 “기도 모임”은 현대 교회들의 기도 모임과는 사뭇 달랐다. 오늘날의 기도 모임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교회 전체의 필요와 지체들 서로 간의 필요를 위해 중보 기도를 하고, 각자 자신의 개인적인 기도 제목을 놓고 개별적으로 기도하는 형태를 띤다. 그러나 찰스 피니의 시대에는 복음 전도 집회와 부흥회, 기도 모임 등의 구분이 지금처럼 명확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마을에 기도 모임이 열릴 때면, 그 모임에 관심 있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구원의 여부와 관계없이 참석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직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도 그 기도 모임에 참석한 하나님의 자녀들 사이에 끼어 있을 수 있었다. 당시의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서 찰스 피니가 말하는 “기도 모임을 승리로 이끄는 비결”에 대해 귀를 기울여 보자.

1. 함께 모여 기도하라

은혜가 한량없으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동정심”을 지닌 존재로 만드셨다. 우리는 이러한 본성 때문에 다른 누군가와 감정을 공유한다. 예컨대 하나님께서 세우신 설교자는 자신의 감정을 회중들의 마음에 투영시킨다. 그 설교자를 감동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께서 그의 “감정”을 사용하시어 청중들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것이다. 이렇듯 주님께서는 설교에 있어서 “말”만 사용하시는 게 아니다.
열렬하게 기도하는 마음을 갖고 싶을 때, 이미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와 함께 기도하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도 없다. “기도의 영”을 지닌 성도와 나머지 다른 성도들 사이에 “영적인 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져 있어서 나머지 성도들이 그의 영적 수준을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말이다. 다른 성도들이 “기도의 영”을 소유한 그 성도의 영적 수준에 어느 정도 근접해 있다면, 그 한 성도가 지닌 기도의 영은 일종의 도화선이 되어 여기저기 번져 나가는 엄청난 불길을 일으킬 수 있다. 기도의 영을 소유하고 있는 한 성도가 교회 전체를 각성시키는 일은 종종 일어난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흔히들 목도할 수 있는 “부흥”이 뒤따르게 된다.

2. 기도의 주제에 집중하게 하라

기도 모임은 성령 하나님께 속하는 사역이다. 그러므로 기도 모임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관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 모임에 참석한 어떤 성도가 기도하려는 열망이 있는 모습을 보거든 그가 기도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혹이라도 그 성도의 기도 내용 안에 바로잡아 주어야 할 부분이 보인다면, 기도 모임을 이끄는 인도자가 이런 점을 잘 포착해서 자유롭고 친절하게 그 부분을 바로잡아 주고 자연스럽게 모임을 이끌어 가야 한다. 그러나 기도 모임의 인도자는 “개입의 시기”를 주의해서 선정해야 하는데, 성도들의 감정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모임 분위기를 냉랭하게 하거나 성도들의 생각이 본래의 주제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기도가 합당한 주제에서 벗어나 버리는 일은 누군가가 기도를 길게 할 때 주로 일어난다. 그들은 “기도의 영”이 없는 자들로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이야기하는 가운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긴 기도를 하곤 한다. 신학 체계 전체를 언급하면서 기도하는 사람도 있다. 모든 성도가 ‘이제는 좀 그만했으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할 때까지 설교나 권면 형태의 기도를 하는 이들도 있다. 기도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요점”을 잘 정리해서 기도하러 온 목적에 부합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기도의 주제에 집중하지 않고 자기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떠오르는 대로 기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3. 인도자를 신뢰하게 하라

회중이 기도 모임의 인도자를 신뢰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면, 어떤 선한 열매도 기대할 수 없다.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또 누구의 책임이든지 간에, 회중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성도가 모임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은 기도 모임의 전체 영적인 분위기를 무너뜨릴 수 있고, 어떤 선한 역사도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방해 요인이 될 수 있다.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공격적인 태도를 지닌 집사들이(“공격적”이라는 표현이 아주 적합한 묘사인지 잘 모르겠지만) 중책을 맡은 교회들에서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기도 모임의 영적인 분위기가 그 집사의 그런 영향력 때문에 죽어 버리는 것이다. 기도 모임의 인도자가 “경건”이나 “영적인 능력,” “영적 분별력에 따른 판단” 또는 그 외에 모임과 연관된 어떤 면모에서든지 신뢰를 잃으면, 그의 말과 행동은 모두 실패로 이어진다. 어떤 사역자가 교회의 회중으로부터 신뢰를 잃었을 때도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4. 제시간에 오게 하라

기도 모임에 지각하는 사람들은 그 모임에 있어서 매우 큰 방해 요소가 된다. 눈을 감고 기도하기 시작할 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주 하나님께 주의를 집중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 모임 장소로 급하게 들어오면 기도 모임 분위기는 망가지고 만다. 그 순간 그를 쳐다보는 사람은 몇몇 안 될지라도 모든 성도가 주의를 집중하는 데 방해를 받는다. 이내 다시금 마음의 안정을 찾아 기도에 집중하려고 하면 또 다른 사람이 들어온다. 결국 이런 식으로 지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기도 모임은 계속 방해를 받게 된다.
설령 기도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의 수가 많다 해도, 그 사람들 대부분이 모임이 시작된 이후에 도착한 사람들이라면 마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마귀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이런 식으로 주의를 분산시키고 몹시 부산하게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무척 기뻐할지도 모른다.

5. 찬송은 적절하게 부르라

찬송을 너무 많이 불러서 기도 모임이 타격을 받는 일도 종종 있다. 기도 모임에 온 누군가가 그날 “고뇌하는 기도의 영”을 가졌다면, 밝은 분위기의 찬양을 부르는 것이 힘들 수 있다. 무슨 일이든지 간에 때가 있는 법이다. 찬양할 때가 있는가 하면 기도할 때가 있다. 잃어버린 혼들이 구원받도록 하는 데 어떤 수고가 필요한지 아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죄인들을 지옥에서 구원하기 위해 기도하려는 영을 가졌을 때만큼은 밝은 분위기의 찬양을 부르기가 어렵다는 사실에 공감할 것이다.

기도 모임의 인도자가 종종 젊은 회심자들에게 밝은 분위기의 찬송을 불러 달라고 요청하는 때가 있는데, 이런 이유로 기도 모임이 타격을 입기도 한다. 이는 매우 부적절한 처사다. 상당히 많은 죄인들, 심지어 한때 우리와 함께했던 죄인들이 지옥의 대기자로 살고 있는데, 그들을 위해 비통한 마음으로 기도하고자 하는 성도 앞에서 자신의 구원에만 심취된 나머지 “즐거운 노래”로 감흥을 쏟아 내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이겠는가?
이런 식으로 사역자와 회중이 젊은 회심자들과 함께 노래를 흥얼거릴 때 부흥의 불씨를 꺼뜨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죄인들을 위해 더욱 비통한 감정을 가져야 할 때 즐거워하게 되면, 하나님의 영께서 무척 슬퍼하시며, 그들의 모임으로부터 떠나 버리신다. 결국 혼들을 향한 그들의 고뇌와 산고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6. 기도 모임 시간은 적절해야 한다

기도 모임의 전체 시간이 적절해야 한다. 기도에 몰입하고 그 안에 열정을 쏟아 넣은 후에도 지치지 않을 정도의 시간이 적당한 기도 모임 시간이다. 언제나 기도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아직은 마음이 뜨거울 때 해산하게 하는 것이 좋다. 모임을 너무 질질 끌어서 참석한 사람들이 그들의 모든 감정을 소진하게 하고, 기도의 영이 사라져 버리게 해서는 안 된다.

7. 기도 모임을 철저히 준비하라

모든 사역자는 성도들이 기도 모임을 소홀히 할 때, 어떤 사역이라도 속 빈 강정처럼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성도들의 마음속에 기도 모임에 참석해야겠다는 생각을 심어 줄 수 없는 사역자라면, 그가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어떤 다른 사역도 성도들의 믿음의 상태를 진전시킬 수 없다.

기도 모임은 가장 필요하면서도 존속되기가 가장 어려운 모임이다. 기도 모임은 너무나 영적인 모임이기에, 인도자가 성도들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여 각별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그 모임의 규모는 점차 줄어들게 된다. 교회 성도들이 모임에 잘 참석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사역자들이 불평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것은 아주 불필요한 일이다.

십중팔구 성도들이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사역자의 책임이다. 그가 모임을 향한 열정과 그 모임의 목적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었다면, 단 한 번이라도 참석했던 사람들은 모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을 것이고, 결국 정기적으로 그 모임에 참석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역자가 영적으로 너무나 냉랭하고 둔하며 능력도 부족해서 모든 것이 얼어붙을 지경이라면, 성도들이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교회 사역자들은 종종 성도들이 기도 모임에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평하고 꾸짖는다. 그러나 사실은 그 사역자들이 너무나 냉랭해서 영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그 모임에 참석한 모든 성도들을 얼어붙게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받기를 바란다면, 빙 둘러서 변죽을 울리며 기도하지 말고 죄인들의 회심에 대해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간구하라.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은혜를 바라는 주된 목적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그 자리에서 지금 당장이라도 죄인들이 회심할 것처럼 기도해야 한다. 죄인들이 단지 무언가를 깨닫고 찔림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그들이 바로 이 순간에 회심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죄인 한 명쯤은 기도 모임에 왔다가 회심하지 않고 가는 일도 있을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거나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어떤 죄인에게든지 “지금”이 바로 그의 생명을 하나님께 의탁할 수 있는 적기라는 인식을 심어 주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진심으로 죄인들의 회심을 위해 간구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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